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831 - Chapter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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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1화

이 말을 하며 나는 손을 아랫배에 올렸다. 임신 기간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고 아기가 태어난 뒤에야 그가 돌아오는 것도 원치 않았다.이건 우리 둘의 아이고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진정우와 함께하고 싶었다.강유형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용준호의 별장은 교외에 있어 시내 어디에서 출발하더라도 최소 40분에서 50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강유형은 반 시간 만에 도착했다.게다가 그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수제 참깨 디저트까지 사 왔다. 갓 만든 따끈따끈한 디저트가 날 기분 좋게 했다.“강유형 씨는 혹시 날개라도 달린 거예요?”용설아가 농담을 던졌다.그 빠른 속도에 용설아는 다시 한번 강유형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했다.강유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물었다.“지원이는요? 아직 울고 있어요?”“네. 울다가 숨넘어갈 지경이니까 어서 가봐요. 저렇게 계속 울다가 산소 부족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용설아는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강유형은 계단 두 개를 한걸음에 오르며 내 방으로 급히 올라왔다. 어찌나 급했는지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지원아...”강유형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내 모습을 보고는 꾹 집어삼켰다.내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 없었고 표정도 슬프지 않았다. 그제야 강유형은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용설아 씨가 네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그랬어.”강유형은 그제야 걱정과 초조함을 뒤로하고 천천히 설명했다.나는 이때 강유형이 예전과 달리 느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투도 행동도 마음가짐도 말이다.나는 강유형의 뒤를 흘끗 보았고 용설아가 따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는 문 쪽을 가리키며 눈짓을 했다.강유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내 뜻을 이해하고 문을 닫고 다가왔다.“참깨 디저트 사 왔어. 금방 만든 거라 아직 따뜻해.”참깨 디저트는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 이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터라 강유형이 나를 울리면 항상 이걸로 나를 달래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용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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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안리영은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 조시언을 졸졸 따라다니던 때였다.“삼촌, 나 좀 안아줘. 너무 힘들어.”조시언은 걸음을 멈추고 안리영을 기다렸다. 안리영이 두 팔을 뻗으면 조시언은 조심스럽게 안리영을 안아 올렸다. 조시언의 품에 안긴 안리영은 그의 목에 팔을 꼭 감으며 장난을 쳤다.안리영은 조시언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고 목을 살짝 깨물기도 했으며 심지어 장난삼아 손을 그의 옷 안으로 집어넣기도 했다.그럴 때마다 조시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칠칠아 장난 그만 쳐.”칠칠이란 별명은 조시언이 안리영에게 지어준 애칭이었다. 큰 뜻은 없고 안리영이 음력 7월 7일에 태어나서 칠칠이라고 불렀다.안리영이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었을 때 조시언은 이렇게 부르면 안리영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어서 어느 날엔가 생일을 까먹어서 안리영이 따질 일도 없지 않겠냐고 장난스레 설명해주었다.“칠칠아, 우리 칠칠이...”안리영은 조시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조시언이 보이지 않자 안리영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조시언을 찾아 헤맸다.“삼촌! 삼촌!”안리영은 필사적으로 조시언을 찾아 온갖 곳을 뛰어다녔다. 달리고 또 달리면서 어린 소녀였던 안리영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시언을 찾았다.조시언은 산꼭대기에 서 있었고 사방에서 불어대는 강한 바람에 그의 코트가 나부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안리영은 그를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조시언 너 대체 어디 갔었어? 나 계속 너 찾느라 힘들어 죽을 뻔했어!”하지만 조시언은 아무 말 없이 안리영을 바라보기만 했다.“나 힘들어. 업어줘.”안리영은 어릴 때처럼 투정을 부리며 조시언의 등에 기대었다.조시언은 말없이 안리영을 업고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시언의 등에 업힌 안리영은 더는 예전처럼 장난을 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의 등에 업혀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리영의 따뜻한 숨결은 여전히 조시언의 귀 뒤와 목덜미에 닿았다.“영아, 넌 이제 다 컸어. 앞으로는 시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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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안리영은 헬리콥터에 탑승하자마자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먹게 되었고 그 약 때문에 지금까지 몽롱하게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깨어나기 직전까지도 조시언과의 추억에 흠뻑 잠겨있었다.안리영의 꿈에 조시언이 나온 건 아마도 아까 강진혁이 했던 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안리영에게 조시언은 어디까지나 가족이었다. 그런 그가 안리영에게 다른 감정을 품을 리 없었다. 그러니 강진혁이 했던 말은 모두 강진혁의 음흉한 생각일 뿐일 것이다.안리영은 공기 중에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맡자 꽤 허기졌다.비록 몸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에너지는 소모되고 있었다. 