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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침묵 사이의 모든 챕터: 챕터 81 - 챕터 90

100 챕터

제81화 사흘 정도는 괜찮을 거야

인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희도는 긴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인아에게 다가왔다. 그는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소파 위에 던졌다. 희도가 손을 살짝 들어 어깨 위로 흔들자, 문을 지키던 보디가드들이 이를 눈치채고 조용히 물러났다. 희도의 차가운 시선이 인아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처럼 섬뜩했다. 인아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희도는 그만큼 다가와 인아를 압박했다. 결국 인아는 뒤로 물러나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희도는 몸을 숙여 인아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은 거야?”인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희도의 눈을 보았지만,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희도가 다시 말했다. “내가 말했지, 말 안 들으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가둬버리겠다고.” 인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공포 외에도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희도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네 다리를 부러뜨릴 수 있겠어? 그럼 어떻게 하지?” 분노에 찬 희도라면 인아는 어느 정도 반항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차분한 그의 모습 앞에서 인아는 그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인아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렸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희도는 한참 동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그럼 가둬야겠네.” 인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급히 손을 들어 저항하려 했지만, 희도는 이미 등을 돌리고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다. “장 비서.” 원호는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처리해.” 인아는 희도의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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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땅을 파서라도 반드시 찾아내

연서는 세연을 보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연서는 회사에서 늘 제멋대로 굴며, 원호조차 그녀의 눈치를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세연은 연서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다. 연서는 이미 세연과 인아를 모두 자신의 첫 번째 라이벌로 분류해 두었다. 세연은 마치 연서를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연서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 태도가 연서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희도야, 왜 진 비서는 데리고 가면서 난 안 데려가는 거야?” 세연은 그제야 연서를 보며 말했다. “연서 씨가 제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그럼 이번 회의는 연서 씨가 저 대신 가실래요?” 연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희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서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장난 그만 치고 집에서 푹 쉬어. 어차피 사흘만 갔다 올 거야.” 연서는 삐진 듯 입술을 삐죽거리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세연을 쳐다보았다. 세연은 여전히 직업적인 미소를 띤 채 당당하게 연서와 눈을 마주쳤고, 연서는 한 번도 없었던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희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먼저 나갔다. 세연이 그 뒤를 따랐다. 연서는 다시 원호를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장 비서는 왜 안 따라가요?” 원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일이 아니라서요.” 연서는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이번에는 두 사람만 가는 거예요?” 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연서는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 “여우 년.”연서는 겉으로는 세연에게 대들지 못했다. 세연은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희도의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연서가 트집을 잡아봤자 희도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원호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연서를 몰래 쳐다보았다. 그는 매번 연서를 볼 때마다 희도의 안목을 의심했다. 연서는 예쁘지만 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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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기억하게 해줄 테니까

인아는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길고 늘씬한 다리에서부터 허리, 그리고 미소 짓고 있는 입술까지 시선이 닿았다. 배수현이었다. 인아는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수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공포에 다시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단단한 밧줄이 인아의 손발을 묶고 있었고, 그녀는 눈빛으로 소통할 수 없었다.수현은 인아 앞에 서서 살짝 몸을 숙이고,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수님, 많이 놀라셨나 봐요?”“하긴, 아무도 제가 이럴 줄 몰랐을 테니까. 그런데 형님이 알아챌 수 있을까요?” 수현의 목소리가 매우 부드러웠기에, 인아가 묶여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마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인아의 눈빛은 흔들렸고, 그녀는 수현을 쳐다보며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수현의 미소는 점점 깊어졌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왜 제가 형수님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왜 묶었는지 궁금하신 거죠?” 인아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수현은 차가운 손가락으로 인아의 얼굴을 가볍게 만지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수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인아는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은 인아의 턱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갑자기 인아의 턱을 강하게 움켜잡고 고개를 들게 했다. “그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군요.” 인아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미소가 인아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수현은 갑자기 손에 힘을 세게 주더니 인아의 턱을 부러뜨릴 듯이 꽉 잡았다. 인아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수현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만이 흘러넘쳤다. 수현의 행동은 외모와 완전히 반대되었다. 인아는 고통 속에 몸을 비틀며 간신히 정신을 차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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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맞춰봐

