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성유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 대답이 떨어지자 박한빈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겨우 밥 한 끼일 뿐인데 이상하게 기뻤다.금성에서는 박한빈과 식사 한번 하려고 줄 서는 사람이 수두룩했는데 지금 이 순간 그는 단지 한 사람의 대답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언제부턴가 잊고 살았던 감정이었다.처음의 어색함과 설렘이 서서히 가라앉고 손끝부터 심장까지 뭔가 이상한 온기가 스며들었다.박한빈은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고 입가의 웃음도 점점 더 짙어졌다.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저기요.”박한빈이 고개를 돌리자 양털 비니를 쓴 소녀가 볼까지 빨갛게 물든 얼굴로 서 있는 걸 발견했다.그는 단번에 무슨 상황인지 알았기에 상대가 말도 꺼내기 전에 박한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 핸드폰 없습니다.”박한빈의 말투에는 방금 전까지 성유리를 향해 웃고 있던 감정이 싹 사라졌고 대신 차가운 눈빛과 냉랭한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웠다.소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박한빈은 그녀를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돌아서 창가 자리로 돌아갔다.곧 성유리가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이거 계산하실 건가요?”“아, 네.”소녀는 허둥지둥 대답하고 진열대에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고 카운터로 왔다.성유리가 계산을 하던 중,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분 혹시... 남자 친구세요?”그 질문에 성유리는 하던 행동을 멈췄다.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아직은 아니에요.”분명 부정이었지만 그 말에 소녀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계산을 마친 뒤,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성유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박한빈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두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살짝 찌푸린 미간과 무표정한 얼굴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그런데 그 순간, 마치 성유리의 시선을 감지한 듯 박한빈이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만화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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