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331 - Chapter 1340

1438 Chapters

제1331화

이 일은 성유리가 최근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었다.박한빈, 그는 사실 단순히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니었다.전까지만 해도 박한빈은 단 한 번도 성유리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둘 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고 심지어 같은 사회적 무리 안에 있었는데도 그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성유리의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끔 생각했다.혹시 그때 자신이 멋대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아예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그런데 막상 자기를 만나고 난 뒤 그는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었다.결혼 이야기를 빠르게 꺼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부모를 이용해 여러 차례 압박까지 해왔다.박한빈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는 마치 어떤 물건을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는 집착에 가까웠다.마치 어린아이가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하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자기 손에 쥐려 드는 모습처럼.그날 밤도 사실은 모두 박한빈의 계획이었을 것이다.어쩌면 그의 머릿속에는 단지 잠자리를 같이하면 성유리는 자신과 결혼할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선택권을 주겠다는 말 역시 알고 보면 그녀를 달래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다.“박한빈 씨는 한 번도 제 의사를 존중해주신 적이 없어요.”성유리는 또박또박 말했다.“심지어 저를 당신과 동등한 위치에 둔 적도 없으시잖아요.”“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게 뭘 줄 수 있을지, 어떤 삶을 살게 해줄 수 있을지... 그 생각뿐이죠. 하지만 박한빈 씨는 정말로 제가 그런 걸 원한다고 생각하시나요?”“왜 지금까지 한 번도 저한테 절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못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네요.”“왜냐하면 박한빈 씨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시잖아요.”“남을 존중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누굴 사랑하겠어요?”말을 마친 성유리는 박한빈을 밀쳐냈다.“조교 건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앞으로 박한빈 씨가 어딜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이제 저와는 상관없어요.”“정말 저를 끝까지 몰아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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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박한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셈이었다.낯선 여자가 옆에 앉자마자 박한빈은 불쾌해지기 시작했고 여자가 자신의 몸에 밀착할 때,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마치 위장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듯 거슬리는 감각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결국 박한빈은 여자를 밀쳐냈다.“나 먼저 간다. 너희들끼리 놀아.”말을 마친 그는 곧장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방 안의 다른 사람들이 아직 말도 꺼내기 전에 박한빈은 벌써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박한빈에게 도인국은 처음이 아니었다.그에겐 사실 어느 나라의 거리든 다 똑같았다.왜냐하면 박한빈이 있는 곳은 언제나 가장 번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현란한 네온사인과 빌딩 숲, 스타일이 조금 다를 뿐 결국엔 다 똑같은 풍경이었다.차에 오르자 운전기사가 물었다.“어디로 가시겠습니까?”하지만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기사는 묵묵히 차를 몰았다.차가 계속 같은 거리를 맴도는 찰나, 박한빈이 갑자기 한 주소를 기사에게 건넸다.“대표님, 여기로 가실 건가요?”“네.”박한빈이 짧게 대답하자 기사는 더 묻지 않고 차를 돌렸다.차가 점점 깊은 쪽으로 들어설수록 풍경은 점점 황폐해졌다.박한빈은 이미 성유리가 이 근처에 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 직접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낮게 깔린 집들과 깜빡이는 가로등.그 광경을 마주한 순간, 박한빈의 미간은 절로 찌푸려졌다.성유리에게 외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보게 되자 가슴이 묘하게 저릿해졌다.그리고 다리 위에 올려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며 어느새 주먹을 꽉 쥐게 됐다.“여기 맞습니까?”기사는 주변 풍경과 뒷좌석의 박한빈 사이에 큰 괴리를 느꼈다.한참을 건물 쪽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하지만 박한빈은 그저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그 침묵 속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기운과 냉랭한 분위기에 기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하려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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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3화

