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수의 시점누가 그랬다더라. 뒷말은 비겁한 것이지만 언제나 고상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나는 고상한 척 참았고, 결국 다시 돌아온 건 굴욕과 상처,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들은 ‘고마워’ 한 마디였다.뒷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솔직히 그렇게 하고 나니 정말 속이 후련했다.지후에게 쏟아낸 그날 밤 이후, 내 인생에 새로운 빛이 들어왔다. 더 이상 매 순간 가슴이 저릿저릿 아프지도 않았고, 이제는 ‘진짜’ 내 인생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혼 서류에 사인할 때만 하더라도 나도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확실해졌다. 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처음엔 이혼하고 나면 지후가 다솔과 함께 있는 모습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릴 줄 알았다. 마음이 무뎌질 때까지 아플 줄 알았다.하지만 의외였다. 필요했던 건 단지 입을 열어 내 감정을 말하고, 끝내는 거였다.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끝’ 이라는 건가 보다."지수 씨?"정 코퍼레이션 본사 리셉션 직원이 알랑거리는 미소로 다가왔다."대표님께서 뵙자시네요. 이쪽으로 오시죠."나는 절대 필요하지 않으면 성까지 쓰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건 신강훈이 주먹으로 가르쳐준 교훈 중 하나였다. 그게 더 나았다."네, 감사합니다."손에 쥔 서류 뭉치를 꼭 쥐고, 그녀를 따르기 전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심장이 요동쳤다.그 날 밤, 그 지옥 같았던 밤 바로 다음 날 정기준의 답장이 도착했다.[흥미롭네요. 제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는 아시죠?]거절당할 걸 각오하고 준비해 둔 긴 연설도 있었는데, 이렇게 단호한 수락이 올 줄은 몰랐다. 오히려 준비가 안된 건 내 쪽이었다.며칠 동안 대본을 다시 손보고, 진짜 준비가 됐는지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올 수 있었다.이 일, 나한텐 꼭 필요했다.정 코퍼레이션은 미디어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중 하나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 빌딩은 높고 무미건조하며, 마치 지난 세기의 조심스러운 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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