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빈의 목소리에는 감정도, 가식도, 그 어떤 불안함도 없었다.그의 눈에 백지환은 그저 손끝으로 눌러 죽이면 되는 작은 개미 한 마리에 불과했다.그리고 백지환이 던진 그 어설픈 협박들조차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그제야 백지환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고 동시에 깨달았다.자신이 박한빈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모한 착각이었는지를.그들은 학교 다닐 때도 늘 존재했던 1등과 그냥 공부 잘하는 아이의 차이 같았다.만약 90점을 맞는다면 그건 백지환의 최대치였다.재능도, 능력도 딱 거기까지다.하지만 박한빈은?그는 늘 100점을 맞는다.왜냐하면 시험지의 최고점은 100점이기 때문이다.자신은 그 차이가 ‘10점’이라 믿었지만 그건 단순한 숫자의 간격이 아니라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아무리 노력해도 100점은 영영 손에 닿지 않는다.그게 바로 그들 사이의 진짜 ‘차이’였다.기회도, 자원 때문도 아니다.그저 사람과 사람의 격차일 뿐이었다.“더 할 말 있으세요?”박한빈은 더는 흥미조차 없는 듯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사실 이제 더는 시간 낭비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백지환도 알았다.지금 이 순간이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서명할게요.”그는 낮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그 말은 분명히 굴욕적이었다.박한빈 또한 그 감정을 알아챘지만 그조차도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서류를 출력해 탁자 위에 던졌다.백지환은 눈앞에 놓인 문서를 바라보다 천천히 펜을 들었다.분명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써왔던 자신의 이름 두 글자였지만 오늘만큼은 손끝이 그렇게도 무거웠다.겨우 서명을 마친 서류를 백지환은 떨리는 손으로 박한빈에게 건넸다.그러나 박한빈은 그 종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가보셔도 됩니다.”백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그야말로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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