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311 - Chapter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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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1화

성유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박한빈은 코웃음을 치듯 가볍게 웃었다.“옥지나 씨가 사진까지 보내줬는데 아직도 모르겠습니까?”“저희를 갈라놓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성유리가 박한빈의 말에 맞받아쳤다.“하지만 저희는 분명히...”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박한빈은 매서운 눈빛으로 성유리에게 쏘아봤다.마치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짐작한 듯.하지만 성유리는 멈추지 않았다.“사실 괜한 걱정을 한 거예요. 두 사람이 이런 짓을 안 했더라도 저희가 정말 잘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니까요.”박한빈이 이런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성유리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렇지만 박한빈은 그 작은 목소리조차 놓치지 않았고 성유리의 턱을 꽉 잡으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죠?”“제가 틀린 말 했어요?”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사실이잖아요. 지난번 일 이후로 지금까지... 박한빈 씨는 저한테 한 번도 분명한 대답을 준 적 없어요. 그럼 저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박한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고.”“그건 박한빈 씨 아버님의 유언 때문이잖아요. 그게 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는 거, 저도 알아요.”“그래도 당신처럼 계속 도망치려는 것보단 낫잖아요.”“저는 도망친 거 아니에요. 그냥 무서울 뿐이지...”성유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박한빈 씨는 거짓말로도 제가 좋다는 말 한마디 안 해주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어떻게 박한빈 씨랑 결혼을 해요?”박한빈은 잠시 멈칫하다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듣고 싶은 겁니까?”“그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누가 듣기 좋은 말을 싫어하겠어요?”“성유리 씨는 저한테 원하는 게 많은데 정작 본인은 저한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은 해봤어요?”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박한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서서히 떨궜다.그러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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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2화

박한빈은 사람을 시켜 성유리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그날 이후 한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을 다시 볼 수 없었다.성유리는 생각했다.아마 그날 밤 자신이 한 말이 박한빈에게 겁줬거나 아니면 정신을 차린 걸 수도 있다고.자신 같은 사람에게 얽히는 건 사실 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다.왜냐하면 성유리가 원하는 것은 박한빈의 돈도, 지위도 아니었고 바라는 건 그저 한 사람의 진심뿐이었다.하지만 박한빈 같은 사람에게 감정이란 건 사실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는 결코 한 여자에게만 충실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밤 다른 사람들의 ‘오픈 마리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성유리가 원하는 삶은 박한빈의 이상적인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그러니 박한빈이 자신을 멀리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가끔 성유리는 재무 관련 뉴스를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 역시 뉴스를 보는 대중과 다를 바 없었다.그럴 때만 박한빈의 근황을 알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모든 것이 마치 예전처럼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이로 되돌아간 듯했다.그들 사이에는 이제 ‘약혼자’라는 이름만이 공허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그리고 곧 새해가 다가왔다.이번 겨울방학은 성유리에게 있어 마지막 방학이기도 했다.윤청하는 보름 전부터 성유리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라고 성화였고 여러 가지 일정을 준비했으니 반드시 집에 와야 한다고 했다.성유리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게 온갖 인맥 관리와 접대 모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별의별 핑계를 만들어 시간을 끌었다.그러다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자 결국 짐을 싸서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선 성유리는 집 안이 유난히 북적이는 걸 느꼈다.거실은 이미 완전히 손님맞이 공간으로 변해 있었고 낯설거나 익숙한 얼굴들 십수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성유리가 들어서는 순간, 마침 누군가 윤청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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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3화

윤청하는 성유리를 나무라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손을 가볍게 한 번 쥐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래. 먼저 올라가서 쉬어.”그제야 성유리는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오랜만에 돌아온 집이었다.하지만 집에는 늘 그렇듯 도우미들이 있었고 그녀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예전 성유리가 두고 간 물건들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듯 그대로였다.눈에 익숙한 모든 것들, 그런데도 성유리는 이곳에서 ‘집’의 따뜻함 같은 걸 느낄 수 없었다.침대에 한동안 누워 있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박한빈에게 보낼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성유리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사실 연락할 이유는 이미 없었다.박한빈의 긴 침묵은 이미 성유리에게 모든 대답을 해준 셈이었으니까.그렇지만 오늘 있었던 일들이 성유리에게 한 가지를 다시 일깨워주었다.앞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적어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외부에 명확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자신을 박한빈의 ‘장모’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직접 그녀의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해 주길 바랐다.왜냐하면 똑같은 말을 자신이 한다면 부모님은 또다시 그녀가 고집을 부린다며 몰아붙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박한빈은 달랐다.그가 말한다면 부모님은 단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할 것이다.그런데 메시지를 다 써놓고 보니 왠지 모르게 너무 냉정하고 딱딱한 문장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마치 자신이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성유리는 차마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그때, 아래층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조금 전 그 북적이는 분위기를 떠올리니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그래서 성유리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때였다.문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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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4화

