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071 - Chapter 1080

1085 Chapters

제1071화

하지만 그 말은 강지연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다.“저 당신이랑 이혼할 거예요.”“여기 와서 몇 마디 가식적인 말 한다고 제가 마음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분명히 말해두는데 추형석 씨랑 제 사이엔 이제 아무 가능성도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는 함께하지 않을 거예요!”잔뜩 흥분한 탓에 강지연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가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그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더 연약하고 가여워 보이게 만들었다.그렇지만 추형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그리고는 자신의 휴대폰을 추도윤에게 건넸다.“저쪽 가서 게임하고 있어. 아빠가 엄마랑 할 얘기가 있어.”예전과 달리 추도윤은 강지연에게 그다지 달라붙지 않았다.이번에도 떼를 쓰거나 엄마 옆에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 뒤, 휴대폰을 들고 옆에 가서 앉았다.추형석은 잠깐 아이를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강지연을 향해 말했다.“착각하지 마. 난 동정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리고 당신도 내 동정심을 유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오늘 여기 온 건 그냥 뭐 하나 알려주려고 온 거야.”강지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당신이 왜 아이를 지키지 못했는지 알아?”그 말에 강지연은 두 주먹을 순간 꽉 움켜쥐어졌다.“누군가 이 사실을 종연 씨한테 알렸거든.”추형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고 강지연은 이미 잔뜩 긴장한 채로 굳어있었다.“누군데요?”“몰랐어? 김서영 씨랑 종연 씨... 완전 절친이잖아. 종연 씨는 금성 자선회 회장이야. 그래도 혼자 네 임신 소식을 이렇게 빨리 전해들었을 리는 없어. 누군가 알려줬다면 몰라도.”“지금 이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성유리 씨가...”강지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추형석을 바라봤다.하지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천천히 이를 악문 강지연은 이불 위에 얹어둔 손을 꾹 움켜쥐었고 너무 세게 힘을 준 탓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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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2화

“안녕, 너 하늘이 맞지?”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하늘이는 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 중이었다.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무용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원래는 일대일 수업을 받는 날이었지만 담당 선생님이 갑자기 결석하게 되면서 임시로 10인 수업반에 배정되었다.지금은 쉬는 시간이었는데 하늘이는 다른 아이들과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같이 간식 먹으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그래서 조용히 한쪽에서 스트레칭을 계속할 뿐이었다.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하늘이는 고개를 들었다.“아이스크림 좋아하니? 이따가 나랑 같이 먹으러 갈래?”여자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하늘이는 여자를 두어 번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싫어요.”아이의 대답은 단호했다.그 무심한 말투,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은 아버지를 꼭 닮아 있었다.솜을 주먹으로 쳤을 때처럼 헛헛한 느낌. 그건 강지연에게 하늘이의 친모를 떠올리게 했다.불쾌한 기억들이 떠올라 강지연은 무심코 이를 악물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아이스크림 안 좋아해?”“엄마 아빠가 낯선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했어요.”“내가 낯선 사람일 리가 있니?”강지연은 웃으며 계속 말했다.“잊었니? 나는...”“알아요. 추도윤 엄마잖아요.”하늘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러자 강지연은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다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그렇지.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면 난 낯선 사람이 아니지?”“그냥 누군지 안다는 것뿐이에요. 잘 아는 건 아니니까 여전히 낯선 사람이에요.”하늘이가 논리정연하게 대답하자 강지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렇지만 금세 다시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앞으로 자주 보다 보면 친해질 수 있잖니? 사실 너희 엄마랑 나도... 친구였거든.”“싫다니까요. 그리고 우리 집엔 아이스크림 많아요. 굳이 사줄 필요 없어요.”하늘이는 짜증 섞인 말투로 강지연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그리고 그때,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났다.하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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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3화

