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결혼의 끝, 다시 시작된 사랑: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저주받은 결혼

윤지후의 시점반효성이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들은 함안명의 위치를 추적했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반효성은 종이를 하나 들어 올렸다. 거기엔 [시간 끌어, 저격수 배치 중] 이라고 쓰여 있었다.“삘리 도착할게.” 나는 핸드폰에 대고 말하며,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냈다.“문지용도 데려갈까? 당신은 그가 살인자라고 생각하잖아?”그는 그 제안에 잠시 놀란 듯 말을 멈췄다.“그래... 맞아, 그 자식도 데려와.” 그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 마누라도!”“알겠어, 가는 길에 데려가지.” 나는 그를 안심시키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근데 문지용의 아내까지 관련됐다는 건 처음 듣는데?”“그 년은 내 딸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안달이었어!”“하지만…”“그만 질질 끌고 닥쳐! 아니면 하나 죽여버릴 거야, 시간 때우기용으로!”그는 전화를 끊었다.나는 반효성을 쳐다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나도 같이 가. 문지용이라는 사람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해 줘.”사실, 말할 것도 별로 없었다. 문지용은 현재의 아내 조수미와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고, 내가 그를 계약할 때 두 사람 모두 신원 검증을 통과했다.그는 조수미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두 집안 모두 결혼을 축복했고, 그게 이야기의 끝이었다.함소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지용이 자기 남자친구였다고 주장하며, 유명해지자 자신을 버렸다고 말했다.하지만 그건 오해도 어니었고, 솔직히 말해 거짓말이었다.그가 유명해진 건 내가 계약한 이후였고, 나는 당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법정에서 함안명 가족이 이기기 힘들었던 이유다.그리고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문지용이 책임질 부분은 제한적이었다.함안명 가족이 주장한 법적 근거는, 문지용이 함소지에게 결혼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깨고 조수미와 결혼했기 때문에 함소지가 자살로 위협하며 결혼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
Read more

제72화 속박된 영혼

윤지후의 시점반효성이 조수석에 앉았다. 문지용의 말을 들은 후, 그는 룸 미러를 통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혼란, 놀람, 그리고 비난.내가 전한 이야기가 편향되어 있었다는 비난.나는 문지용에게 들은 이야기만을 믿었고, 그를 신뢰했기에 그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사람은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하더라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문지용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는 진실 전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못 한 거다.문지용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 안엔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길 잃은 아이가 있었다. 눈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간절함이 선명했다.“지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나는 동생을 다독이듯,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의 목덜미를 잡아 조심스레 주무르며 말했다.“괜찮아. 여기 있어. 나한텐 말해도 돼.”“나도 몰라요...!”그가 입을 여는 순간, 감정이 폭발했다.“진짜 지긋지긋해요! 뭘 해도 다 틀렸대요! 일하면 내가 그녀를 무시하는 거고, 시간을 같이 보내면 질척댄대요! 돈은 줘야 하고, 그걸로 뭘 하는지도 묻지 말래요!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차갑고, 독하고, 계산적인 괴물이 됐다고요! 내 눈 수술 받을 때 나를 돌봐주던 그 애가 아니에요! 나...”뭐라고?“나 이혼하고 싶어요, 진심으로!”그가 좌석에 등을 세차게 부딪히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 하지만 얼굴과 귀,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내가 오늘 여기 오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은 절대 몰랐을 거다.“그게 네 진심이라면…”말을 시작하려던 찰나, 문지용이 말을 끊었다.“아니, 못 해요...”그는 몸을 앞뒤로 흔들며 다시 감정에 휘둘렸다.“못 해요... 약속했거든요... 난 그녀에게 빚졌어요...”“그녀에게 네가 빚진 게 있다면, 그건 내가 대신 갚을게.”나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무엇이든 간에, 그 대가로 네 삶을 지불할
Read more

