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271 - Chapter 1280

1622 Chapters

제1271화

박한빈이 문득 묻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했어요.”“그럼 말해보세요. 어떻게 가속하는 거라고 했죠?”박한빈의 물음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 그러고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버튼 하나를 가리켰다.그러자 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성유리는 자기가 제대로 맞혔는지도 모르겠는 채, 그냥 버튼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틀렸습니다.”“그럼...”“아까 대체 무슨 생각 하고 있었습니까?”박한빈이 따지듯 성유리에게 물었다.“네?”“제가 알려드리고 있을 때, 무슨 생각 했냐고 물었습니다.”박한빈이 다시 묻자 성유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전... 그냥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랬어요.”성유리는 서둘러 변명하려 했지만 박한빈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그 깊고 날카로운 시선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성유리의 겉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듯했다.“대충 듣고 거짓말까지 하는 겁니까?”박한빈은 약간 굳은 얼굴로 물었다.“그게 아니라...”성유리가 뭔가 더 말하려 했으나 박한빈은 이미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이렇게 된 이상 제가 벌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요?”두 사람의 거리는 원래도 가까웠지만 그 순간 거의 딱 붙어있듯 좁혀졌다.해풍이 여전히 성유리의 몸을 스쳐 지나갔고 프로펠러의 굉음도 여전했지만 그 순간 성유리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이제 그녀의 곁에는 박한빈의 낮은 목소리와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밖에 없었다.그래서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그리고 박한빈의 입술이 막 그녀의 입술에 닿으려던 찰나, 갑자기 뒤쪽에서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성유리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고 본능적으로 박한빈을 밀쳐내며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박한빈은 살짝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고개를 돌린 성유리는 크루즈 2층 갑판 위에 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아까부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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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2화

성유리는 분명 처음 배에 올랐을 때도 진무혁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 그는 그녀를 쳐다보는 일조차 없었다.성유리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바닥에서 사람을 띄워주고 또 짓밟는 일 따위는 흔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지금 진무혁이 이렇게 친절하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것도 결코 성유리와 친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모두 다 박한빈 때문이었다.성유리는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진무혁이 내민 손을 살짝 잡았다.“안녕하세요.”“아까 성유리 씨 몸이 안 좋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긴 좀 답답할 수도 있으니까 저랑 갑판으로 가서 바람 좀 쐬는 게 어때요? 훨씬 나아질 거예요.”진무혁은 그렇게 말하며 성유리를 이끌어 갑판 쪽으로 올라가려 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박한빈이 성유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진 대표님이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제가 데리고 가서 쉬게 할 테니까요.”박한빈은 짧은 한마디만 툭 던지더니 성유리를 이끌고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진무혁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면서 직원에게 둘을 객실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저는 쉬고 싶지 않은데요.”앞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말했다.“그럼 갑판 가서 사람들 상대할 겁니까?”진무혁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박한빈이 저렇게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고 인연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더 줄을 설 게 뻔했다.성유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단호히 첫 번째 선택을 포기했다.그런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건 박한빈이 성유리와 함께 객실 안까지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지금 뭐 하시는 거죠?”깜짝 놀란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여긴 제 방입니다.”그러나 박한빈은 당연하다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성유리는 잠깐 얼어 있다가 그제야 이 방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거실과 침실뿐 아니라 서재까지 딸려 있고 밖에는 개인 수영장까지 딸린 전망이 훌륭한 객실이었다.“그럼 저는 다른 방으로 바꾸게 해달라고 할게요.”성유리는 고개를 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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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3화

