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231 - Chapter 1240

1265 Chapters

제1231화

자유를 얻자마자 성유리는 몸을 돌려 빠르게 연회장을 벗어났다.10분이고 뭐고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성유리도 무쇠 인형은 아니지 않은가? 태엽을 아무리 감아도 언젠가는 멈춰버리는 법인데.연회장 안에서 내내 억지 미소를 지었던 그녀였다. 이제 벗어났으니 단 1초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곧 성유리는 화장실에서 나와 일부러 정원 쪽으로 돌아갔다.지금은 금성에서 일 년 중 가장 쾌적한 계절이었다.여름은 이미 떠났고 가을은 소리 없이 번지는 중이었으며 겨울은 한참 남은 때였다.연회장 안의 텁텁한 공기와 대비되듯 정원은 한없이 청량하기만 했다.성유리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조용히 쉬기로 마음먹었다.그런데 한참을 걷던 중, 문득 앞쪽에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울지 마세요. 박 대표님이 그 여자한테 정말 마음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가지고 노는 것일지... 누가 알겠어요?”“이런 공식 석상까지 데려갔잖아요. 그 여자가 단순히 심심풀이였다면 애초에 그렇게까지 했겠어요?”하나는 위로를 건네는 다정한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흐느낌 섞인 목소리였다. 성유리는 고개를 조금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예상했던 대로 옥지나였다.옥지나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다.“제가 몇 년이나 애써 왔는데... 예전에는 제가 박 대표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제 겨우 뭔가 이룬 것 같았는데 다른 여자랑 결혼이라니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어요?”“저도 그 여자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르겠어요!”“저도 소문을 좀 들은 게 있어요.”옥지나의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아버지가 생전에 정해 둔 혼사라고 하더라고요.”“뭐라고요?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뭔데요?”갑작스러운 소식에 옥지나가 언성을 높였다.“제가 이런 식으로 밀려나야 한단 말이에요? 집안 배경이든 뭐든, 제가 어디가 부족하다고!”“방법이 있겠어요? 애초에 선점당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게다가 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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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2화

남미진의 말이 끝났음에도 성유리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두 사람을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었다.아무런 변화도 없는 성유리의 표정을 본 남미진은 순간 의아함을 느껴 무슨 말이라도 덧붙이려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그때 성유리가 조용히 물었다.“그래서요?”“네?”“지금 하신 말씀,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요?”성유리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지만 남미진에게는 오히려 도발처럼 느껴졌다.그래서 남미진의 얼굴빛이 단숨에 어두워졌다.“무슨 뜻이에요?”“그건 제가 오히려 묻고 싶은데요.”성유리는 한 발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지금 하신 말씀의 목적이 뭐죠? 제게 원하는 대답이라도 있는 건가요?”“뭐라고요?”성유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나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되물었다.“혹시 제가 울며불며 맞다고 인정하고 제가 박 대표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고개라도 조아리길 바라는 건가요?”순간 남미진은 말문이 막혔다.성유리는 그런 남미진에게 오히려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조언하듯 말했다.“그리고 아까 하신 말씀, 박한빈 씨한테 직접 하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거예요.”“뭐라고요?”“한빈 씨한테 직접 가서 말씀해 보세요. 성유리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고요. 어차피 박 대표님 정도 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면... 누가 억지로 옆에 붙잡아 두겠어요?”성유리의 말투는 너무나 평온하고 담담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롭게 남미진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옆에 있던 옥지나 또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원래 남미진은 옥지나 앞에서 성유리를 몰아세우며 한껏 기세를 잡아 보려 했었다.옥지나 부모님은 평범한 대학교수지만 옥지나의 이모는 유명 인사였다.그 때문에 옥지나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남미진 역시 그런 계산 끝에 성유리를 깎아내려 옥지나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하지만 웬걸?다른 여자였다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을 말을 성유리는 되받아쳐 오히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다.“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남미진은 한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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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3화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박한빈은 몸속에서 치솟는 불안과 조급함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마치 몸속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박한빈 자신조차 우습다고 여겼다.성유리와 안 지 얼마나 되었다고?그 없이 지난 20여 년을 잘 살아왔는데 말이다.그런데도 몸이 보내오는 신호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성유리를 놓치면 안 돼.’박한빈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경호원들을 불러 연회장 안팎을 수색하게 하려던 찰나였다.그때, 드레스 자락을 우아하게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성유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러자 박한빈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그는 바로 성유리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짐승이 으르렁대듯 물었다.“대체 어디 갔었던 겁니까?”이를 악문 채 묻는 박한빈의 깊은 눈동자엔 날 선 분노가 어려 있었다.마치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제가... 길을 좀 잃어서요.”“길을 잃었다고요?”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화장실은 이 복도로 쭉 걸어가면 그만인데... 거기서 길을 잃어요?”거짓말이 들통났는데도 성유리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아, 정원 쪽에서 바람 좀 쐬고 온 거예요.”박한빈은 말없이 성유리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 침묵은 결코 수긍한다는 뜻이 아니었다.오히려 그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고 성유리는 박한빈의 관자놀이에서 파르르 뛰는 핏줄까지 볼 수 있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성유리가 슬쩍 뒷걸음질 치려 하자 박한빈은 한걸음에 다가와 성유리의 팔목을 움켜쥐었다.“이거 놔요!”성유리가 입을 열자마자 어디선가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 대표님!”성유리는 깜짝 놀랐고 박한빈은 찰나의 틈을 타 아예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어깨를 감싸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성유리는 아파서 낮은 신음을 흘렸다.“아... 아파요!”하지만 박한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저 입가에 미소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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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4화

