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211 - Chapter 1220

1236 Chapters

제1211화

김단은 멍하니 약왕곡의 주인을 바라보았다.“왜… 그러시는 겁니까?”“한 목숨과 다른 한 목숨을 바꾸는 것이, 노부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결국 손해 보는 장사일 뿐이지. 네 목숨은 살려 두어야 쓸모가 있지.”말을 마치자, 약왕곡의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막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는 마침 잘 왔다. 이 아이 좀 데려가 씻기거라. 더럽기 짝이 없구나! 쯧쯧.”경멸 섞인 말소리가 뒤따르자, 김단은 마침내 힘없이 단도를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방금 전 죽음을 앞두고 내린 결심과 절망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등 뒤에서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이야.”낮고도 깊은 울림, 마치 그 사람 자체와도 같았다.김단은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그 사람은 문가에 서 있었고, 그의 큰 키는 문틀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최지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다시 마주한 순간이, 이렇게 될 줄은.그녀는 머리가 산발이 되어 엉망이었고, 얼굴은 온통 먼지투성이로 더러웠으며, 그 위로 두 줄기 눈물 자국이 더욱 또렷이 드러나 있었다.옷도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신발조차 큼직하게 찢어져 그 안의 흙 묻은 흰 버선이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지금껏 한 번도 이렇게 초라했던 적이 없었다.심지어 그가 그녀를 강에서 건져 올렸던 그 날조차도, 지금처럼 처참하진 않았다.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픔이 최지습을 숨조차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하지만 김단은 이미 일어나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었고, 작고 여린 몸이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가느다란 두 팔로 그를 꼭 껴안은 채, 몸을 떨며 말했다.“왜 그렇게 오랫동안 계셨어요…?”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중전이 반역을 꾀하여 주상께 독을 쓰고 가두었어요…세자는 역용술로 주상 행세를 하고 있고요… 겨우겨우 주상께서 다시 나라를
Read more

제1212화

며칠이나 길을 재촉한 탓인지,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던 걸까.혹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사람을 마주한 덕에 마음이 겨우 안정을 찾았던 걸까.그날 밤, 김단은 깊고도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 김단이 눈을 떴을 땐 이미 대낮이었다.문을 열고 나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약왕곡은 겹겹이 푸른 봉우리들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사방은 마치 천신이 도끼로 쪼갠 듯 깎아지른 절벽들로 둘러싸여 있었다.하늘로 치솟는 듯한 바위벽을 본 순간, 김단의 가슴은 마치 그 바위 아래 눌린 듯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왔다.그때, 누군가 다가왔다.“낭자, 약왕곡의 주인께서 부르십니다.”찾아온 자는 감청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어젯밤 임학을 들고 간 자들과 똑같은 옷차림이었다.보아하니 이것이 약왕곡의 복색인 듯했다.김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동편의 가장 큰 집으로 향했다.그곳이 바로 약왕곡의 주인의 거처였다.대문을 막 열자, 짙은 약향이 몰려와 콧속을 찔렀다.김단은 본능적으로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그 모습에 인도자는 노골적인 경멸의 눈길을 던졌다.“우리 약왕곡의 주인께선 날마다 약재를 다루십니다. 곧 이 향에도 익숙해지실 겁니다.”김단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을 뿐,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내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더니, 뒤늦게야 입과 코를 틀어막고는 허겁지겁 마당 밖으로 도망쳤다.잠시 후, 뜰 안엔 김단만이 남았다.곧이어 집 안에서 약왕곡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흥, 그토록 약리를 배웠다면서 이 정도의 미혼향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놈!”말이 끝나자, 약왕곡의 주인이 집 안에서 걸어나왔다.두 손을 등 뒤에 둔 채 김단을 바라보며, 눈빛에는 은근한 기색이 비쳤다.“그런데 이 계집애는… 제법 쓸 만하구나.”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숨을 너무 오래 참은 탓에 이미 괴로웠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어찌하여 당신은 멀쩡합니
Read more