계속되는 박한빈의 침묵에 운전기사는 자신의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봤다.그렇게 다시 ‘투명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고 있던 그때, 박한빈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호텔로 돌아가죠.”“네. 알겠습니다.”기사는 급히 시동을 걸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가 아직 가속페달에 발을 얹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차 문을 열었다.거친 움직임에 놀란 운전기사가 고개를 홱 돌렸을 때, 박한빈은 이미 차에서 내려버린 뒤였다....방으로 돌아온 성유리는 편의점에서 사 온 할인 식품들을 냉장고에 하나하나 넣었다.그런 다음, 머리를 묶고 샤워를 하러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아직 욕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낯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딩동!이 오래된 아파트의 초인종 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벌레 소리처럼 날카롭고도 거슬리는 음색이었다.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성유리는 이 소리가 익숙해지지 않았다.그 불쾌한 소리가 조용한 밤을 찢듯 울려 퍼지자 성유리는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누구세요?”바로 소리쳐 물었지만 문밖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그래서 성유리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침착하게 전기 충격기를 손에 쥐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누구시죠?”성유리가 거듭 물었지만 밖은 여전히 조용했다.잠시 망설이던 성유리가 아래층에 사는 친한 이웃 진무열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그 한마디에 성유리는 행동을 멈췄고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그녀는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역시나 박한빈이 그곳에 서 있었다.오늘 밤은 달도 흐리고 복도엔 불빛도 거의 없었다.성유리의 방 안만 밝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마저 박한빈의 얼굴에 닿으니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긴장 탓에 잔뜩 굳어버린 성유리가 먼저 물었다.“여긴 왜 오셨어요?”박한빈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사실은 따지고 들 작정이었다.‘그 남자는 누구야? 둘이 같이 사는 거야? 저 안에 숨어 있는 건가? 어떻게 만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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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4화

사실 박한빈은 어떻게 성유리에게 사과해야 할지 몰랐다.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은 같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그건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김서영이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박한빈에게 화해의 신호를 보낼 때면 늘 말없이 밥을 차려줬다.그래서 박한빈은 지금도 성유리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성유리는 그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그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저 남자 친구 없어요.”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렇다고 해도 저는 박한빈 씨랑 밥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말을 마친 성유리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손으로 문을 막고 있었다.“남자 친구는 아니라는 거네. 그럼 같이 사는 사람이야?”박한빈의 얼굴엔 점점 분노의 감정이 드리워졌다.“너... 이런 식으로 사는 거 위험한 거 몰라?”이 집은 작다 못해 현관만 열면 안까지 다 보였다.이렇게 작은 공간에 이성과 같이 산다고?박한빈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연인도 아니면 왜 그렇게 환하게 웃어?’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같이 사는 사람이요? 여긴 저 혼자 사는 집이에요.”성유리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난 안 믿어.”“뭐라고요?”“내가 직접 들어가서 볼게.”그 말과 동시에 박한빈은 성유리를 밀치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성유리는 그 기세에 잠시 얼어붙었다.정신을 차렸을 때, 박한빈은 이미 그녀의 좁은 방을 훑고 있었다.열 평 남짓한 공간.그는 순식간에 전체 구조를 파악했지만 그럼에도 구석구석 꼼꼼히 살폈다.욕실과 침대 밑, 그리고 이제는 서랍형 옷장까지 열려고 하고 있었다.아무리 봐도 사람 하나 숨기기 어려운 구조였지만 박한빈은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다.그 순간 성유리가 빠르게 다가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그냥 확인 좀 하려고.”“확인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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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5화

초인종 소리와 함께 들려온 건 진무열의 목소리였다.“유리야, 내가 피자 하나 시켰는데 좀 남아서 너 주려도 가져왔어.”그 말에 성유리의 모든 행동이 멈췄고 본능적으로 박한빈을 바라봤다.박한빈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성유리 얼굴에 번지는 당황스러움을 본 그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하지만 성유리는 그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곧장 박한빈을 욕실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거칠게 닫아버렸다.그렇게 그를 숨겨둔 성유리는 빠르게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방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었어?”문을 열자마자 진무열이 물었다.“아니야. 나 혼자 있었는데 누구랑 얘기를 해?”“그래? 근데 방금 분명히 대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네가 잘못 들은 거야. 나 그냥...”“박한빈 씨?”진무열이 갑자기 말을 끊더니 그 이름을 뱉었다.놀란 성유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러다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박한빈이라니?”그런데 뭔가 이상했다.성유리는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아니나 다를까, 박한빈이 그곳에 서 있었다.욕실에 있어야 할 그가 성유리의 등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무열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엔 마치 자신이 이 공간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성유리가 그를 돌아본 그 순간, 박한빈이 먼저 물었다.“저 사람은 누구야?”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먼저 입을 연 건 진무열이었다.“저는 진무열이라고 합니다.”박한빈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곧 머릿속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듯 곰곰이 생각했다.“아, 진무혁 씨 동생?”“맞습니다.”진무열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러자 박한빈은 조용히 다가와 그가 들고 있던 피자 박스를 건네받았다.“이건 제가 받을 테니 진무열 씨는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진무열은 대답 대신 성유리를 한 번 더 바라봤다.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막아서는 것도, 붙잡는 것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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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6화