제73화 심판의 날

윤지후의 시점우리는 바로 함안명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그의 목적이 나를 해치는 것이라면, 나를 보는 순간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여자들 중 하나를 밀어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우리는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접근했다. 나는 문지용을 차에 남기고 싶었지만, 그가 완강히 따라 나섰다. 자신이 없는 것이 함안명을 자극할까 걱정된다고 했다.진짜 중요한 순간에는 참 괜찮은 애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선 너무 눈이 멀었을 뿐.내 생각엔 함소지의 죽음이 그가 가졌어야 할 완벽한 결혼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내 개인적인 감정이 투영된 걸 수도 있다.난 문지용과 조수미 사이에서, 나와 다솔의 모습을 자꾸 보게 된다. 둘은 서로를 원했고, 그들만의 특별한 과거를 공유하고 있었다.단 하나 다른 점은, 나는 내 함소지에게 무릎 꿇었고 문지용은 그의 신다솔과 결혼했다는 것.함소지가 자신의 죽음으로 그들의 결혼을 낙인 찍지 않았더라면, 지금 문지용은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문지용에 대한 집착이 조수미를 괴물로 만들었고, 문지용을 걷는 시체로 만들어버렸다.그래도 난 감사하다. 다솔이 내가 지수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목숨을 걸며 협박하진 않았다는 사실에. 만약 그랬다면, 나는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녀의 즉각적인 죽음과, 치명적이고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병으로 고통받는 삶 중 도대체 어느 쪽을 택하라는 말인가.“지금 그가 두 사람을 해치고 있으면 어쩌죠?”문지용이 반효성에게 물었다.“연락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우리는 가장 가까운 건물 1층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한 채.그 건물은 10층 이상부터는 벽이 없는 상태였다. 미완공 상태로 방치됐고, 함소지의 죽음은 결국 이 건물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끝내버렸다. 하지만 반효성의 요원들은 아직 함안명의 위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아직은
Read more

제74화 영혼의 사랑

신지수의 시점이 건물 구조는 마치 호텔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방들이 둥글게 둘러싸여 있는 식이었다. 우리는 내부 라인의 방 하나에 있었고, 우리가 본 빛은 바깥 원형 쪽 방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이 사실은, 함안명이 다솔과 나를 방에서 끌어내어 까마득하게 어두운 복도를 지나 건물 중앙의 커다란 구멍까지 데려오기 전까진 몰랐다.미완공된 엘리베이터 통로는 마치 어둠 속에서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괴물의 거대한 입처럼 느껴졌다.우리가 묶인 의자의 등받이는 그 끔찍한 구멍의 가장자리에서 불과 몇 센치 떨어져 있었다. 나는 움직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심지어는 뒤쪽을 슬쩍 들여다볼 용기도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밀려오며 머리가 핑 돌았다.토할 것 같아...“무서워?” 함안명이 비웃으며 나에게 말했다.“내가 방금 너를 저기 구멍에서 끌어올릴 땐 얼굴이 그렇게 창백하진 않던데?”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봤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중학생 과학 과제물 수준의 장치였다. 바퀴 몇 개에 밧줄을 얹어놓은 게 전부였다! 이 미친놈이 나를 저걸로 끌어올린 거라고?! 정말 미쳤구나.다솔은 눈물을 터뜨렸다.“오, 기억나나 보지.”함안명이 섬뜩하게 웃었다.“얘는 내가 끌어올릴 때 깨어 있었거든.”그 점에 대해선, 차라리 그가 나를 기절시켜 줘서 고마워해야 하나?“걱정 마. 오늘이 지나면 너희 둘 다 다시는 여기 올라올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이유는 다르지만 말이지.”함안명의 눈빛은 완전히 미쳐 있었고, 말을 끝마치는 순간 그는 한쪽을 응시한 채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섬뜩할 정도로 넓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왔군. 기다리고 있었다.”윤지후.그는 17층까지 달려 올라온 모양이었다. 숨을 헐떡이진 않았지만 풀어진 셔츠 칼라와, 달빛 아래 희미하게 반짝이는 땀으로 붉게 상기된 얼굴이 그의 급박함을 말해줬다.그가 나를 위해 온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낯익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눈물
Read more