“아프다고요!”성유리가 겨우 말을 내뱉자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목을 잡고 단숨에 자신의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비좁은 차 안, 갑자기 확 좁혀진 거리에 성유리는 숨이 막히듯 압박감을 느꼈다.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하자 박한빈은 오히려 성유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며 단단히 붙잡았다.“놔줘요!”성유리는 즉시 몸을 비틀며 버둥댔지만 몸을 틀자마자 닿아버린 단단하고 뜨거운 감촉에 온몸이 굳어버렸다.안색이 창백해진 성유리는 아예 꼼짝도 하지 않았다.“왜 멈춰요?”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유리를 내려다보았다.어두운 밤처럼 깊고 어두운 그의 눈빛에는 희미한 웃음기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단지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았다고?그저 바람 좀 쐬러 다녀온 것뿐인데?그들은 한 몸인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옥죄듯 붙어 있어야 하는지가 궁금했다.마음속에서 원망 섞인 생각이 떠올랐지만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 차갑게 입을 열었다.“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전...”“됐습니다. 그런 말로 얼버무릴 생각하지 마시죠.”박한빈은 성유리의 턱을 움켜쥐며 말을 끊었다.“성유리 씨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니까.”성유리는 변명할 기운조차 잃고 입술만 꾹 다물었다.박한빈은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캐물었다.“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아까 어디 갔었죠?”“정원 쪽 좀 걷다 왔어요.”“그게 다예요?”“네.”박한빈의 손아귀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아파요!”성유리는 고통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손 좀 놔요.”“정원에 CCTV 없는 줄 아세요?”박한빈은 조용히 경고하듯 계속 말했다.“마지막 기횝니다. 똑바로 말해요.”결국 성유리는 급히 사실을 얘기했다.“맞아요. 정원에서 옥지나 씨랑 옥지나 씨 친구 만났어요. 거기서 말 몇 마디 나눴을 뿐이에요. 정말 그게 다예요!”“무슨 말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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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5화

사실 고통보다는 소름 끼치는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성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박한빈에게 붙들린 두 다리를 저절로 오므렸다.“말할게요. 말한다고요!”성유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저는... 정말 박한빈 씨한테 가서 말하라고 했어요. 그런 건 저하고 상관없다고요.”성유리는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어차피 박한빈이 정원 쪽 CCTV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했다간 자신에게 돌아올 대가가 훨씬 클 거라는 걸 잘 알았다.하지만 성유리가 다 말해도 박한빈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그런 미소와 달리 눈빛은 얼음장처럼 싸늘하기만 했다.“아, 당신하고 상관없다고요?”박한빈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말속에 깃든 위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그의 손은 여전히 성유리의 등에 닿아 있었고 싸늘한 손끝이 지퍼를 끌어 내릴 때마다 성유리는 온몸이 떨리며 더욱 위축됐다.살갗을 스치는 박한빈의 손길에 성유리는 눈을 꼭 감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이미 박한빈의 함정 안에 걸려든 연약한 어린 양처럼 그 두려움은 목까지 조여왔다.마치 목을 움켜쥐는 보이지 않는 손에 폐가 눌려 아무리 숨을 들이켜도 한 줌의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런데 한참 동안 이어질 것 같던 위협이 갑자기 멈췄다. 성유리는 조금 기다린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여전히 떨리는 속눈썹 위로 눈물이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서 비친 자신의 얼굴은 한없이 위태롭고 처연해 보였다.“그렇게 제가 무서우십니까?”박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성유리는 하마터면 헛웃음이 터질 뻔했다.‘아니, 어떻게 안 무서울 수 있단 말이지?’“안심해요. 안 건드릴 거니까.”박한빈이 다시 말했을 때, 성유리의 두 눈은 경계심으로 인해 더 커졌다.그는 말한 대로 박한빈의 손이 천천히 성유리에게서 떨어졌다.성유리는 즉시 몸을 뒤로 빼며 한쪽 손으로 가슴을, 다른 손으론 떨어진 드레스의 지퍼를 부들부들 쥐고 애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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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6화

