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181 - Chapter 1190

1285 Chapters

제1181화

“그 말에 에릭은 잠시 얼어붙었다.그리고는 이를 악물며 계속 말했다.“네 말처럼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일을 터트려놓고 우리가 들고 있는 판이 먼저 터져버리면 어쩔 건데?”“터지면... 알아서 누군가 메워줄 거야.”박한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에릭이 무언가 더 말하려던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고개를 돌려 화면을 본 에릭은 그 위에 뜬 이름을 확인하곤 잠깐 멈칫했다.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박한빈은 이미 그의 비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당신 대표한테 세림국 가는 비행기 티켓 예약해 줘도 될 겁니다.”단 한 마디만 남기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박한빈은 작업을 이어가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난 시간이 별로 없어. 이틀 안에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 혼자 금성으로 돌아갈 거야.”이 말은 당연히 에릭을 향한 것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정적에 휩싸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에릭과 격렬하게 언쟁을 벌였던 사람조차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에릭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건 어디까지나 일적인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박한빈은 아예 이 사무실의 주도권을 손에 쥐어버린 것이다.사람들은 순간 착각했다.지금 이 방에서 에릭이 마치 박한빈의 부하 같다는 느낌을.그런데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박한빈의 말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이 정말로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가버린 것이다.그러자 박한빈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멍하니 서서 뭐 하고 계십니까?”그제야 모두 정신을 차리고 다들 자리에 돌아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모니터 화면 위에는 무수한 선들이 교차하며 요동쳤다.그 변동 폭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지만 이 업계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여기서 경쟁하는 건 심장박동이 먼저 멈추나, 아니면 주식 그래프가 먼저 멈추나 하는 것이다.그들은 이미 이 비정상적인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다.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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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2화

“아내 보러 가려는 거지?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어.”에릭이 박한빈을 막아서더니 웃으며 말했다.“이미 네 아내를 위한 전세기를 마련했어. 지금쯤이면 곧 착륙할 거야.”그 말에 박한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뭐라고?”“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에릭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지금 너, 아내를 무척 보고 싶어 하는 거 다 알아. 게다가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은 너잖아? 축하 파티에도 당연히...”에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유리 곧 출산할 임산부야! 그런데 네가 그런 사람을 비행기에 태웠다고? 미친 거 아니야?”박한빈도 며칠째 밤을 새우고 있었다.하지만 고강도 업무에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던 정신이 지금은 분노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그의 두 눈은 에릭을 집어삼킬 듯 번뜩이고 있었고 그 눈빛엔 살기까지 어려 있었다.그럼에도 에릭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걱정 마. 전용기 안에 전문 의료진과 장비 다 탑승했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을 꽉 다물렸고 안색은 철처럼 창백하고 굳어 있었다.주변에서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있던 사람들도 갑자기 조용해졌다.두 대표가 왜 갑자기 다툼 직전까지 간 건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기에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결국 박한빈이 먼저 손을 놓았다.그리고 에릭을 힘껏 밀치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기억해. 오늘 밤, 축하 파티 있다는 거.”에릭이 뒤에서 소리쳤지만 박한빈은 돌아보지도 않았다.그럼에도 에릭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다 같이 즐기자고요!”에릭이 외치자 어리둥절해하던 사람들도 다시 환호성을 지르며 광란의 파티를 이어갔다.하지만 박한빈은 이미 그 모든 소리를 멀리 등지고 있었다.그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운전기사에게 공항으로 가자고 말했다.그제야 며칠간 열어보지 못했던 메신저를 켰다.이쪽 네트워크가 막혀 있어 국내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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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3화

박한빈은 성유리를 보자마자 달려가더니 말없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그의 팔에 들어간 힘은 너무도 강해서 마치 한 번 잃었다가 겨우 다시 손에 넣은 보물을 껴안는 것 같았다.성유리는 처음에는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었다.에릭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정말로 박한빈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정신없이 준비하고 에릭이 마련한 전용기를 탔을 때만 해도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쳐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아니면 에릭이 그렇게까지 급하게 부를 이유가 있었을까.비행 내내 성유리의 마음은 불안과 초조로 뒤엉켜 있었고 착륙 후에야 박한빈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았다.[나 괜찮아. 에릭이 너 속인 거야.]너무도 가볍게 쓰인 그 한 문장이 성유리의 마음을 놓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분노를 치밀게 했다.하지만 지금, 박한빈의 품에 안겨 있자 분노조차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잠시 후, 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에릭 씨는 왜 그런 짓을 한 거죠?”“걔는 미친놈이야.”박한빈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성유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내 박한빈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녀를 살짝 떼어내며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몸은 괜찮아? 그렇게 긴 비행했는데 어딘가 불편한 데는 없었어?”“네. 전 괜찮아요.”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하지만 곧, 박한빈의 눈이 붉게 충혈된 눈과 밑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을 보고 깜짝 놀랐다.“한빈 씨는요? 며칠째 제대로 쉬지도 못한 거죠?”박한빈은 부정하려다 성유리의 눈을 보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응.”그 대답에 성유리는 미간을 더 잔뜩 찌푸렸다.“일단 호텔로 가자.”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너도 많이 피곤할 거야.”사실 성유리는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걱정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을 뿐, 지금 박한빈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놓이는 기분이었다.“그럼... 이쪽 일은 이제 다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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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4화