“그냥 보기만 할 겁니다.”박한빈이 성유리의 귓가에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마치 뭔가 달콤하고도 위험한 유혹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그리고 사실 그는 정말 너무 잘생겼다.성유리는 지난번 박한빈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자리에 함께 있었을 때도 느꼈었다.그가 김서영의 이목구비 중 가장 빼어난 부분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것을.하지만 박한빈의 얼굴선에는 단단함과 강인함이 배어 있어 조금도 부드럽거나 나약해 보이지 않았다.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성유리를 내려다보며 바라보는 박한빈의 얼굴은 그녀로 하여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원래라면 단호히 거절했을 말들이 그 순간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질 않았다.그리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박한빈은 그녀의 반대쪽 어깨끈마저 스르륵 끌어내렸다.방 안은 시원할 만큼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돌고 있었다.그 바람이 성유리의 맨살 위로 닿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한 번 떨었고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박한빈은 분명 처음엔 보기만 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그게 정말 보기만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성유리 자기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흘러가 버렸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그리고 결국 박한빈의 차가운 손끝이 성유리의 옷 안으로 파고들자 그녀는 더는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와중에 박한빈의 입맞춤은 여전히 계속되었다.잔잔하고 촘촘하게 성유리의 어깨와 목덜미,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가며 입술을 찍어냈다.성유리는 박한빈의 셔츠 깃을 꼭 붙잡았다.입술을 악물어 피가 맺힐 정도로 깨물었지만 끝내 그저 흘러나오는 숨소리와 신음을 막아내지 못했다.그리고 또다시 눈물이 성유리의 눈가에 차올랐다.그런데 이번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왜인지 본인조차 이유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마지막에는 발가락이 꼿꼿이 뻗고 허리가 본능적으로 들려 올라갔지만 그렇게 애써도 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떨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방 안의 통유리 창 너머로는 개인 수영장이 보였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까지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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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4화

결국, 성유리는 손을 세 번도 넘게, 네 번 가까이 씻고 또 씻었다.손바닥의 살갗이 다 벗겨질 것 같았는데도 그 위에 뭔가 지워지지 않는 이상한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반면 박한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한껏 욕구를 풀고 난 그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성유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멍하니 있다가 결국 소파 팔걸이에 기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게다가 입고 있던 것도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꿈이 아닌 걸 확인하자 성유리는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곧장 문 쪽을 노려보았다.그때 마침, 박한빈이 방으로 들어왔다.“오, 깼네요.”박한빈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잘 됐습니다. 이제 곧 저녁 만찬 시작할 거거든요.”“당신...”성유리는 숨이 막히듯 목구멍이 콱 막혔다.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바로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들어 박한빈에게 던졌다.하지만 박한빈은 너무나 쉽게 몸을 비켜 피해 버렸다.그리고 다시 시선을 성유리에게 돌렸다.그 눈빛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살짝 경고하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성유리는 이를 꽉 물었다.“제 옷은 어디 있어요?”그제야 박한빈은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알아챈 듯 태연히 대답했다.“아, 제가 갈아입혔습니다.”“네?”박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저희 이미 다 본 사이 아닙니까?”성유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져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성유리 씨 옷은 새로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박한빈이 말을 이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제가 직접 입혀줘야 됩니까?”그 한마디에 성유리는 더 화가 치밀어 올라 곧장 옆에 있던 또 다른 베개를 그에게 던지려 손을 뻗었는데 박한빈은 손쉽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만해요. 돌아와서 놀아도 되니까요. 지금 만찬 시작했습니다.”“전 안 가요!”성유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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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5화

성시원은 겉으로 보기엔 제법 담담해 보였지만 박한빈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저 아주 점잖게 고개만 끄덕였다.반면 윤청하는 성유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아침부터 와 있었어?”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박 대표님이 널 데려온 거지? 너희 이틀 내내 계속 같이 있었어?”윤청하는 그렇게 묻다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줬다.그 순간, 성유리는 무언가 떠오른 듯 몸을 불쑥 뒤로 물렸다.그리고 조금 어색하게 스스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아니요. 저도 이 사람이 오늘 여기 오는 줄 몰랐어요. 배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지만 성유리의 시선은 미세하게 흔들렸고 눈빛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이 섞여 있었다.그 모습을 본 윤청하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고 이미 눈치챈 듯 그녀의 입가엔 웃음이 조금 더 깊어졌다.“그랬구나. 그럼 나중에 시간 되면 집에 같이 와서 밥 먹자. 지난번에 박 대표님이 너무 급하게 다녀가셔서 제대로 대접도 못 했잖아. 이번엔 다를 테니까.”‘뭐가 다른데?’성유리는 묻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모호한 대답만 흘렸다.“네.”그 사이 박한빈과 성시원의 짧은 인사가 끝나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곧바로 몰려들어 박한빈에게 금성 안의 다른 사업 이야기들을 쏟아냈다.그런 얘기에 전혀 흥미 없는 성유리는 그의 곁에 한참 서 있다가 금세 지루해졌다.하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그런 기색을 이미 알아챘는지 계속 성유리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고 있었다.“저 배고파요.”결국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밥 먹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오게 하면 되잖아요.”“싫어요. 그냥 따뜻한 거 먹고 싶단 말이에요.”성유리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박한빈을 흘겨보았다.“아까는 저를 이런 자리에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해놓고선...”박한빈은 원래라면 이렇게 말하려 했다.‘이건 네가 해야 할 일이다.’어차피 성유리는 자기 아내가 될 사람이니 앞으로 이런 자리는 점점 많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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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6화