게다가 꿈속에서도 쉬지 않고 조시언을 찾아 뛰어다녔으니 체력이 달리는 것도 당연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안리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의 뇌란 참 신기한 게, 과거를 저장하는 건 물론이고 없는 기억까지 지어내기도 한다.안리영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섰다. 거실에선 두 남자가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안리영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안리영의 몫으로 따로 준비된 음식도 있었다. 안리영은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 놓인 우유를 두어 모금 마시고는 바로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안리영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와 납치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태연함에 두 남자는 의외라는 듯 안리영을 바라보았다.안리영은 씹던 걸 삼키고는 그들을 쳐다봤다.“뭘 그렇게 봐요?”“너무 편안하게 먹는 거 아니에요?”강진혁이 안리영의 말에 대답했다.안리영은 강진혁을 보며 목에 난 상처를 떠올렸다. 피가 흐르긴 했었지만 다행히 아프진 않았다.“왜요, 제가 눈치라도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먹어야 하나요?”안리영은 무심하게 말했다. 애초에 오는 산은 넘고 만나는 강은 건너면 된다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었다.“앞으로 요리는 안리영 씨가 하세요.”강진혁이 안리영의 말을 받아쳤다.안리영은 대강 짐작했다. 이런 범죄자들이 따로 요리사를 둘 리 없으니 지금 식사도 이 둘이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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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안리영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강유형이 반지를 경찰에 넘겨서 하루라도 빨리 범죄자들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기다릴 뿐이었다.하지만 기다림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기다리는 일분일초가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 반강제로 갇혀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강유형은 그날 이후 다시 오지 않았다. 용설아의 말로는 그날 강유형이 나간 뒤 용준호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고 했다. 용설아의 말을 들은 나는 혹시라도 반지가 들켜서 빼앗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더구나 용준호는 그 이후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용준호가 이곳의 신호까지 차단하는 바람에 외부와 연락은 꿈도 꿀 수 없었다.나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강제로 나가보려 했지만 매번 입구의 보안 시스템에 막혀 실패했다. 그래도 다행히 곁에 용설아가 있어서 그나마 조금은 견딜 수 있었다. 용설아는 여전히 한가롭게 지냈다. 나와 같이 마스크팩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강유형이 가져다준 참깨 디저트를 먹은 뒤엔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팔을 걷고 나서기도 했다.“설아 씨는 나중에 카페 하나 차려요. 설아 씨가 만든 거 먼저 먹고 남는 거 팔아서 돈 벌어도 되겠어요.”나는 이렇게라도 답답함을 웃음으로 풀어내려고 애썼다.“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나중에 진짜 가게 차리면 지원 씨는 평생 VVIP 회원 해줄게요!”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하며 웃는 용설아에 나도 장난스럽게 맞받았다.“V 두 개로는 부족하죠. 이왕이면 전 세 개짜리 VVVIP로 해줘요”“V 세 개는 사장이죠. 자기가 먼저 다 먹고 나서 손님한테 파는 거예요.”용설아는 능청스럽게 덧붙였다.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속은 하루하루 타들어갔다. 나는 반 달 넘게 목이 빠져라 소식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매일같이 강유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한 번도 연결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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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이 모든 일은 내가 꾸민 함정이었다. 물론 그녀도 자발적으로 이 판에 뛰어든 것이었지만 그저 짧디짧은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점만은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그럼 이제 경찰이 모든 증거를 다 확보했다는 거지? 진정우 일행도 곧 돌아오는 거야?”나는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을 물었다.“응, 거의 다 됐어. 조시언 씨도 마지막 남은 문제를 정리하고 있어.”강유형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그를 조금 더 자세히 보았다. 강유형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또 한층 더 수척해져 있었다.사실 강유형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형은 인질을 잡아 도망쳤으며, 그 와중에 나를 도와 이런 거대한 사건과 싸워야 했으니 멀쩡한 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요즘 정말 고생이 많아.”나는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당연한 거야. 이 모든 건 강진혁 때문이니까 나도 책임이 있어.”강유형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속엔 깊은 자책이 깃들어 있었다.강진혁은 늘 강유형을 질투했었다. 말로는 자기가 뭐가 못났냐고 했지만 강유형이라는 사람의 그릇과 책임감만 봐도 강진혁이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했다.“지원아.”강유형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오늘은 우리 부모님 기일이야. 나 부모님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줄래?”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같이 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나는 강유형과 함께 묘지로 향했다. 묘비에는 강유형 부모님의 생전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같은 날 함께 눈을 감았다. 어쩌면 대단한 사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결국 함께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의 단단한 사랑 때문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아줌마, 아저씨. 