“그래서 갈 거예요?”박한빈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성유리는 에릭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전했다.그 시각, 그는 아직 침대에 앉아 있었고 막 깨어나서인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눈빛에도 약간의 멍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그렇게 박한빈은 멍하니 성유리를 바라봤다.잠시 눈을 맞추고 있던 성유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네?”“뭐라고?”박한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성유리는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안 가.”박한빈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에릭 씨 말로는 오늘 밤 파티는 굉장히 중요한 자리래요.”성유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안 가.”박한빈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뭐 먹고 싶어? 이따가 같이 밥 먹으러 가자.”“전 아무거나 괜찮아요.”성유리가 대답하자마자 호텔 방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이내 그녀가 문을 열려 하자 박한빈이 성유리를 가로막았다.“여기는 금성이 아니야. 함부로 문 열지 마.”박한빈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호텔에 묵고 있지만 시장이 크게 요동친 이 시점에서 박한빈은 조심에 조심을 더하고 있었다.그 며칠 동안 그들이 쓸어 담은 것만큼 다른 누군가는 인생을 송두리째 잃었을 수도 있다.누군가 박한빈을 원망하고 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예전 젊었을 때라면 뭐든 겁 없이 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아내가 있고 딸이 있으며 성유리의 뱃속에는 둘째 아이까지 있다.그래서 이제 더 이상 무모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문 쪽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곧 박한빈은 조용히 현관 앞으로 가 밖을 들여다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예요?”성유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물었다.“에릭.”박한빈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역시 여기 있었군.”에릭은 여전히 쾌활해 보였다.방 안으로 성큼 들어서며 박한빈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성유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어때요? 파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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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5화

박한빈은 순간 두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바로 그때, 성유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그럼 같이 가요.”박한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성유리는 에릭을 향해 미소 지으며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한빈 씨도 갈 거예요. 에릭 씨 말이 맞아요. 저도 너무 오랫동안 밖에 안 나왔더니... 이번 기회에 좀 바깥세상도 보고 싶네요.”“음, 그래야죠.”에릭은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박한빈을 향해 말했다.“그럼 운전기사를 밑에서 대기시켜 둘게. 늦지 마.”에릭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박한빈은 성유리를 돌아보았다.“왜 에릭 말에 넘어간 거야?”“두 사람이 정말 싸우는 꼴은 보기 싫어서요.”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그리고 에릭 씨가 아까 말했잖아요. 여긴 금성이 아니라고.”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파티... 위험하진 않겠죠?”성유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위험하진 않아.”박한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냥 단순히 가기 싫은 것뿐이야.”“혹시 저 때문에 그래요?”고개를 끄덕이던 박한빈은 이내 다시 절레절레 저었다“전 괜찮아요.”성유리는 조용히 말했다.“정말 안 되겠으면 얼굴만 살짝 비추고 나와도 돼.”사실 그곳에 가면 단순히 얼굴만 비추고 나오는 일로 끝날 리 없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에릭이 저렇게까지 나온 걸 보면 아마도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압박을 넣었을 것이다.이번에 거절한다고 해도 다음번에는 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올지도 몰랐다.게다가 지금, 성유리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이대로 금성으로 돌아가려면 전용기뿐 아니라 의료 장비와 의사까지 준비해야 한다.그 모든 준비를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내일은 되어야 한다.“나 혼자 다녀올게.”결국 고민하던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넌 여기서 기다려. 그동안 누가 오든 절대로 문 열지 마.”성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박한빈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그래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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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6화