“너 대체 누구야? 방금 누구랑 관계가 있다고 했지?”윤청하는 성유리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려 추은정을 향해 따져 물었다.추은정은 윤청하의 매서운 눈빛에 놀란 듯 잠깐 굳어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저... 저는 유리 대학교 친구예요. 같은 기숙사에서 살던 친구기도 하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저랑 박 대표님은 아무 사이 아니에요. 저번에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고 잠깐 이야기한 게 전부예요. 정말이에요.”“얘가 네 동창이라고?”윤청하는 다시 성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그 눈빛에는 마치 왜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성유리를 꾸짖는 비난이 가득 담겨 있었다.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허탈해져서 그냥 웃고 싶어졌다.아무것도 모르는 윤청하가 지금 단지 추은정의 몇 마디만 듣고 마치 모든 잘못이 다 성유리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성유리의 입꼬리는 도저히 올라가지 않았고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아줌마, 저는 거짓말 안 해요. 저랑 박 대표님은...”추은정이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성유리는 이미 지쳐버린 얼굴로 그녀의 말을 툭 잘라버렸다.“됐어. 너랑 박한빈 씨가 무슨 사이든... 난 관심 없어.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 없고.”그 말이 떨어지자 윤청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그게 무슨 소리니?”“말 그대로예요.”성유리는 담담히 대답했다.“저랑 박한빈 씨는 이미 끝났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엄마는 박한빈 씨 장모니 뭐니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 사람 일은 이제 저랑 상관없으니까.”“성유리!”윤청하의 목소리도 점점 낮아졌는데 이를 악문 기색이 역력했다.“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이제 더는 애가 아니니까 이렇게 멋대로 굴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전 제멋대로 한 적 없어요.”성유리가 단호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사실 저희는 한참 전에 이미 끝났어요. 한 달 넘게 연락도 안 했고요. 저희는 원래 안 맞는 사이였어요.”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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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5화

“그만해!”윤청하가 추은정의 말을 딱 잘라 끊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그리고 추은정을 한참 위아래로 훑어본 뒤,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서? 오늘 여기 와서 뭘 하려는 거야?”“저... 저는 그냥 유리가 저랑 박 대표님 사이를 오해할까 봐 그게 걱정돼서...”“네가?”윤청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눈빛에는 뚜렷한 경멸이 서려 있었다.“너 혹시 착각하는 거 아니니? 네 꼴 좀 봐. 네가 무슨 자격으로 유리랑 같은 산에 서 있다고 생각해?”그 목소리는 날카롭고 차가웠다.“이렇게 치고 들어와서 이간질 좀 해보겠다? 어른의 수법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웃기잖니.”뼈를 때리는 윤청하의 말에 추은정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하지만 윤청하는 더 이상 그녀를 볼 가치도 없다는 듯 시선을 떼었다.그리고 곧장 도우미에게 말했다.“저 애, 밖에 내보내.”그 말을 남긴 윤청하는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성유리는 사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몰랐다.학교 기숙사에는 이미 들어갈 수 없었고 그녀의 친구들이라도 떠올라 보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외투 주머니 속 핸드폰이 계속 진동을 울리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꺼내서 확인할 마음조차 나지 않았다.그저 발길 닿는 대로 아무 목적 없이 걷고 또 걸었다.이제 곧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타지에서 떠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언제나 화려하고 북적거리던 금성도 이 시기에는 조금은 적막하고 쓸쓸했다.성유리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거리를 떠돌았는지도 몰랐다.그러다 머리 위로 흰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져 내릴 때, 그제야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하얀 눈이 쉼 없이 내려오고 있었고 눈과 함께 따라오는 건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한기였다.그제야 성유리는 자신이 달랑 코트 하나만 걸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추운 겨울에 두꺼운 패딩도 입지 않은 채였다.다행히 바로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기에 성유리는 곧장 그 안으로 들어섰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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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6화