혹시라도 그곳에서 저희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면 저 잘 지내고 있다고 꼭 전해주세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들을 마음 깊이 용서했다.“고마워, 지원아.”강유형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이유가 있었다.나는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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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내 남편이라면 진정우밖에 없었다.이 모녀는 오늘 초면인 걸로 보아 아마 새로 이사 온 이웃일 텐데 대체 언제 진정우를 마주친 건지 알 수 없었다.“이모, 우리는 9층에 살아요.”아이가 다시 나에게 말했다.나는 8층에 살고 그들은 바로 위층인 9층에 살고 있었다. 그 말은 그들이 조나연이 살던 집을 샀다는 뜻이기도 했다.“이사 온 지 얼마나 됐어요?”나는 호기심에 물었다.사실 나도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정우와 문제가 생긴 바람에 그 이후에는 진정우를 이 집에 들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 모녀는 오늘이 초면인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저희는...”아이의 엄마가 대답하려는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아이는 금세 얼굴에 미소가 만개해서는 말했다.“아빠 전화다! 내가 받을래!”“엘리베이터에선 신호가 안 좋으니까 밖에 나가서 받자, 응?”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아빠는 우리가 전화 안 받으면 걱정한단 말이야.”나는 옆에서 아빠의 전화 한 통에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도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었다.나도 이젠 아이를 가진 몸이고 머지않아 엄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이가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인 진정우는 현재 행방불명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8층에 도착했고 더 이상의 대화는 어려울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이모, 또 봐요! 이모 딸이 태어나면 저랑 같이 놀게 해줘요!”아이가 해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그래, 또 보자!”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모녀의 대화를 곱씹어보며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이 모녀는 아마 꽤 오래전에 이사 왔을 것이라고 말이다.현관 앞에 서자 얼굴 인식 시스템이 작동하며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아무 생각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문 앞에 남자 구두 한 켤레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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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정우가 나를 끌어안아 버린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뒷말을 삼켜야만 했다.진정우는 내 얼굴에 볼을 맞대고는 말했다.“리영 씨는 무사해. 난 리영 씨한테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리영 씨는 다치지도 않았고 너무 멀쩡해.”그의 품, 그의 숨결,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해준 말이 나를 삼키고 있던 불안을 차츰 걷어내 주었다.“거짓말 아니지?”나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투정이 섞여버렸다.“거짓말 아냐. 조시언 씨도 거기 있어. 조시언 씨가 리영 씨를 데려올 거야.”진정우는 내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그럼 정우 씨는 왜 돌아온 건데?”나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진정우의 숨결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가르고 피부에 닿았다.“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미칠 만큼 보고 싶어서...”하지만 나는 진정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진정우는 내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고 가끔은 믿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사람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도무지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나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진정우도 눈치챘는지 조용히 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내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 그게 아니면 때려도 되고 욕해도 돼.”“진짜 정우 씨 맞아?”하지만 나는 그에게 욕을 하지도 그를 때리지도 않았고 그저 그 한마디만 내뱉었다.내 말에 진정우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아직도 못 믿겠어? 그럼 직접 확인해볼래?”진정우가 내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팍에 얹어주었지만 나는 재빨리 손을 빼고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거실 소파에 앉으니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접시가 눈에 들어왔고 있었고 공기 중엔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냄새에 이끌려 식탁으로 시선을 돌리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했다.진정우도 나를 따라 소파에 앉아서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네 마음속에 묻어둔 의문들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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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내가 몸을 점점 더 웅크리는 걸 본 진정우가 옆에 앉아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무서워졌어?”사실 진정우가 말한 건 그렇게 무서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이번에 자신이 가서 어떤 거래를 했는데 상대방이 자신을 떠봤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하지만 나는 영화에서 본 잠입 요원이 적진에 들어가 신뢰를 얻기 위해 겪는 일련의 끔찍한 난관들이 떠올랐다.“정우 씨.”나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안아줘.”