“안녕하세요. 성유리입니다.”사람들의 시선을 눈치챈 성유리가 곧장 입을 열었다.그녀는 박한빈의 옆에 서서 얼굴엔 잔잔한 미소를 띠고 당당하지만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이런 사람은 이미 많이 봤다는 듯, 몇몇 사람들은 성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곧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박한빈과의 대화에 열을 올렸다.그들의 감정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흥분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 몇몇은 따라 하듯 함께 던졌다.겉으로는 우아하고 멋져 보이는 이 파티가 사실은 ‘짐승’들의 연회처럼 느껴졌다.짐승이라면 무슨 행동을 하든 이상할 것이 없었다.이후 성유리는 이들이 미쳐간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직접 목격하게 된다.기분이 좋을 땐 돈다발을 한 줌 쥐고는 공중에 뿌리고 기분이 나쁘면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거나 서빙하던 직원을 밀어 넘어뜨려서는 개처럼 짖으라고 강요했다.심지어 옷을 벗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며 성유리는 오히려 박한빈의 감정 컨트롤이 무서울 정도로 안정적이라는 걸 느꼈다.그가 얼마나 침착했냐면 이 난장판 속에서도 마치 제삼자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을 정도였다.그러다 어떤 남자가 옷을 거의 다 벗으려 할 때쯤, 박한빈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성유리를 파티장 안쪽의 휴게실로 데려가게 했다.마침 성유리도 지쳐가고 있었다.“저희는 언제쯤 나가요?”그녀가 묻자 박한빈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30분만 더 있자. 내가 문 앞에 경호원 둘 뒀으니까 여기서 좀 쉬어.”“네.”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박한빈이 돌아서려 하자 성유리는 다시 그의 손을 붙잡았다.“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요.”박한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미소를 지었다.“알았어.”그가 아직 맨정신처럼 보였기에 성유리는 비로소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박한빈은 문 앞에 대기 중이던 경호원들과 몇 마디 더 나눈 후, 그들의 대답을 듣고서야 다시 파티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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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7화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에릭을 바라봤다.그 눈빛은 웃고 있지만 웃는 것 같지 않았다.에릭은 파티장의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쟤네도 다 결혼했잖아. 근데 옆에 애인 하나 없는 놈이 어디 있어? 나도 마찬가지야. 설령 내가 진짜 결혼했더라도 한 여자만 보고 살진 않았을 거야.”“그건 현실적이지 않아.”그들의 위치를 떠나 현실에서 과연 몇 명의 남자가 한 사람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남자는 딱 두 부류라고 에릭은 말했다.바람피울 기회가 있는 남자, 그리고 바람피울 기회가 없는 남자.겉보기엔 충실해 보이는 남자들도 사실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에릭은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겼다.그에 비하면 박한빈은 정상이 아닌 쪽이었다.하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릭은 그가 드디어 설득당한 줄 알고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너는 가끔 거울을 보다가 네 몸이 역겹다고 느끼거나 이 껍데기를 버리고 새 몸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뭐라고?”갑작스러운 질문에 에릭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너 지금 불로장생 연구 얘기하는 거야? 다른 육체를 통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웃으며 에릭을 바라봤다.그제야 에릭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얘기 아니었어?”“난 말 그대로 물어본 거야. 너는 네 몸이 싫어진 적 없어?”“당연히 없지.”에릭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턱을 들어 올렸다.“나는 내 몸에 아주 만족해.”“그래.”박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유리는 내게 그런 존재야.”“뭐?”“네가 네 몸의 일부분을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한테도 성유리는 그런 존재야. 내 뼈와 살로 엮이지 않았을 뿐이지. 나와 다르지 않아.”에릭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러자 박한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네가 말한 자극... 그건 이제 더는 내게 자극이 아니야.”“지금의 나는 그런 자극 없이도 세상이 충분히 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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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8화

박한빈은 씩 웃고는 휴게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고 표정도 굳어졌다.그가 남겨둔 두 명의 경호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휴게실 문은 벌써 억지로 열려 있었다.박한빈의 심장이 순간 멈춘 듯 얼어붙었고 손발까지 차가워졌다.그러나 단 1초 후, 그는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성유리는 안에 없었다.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놀란 박한빈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무슨 일이야?”에릭도 뒤따라 들어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쓰러진 경호원 중 하나에게 끼얹었다.“로얀의 아내는 어디 있지?”피투성이 얼굴, 부러진 듯한 콧대,입으로 거칠게 숨을 쉬던 경호원은 그 술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박한빈은 망설임 없이 그의 멱살을 잡고 이를 악물며 외쳤다.“내 아내 어디 있냐고!”“테일드... 테일드가 데려갔습니다.”그가 힘겹게 말끝을 맺자 박한빈은 경호원을 밀쳐버리고 돌아섰다.에릭은 급히 그를 쫓아왔다.“진정해. 그냥... 장난삼아 그랬을 수도 있어.”박한빈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거칠게 돌아섰다.불과 몇 분 전,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 사람의 눈빛은 이제 피로 물든 듯 붉고 안에 가득 찬 건 분노와 살기였다.에릭은 박한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말로 설득하려 했다.“아무리 그래도 테일드는 우리 편이야. 네 아내한테 큰일은 안 생길 거야. 아마 그냥...”그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박한빈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뭔가를 빼앗아 갔다.에릭은 순간 당황했고 잠시 후에야 그것이 자신의 무기였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러자 그의 얼굴빛이 급격히 변하더니 곧장 박한빈을 쫓아가며 외쳤다.“야, 너 진짜 그러면 안 돼! 테일드는 우리 편이야!”아까 그 두 명의 경호원이 쓰러졌던 이유도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박한빈이 진짜로 뭔가 저지르면 에릭조차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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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9화