제1213화

다시 눈을 떴을 때, 김단은 바깥이 새벽노을인지 저녁노을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였다.온몸이 흐릿하게 흐려진 채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떠올랐다.곧장 중얼거리듯 말했다.“그 괴팍한 노인네, 제 뜰에서 몽혼향을 왜 피운 거람…”“내가 뭘 하든 네가 상관할 바냐!”옆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김단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고, 약왕곡의 주인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뒤에서 남을 헐뜯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김단은 괜스레 코끝을 문질렀다.그러다 문득, 혼절하기 직전에 들었던 그 말이 떠올라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대군자께선 어디 계십니까?”약왕곡의 주인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오호라, 겨우 깨어나자마자 사내나 걱정하고, 제 몸 상태는 관심도 없구나? 너희 둘, 무척이나 애틋한 사이였나 보지?”김단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문득 그 이상한 몽혼향이 떠올라 무심결에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손바닥 한가운데, 조약돌만 한 검은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김단의 얼굴에 드러난 놀란 기색이 마음에 들었는지, 약왕곡의 주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흐뭇한 듯 웃었다.“지금은 조그마한 돌멩이일 뿐이지만, 머잖아 계란 크기만큼 자라게 되면, 너의 목숨은 거기서 끝이지.”김단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깊게 숨을 들이켰고, 곧장 약왕곡의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까, 대군자께선 지금 어떠신 겁니까?”약왕곡의 주인은 이 시점에서도 김단이 최지습을 걱정하는 것에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아가야, 너의 목숨이 남의 목숨만 못하단 말이냐?”김단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약왕곡의 주인께선 무고한 이를 함부로 죽이는 분이 아니시지요. 이건 그저 저를 놀래키시려는 수단일 뿐입니다. 하물며 저를 해하시려 했다면,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으셨을 테고, 이런 방식도 필요 없었겠지요. 어젯밤, 저를 죽이실 기회는 충분히 있으셨으니까요.”“쓰읍……”약왕
Read more

제1214화

김단은 저도 모르게 놀라 약왕곡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약왕곡의 주인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노부는 알고 있었다. 그 자식, 이제 곧 참지 못하고 움직일 거라 생각했지.”김단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석실이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그 말에 약왕곡의 주인은 김단을 잠시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곁에 있던 시자가 나섰다.“김 낭자, 그 석실은 약왕곡의 주인께서 오래전 고안하신 마지막 관문입니다. 약왕곡을 빠져나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지요. 그 안에 들어간 자는 약왕곡의 주인께서 직접 설계한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억지로 돌파하려 하면, 거대한 암석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며 그 몸을 그대로 으깨버리게 됩니다.”시자의 말에 김단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급히 약왕곡의 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감히 여쭙겠습니다. 그 석실은 어디에 있습니까?”약왕곡의 주인은 김단을 힐끗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죽으러 가겠다는 것이냐? 최지습 그 자가 몇 날 며칠을 공들여도 넘지 못한 곳인데, 네가 그걸 풀 수 있을 것 같으냐?”김단의 가슴은 조마조마했다.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대군자께서 무리하게 돌파한 이유는 분명 한양에 그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 혼자 위험을 감수하게 둘 수 없습니다.”한양에서는 주상이 그를 필요로 하고, 소하 또한 그를 기다리고 있다.그래서 그녀는 반드시 도와야 했다.김단의 눈을 바라보며 약왕곡의 주인은 문득 멍하니 서 있었다.그 눈빛 속에서 그는 오래전 잊혀졌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이미 굳어버린 심장이 순간 미묘하게 흔들렸다.약왕곡의 주인은 시선을 내리고,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면, 정말로 네가 그곳을 통과할지도 모르겠구나……”그 시각, 석실 안.최지습의 어깨뼈는 천근문 아래에서 버티지 못하고 삐걱거리며 비
Read more

제1215화

최지습은 온몸이 덜컥 굳어졌다. 자신이 버티지 못하고 거석이 떨어져 김단마저 함께 깔려 죽을까 두려웠다.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한 몸이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올라 그 거대한 돌덩이를 몇 치나마 들어 올렸다.그러나 김단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최지습의 피에 젖은 옷자락에 머물러,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다.하지만 그를 구하려면 먼저 이 미궁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급히 물었다.“수수께끼는 어디 있습니까?”최지습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옆의 석벽을 가리켰다.“저쪽이오.”그제야 김단은 가까운 석벽에 새겨진 문양을 발견했다.그녀는 거석 밑을 벗어나 바짝 다가가, 벽면을 면밀히 살폈다.푸른 돌 표면에 새겨진 백초도의 윤곽이 푸른 인광에 비치며 희미하게 빛났다.김단의 손끝이 석벽 위 사계절의 화훼 무늬를 훑었다. 흰 작약의 뿌리 문양 속에 청동으로 만든 정교한 장치가 박혀 있었다.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동의보감]의 잔편에 남겨진 구절이 떠올랐다.‘세신은 깊은 계곡에서 자라며, 그 잎은 칠성해당의 독을 풀 수 있다……’“동남쪽, 팔월에 피는 것!”김단은 손가락을 모아 검처럼 벽면을 가리켰다.찰칵, 순간 석벽 안의 장치가 세 치쯤 움직였다.그러나 다음 순간, 천근의 석문이 다시 반 자나 떨어졌고, 최지습은 숨죽인 신음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입가에 핏줄기를 흘렸다.“백도령!” 김단이 놀라 외쳤다.곧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깊고 무겁게 가슴속에서 울려 나왔다.“괜찮소.”그러나 김단의 가슴은 요동쳤다.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석벽의 답은 틀리지 않았을 텐데……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코끝에 스며드는 묘한 약향을 느꼈다.땅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은근한 향내.김단의 눈동자가 단번에 수축되었다.그것은 구척을 태운 뒤에 퍼지는 향기, 거기에 만다라 꽃가루의 비릿한 단내가 섞여 있었다.약왕곡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꼽히는 생사의 함정이었다.그렇다면, 아직 더 남아 있는 것이 있단
Read more