조금 전 내 차가운 태도에 진정우도 눈치를 보느라 내 손만 잡고 있었을 뿐 차마 나를 안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내가 먼저 진정우의 품으로 파고들어서 두 팔을 뻗어 그를 껴안았다.진정우는 늘 그렇듯 익숙하게 내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 그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배성재가 아니라 진정우라는 것을 말이다.나는 진정우의 옷을 풀어헤치고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아무렇게나 더듬어 보았다.“지원아.”진정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나 안 다쳤어.”진정우는 내가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진짜?”진정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웃어 보였다.“응. 진짜.”나는 냅다 밀고 나갔다. 배 속에 아이도 있겠다, 진정우가 앞뒤 안 재고 달려들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넌 여전히 제멋대로야.”진정우는 부드럽게 웃고는 단숨에 상의를 벗었다.탱탱한 팔근육과 탄탄하고 매끈한 복근이 순식간에 눈을 사로잡았다.그 자극적인 광경에 순간 넋이 나가 내가 왜 진정우의 옷을 벗기려 했는지조차 잠시 잊을 정도였다.“상처 확인하려는 거 아니었어?”진정우가 웃으며 말하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지금 확인하고 있잖아.”진정우의 몸에는 예전의 흉터만 남아 있었고 새로운 상처는 없었다. 진정우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대단한데? 영화에서 보면 엄청나게 간 떨어지게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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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나는 옆에 누워있던 진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도 이미 잠에서 깨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안 선생님, 며칠 근무 안 하더니 업무 내용도 잊으셨나요?”나는 살짝 장난 섞인 말투로 산부인과 의사가 기본적인 의학 상식도 모르는 거냐고 일침을 날렸다.안리영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지원아, 너 진짜 머릿속에 그런 것밖에 없지? 난 그냥 사랑놀이라고만 했거든? 부부 사이에 사랑 담긴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지. 또 네 멋대로 해석하지.”나는 할 말이 없었다.“근데 너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사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딱 하나였다.비록 아까 진정우가 안리영의 털끝 하나 안 건드렸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서둘러 물었다.“뭐야, 정우 씨가 너한테 설명 안 해줬어? 아니면 네가 듣기도 전에 바로 손부터 나간 거야?”안리영은 역시 나를 잘 안다.안리영은 남자보다 친구가 더 소중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래도 난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나는 안리영이 영상통화를 걸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그럼 내가 영상통화로 걸게. 바로 걸었다가 내가 봐서는 안 될 거라도 보게 될까 봐 참은 거야. 혹시 알아? 생중계로 보게 될지?”안리영은 짓궂게 농담을 던졌다.“됐고, 얼른 영상통화 걸어. 내가 직접 네 상태를 봐야겠어.”나는 말을 마치고 먼저 전화를 끊고는 안리영의 전화를 기다렸다.진정우가 내게 물었다.“물 마실래?”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정우는 물을 가지러 나갔다. 그때 마침 안리영의 영상통화가 걸려왔다.“정우 씨는 어딨어?”영상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안리영은 진정우를 찾았다.“물 가지러 갔어. 왜, 며칠 같이 지내더니 정이라도 들어서 보고 싶어?”나는 장난스레 놀렸다.“아니 근데 정우 씨 꽤 괜찮더라. 솔직히 1년 정도 더 같이 지냈으면 나도 혹했을 것 같긴 해.”안리영은 전혀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전혀 의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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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통화가 끊긴 건 네트워크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안리영이 일부러 끊은 것이었다.안리영은 내가 무심결에 뱉은 말이 본인과 조시언을 곤란하게 만들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조시언은 손에 우유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완벽한 8등신을 자랑하는 조시언은 그림자마저 완벽해 보였다.안리영은 다가오는 조시언을 보고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삼촌.”“우유 마셔.”조시언은 안리영에게 우유를 내밀었다.조시언의 관절 마디가 선명하고 길게 뻗은 손가락은 보기만 해도 힘이 느껴졌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엔 굵은 핏줄이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안리영은 문득 그날 구조됐던 장면이 떠올랐다. 강진혁이 안리영을 가둔 장소가 포위당했을 때 강진혁은 본인이 살겠다는 집념으로 안리영을 인질로 삼았다. 그때 진정우가 갑자기 배신하며 안리영을 밀쳤고 안리영이 그대로 넘어질 뻔한 순간, 조시언이 신이 강림하듯 갑자기 나타나 그녀를 받아냈다.그 찰나에 안리영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떠한 힘을 느꼈다.“응?”조시언은 안리영이 우유를 받지 않자 조금 더 가까이 내밀었다.안리영은 재빨리 핸드폰을 내려놓고 우유를 받았다. 안리영은 우유를 받아들며 조시언의 손가락과 맞닿자 순간적으로 온몸의 신경이 예민해졌다.“고마워, 삼촌.”조시언은 안리영이 내려놓은 핸드폰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지금 중국은 한밤중이니까 할 얘기 있으며 내일 마저 해. 우유 다 마시고 얼른 자.”“알겠어.”안리영은 또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시언이 몸을 돌려 나가려던 찰나에 안리영은 문득 내가 물었던 말을 떠올렸다.“삼촌, 우리 언제 돌아가?”“이틀 안에.”조시언은 대답 후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왜, 집이 그리워?”“응, 병원도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되니까.”안리영은 대충 핑계를 댔다.“그래. 알겠어.”조시언은 그렇게 말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흰 셔츠의 밑단은 정장 바지 안에 넣어 한층 더 깔끔해 보였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단단한 엉덩이가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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