그 뒤로 한동안 박한빈은 정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리고 성유리는 느꼈다.진무열과의 관계 역시 그날 이후로 조금씩 멀어졌다는 걸 말이다.새해가 다가오던 어느 날, 의외의 전화가 걸려 왔다.윤청하였다.“방학인데 안 들어오니?”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했던 기억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그래서 이번 통화는 의외였고 그녀의 목소리에도 어딘가 어색한 경직됨이 묻어 있었다.성유리는 그런 감정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안 들어갈 거예요.”“그럼 너 학비랑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거야?”윤청하가 다시 물었다.“전에 투자한 돈이 좀 있었고 지금 알바도 하고 있어요.”성유리가 담담하게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리고 한참 뒤, 윤청하가 조용히 물었다.“그 정도로... 우리한테 고개 숙이기 싫다는 거니?”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 아버지 지금 무슨 상황에 놓였는지 알아? 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면...”“아버지 회사 일, 제가 자초한 일 아니잖아요.”성유리가 그녀의 말을 딱 잘라 끊었다.“제가 그걸 왜 책임져야 하죠? 어머니가 말하는 효도라는 게, 결국 본인들의 기대와 계획에 제가 맞추는 거 아닌가요?”성유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저는 사람이에요. 부모님의 소유물도, 상품도 아니고요.”말을 마친 성유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뒤로 윤청하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진 않았다.하지만 곧바로 은행에서 입금 알림이 도착했다.그건 어머니가 보낸 돈이었다.몇 달 전이었다면 성유리는 아마 그 돈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걸 계기로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을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성유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저 이체 알림창을 한 번 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물건 정리에만 집중했다.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분위기에 걸맞게 그날 도인국에는 눈까지 내렸다.성유리는 학교에서 걸어오며 거리 곳곳에서 서로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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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7화

진무열의 말에 성유리는 곧바로 그날 박한빈이 자기 방에서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다.그래서 금세 표정이 얼어붙었고 입꼬리도 어색하게 움직였다.진무열은 그녀의 그런 반응을 눈치챘지만 굳이 묻거나 이어가지는 않았다.대신 조용히 말을 꺼냈다.“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그래? 어디로?”“금성으로.”그 대답에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근데 전에 가족들이랑 관계 안 좋다고 했잖아.”그 말에 진무열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전엔 날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 근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진 것 같더라고. 며칠 전에도 그 일로 금성에 다녀왔어.”진지하게 말하는 진무열의 모습에 성유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그를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잘됐네. 축하해.”성유리의 말에 진무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나는 원래 진무혁이랑 같은 피를 나눈 진씨 가문 사람이야. 그러니까 거기 돌아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성유리는 진무열이 예전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대신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그래.”진무열은 그런 성유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 이렇게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을 거야.”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사실 너한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어.”“뭔데?”성유리는 진무열의 눈빛을 피하지도, 말을 내뱉는 걸 망설이지도 않았다.진무열은 그녀의 그런 눈빛을 보자 이미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라는 듯 물었다.“내가 너 좋아한다고 하면 너 나랑 사귈 수 있어?”성유리는 순간 멈칫하다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그녀의 대답은 단호했고 어떤 미련도 없었다.사실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래도 진무열은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듯 아팠다.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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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8화