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옆을 바라보았다.테일드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로얀, 이게 무슨 짓이야? 난 그냥 네 아내랑 이야기 좀 하려던 것뿐이야.”박한빈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 성유리의 눈 위에 덮어씌웠다.“보지 마.”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에 쥔 방아쇠를 당겼다.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성유리는 제대로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마치 그 남자들이 난입해 왔던 그 순간처럼.당시,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지만 그게 자신과 관련된 일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그러다 갑자기 방문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열렸다.술에 취한 몇몇 남자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서로 뭐라고 말하며 그녀를 관찰했다.그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과도 같았다.성유리는 급히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아직 걸기도 전에 그들은 달려와 성유리의 휴대폰을 부숴버렸다.“저는 로얀의 아내예요.”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알고 있습니다.”그들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러고는 성유리를 밀치며 방에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들 중 몇몇이 누가 먼저 할 건지 다투는 소리까지 들었다.어떤 자는 그녀의 불러온 배를 보며 그것이 박한빈의 아이란 사실을 듣자 더욱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성유리는 마치 늑대 무리 속에 떨어진 어린 양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박한빈과 함께한 시간 동안 성유리는 이 남자들의 타락한 본성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자신이 약해질수록 그들의 파괴욕과 지배욕은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억지로라도 냉정을 유지하려 했다.그리고 조용히 물었다.“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목적이 뭐죠?”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자극과 스릴.”“그게 다예요?”성유리는 계속 물었다.“진짜 그거뿐인가요?”그녀가 이렇게 침착하게 말하자 남자들은 다소 당황한 듯 되묻기 시작했다.“당신은 뭘 더 원합니까?”성유리는 슬쩍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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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0화

성유리는 몸이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눈을 가리고 있던 넥타이를 잡아당겨 벗어냈다.테일드는 이미 반쯤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의 허벅지에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방금까지 그와 함께 떠들던 동료들은 단 한 명도 나서서 막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은 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의 눈동자에는 흥분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이 장면이 얼마나 보기 드물고 흥미진진한 쇼인지 보는 것처럼,오늘 밤 지루한 파티에 드디어 재미를 더한 것 같았다.박한빈의 얼굴엔 어떤 감정도 없었다.첫 번째 총성 이후에도 그는 여분의 행동 없이 곧장 권총을 들고 남자의 이마를 겨누었다.그 행동에 성유리의 안색이 돌변했다.그녀는 이들 세계의 규칙을 알지 못했지만 이 세상의 어디든, 살인은 목숨으로 갚는다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더구나 박한빈은 이곳의 시민이 아니었다.그가 금성에서 특별한 신분을 가졌어도 이곳에서는 결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의지가 될 수 없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을 막으려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발걸음이 채 나가기도 전에 하체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그 아픔에 성유리는 수년 전 어느 날을 떠올렸다.박한빈을 부르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등지고 있어 그녀의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테일드는 분명 술에 취해 있었다.박한빈이 머리에 총구를 대도 그 눈동자엔 한 점의 두려움이 없었다.오히려 그와 주변 사람들은 더욱 흥분한 듯했다.마치 지금 죽을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상황을 지켜보던 에릭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섰다.“그만해, 로얀. 네 아내도 괜찮잖아? 다들 친구야. 그냥 혼 좀 내주면 돼.”다른 장소였다면 박한빈이 진짜 그를 죽여도 에릭은 별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테일드는 미친 짓을 여러 번 벌여 원한을 산 사람만 해도 한 트럭이 넘었다.지난해엔 거의 누군가에게 치일 뻔했고 길거리에서 갑자기 죽는 일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렇지만 오늘 밤은 에릭의 파티였다.테일드가 여기서 죽으면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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