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빈은 사람을 시켜 성유리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그날 이후 한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을 다시 볼 수 없었다.성유리는 생각했다.아마 그날 밤 자신이 한 말이 박한빈에게 겁줬거나 아니면 정신을 차린 걸 수도 있다고.자신 같은 사람에게 얽히는 건 사실 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다.왜냐하면 성유리가 원하는 것은 박한빈의 돈도, 지위도 아니었고 바라는 건 그저 한 사람의 진심뿐이었다.하지만 박한빈 같은 사람에게 감정이란 건 사실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는 결코 한 여자에게만 충실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밤 다른 사람들의 ‘오픈 마리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성유리가 원하는 삶은 박한빈의 이상적인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그러니 박한빈이 자신을 멀리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가끔 성유리는 재무 관련 뉴스를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 역시 뉴스를 보는 대중과 다를 바 없었다.그럴 때만 박한빈의 근황을 알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모든 것이 마치 예전처럼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이로 되돌아간 듯했다.그들 사이에는 이제 ‘약혼자’라는 이름만이 공허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그리고 곧 새해가 다가왔다.이번 겨울방학은 성유리에게 있어 마지막 방학이기도 했다.윤청하는 보름 전부터 성유리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라고 성화였고 여러 가지 일정을 준비했으니 반드시 집에 와야 한다고 했다.성유리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게 온갖 인맥 관리와 접대 모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별의별 핑계를 만들어 시간을 끌었다.그러다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자 결국 짐을 싸서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선 성유리는 집 안이 유난히 북적이는 걸 느꼈다.거실은 이미 완전히 손님맞이 공간으로 변해 있었고 낯설거나 익숙한 얼굴들 십수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성유리가 들어서는 순간, 마침 누군가 윤청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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