“싫어요!”성유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지만 박한빈에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를 끌어당겼고 한 손으론 지퍼를 잡아 부드럽게 올려주었다.그 사이에도 성유리는 몸을 파르르 떨며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정리가 끝나자 성유리는 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박한빈의 팔은 여전히 단단히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당신...”“제가 아까 안 건드리겠다고 했죠.”박한빈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안으면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잖아요.”그 말투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성유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박한빈은 그런 성유리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다음번에 누가 그런 소리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아십니까?”성유리는 잔뜩 얼어붙은 채 창밖만 바라보다가 박한빈의 목소리에 움찔하고 그를 쳐다봤다.날카롭게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무슨 말을 해도 틀린 대답이 될 것만 같았다.“잘 모르겠어요.”“모르신다고요?”“정말 모르겠어요.”“그럼 다음부터는 대꾸할 생각하지 마시죠,”박한빈은 성유리의 볼을 한 손으로 가볍게 쓸며 담담히 말했다.“그냥 뺨을 때리든가, 술이라도 끼얹든가 하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성유리는 얼떨떨해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박한빈은 너무나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아니면 아예 내 옆에 꼭 붙어 있으시죠. 어디도 가지 말고.”그 말이 오히려 성유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기에 그녀는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 다음엔 그렇게 할게요.”그 말에 박한빈은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잠시 후 성유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물었다.“근데 저희 지금 어디로 가요?”“집이요.”박한빈이 짧게 대답하자 성유리의 눈이 동그래졌다.“집이라뇨?”“제 개인 별장이죠.”박한빈이 설명을 덧붙였다.“걱정 마세요. 안 건드릴 거라고 했잖아요. 도착하면 따로 각자 방에서 휴식하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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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7화

“그럼 아직 1년이나 남았네요.”박한빈이 말했다.“전 일이 너무 바빠서 학교에 성유리 씨를 보러 갈 시간이 없습니다.”“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아, 성유리 씨 전 남자 친구도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데... 매일 얼굴 보면서 지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람피우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죠?”“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해요?”성유리의 표정이 단번에 변했지만 박한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오늘 밤엔 모셔다 드리죠.”“네? 정말요?”“성유리 씨는 바로 짐 정리하세요. 이번 주말부터 제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될 테니까.”“그건 안 돼요!”성유리는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곧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딱딱하다는 걸 깨달았다.하루 종일 같이 지내면서 박한빈이 약한 데는 강하게 나오면 오히려 더 강경해진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그래서 성유리는 금세 말투를 바꾸고 조용하게 말했다.“월요일 아침 8시에 수업 있어요, 정말 숙사에서 자야 해요.”“그리고 부모님도 절대 허락 안 하실 거고...”“성유리 씨 걱정이 너무 지나치네요.”박한빈이 재빨리 말했다.“지금 성유리 씨 부모님께 전화해 볼까요?”그는 말하면서 실제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깜짝 놀란 성유리는 바로 박한빈의 손을 눌러 멈췄다.만약 박한빈이 그 전화를 걸면 성시원과 윤청하는 당연히 흔쾌히 허락할 게 뻔했다.성유리는 그 결과를 너무 잘 알면서도 정작 그 말을 듣는 건 전혀 다른 감정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차라리 듣고 싶지 않았다.“정말 수업이 있어요.”하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 것 같았다.그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의 손을 누르고 있는 성유리의 손에만 머물렀다.성유리의 손은 작고 손가락은 하얗고 길었으며 손바닥은 따뜻했다.박한빈은 원래 다른 사람의 접촉을 매우 싫어했다.그렇지만 지금 성유리의 손이 자신 위에 올려져 있는 게 너무 편안하게 느껴졌다.그는 계속 침묵했기에 성유리는 박한빈이 자신의 말을 들어줬다고 생각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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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8화