성유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얼마나 처참해 보이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볼에 뺨을 맞은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는 것도 모자라 방금 전 박한빈 앞에서 토해버리기까지 했다.그녀가 상상하던 모습, 왜 여기에 왔냐고 차갑고 도도하게 묻는 그런 우아하고 냉정한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그리고 박한빈도 그런 그녀가 꽤 못마땅한 듯했다.성유리가 토하던 그 순간, 그 역시 다가오던 걸음을 잠깐 멈추었으니까.하지만 박한빈은 결국 그녀 쪽으로 걸어와 휴지 한 장을 꺼내 성유리에게 내밀었다.성유리는 그 휴지를 받지 않았다.대신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휴지 한 장을 꺼내 얼굴과 입가를 대충 훔친 뒤 그제야 박한빈을 똑바로 바라봤다.“여긴 왜 오신 거예요?”막 토한 직후라서 그런지 성유리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약간 쉬어있었다.게다가 살짝 붉어진 눈가 탓에 어딘가 한없이 가엾고 애처로워 보였다.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찌푸린 얼굴로 성유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성유리는 휴지와 불어 터져버린 컵라면 용기를 모두 쓰레기통에 내던졌다.그리고 조용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저희 부모님이 박한빈 씨한테 전화했죠? 다 얘기했나요? 저희 둘은 안 맞으니까 결혼 같은 거, 이제 안 할 거라고.”성유리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아니면 혹시 우리 집에서 그 종이 한 장짜리 혼약서 들먹이면서 또 박한빈 씨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처음부터 박한빈 씨가 그걸 인정하지만 않았으면 지금 이런 일도 안 생겼을 텐데...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에 판단했던 게 맞는 것 같네요. 저희는 애초부터 결혼이 가능한 사이가 아니었어요.”성유리의 시선은 박한빈에게 똑바로 고정돼 있었다.“그때 당신이 딱 잘라서 아니라고만 했어도 지금쯤 저는 아무 일도 없이 잘 살고 있었을 거예요. 백지환은 좀 믿음직하지 않았어도 적어도 저랑 이렇게까지 틀어지진 않았겠죠.”성유리는 그 말을 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리고 짧은 정적 끝에 침묵하던 박한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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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7화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언뜻 보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어딘가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예전의 성유리는 늘 박한빈에게 억지로 끌려다녔다.혹은 말도 없이 그의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가야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오늘은 그녀가 처음으로 스스로 박한빈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으니까.성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옷자락을 꼭 쥔 채 작게 말했다.“어쨌든 오늘 고마웠어요. 저희가 결혼할 사이는 아닐지 몰라도 친구로라도 지낼 수 있다면 저는...”“저는 친구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을 단호히 잘라버렸다.그 한마디에 그녀는 말문이 막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박한빈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성유리 씨가 전에 했던 말,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그리고 성유리 씨가 원하는 약속은 못 해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만난 사람이 당신이었으니 제 아내는 오직 성유리 씨 한 명입니다.”“그때 만약 다른 여자가 그 종이 한 장 들고 저한테 왔다면 전 수락했을 수도 있고... 거절했을 수도 있었겠죠.”“근데 그런 가정은 의미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 앞에 온 사람은 바로 성유리 씨였으니까.”“그래서 저는 제 약혼녀로 성유리 씨만 인정할 겁니다.”박한빈의 목소리는 마치 보고서를 낭독하듯 차분했다.혹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조건을 명확히 내미는 사람처럼 냉랭하기까지 했다.그는 조용히 앉아 성유리의 대답을 기다렸다.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던 성유리는 서서히 고개를 떨궜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 거 압니다. 저도 드릴 거고요.”성유리의 모습을 본 박한빈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개를 숙인 성유리의 시야에는 무릎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박한빈의 손가락은 규칙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듯 움직이고 있었다.어쩐지 초조해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넘치는 동작이었다.“얼마나 생각할 수 있는데요?”그때, 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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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8화

박한빈은 요즘 내내 바빴다.하지만 그렇다고 성유리와 단 한 번도 만날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오히려 이 기간에 그는 몇 차례 그녀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다녀갔다.그런데 매번 멀리서 성유리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니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그 이유는 단순했다.사냥이라는 건 사나운 발톱과 과감한 공격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그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에게서 약속을 받으려 애썼다.그렇지만 박한빈에게 그 약속은 별 의미가 없었다.그는 성유리를 위해 자신의 원칙을 깨지 않을 터였다.그런데 그 말을 성유리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박한빈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그 나이 때라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고 환상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그래서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이 세상에는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걸.예를 들어, 성리 그룹의 위기나 허영 속에 빠진 부모의 불안 같은 것.만약 그것만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조금 더 강한 자극을 줄 수밖에 없었다.생각해 보니 추은정의 등장이 적절했다.그녀를 이용해 성유리 부모를 압박하고 그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갖게 만들어 성유리를 박한빈 곁으로 밀어 넣는 것.이 계획은 완벽했다.모든 과정은 박한빈의 계산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고 지금 성유리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조차도 마찬가지였다.성유리는 조금 취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성은 남아 있었다.그녀는 손을 박한빈 가슴에 얹으며 거리를 두려 애쓰는 듯했다.그래서 박한빈은 빠르게 성유리의 손을 붙잡았다.그러나 다시 입맞춤을 하기 전 성유리가 그를 멈추게 했다.“시간 주겠다고 했잖아요.”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대답했다.“물론 드릴 겁니다.”“그럼...”“그냥 보기만 할 겁니다.”그의 말이 어딘가 익숙하게 들렸다.성유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그녀의 마지막 옷마저 벗겨버렸다.그렇게 체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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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9화