성유리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그녀의 걸음이 멈추지 않자 뒤따라오던 사람이 성큼 다가와 성유리 앞을 막아섰다.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요?”옥지나는 오늘 저녁 노란색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웨이브를 넣은 머리카락, 또렷하게 강조된 정교한 화장은 그녀의 이목구비를 최대한으로 부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그 시선은 매섭게 성유리를 꿰뚫고 있었다.“일부러 그런 거죠?”옥지나가 물었지만 성유리는 무슨 말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렸다.“점심때 말이에요.”옥지나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일부러 한빈 씨한테 들이댄 거죠? 사람들 앞에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예요?”그 말에 성유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성유리는 정말이지 옥지나의 사고방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처음부터 옥지나를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박한빈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성유리는 그게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여겼다.선택해야 할 사람은 결국 박한빈이니까.그런데도 지금 옥지나가 쏟아내는 이 말들은 성유리로 하여금 어이없게 만들었다.“두 사람 약혼 이야기, 저도 알아요.”성유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옥지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저는 제가 한빈 씨한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그냥 어른끼리 한 농담 같은 거였잖아요?”“그에 반해 전 오랫동안 한빈 씨를 지켜봤어요. 나온 뉴스, 인터뷰... 다섯 번도 넘게 봤고 한빈 씨한테 가까이 가고 싶어서 유학도 갔어요. 그리고 죽어라 공부했죠. 더 가까워지려고.”옥지나의 눈빛은 점점 더 이글이글 타올랐다.“성유리 씨도 저처럼 그렇게 노력했다면 제가 양보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느껴져요. 당신은 한빈 씨를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사실이.”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아침에 저랑 한빈 씨 같이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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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7화

결국 문제는 지금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보이는 특별한 애정이었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옥지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자신과 박한빈이 겉으로 보기엔 친밀해 보일지 몰라도 그건 사실상 이모부와의 관계를 소비해서 겨우 만들어낸 자리일 뿐이었다.박한빈이 자신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 주는 것도 결국은 사업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하지만 그가 성유리에게 보이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옥지나는 박한빈이 성유리 앞에서 어떤 모습인지 본 적이 있었다.웃고 화내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분명 살아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진짜 모습이었다.자기 앞에서 보여주는 무미건조하고 공적인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그 사실이 옥지나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그녀는 자신이 성유리보다 결코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겨우 성유리가 자기보다 얼굴이 조금 더 예쁘다는 이유로?하지만 박한빈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없이 예쁜 여자를 볼 텐데 설마 그렇게 겉모습만 보고 휘둘릴 사람이라고는 옥지나는 믿지 않았다.그렇다면 결국 이유는 그들 사이의 약혼 때문일 것이다.세상은 정말이지 불공평했다.성유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박한빈의 마음을 얻어 버렸다.그게 옥지나로선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옥지나 씨.”옥지나가 성유리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옥지나는 뒤를 돌아보았다.“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요?”원유진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다들 수영장 쪽에서 놀고 있는데 지나 씨도 같이 갈래요?”옥지나는 원유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저는 유리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성유리요?”그 이름이 나오자 원유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걔를 왜 기다려요?”“어쩔 수 없잖아요. 한빈 씨가 저더러 성유리 씨 좀 챙기라고 하시더라고요.”옥지나가 대답했다.“성유리 씨가 이런 파티엔 잘 안 어울린다고...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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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8화