결국, 박한빈의 차는 성유리 기숙사 건물 바로 아래에 멈췄다.다행히도 시간이 늦어서 밖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성유리도 그와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차가 멈추자마자 바로 내리려 했다.하지만 박한빈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았다.성유리는 그가 마음을 바꾼 줄 알고 주변에 누가 있는지 경계하며 몸을 긴장시켰다.“뭐 하시려는 거예요?”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성유리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췄다.그는 밤에 술을 마셨는지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성유리의 입술은 이미 부어 있었고 그의 키스가 닿자 따끔한 통증이 더 심해졌다.그녀는 저절로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박한빈의 가슴에 대고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이 행동이 박한빈을 더욱 화나게 했다.그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손도 더 강하게 그녀를 붙잡았다.곧 혀가 거칠게 들어오며 거의 야수처럼 휘몰아쳤다.성유리가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박한빈은 손을 풀었다.원래 차에서 내리려던 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진 성유리는 넘어질까 봐 본능적으로 그의 팔뚝을 꽉 붙잡았다.원래 구겨져 있던 치마는 이제 어깨까지 흘러내렸고 박한빈의 눈에는 그녀의 하얀 피부가 들어왔다.그는 물론 성유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바라볼 뿐이었다.그러다 성유리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저기요!”성유리는 재빨리 그를 밀치고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박한빈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아쉬운 듯 혀를 찼다.그리고 먼저 차에서 내려 그녀 쪽으로 와서 문을 열었다.그가 문을 여는 순간, 성유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야간 조깅을 하던 몇 명의 동기들을 발견했다.그들은 이미 갑자기 나타난 고급 차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는데 박한빈이 내리자마자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성유리는 확신했다.만약 자신이 이 차에서 내리면 오늘 밤과 내일 하루 종일 모든 동기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는 것을.“안 내릴 겁니까?”성유리가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찰나, 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저랑 같이 집에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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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9화

“응.”“근데 왜 전에 너한테 들은 적이 없지?”“아, 오빠 방금 해외에서 돌아왔어.”성유리는 재빨리 대답하며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그녀의 집안이 좋은 건 다들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성유리의 ‘사촌 오빠’가 저렇게 좋은 차를 탈 만하다고 생각했다.“그럼 사촌 오빠 여자 친구 있어?”곧 누군가가 또 물었다.이 질문에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음, 나도 잘 모르겠어.”“진짜 잘생겼다. 뭐 하시는 분이야?”“그냥 사업하는 것 같아.”“똑똑해 보이는데?”그들이 박한빈이 잘생겼다고 할 때 성유리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갑자기 똑똑하다고 말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박한빈은 확실히 쉽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성유리에게 중요한 건 똑똑함이 아니라 단지 나쁘다는 것뿐이었다.“유리야?”곧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성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몇 명을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나 피곤해. 먼저 들어가서 쉴게.”성유리는 친구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기숙사로 걸어갔다.뒤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뒤로한 채.기숙사에 돌아왔을 때, 안은 조용했다.오늘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전에 밤늦게 들어오면 항상 추은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밤만큼은 너무 조용했다.성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침대 곁으로 가서 물었다.“너 아픈 거 아니지?”아무 대답도 없었다.다시 묻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맞은편 침대의 현은영이 커튼을 젖혔다.“왜 그렇게 떠들어? 나 잠 좀 자게 해 줘.”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현은영을 쳐다봤다.“은정이는?”“안 돌아왔어. 너 몰랐어?”“뭐라고? 그럼 어디 간 거야?”“내가 추은정 엄마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현은영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커튼을 쳤다.이미 현은영의 태도에 익숙해진 성유리는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꺼내 추은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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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0화

현은영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은 어젯밤 누군가 찍은 박한빈 사진이었다.비록 어제는 당당하게 대답했지만 현은영이 묻자 성유리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사진 속 조명이 어두워 옆모습만 보였지만 박한빈의 준수한 이목구비는 매우 선명했다.잠시 후 성유리가 애써 침착한 척하며 대답했다.“응. 왜?”“넌 내가 경제 뉴스도 안 보는 줄 알아?”그러자 현은영이 비웃으며 물었다.“저 사람, 지화 그룹 대표잖아. 근데 너는 네 사촌 오빠가 방금 해외에서 돌아왔다고 말한 거야?”성유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지화 그룹? 그건 뭐야? 이 사람은 내 사촌 오빠야. 네가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난 일이 있어서 지금 나가야 돼. 먼저 갈게.”현은영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성유리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세수한 뒤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추은정은 학교 근처 아침 식당에서 성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성유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추은정 안색이 좀 창백해 보였다.그녀는 성유리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떨구더니 두 손으로 옷을 꼭 쥐었다.“왜 그래?”성유리가 물었다.“몸이 안 좋아? 아니면 어젯밤에 잠 못 잔 거야?”추은정은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너... 왜 그래?”그래서 성유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추은정은 계속 고개를 저으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울먹이며 아무 말도 못 했다.옆에서 지켜보던 성유리는 점점 조급해졌다.“말해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젯밤 어디 있었어? 네 친구가... 너 괴롭혔어?”“아니야!”추은정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성유리가 다시 바라보자 추은정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미안해, 성유리.”성유리는 추은정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내가 어젯밤 술을 좀 마셨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 분명히 지환 선배가 너 하나만 좋아한다는 걸 알아. 그런데...”추은정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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