제1216화

바위 부스러기가 두 사람의 겹쳐진 옷자락 위로 사각사각 흩어졌다. 김단의 온몸은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그것은 방금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탓이자, 잃을 뻔한 이를 되찾은 벅찬 기쁨이었다.눈물이 끝없이 쏟아져 내렸고, 하고 싶던 모든 말은 목구멍에서 막혀 결국 흐느낌으로 터져 나왔다.김단은 손끝으로 최지습의 피에 젖은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마치 손을 조금이라도 풀면, 눈앞의 사람이 모래처럼 흩어질 것만 같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최지습의 가슴은 벌레가 갉아먹는 듯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일렁였다.그는 손을 들어 피 비린내가 배인 손가락을 김단의 흐트러진 머릿결에 스며들듯 집어넣었다.목젖이 힘겹게 오르내리며, 그러나 그 목소리는 봄바람이 버들잎을 스치듯 한없이 부드러웠다.“이제 괜찮다. 두려워하지 마라.”애써 평온한 어조를 내보였음에도, 김단은 그 속에서 묻어나는 힘겨움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훌쩍이며 최지습의 품에서 몸을 빼냈다.“우선 여기서 나가요.”김단은 콧물을 훌쩍 삼키며 최지습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그를 부축해 바깥으로 향했다.약왕곡의 주인이 말했던 대로 이 석뢰는 마지막 관문이었다.이곳을 통과해 저 문을 열면 약왕곡을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최지습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저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무엇보다 소하에게 보낼 약부터 안전하게 전해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채 몇 걸음 나아가기도 전에, 약왕곡의 주인의 목소리가 돌벽을 울렸다.“그가 죽길 바란다면, 그대로 나가거라.”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어느새 약왕곡의 주인은 석뢰의 입구에 서 있었고, 그 눈빛은 한없이 어둡고 깊었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약왕곡의 주인께서 무슨 뜻이십니까?”김단의 물음에 약왕곡의 주인은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저 거석은 천근만근이라 이놈이 힘으로 버티지 않았다면 벌써 살점 하나 남김없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Read more

제1217화

최지습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김단은 마음이 놓였고, 어떤 위험도 두렵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속에서, 세상에 그가 해결하지 못할 일이란 없는 듯했다. 그의 앞에서는 모든 어려움이 단숨에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그러나 조금 전 약왕곡의 주인이 한 말이 그녀를 비로소 깨우쳤다.최지습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 인간이지, 신이 아니었다.그 또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무슨 근거로 그는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단 말인가?무슨 근거로 그저 그를 부축해 나가려 했단 말인가?오늘 만약 약왕곡의 주인이 그들을 막지 않았다면, 최지습은 정말 죽었을 것이다……문이 밀려 열리고, 약왕곡의 주인이 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김단의 어두운 얼굴빛을 보며 그가 말했다.“안심하거라. 이제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내 약을 먹으면 열흘 안에 뼈가 스스로 붙을 것이다.”약왕곡 안의 약재라면 세상에서 으뜸이었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왕곡의 주인에게 예를 올렸다.“목숨을 구해주신 은혜, 깊이 새기고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그만두어라.”약왕곡의 주인은 앞으로 다가와 최지습의 두 볼을 살짝 집어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한 뒤, 손에 든 약을 조금씩 그의 입속에 부어 넣었다.“내가 수십 년을 의술로 살아오며 구한 사람만 해도 수십, 수백이다. 하나같이 은혜를 갚겠다 말하지만, 하나같이 여기서 벗어날 생각만 하지.”그러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는 말을 이었다.“걱정 말거라. 너희가 돌진하여 석진을 통과했으니 내 약속을 어길 이유도 없다. 그가 깨어나면 사람이 너희를 밖으로 인도할 것이다. 약왕곡 밖에 이미 마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최지습이 무사히 한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그 말을 듣고 김단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정말입니까?”그녀는 약왕곡의 주인이 이렇게 순순히 말할 줄은 몰랐다.그러자 약왕곡의 주인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당연히 사실이지. 다만, 다른 그 소자는 나갈 수 없다. 약
Read more