성유리는 박한빈이 거짓말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이건 처음부터 그가 짜놓은 함정이었다.성유리가 몇 차례 이곳에 올 때도 아무 일 없었던 건, 박한빈이 일부러 그녀의 의사를 따라 비밀번호 자물쇠까지 설치해 주면서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든 미끼였을 뿐이었다.그러나 결과는 달랐다.처음부터 그는 성유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성유리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똑같은 말만 반복했고 그 모습은 마치 울타리에 갇힌 토끼같이 불쌍해 보였다.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박한빈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오히려 그녀가 더 불쌍해 보일수록 박한빈은 더 잔혹하게 굴고 싶어 했다.그는 성유리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췄고 손은 그녀의 허리를 꽉 움켜쥐어 팔뚝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박한빈은 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런 감각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이제 그는 알 것 같았다.왜 어떤 사람들이 이런 쾌감에 빠져드는지.그건 마치 무더운 여름날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사람들이 모두 집 안에만 숨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그래서 혼자 거리 위를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시원한 콜라 한 잔을 건네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톡톡 터지는 탄산이 입안을 뒤흔들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몸 안의 주름을 펴 주는 듯한 느낌.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그 순간.그런 미친 듯한 기분이 정말 매혹적이었다.이 기분 좋은 느낌에 박한빈은 마치 중독된 듯했다.거실 소파에서 시작해 자신의 침실, 그리고 욕조 안까지.끝없는 강탈 속에 성유리는 더는 울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박한빈이 다시 그녀를 붙잡자 성유리는 몸을 떨며 고개를 계속 저었고 뒤로 물러나려 애썼다.하지만 박한빈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곧 성유리는 그의 손에 발목이 잡혀 그대로 끌려갔다.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유리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깨어났을 땐, 뼈가 으스러진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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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0화

성유리는 원래부터 다리에 힘이 없었기에 지금 넘어지고 나서는 아예 서 있을 수도 없었다.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박한빈은 도와줄 생각은커녕 그냥 웃으며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성유리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옆에 있는 난간을 붙잡고 겨우 일어나려 애썼다.그제야 박한빈이 마치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듯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저 건드리지 마세요!”성유리는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거짓말쟁이, 변태! 개자식!”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그리고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 성유리와 눈을 맞췄다.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그런데 갑자기 박한빈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뭐 하는 거예요? 이거 당장 놔줘요. 이 짐승 같은 인간아!”분노에 휩싸인 성유리는 막말을 내뱉으며 주먹으로 박한빈의 몸을 마구 때렸다.하지만 두 사람의 체격 차이가 크고 박한빈의 힘은 훨씬 강해서 성유리의 반항은 별 효과가 없었다.성유리도 그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박한빈이 그녀를 다시 침대에 내려놓으려 허리를 숙였을 때 성유리는 입을 벌려 그의 어깨를 물었다.집에 있었던 탓에 박한빈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얇고 가벼운 천은 그녀의 이빨을 막지 못했다.그래서 성유리의 송곳니가 셔츠를 뚫고 들어가 그의 살점에 박혀버렸다.박한빈은 아파서 얼굴을 찌푸렸지만 성유리는 더 세게 물고 싶었다.하지만 이내 박한빈이 손을 풀더니 두 사람 사이 거리를 벌렸다.“성유리, 너 개야?”박한빈이 자신의 어깨를 힐끗 보며 물었다.“당신이야말로 개죠!”성유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박했다.“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다 개라고요! 당신...”그녀는 항의하려 했지만 하려던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 대신 서러움이 몰려왔다.그래서 눈가가 점점 붉어졌고 눈물을 참으려 이빨을 악물었다.박한빈은 그녀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갑자기 물었다.“뭐 좀 먹을래?”“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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