하지만 김서영이 시선을 돌리자 강지연은 금세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저는 강지연이라고 합니다. 제 딸 추도윤이 전에 하늘이랑 같은 반이었어요.”“오늘은 친구 만나러 왔는데 이렇게 우연히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그래요?”김서영은 강지연을 한번 훑어보듯 바라보며 말했다.“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요?”그 말에 강지연은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곧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그럴 일은 별로 없을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좀 특별해서 외부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요.”“그래요? 무슨 일 하시는데요?”“조각일 하고 있어요.”그 말에 김서영은 무언가 기억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생각났네요. 예전에 작업실에 간 적 있어요.”“정말요?”“나비화가, 그게 지연 씨 작품이죠?”“네!”강지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그 작품을 구입하신 분이 사모님이셨나요?”“맞아요.”김서영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처음엔 연륜 있는 장인의 작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작가가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네요. 대단하네요.”“과찬이세요.”강지연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이렇게 뵌 것도 인연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라도 대접할까요?”“식사는 괜찮아요. 우린 아직 다른 볼일이 좀 있어서요.”말을 마친 김서영은 하늘이의 손을 잡았다.“다음에 기회가 되면요.”“네. 알겠습니다.”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참, 사모님. 혹시 나비화가의 옥 색감이 마음에 드셨다면 제가 비슷한 원석을 하나 더 가지고 있거든요.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구상 중인 작품이 있으니 시간 괜찮으실 때 작업실에 한번 들러보세요.”“이건 제 명함입니다.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강지연의 태도는 매우 정중하고 성의 있었다.김서영은 그녀를 두어 번 바라보다가, 딱히 거절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명함을 받아들었다.그리고 하늘이는 김서영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예의와 가정교육 때문인지,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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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4화

“옥을 사신다고요? 갑자기 웬 옥이에요?”김서영이 오늘은 드물게 먼저 성유리에게 연락해 함께 나가자고 했다.성유리는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김서영이 옥을 사겠다는 말을 꺼냈다.“하늘이 생일 곧 다가오잖니. 너무 값비싼 보석은 지금 아이가 몸에 지니기엔 아직 이르고 옥은 몸에도 좋다니까 작은 거 하나쯤 사주면 좋겠다 싶어서.”김서영의 말은 반박할 틈도 없이 완벽했다.성유리는 뭔가 이상하단 느낌은 들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고 때마침 운전기사도 차를 세웠다.내리자마자 성유리는 간판에 새겨진 전서체 글씨를 보았다.연이네 세공점.첫 세 글자를 본 순간, 성유리는 뭔가를 직감한 듯 눈빛이 흔들리더니 김서영을 바라봤다.하지만 김서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자고 말했다.매장의 인테리어는 단정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통성의 전통 가옥 구조를 살린 채, 마당 천장엔 유리를 덧대 햇빛이 들어오게 했고 정문 맞은편엔 금붕어 연못이 조성되어 있었다.잔잔한 물줄기가 조각된 돌 위로 흘러내리는 가운데 형형색색의 금붕어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사모님!”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반갑게 달려와 말했다.“어떻게 갑자기 오셨어요?”“손녀한테 선물할 게 좀 필요해서요.”“네. 이쪽으로 앉으세요.”직원은 재빨리 의자를 안내했고 곧 성유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이분이 혹시 성유리 씨인가요? 처음 뵙겠습니다.”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그러자 직원은 다시 웃으며 김서영을 향해 말했다.“며칠 전에 강지연 실장님께서 사모님을 아신다고 말씀하셔서 저희 사장님이 언제쯤 방문하실까 궁금해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오실 줄은 몰랐네요.”“별일은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들른 거예요.”김서영은 말하며 다과가 놓인 자리에 앉았다.“그럼 잠시만요. 제가 강 실장님 모셔오겠습니다.”직원은 재빨리 안쪽 사무실로 향했다.여자가 사라지자 성유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김서영에게 물었다.“어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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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5화

김서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그럼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옥은 조금 무거운 느낌이 제가 더 어울릴 만한 재료로 바꿔 가져오게 할까요?”“그래요.”말을 마친 강지연은 고개를 돌려 아까 그 직원에게 말했다.“지난번에 전연석 오빠가 라온시에서 가져온 재료 가져오세요.”“그게...”남자가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강지연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입을 다물었다.이내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강지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김서영 옆에 앉으며 말했다.“이 차는 사모님 입맛엔 좀 안 맞으실지도 몰라요.”“제가 다시 우려드릴게요. 저희 사장님이 아끼는 차예요.”김서영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그러자 강지연은 방금 전 사용하던 다구를 치우고 은은한 월백색의 새 찻잔 세트를 꺼냈다.그녀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했으며 찻잎을 올리고 물을 붓는 동작 하나하나가 능숙하고 우아했다.티포트에서 찻잔으로 물을 나누는 손놀림 또한 매끄럽고 정갈했다.“한 잔 드셔보세요.”강지연이 미소 지으며 차를 권하자 김서영도 마다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천천히 음미하던 그녀는 곧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평소에도 많이 해보셨네요. 아주 잘 우렸어요.”“그냥 자주 해봐서 손에 익었을 뿐이에요.”강지연은 겸손히 웃으며 대답했다.“일 외엔 특별히 취미가 없어서요. 차 마시고 책 읽는 게 전부예요. 대단한 건 못 돼요.”“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엔 이렇게 마음 다잡고 사는 사람 드물어요.”강지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미소만 지었다.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더니 성유리를 향해 말했다.“유리 씨는 안 드셔보시겠어요? 아니면 차를 안 좋아하시는 건가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마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 같았다.그 옆에 앉아 있던 성유리는 마치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강지연의 그 한마디가 그녀를 대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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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6화