제75화 진실의 순간

신지수의 시점지금은 말싸움을 벌일 기분이 아니었다. 이렇게 낭떠러지 끝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서워서 사지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식으로 행동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마땅히 당할 일이 있다 해도 말이다.“이 모든 걸 알고 있었나?”함안명이 나를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는 다솔과 나 사이에 서 있었고, 등은 절벽과도 같은 엘리베이터 구멍을 등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지후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함안명은 지후를 향해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네가 이상한 짓을 하거나, 어딘가에서 총알 하나라도 날아오면, 이 의자 두 개는 나랑 같이 떨어진다. 탑승자 포함해서.”숨소리조차 없는 정적.그리고 다음 순간, 지후는 귀에 손을 갖다 대며 함안명에게 말했다.“그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을 거야. 제발 무모한 짓 하지 마.”“오, 난 무모하지 않아. 내가 뭘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지.” 함안명은 악랄하게 웃었다.“윤지후, 너는? 너는 니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그가 내 이름을 입에 올리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귀신이 되어서라도 그를 끝까지 따라다닐 거다.“왜 그렇게 날 미워하는 거지?”지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멈췄다.“난 당신 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어.”“넌 그 자식을 보호했지! 네 멍청한 Z 하우스를 이용해 내 딸이 사이버 폭력을 당하게 놔뒀어! 넌 전혀 신경도 안 썼고 타인의 인생을 갖고 장난을 쳤다고! 내가 더 말해야겠어?! 넌 마치 커튼 뒤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마약왕 같았다고! 그래서 내가 나선 거야! 법이 실패한 정의를 내가 대신 집행하러 온 거지!”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이군. 그 불만은 해결할 수 있어. 이제 내 제안이야. Z 하우스. 시가 총액 90조 원에, 연매출 5조.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멈추면, 그 회사를 전부 넘기지
Read more

제76화 죽음의 선고

신지수의 시점나는 절망 속에 눈을 감았다.정말 그에게 말했어야 했다. 그가 아기의 아버지라는 걸. 그래도 여전히 날 희생시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주저 없이, 단호하게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잠시 동안은 나도 함안명처럼 소리치고 싶었다. 몸부림치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세상 다 망하라고 외치고, 모든 걸 끌어내려 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함안명의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 그는 90조짜리 회사를 버릴 만큼, 그저 공정한 대우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가 바란 건 단 하나, 정의라는 위안이었다.나는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그 오랜 세월 나를 구해준 다정한 소년을 사랑한 게 잘못이었나?엄마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도시를 떠나지 않은 게 실수였나?5년 전 그에게 진실을 말했어야 했나?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함안명의 중얼거림 속에서 함소지의 이야기를 조금씩 짜 맞출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문지용이 조수미를 함소지로 착각했고, 마치 내가 지후가 다솔에게 청혼하던 순간 진실을 알게 된 것처럼, 함소지는 결국 진실을 드러냈다.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내가 진실을 말해도 똑같이 될 거라는 걸 알았던 것처럼.그녀가 지후와 결혼하지 못한 게 다행이다. 그건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운명이었을 테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상처받고, 끝내는 희망을 잃고 마는 삶.내가 진실을 말했다고 해도 결국 그녀의 운명은 나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함안명이 내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지후 쪽으로 돌리며, 내가 가장 듣기 두려운 질문을 던졌다.“그녀를 사랑하긴 하나?”지후는 입을 열었지만,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아니!”지후는 함안명의 섬뜩한 웃음소리에 급히 덧붙였다.“사랑하지 않아.”함안명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차라리 얼굴에 “거짓말입니다”라고 써 붙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나조차도 알 수 있었으니까. 마치 사랑을 부정하는 데 시간이 오
Read more