성유리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도저히 몰랐다.자신은 분명 원래 조용히 집에 가서 씻고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으며 영화 한 편 보면서 여유롭게 휴일을 보낼 생각이었다.그런데 진무열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고 그 뒤를 잇듯 박한빈까지 나타났다.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성유리 기억이 틀리지 않은 거라면 이건 세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이다.첫 만남에서의 살벌한 기싸움과 어색함은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마치 수년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금성 상류 사회 얘기로 화제를 옮겼고 분위기도 묘하게 잘 맞았다.성유리는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마치 다른 세계에 던져진 이방인처럼 느껴졌다.“진무열 씨, 금성에 돌아가셔서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박한빈이 말했다.“늘 곁에서 유리를 많이 도와주셨지만 정작 저는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전한 것 같습니다.”그제야 대화의 초점이 성유리 쪽으로 향했다.박한빈은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환하게 웃어 보였다.성유리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친구니까요. 서로 돕는 건 당연한 거죠.”그때. 진무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리고 저도 유리한테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그래요?”박한빈은 미소를 띠며 잔에 담긴 차를 조용히 들어 올렸다.“운전해야 해서 술은 못 마시겠네요. 오늘은 차로 대신하죠. 나중에 금성에서 다시 만난다면 진짜 술 한 잔 제대로 해야죠.”“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진무열도 잔을 들어 부딪쳤다.“저도 금성에 가면 대표님을 다시 뵙게 되길 바랍니다.”그렇게 두 사람은 연락처까지 주고받으며 서로 기분 좋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성유리는 식사 내내 조용히 앉아 있었고 진무열이 먼저 자리를 뜨고 나서야 그녀는 박한빈이 감싸고 있던 팔을 확 밀쳐냈다.그리고 박한빈을 보는 눈빛에는 분명히 화가 담겨 있었다.“왜 그래?”그 눈빛을 본 박한빈은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지금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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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9화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바라보며 이를 점점 더 꽉 깨물고 있었다.“내가 그 사람한테 해를 끼친 것도 아니잖아?”그때, 박한빈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이런 결과도 진무열 씨가 스스로 보고 싶어 했던 거야. 진무열 씨가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판이지.”“그리고 순순히 본인이 지켜야 할 걸 지킨다면 진무열 씨가 원하는 걸 다 빼앗아 줄 수도 있어.”“순순히 지켜야 할 걸 지킨다는 게 무슨 뜻이죠?”성유리가 박한빈의 말에서 포인트를 잡았다.그는 말이 없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곧 성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똑같이 저를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거죠? 이런 짓을 하는 이유도...”“내가 만약 예전에 했던 생각 그대로라면 진무열 씨를 아예 사라지게 했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 들키지 않고 할 수 있지.”박한빈이 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난 네가 마음 아플까 봐, 네 곁에서 도와준 사람까지 섭섭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런 방법을 생각한 거야. 진무혁 씨는 좋은 사람 같아 보여? 내가 진무열 씨를 금성에 보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박한빈은 말할수록 목소리에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성유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한동안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전 당신한테 이런 걸 바란 적 없어요.”“알아. 내가 이러는 건 너한테 날 칭찬해 주라고 하는 것도 아니야.”박한빈이 차분하게 계속 말했다.“그냥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그 말에 성유리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사실 진무열이 여기 남든 둘 사이는 크게 변할 일도 없었다.그녀도 알고 있었다.박한빈의 본질적인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걸.그는 여전히 자신을 소유물처럼 생각하며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누구도 자신 곁에 가까이 못 오게 하려 했다.그러나 지금 그 방식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단순히 힘으로 쫓아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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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0화

10평도 채 안 되는 작은 원룸, 화장실은 작은 코너 안에 있었고 이건 지난번에 박한빈도 한 번 구경한 적이 있었다.사실 그의 체격으로는 이곳에서 몸을 돌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화장실 바로 앞에는 60cm도 안 되는 조리대가 있었고 아래에는 여행용 미니 냉장고가, 위에는 작은 인덕션이 놓여 있었다.박한빈은 옆 찬장에서 여러 종류의 라면과 즉석식품도 발견했다.아마도 성유리가 평소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때 쓰는 것들이었다.처음 이 공간을 봤을 때, 박한빈은 분노를 느꼈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성유리가 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까지 자신과 함께하지 않으려 하는지.하지만 지금은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성유리는 원래 이렇게 살 필요가 없었다.자신과의 관계를 부모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절대 딸이 이런 생활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결국 성유리는 부모님의 외동딸이자 소중한 보배였다.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좁고 열악한 공간에서 혼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이 좁은 공간 둘 외에 성유리가 잠을 자는 곳은 바닥에 깔린 작은 매트 하나였다.그 매트를 펴면 공간을 전부 차지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늘 접어두었다.하지만 성유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집 안의 모든 것을 박한빈에게 보여주었다.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박 대표님, 정말 여기서 주무실 거예요?”박한빈은 대답하지 않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옆에 놓인 작은 인형에 시선을 멈췄다.그것은 못생긴 작은 사자 인형이었다.인형은 마치 요정처럼 방을 지키고 있었고 박한빈은 이 공간에 불청객처럼 느껴졌다.그래서 그 인형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박한빈은 인형과 잠시 눈을 맞추고 다가가서 인형을 손에 쥐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네가 잘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잘 수 있어.”“이 매트는 너무 작아서 박한빈 씨는 못 잘 것 같은데...”“그럼 박한빈 씨가 자는 곳 옆에 한 겹 더 깔아야겠어요.”“그래.”“그럼 오늘은 저기서 주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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