원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런 소득도 없어요. 그쪽은 어때요?” 서준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 여자애들, 정말 잘도 도망쳤네.” 서준은 거의 모든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두 사람에 대한 흔적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미 A시를 떠났을 가능성이 컸다. 원호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상해요. 사모님은 평소 외출도 거의 안 하셨고, 서영 씨는 성격상 그렇게 치밀하게 도망칠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저희 수색을 피해 다닌 건지 모르겠어요.” 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희도한테 그 얘기 좀 하려고 왔어. 그런데 전화도 안 받길래, 여기로 온 거야.”서준은 서영의 오빠로서, 누구보다도 서영을 잘 알고 있었다. 서영은 워낙 성격이 대범해서 그들의 수색을 피해 다닐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 이틀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두 사람이 아무리 신중했다 해도, A시를 벗어나려면 차나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돈이 필요할 테니 은행에 가거나 물건을 살 때 흔적이 남았을 법한데,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원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대표님은 거실에 앉으신 채 오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 정말 안으로 들어가실 거예요?” 서준도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니까 피할 수 없지.”서준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그도 거실의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지 못해, 감으로 희도에게 다가갔다. “희도야.” 그가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방 안의 불이 환하게 켜지며 눈이 부셨다. 서준은 잠시 손으로 눈을 가린 뒤, 희도가 앉아 있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어. 너도 짐작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희도는 고개를 살짝 돌려 서준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서준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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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자존심이 강하네

수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다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는 서류를 다시 건네받고 말했다. “수정한 후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희도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묵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서류를 들고 회의실을 나섰고, 희도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두어 개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남아 있지 않았고,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세연이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대표님, 어제 연락이 안 되셔서 제가 대신 고객과 협상했습니다. 다 마무리됐고, 이건 계약서입니다. 한번 보시죠.” 희도는 계약서를 받아 들고 무심하게 몇 장을 넘기며 말했다. “계속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세연은 계약서를 다시 받아 들고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희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티가 나?” 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방금 계약서도 두 장만 넘기시고 제대로 보지 않으셨거든요.” 희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인아가 깨어났을 때,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밤새도록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던 탓에 온몸이 쑤셨고, 바닥에 닿았던 얼굴은 감각이 없었다. 인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의 방이었고 손목은 여전히 의자에 묶여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눈앞에 차가운 밥과 반찬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음식은 이미 식었지만, 향긋한 냄새가 그녀의 미각을 자극하며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로 그 음식을 먹으려면 개처럼 먹어야 했다. 인아는 의자 팔걸이를 꽉 잡고 그릇을 보다가 입술을 움직이려 했지만, 결국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살고 싶은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기에, 배고픔도 견딜 수 있었다. 그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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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벗어

인아는 희도와 함께 있을 때면 그저 우리에 갇힌 개와 같았다. 희도는 기분이 좋을 때면 그녀를 쓰다듬었고, 기분이 나쁠 때면 무심하게 내팽개쳤다. 다른 사람에게 꼬리라도 흔들려고 하는 건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인아에게는 자존심이란 없었다.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모든 사람의 눈에는 그저 비웃음거리일 뿐이었다. 인아는 이런 상황에서 서영을 해칠 수 없었다. 그깟 존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수현은 고개를 숙여 인아를 쳐다보았다. 그의 미소는 조금 사그라졌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인아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는 모습은 더욱 강아지 같았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밥알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들어 수현을 쳐다보았다. 비록 자존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수치심이 밀려와 몸이 떨렸다.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어 흔들었다. “보고 싶지 않아? 방금 네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인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은 핸드폰 화면으로 옮겨졌고, 몸은 굳어졌다. 안에는 그녀의 방금 전 모습이 녹화되어 있었다. 수치심이 다시금 끓어오르며, 당장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수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영상을 감상하듯이 미소를 지었다. “형님에게 보내면 재미있겠지? 두 사람 평소에도 이렇게 놀지?” 인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도 수치스러워 대답할 수 없었다. 수현은 갑자기 느긋하게 인아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밧줄이 풀리는 순간, 인아는 몸 전체가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마치 깃털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수현은 그녀의 옷깃을 잡아 들어 올리며 그녀를 질질 끌고 욕실로 데려갔다. 인아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옷깃이 목을 조르며 숨이 막힐 듯했다. 수현은 인아를 욕실 바닥에 던져놓고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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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머리를 좀 더 써야지

수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인아가 옷을 한 겹씩 벗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아는 몸을 웅크리며 벽에 숨고 싶은 듯 고개를 벽에 묻었다. 그녀의 길게 흩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흰 피부와 대조되어 눈에 확 띄었다.“바지도 벗어.”인아의 등은 순간 굳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은 팔을 감싸며 하얗게 질렸고 가녀린 몸은 물에 젖어 한껏 떨고 있었다. 인아는 더 이상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인아는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아이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그녀를 지켜주던 유정석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리고 희도 역시 그녀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인아의 삶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던 서영도 지금은 수현에게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저항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인아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수현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라면 그저 따라야 할 뿐이었다. 옷을 벗으라면 벗고, 죽으라면 죽어야 했다. 어차피 누구도 인아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너무 지친 것인지 욕실의 차가운 물과 수현의 고문이 너무 심한 것인지, 인아는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인아가 사라진 지 어느덧 3일이 지났다. 원호는 여전히 인아를 찾지 못했고, 초조함에 쩔쩔매며 별장 밖 마당을 서성였다.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는 반면, 희도는 가장 평온해 보였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심지어 인아가 있었을 때보다 더 자주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원호는 열 번 넘게 마당을 오가며 초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별장의 문이 열리며 희도가 단정하게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원호는 급히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희도는 무심하게 그를 힐끗 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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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날 유혹하는 거야?