제77화 윤지후의 선택

윤지후의 시점그가 나를 궁지에 몰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가 원하는 건 누구 이름을 대느냐가 아니다. 그는 그냥 나를 자신의 지옥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거다. 죄책감과 후회로 뒤덮인 하늘과 땅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그곳으로. 내가 누구를 선택하든, 오늘 나는 한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채 이곳을 떠나야 한다.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죽게 둘 수 없다. 절대로.반효성이 지금 아래에서 에어쿠션을 준비 중이다. 그의 사람들이 이 건물의 어두운 구석마다 숨어 있고, 언제든 함안명을 제압할 수 있다.하지만 그가 지금 의자에 손을 얹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세 명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나는 모든 걸 걸고 이곳에 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돌아올 수 없는 지경일 줄은 몰랐다. 이 사람은 오직 인간의 목숨으로만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선택해, 윤지후.”함안명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는 의자의 뒷부분을 눌렀고, 두 의자는 이제 뒤쪽 두 다리만으로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지수가 겁에 질려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의자의 끝을 꼭 붙잡고 있었고, 눈물은 쉼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그녀가 남자의 손 아래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이 모든 고통이 다 나 때문이야.문지용을 지킨 내 행동이 정말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지수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함안명의 가족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 없다고!“나를 벌주고 싶어?! 그럼 나랑 같이 뛰어내려!”나는 분노에 휩싸인 채 말들을 쥐어짜듯 내뱉었다.“이 둘은 이 일과 아무 관련도 없어! 놔줘! 내가 너랑 같이 떨어질게!”함안명은 한쪽 눈썹을 잠깐 치켜올렸지만, 곧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내가 그렇게 멍청할 것 같아?
Read more

제78화 나의 영웅

신지수의 시점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벌어졌다. 지후가 다솔을 선택했을 때, 나는 단 1초만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 다음 순간엔 그가 바닥에 쓰러져 다솔의 의자를 붙잡고 있었고 그녀는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함안명이 어떻게 넘어졌는지는 보지도 못했다. 그가 지후에게 돌아서는 순간 휘청이더니, 그 다음 내가 느낀 건 내 의자에 날아든 거센 발길질.끝이구나.중력을 잃는 그 끔찍한 공포가 몰려왔고, 나는 가슴 속 타오르는 두려움을 뱉어내듯 소리를 질렀다.그 순간, 이상하게도 증오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선택했다.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었으니까.그저 벅찬 슬픔만이 밀려왔다. 내가 땅에 부딪혀 죽는 순간, 그는 내 안에 있던 자신의 아이도 함께 잃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그는 그 무고한 생명을 두고 슬퍼할까? 아니면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을까?어느 쪽이든 슬펐다. 그 슬픔은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집어삼켜 두려움 속에서 눈물로 터져 나왔다.하지만 난 단 1초만에 멈췄다.내 의자가 떨어지려는 그 찰나, 누군가 내 의자를 붙잡았다.의자에 묶인 끈이 내 살을 깊게 파고들었지만, 이런 고통이 이렇게 안전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지수!”머리 위로 들려오는 정기준의 목소리.“괜찮아, 움직이지 마. 내가 끌어올릴게. 들리니?”나는 눈을 간신히 반쯤 떴고,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걸 느꼈다.그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끈을 잘라내주었다.나는 여전히 얼어붙은 팔다리를 문질렀지만, 정신은 몸 바깥 어딘가에 떠 있는 듯했다. 끈에 쓸린 팔의 통증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눈은 정기준을 쫓았지만, 머리는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했다.내가 죽지 않았다고...? 근데 왜 지후의 짜증 나는 얼굴이 내 눈앞에 붙어 있지...?정기준은 또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설마... 지금 나를 구한 사람이... 정기준...?“당신… 정말 날 놀라게 했어!”그가 지후를 밀어내고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괜찮아? 지수?”나
Read more