“전 됐어요.”성유리가 조용히 대답했다.“저 장신구 같은 거 안 좋아해요.”“괜찮아. 그럼 옥 몇 개만 사 가자. 나중에 네 마음에 들면 그때 조각해도 되니까.”김서영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고 말을 마치고는 가운데에 놓인 옥을 가리켰다.“이건 하늘이 주면 어떨까?”“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강지연은 드디어 대화를 끌어낼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잽싸게 말했다.“이건 최고급 백옥이에요. 아이들한테 딱 알맞은 색감이고요 여기에 새기면...”“두 분 중에 판매 담당이 누구죠?”김서영이 갑자기 말을 끊자 강지연은 순간 당황했다.“당신 조각하는 사람 아니었어요? 근데 왜 여기서 설명을 하시는 건지...”“저 그게... 제가 직접 초대한 손님이니까 그냥...”“전 그냥 마침 필요한 게 있어서 구경하러 온 거예요.”김서영은 다시 말을 끊고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리고 저는 물건 살 때, 옆에서 끼어드는 거 정말 싫어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성유리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그만 봐. 이건 색도 별로야. 나중에 다시 와서 보자.”“사모님!”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직원이 급히 다가왔다.“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저희 쪽에 좋은 옥이 아직 많습니다!”“그래요? 어디 있죠?”“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판매원은 곧장 다른 쪽으로 안내하며 앞장섰다.그리고 김서영은 몇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성유리, 안 와?”“아, 네.”성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남겨진 강지연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그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자신이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면 그게 더 바보였겠지.김서영은 처음부터 노린 거였다.처음엔 일부러 친절한 척 다가와서 자신이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그리고는 돌아서서 동료들 앞에서 자기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빌어먹을 노인네!’“이건 어때? 색도 괜찮고 네 피부톤이랑도 잘 어울리잖아.”김서영은 강지연이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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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7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김서영은 순간 침묵했다.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지금... 나를 욕하는 거야?”“당연히 아니죠!”성유리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그런 뜻 아니에요. 제 말은...”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김서영은 피식 웃었다.“알아. 그런 뜻 아니라는 거. 근데 솔직히 말해서 강지연 씨가 입은 원피스는 진짜 별로였어. 색은 괜찮았는데 자수가 너무 촌스럽잖아.”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성유리는 김서영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했을 거다.물론 당시에도 박씨 가문에서 김서영은 자신을 꽤 챙겨줬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신분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딱 지키는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그 무게를 스스로 내려놓은 사람처럼 표정과 말투는 성유리가 알고 있던 다른 어른들과 다를 게 없었다.김서영이 문득 이런 말을 했다.“생각해 보니까 내가 아는 괜찮은 재단사가 있어. 나중에 너한테도 하나 맞춰줄게. 네가 입으면 훨씬 더 예쁠 거야.”그리고 진짜 얼마 후, 김서영은 성유리에게 원피스 하나를 맞춰줬다.화려한 기운이 도는 진한 레드 컬러에 금사로 진달래꽃이 수놓아져 있어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확 살아 있었다.성유리는 원래 그걸 연회 때 입으려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밤에 잠깐 입어봤다가 박한빈이 그걸 쭉 찢어버렸다.다음 날 아침, 성유리는 그 찢어진 자국을 보고는 당장이라도 박한빈을 물어버릴 기세로 그를 노려봤다.마침 둘 다 침대 위에 있었고 박한빈은 아직 윗옷도 안 입은 상태였기에 성유리는 주저 없이 그의 어깨를 꽉 물었다.그러자 박한빈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그럼 몇 벌 더 맞춰줄까?”“그거 어머니가 준 거예요!”“아, 그래? 그럼 다시 보내달라고 하지 뭐.”“싫어요! 어제 주신 건데 오늘 바로 망가졌다고 하면 제가 뭐라고 설명해요?”박한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걸 왜 네가 설명해? 내가 찢은 건데 내가 가서 얘기할게.”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는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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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8화