인아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커튼을 닫고 문 쪽을 주시했다. 수현이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더니 열쇠를 서랍 위에 툭 던졌다. 인아는 문에 몸을 붙인 채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경계했다. 수현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시선이 인아의 얼굴에서 천천히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갔다. 인아는 당황하며 두 팔로 급히 가슴을 감쌌다.수현은 비웃듯 웃으며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가리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수현은 인아의 귀에 바싹 다가가 매우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기절했을 때, 내가 널 씻겨줬거든.” 인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수현을 노려보았지만, 그와 너무 가까이 있었던 탓에 입술이 수현의 입술을 스치며 지나갔다. 짧은 접촉이었지만, 서로의 온도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수현은 몸을 기울인 채로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의 미세하게 말린 짧은 머리카락이 얼굴 옆으로 떨어지며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두 사람은 눈을 맞추고 있었고, 그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심장 소리와 숨결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원호는 길고 매끈한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술에 살며시 올렸다. 그의 눈에는 점점 더 위협적인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인아는 그의 눈빛에 자연스럽게 공포감에 휩싸였다. 인아는 점점 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뒤에는 유리가 있었고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인아의 손가락은 커튼을 꽉 쥐었고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변했다.“날 유혹하는 거야?” 수현의 목소리는 이전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한층 차가워져 있었다. 인아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눈에 드러난 두려움은 조금도 숨겨지지 않았고, 마치 겁에 질린 사슴 같아 보였다. 불쌍해 보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수현은 인아의 턱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턱 선을 천천히 문질렀다. 그의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가 인아의 얼굴을 감쌌다. 인아의 눈빛이 흔들렸고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수현의 손을 지켜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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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뭔가 이상하지 않아?

서영은 인아의 손을 멍하니 쳐다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서영은 마치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인아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인아는 다시 수화로 말했다.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맙시다.”“진심이야?”서영은 놀란 듯 물었다. 이전까지는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인아는 언제나 거부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영도 더 이상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인아가 먼저 이 말을 꺼내니, 오히려 서영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인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아는 다시 돌아가면 희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돌아가더라도 그를 설득해 서영을 용서받게 할 자신이 없었다.지난 번엔 집 문을 나선 것뿐인데 희도는 서영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번엔 서영이가 인아를 데리고 며칠 동안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희도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서영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결국 인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좋아, 떠나자.” 서영은 짧은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며, 자동차 안에서 방해되는 물건들을 치우고 바로 운전석에 앉았다. 그녀는 차 키가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설마 일부러 준비해 놓은 건가?’ 인아도 곧 조수석에 앉았다. 서영이 차 키를 보며 멍하니 있자, 인아는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서영은 고개를 들어 인아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인아 씨,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인아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서영을 쳐다보며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서영은 차 키를 가리키며 말했다. “봐봐, 차 키가 그대로 꽂혀 있잖아. 어떤 납치범이 우리를 납치해 놓고, 이렇게 멀쩡하게 풀어준 후 차까지 남겨두겠어?” “게다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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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이제 모두 끝났어

인아는 몇 초간 망설이다가 조용히 손을 뻗어 차 문을 열고 탔다. 희도가 옆에 앉아 있었고, 그는 인아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마치 인아를 산산조각 낼 듯한 기세를 보였다. 인아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희도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호조차 숨소리를 죽이며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감춘 채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차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인아는 자신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했고, 차가 천천히 집으로 향할수록 마음은 점점 더 긴장되었다. 40분 뒤, 차는 저택 앞에 도착했다. 원호는 눈치를 보고 차에서 내려 두 사람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했다. 희도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인아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봤지만,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인아는 살며시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제야 희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인아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는 손을 뻗어 인아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 3일 동안 뭘 했지?” 인아의 몸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지난 3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인아는 손을 들어 수화로 설명했다. “저와 서영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 둘 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어요. 그 사람은...”희도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사람이랑 뭘 했냐는 거야.” 인아는 온몸이 굳어졌다. 이미 알고 있었다니...희도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일 동안 인아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인아와 배수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인아는 이미 그의 차가운 태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인아의 마음을 깊게 찔러왔다. 마치 가슴속에 날카로운 칼날이 꽂힌 듯했다. 인아는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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