제79화 사랑하는 아버지

신지수의 시점따뜻함은 마음을 진정시킨다.예전엔 영화에서 왜 피해자들에게 젖지도 않았는데 주황색 담요를 씌우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충격의 순간에 담요 하나가 마법처럼 작용해 불안한 신경을 진정시켜주는 것이었다.하지만 진정 이후엔 창피함이 몰려온다. 나는 앰뷸런스 뒤편에 앉아 몸을 꼭 끌어안은 채, 귀가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내가 방금 뭐 한 거지?!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울고, 매달리다니! 게다가 그 사람은 앞으로 매일 얼굴을 봐야 할 내 상사가 될 사람이었다.지금이라도 퇴사할 수 있을까...?“여기요.”따뜻한 컵이 내 뺨을 살짝 건드렸다. 놀라 눈을 들어보니, 정기준이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엔 작은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우유가 들려 있었다.우유는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작게 감사 인사를 중얼거리며 컵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를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팔이 살짝 떨리고 있는 걸 놓치진 않았다.“미안해요.”그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제가 스스로 내려올 걸 그랬어요.”정기준은 자신의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올라갈 땐 지금보다 더 심하게 떨렸어요.”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피로 때문이 아니라... 걱정 때문에 떨렸다고? 그게... 나 때문이었다고?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흔들렸다.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비켜.”정기준이 조용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고개를 들자, 지후가 우리 앞에 멈춰 서 있었다.“이건 그녀를 위한 앰뷸런스야. 네 건 따로 찾아.”나는 정기준을 쳐다봤고,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노에 놀랐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들려오던 귀에 거슬리는 울음소리의 정체가 보였다.다솔이었다. 들것 위에 홀로 누워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다솔.설마 정기준이 나만을 위해 이 앰뷸런스를 따로 부른 걸까? 나는 그냥 경찰이
Read more

제80화 사랑에 빠진 남자

신지수의 시점안 돼.설령 이 앰뷸런스를 다솔에게 양보해야 한다 해도, 나는 그녀와 함께 타지 않을 거야.지금 이 상황에서… 지후가 내 생명보다 다솔의 생명을 선택했다는 걸 확인한 지금, 그리고 여전히 신호철의 발톱 아래에 있는 지금, 그들에게 아이에 대해 절대로 말할 수 없어.그들이 내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 희귀 혈액형을 가진 아기를 데리고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그들은 절대 내 아이의 존재를 알아선 안 돼.“앰뷸런스는 이미 불렀어요, 아버님.”지후가 신호철을 향해 말했다.“그리고 다솔의 출혈도 멈췄고, 생명에 지장 없어요.”“그래서? 다솔은 다쳤다고! 병원엔 어차피 가야 해!”신호철이 짜증을 폭발시켰다.“지금 내가 요구하는 게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 건데? 그깟 앰뷸런스 좀 같이 타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상식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하는 일이지!”결국엔 또 내가 나쁜 사람. 항상. 그들의 눈에는.“제 생각엔 최소한의 상식은, 부탁할 땐 ‘부탁’ 정도는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나는 냉정하게 일어서서 신호철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세상이 당신에게 빚이라도 진 줄 착각하지 마세요, 신호철 씨.”“뭐라고 불렀어, 방금?”그가 충격을 받은 듯 나를 돌아봤다.진심인가?우리가 그렇게 끝장나게 틀어진 후인데, 내가 이름을 부른 게 그렇게 충격적인가? 날 노예처럼 키운 진실은 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도 없었나 보지.“아버님!”지후가 돌아서서 내 앞에 서며 침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제발, 다솔에게 가주세요. 저는 제 아내랑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해요.”아직도 지후를 정식 사위로 만들 꿈을 꾸는 신호철은 더는 따지지 않고 ‘빨리 끝내라’는 한 마디만 던지고는 자리를 떴다.지후가 나를 돌아봤고, 정기준은 팔짱을 낀 채 둘 사이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나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정기준, 지수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지후가 최대한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또 공짜로 그녀
Read more
PREV
1
...
56789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