“아빠, 잘 다녀와! 꼭 일찍 돌아와서 나 데리고 불꽃놀이 보러 가야 해!”하늘이는 성유리 손을 꼭 붙잡고 차 앞에 서서 해맑게 웃으며 박한빈을 바라봤다.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를 바라봤다.지난번 성유리가 외출할 때, 하늘이 표정은 이렇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비록 울거나 떼쓰진 않았지만 이렇게 기뻐하는 얼굴은 아니었다.그는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려 성유리를 바라봤다.“조심해서 다녀와요.”그러자 성유리도 웃으며 말했다.박한빈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 출발하셔야죠.”운전기사가 앞에서 재촉하자 박한빈은 그제야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하지만 곧바로 창문을 내리고 성유리에게 말했다.“요 며칠 특별히 급한 일 없으면 되도록 외출하지 마.”그 말에 성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는데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렇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알겠어요.”“그럼 간다.”박한빈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창문을 올린 뒤 출발하라고 지시했다.하지만 차가 한참 나가고 나서도 그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게 됐다.마치 두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걸 아는 사람처럼.역시나 성유리와 하늘이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서 있었고 하늘이는 여전히 신나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박한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대표님, 가족분들이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새로 배정된 운전기사가 감탄하듯 말했다.예전 같았으면 박한빈은 이런 말에 아무 대답도 안 했겠지만 이번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네.”“대표님, 안녕하십니까!”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멀리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별말씀을요.”박한빈은 악수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당연히 해야죠. 접대 겸 식사 자리도 준비해 뒀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박한빈은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자리에서 오가는 인사치레와 칭찬, 덕담들은 이제 익숙했으니 능숙하게 받아넘겼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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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9화

하늘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불만을 표현하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성유리는 그 모습에 조금 궁금해졌다.“너 예전에는 아빠가 너랑 같이 있든 말든 신경 안 쓰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는 왜 이렇게 친해졌어?”하늘이와 박한빈은 원래 친하지 않았다.처음엔 거리감이 있었지만 그때의 불편함은 이미 사라졌어도 하늘이는 여전히 박한빈 앞에서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성유리에게만 말하고 박한빈에게는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다.‘이 변화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지난번 도한시에 다녀오고 나서?’“내가 언제? 아빠가 잘못한 거잖아.”성유리의 말에 하늘이는 마치 큰 비밀을 들킨 듯, 하늘이의 목소리가 커졌다.그리고 성유리를 노려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깃털을 세운 수탉처럼 위협적인 느낌이었다.성유리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피식 터뜨렸다.하지만 굳이 아는 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아빠가 잘못한 거야.”“엄마!”하늘이는 성유리의 웃음에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다.그래서 성유리는 그저 웃으며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그럼 이렇게 하자. 하늘이 생일이 주말이잖아? 그때 아빠가 오지 못하면 우리가 한빛시 가서 아빠 만날까?”“진짜?”화가 나 있던 하늘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그렇지만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웃음을 억제하고는 다시 고개를 휙 돌리더니 말했다.“누가 아빠 보고 싶대? 난 약속도 안 지키는 아빠 필요 없어.”“괜찮아. 우리 가서 아빠는 그냥 놔두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자. 한빛시에는 유명한 만화 전시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 엄마랑 같이 가볼래?”“음... 좋아.”하늘이는 마치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눈은 행복하게 빛나고 있었다.그 모습은 박한빈과 거의 똑같았다.성유리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럼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우리가 가서 깜짝 놀라게 하자. 괜찮지?”하늘이는 즉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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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0화

박한빈은 이번 일이 방재호가 일부러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의 태도는 여전히 겸손하면서도 당당했다.방재호는 딱히 박한빈을 신경 쓰지 않고 그들에게 한빛시의 풍습과 문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박한빈은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는데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강지연은 옆에서 듣고 있다 점점 미간을 찌푸렸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한빈이 전화를 받으러 나갔을 때 강지연은 그를 따라 나가기로 했다.“응. 지금 먹고 있어.”박한빈은 복도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그의 목소리와 얼굴에는 강지연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움이 가득했기에 그녀는 곧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곧 돌아갈게. 하늘이는 잠들었어?”수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박한빈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래? 괜찮아. 돌아가서 다 해주면 돼.”강지연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박한빈은 상대방에게 인내심 있고 부드럽게 대화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강지연은 그 순간, 그들의 대화도 남들과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박한빈과 성유리가 나누는 대화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비밀스럽고 품위 있는 대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강지연은 원래 박한빈은 아내와 뭔가 우아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제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박한빈의 아내인 성유리가 연애 소설을 그리는 만화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이 정도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그 순간, 통화를 끝낸 박한빈이 자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자 강지연의 심장은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치마를 살짝 움켜잡았다.5미터 앞, 박한빈은 그제야 강지연을 발견한 듯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2미터, 강지연은 그의 표정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복도 조명이 박한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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