결국 성유리가 먹은 건, 주방장이 직접 만들어 준 해산물 파스타였다.오늘 아침 갓 낚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덕분에 맛도 일품이었고 성유리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그 사이 박한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저 지금 식당이에요.”성유리는 마지못해 자신의 행방을 보고했다.“아래로 내려가기 싫어요. 별일 없으면 그냥 혼자 노세요.”“지금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나요?”박한빈의 말투에는 살짝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성유리는 그 안에서 나른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별로 화난 것 같진 않았기에 그녀는 아예 못을 박았다.“그럼 한빈 씨는 한빈 씨대로 놀고 저는 저대로 놀게요.”“아, 그리고 제 핸드폰도 곧 배터리 다 닳을 거 같아요. 이만 끊을게요.”그 말과 함께 성유리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때였다.원유진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너랑 박 대표님 진짜 사이좋네?”성유리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반면, 박한빈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그녀가 정말 전화를 끊어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진짜 위로 올라가서 당장 끌어내려야 하나?’이런 생각이 들 즈음 누군가 박한빈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는 일단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사실, 박한빈도 이런 자리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다르게 굴러가는 이들과 마주하는 건 언제나 불쾌한 일이었다.하지만 좋아하든 싫어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지화 그룹의 대표로서 그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이런 자리를 소화해 냈고 겉으로는 누구도 흠잡을 수 없었다.박한빈은 그런 사람이었다.여느 때처럼 여유롭게 사람들을 상대하던 중, 갑작스레 2층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잔잔하게 흐르던 연주곡 사이로 새어 나온 날카로운 비명이었기에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다.박한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렇지만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 여기고 조용히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넘겼다.진무혁이 준비한 이번 파티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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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9화

성유리는 처음엔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다 박한빈이 팔로 자기 어깨를 감싸안자 비로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를 본 순간, 성유리의 눈빛이 순식간에 흔들리더니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하지만 성유리는 곧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박한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굽혀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진무혁은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그리고 박한빈의 잔뜩 어두워진 얼굴을 보자 진무혁의 심장이 저절로 철렁 내려앉았고 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박 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누가 한 짓인지 밝혀내겠습니다.”하지만 박한빈은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꽉 다문 입술로 성유리를 품에 안은 채 곧장 걸음을 재촉했다.그때 마침 소식을 들은 성시원과 윤청하가 달려왔다.윤청하는 얼른 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옆에 있던 성시원이 팔을 잡아끌며 그녀를 막았다.박한빈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아니, 아예 그들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오로지 성유리만을 안은 채 곧장 위층 객실로 향했다.방에 들어오고 나서도 성유리는 몸을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연달아 재채기를 터뜨리더니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박한빈은 그 모습을 보자 미간을 더 잔뜩 찌푸렸고 곧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의사 불러요.”그의 목소리는 차분해 보였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이를 악물고 있다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전화를 끊자마자 박한빈은 욕실로 가서 수건을 챙겨와 성유리의 젖은 머리칼을 조심히 닦아주기 시작했다.“춥죠?”박한빈의 물음에 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에어컨 온도를 따뜻하게 맞춰놓고 있었다.“따뜻한 물이라도 마실래요?”곧 그가 다시 물었다.그러나 성유리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박한빈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그녀의 모습에 굳은 얼굴로 거의 명령하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말 좀 하시죠?”그 한마디에 성유리는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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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0화

박한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그 말투에 진무혁은 뭔가 느꼈다.“설령 제 약혼녀가 단순히 사고로 빠진 거라 해도 반드시 뭔가 해명해야 할 겁니다.”인위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결국 이 파티의 주최자인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그 생각에 진무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CCTV는 이미 확인 요청을 했습니다. 다만, 성유리 씨가 빠진 각도가 조금 애매해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박 대표님.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겠습니다.”진무혁이 다급히 덧붙였다.박한빈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돌려 의사에게 물었다.“상태는 어떻습니까?”의사는 성유리의 몸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뜻밖의 질문에 그는 잠시 움찔했지만 곧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큰 부상은 없습니다. 다만 감기에 걸린 듯하니 오늘 밤 발열만 없도록 주의하시면 됩니다.”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진무혁이 성유리를 향해 말했다.“성유리 씨, 부디 푹 쉬세요. 오늘 밤 일은 제가 꼭 책임지고 조사하겠습니다.”박한빈은 그저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덕분에 진무혁은 성유리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성유리는 그 말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지만 옆에 있는 박한빈을 슬쩍 쳐다본 후에야 대답했다.“수고 많으셨습니다.”“아닙니다. 저한테 너무 예의 차리지 마십시오.”진무혁이 급히 답하고는 박한빈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의사를 데리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자마자 성유리는 다시 연달아 재채기를 했다.박한빈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아직도 춥습니까?”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그와 떨어지려는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던졌다.“뭐 하는 겁니까?”박한빈이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저... 샤워하려고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갑자기 그 사실을 떠올렸다.처음 물에 젖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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