제1218화

최지습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사흘 뒤였다.본래라면 이미 깨어났어야 했다.그러나 김단이 자신이 약왕곡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곧장 되돌아올까 두려워, 약왕곡의 주인에게 약을 먹여 사흘 동안 깊이 재웠던 것이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차 안이었다.바퀴가 자갈을 밟으며 묵직한 소리를 냈고, 몸은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가볍게 요동쳤다. 두툼한 방석이 깔려 있어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증은 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게 식은 비단 방석뿐이었다.“단이?”쉰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나오자 최지습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마차 안을 두리번거리며 익숙한 그 모습을 찾았다.그러나 마차 안에는 그 외에 아무도 없었다.마침 밖에서 인기척을 들은 사람이 마차를 멈추고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와 차일을 젖히며 들어왔다.“대군자가 깨어나셨습니까?!”그 목소리에는 놀람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곧 소매 속에서 약병을 꺼내며 말했다.“여기 약이 있습니다. 우선 두 알 드시면 회복이 훨씬 빠를 겁니다.”그 약은 약왕곡의 주인이 준 것으로, 효능이 뛰어났다.첫날 약왕곡을 떠날 때만 해도 마차를 몰기조차 벅찼던 그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으니.최지습은 약을 두 알 삼키며 깊은 눈동자로 임학을 꿰뚫어보듯 바라보았다.“단이는 어디 있지?”임학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시선이 흔들렸다.“단이는… 그녀는…”“어서 말해라!”최지습은 다급한 목소리로 손을 뻗어 임학의 팔을 움켜잡았다.이미 마음 한구석에서 짐작이 일어나, 가슴속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지기 시작했다.임학은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어 최지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단이는… 약왕곡에 남았습니다.”“뭐라고?”최지습의 동공이 급격히 좁아지며, 그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누가 그녀를 거기에 남겨두라고 허락했지?”임학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 그는 약왕곡을 떠나기 전 김단이 남긴 당부를 떠올리며 다시
Read more

제1219화

임학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약왕곡이 비밀스러운 곳이라 하나, 단이는 영리하니 그곳에서 목숨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최지습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한 눈빛을 드러냈다.“그녀가… 나에게 남긴 말이 있느냐?”임학은 품에서 평안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그녀가 전하길, 대군자가 평안히 모든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최지습은 그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이것은 그가 직접 새긴 것이었으나, 정암이 김단의 목에 걸어준 것이었다.김단에게 정암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그녀가 이 목걸이를 자신에게 맡기다니…그는 목걸이를 꼭 움켜쥐었다. 마치 그 안에서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자 하는 듯했다.마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한양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최지습은 차 안에 기대어 손에 쥔 목걸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마지막 햇살마저 저물어 사라지고 있었다.‘단이, 기다려라.’그는 마음속으로 깊이 속삭였다.‘내가 반드시 너를 데리러 갈 것이다.’그 시각, 약왕곡 안.김단은 약초방에서 스스로의 해독제를 달이고 있었다.달빛을 밟으며 약왕곡의 주인이 들어섰다.그는 문을 넘자마자 깊게 숨을 들이켰다.“흠… 적혈삼, 구엽용연초, 설역빙련… 거기다 백년 영지까지!!”처음에는 비웃음 섞인 말투였으나, 끝내 놀라움이 담겨버렸다.약왕곡의 주인은 번쩍 손가락을 김단에게 겨누며 외쳤다.“이, 이 계집아! 내 약왕곡의 귀한 약재를 모조리 쓸 작정이냐?!”김단은 화로 앞에 앉아 손에 든 부채로 끊임없이 불길을 부쳤다.“왜 그래요? 이 약왕곡의 약재는 마음대로 쓰라 하신 분이 바로 주인님 아닌가요? 고작 사흘 되었는데 벌써 아까우세요?”“이…!” 약왕곡의 주인은 수염이 들썩일 정도로 성이 났으나, 이를 억누르며 낮게 말했다.“사흘, 꼬박 사흘 동안 독을 푸는 법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몸보신약만 달여 먹다니. 내 독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Read more

제1220화

약왕곡의 아침은 언제나 풀약의 은은한 향으로 가득했다.김단은 이른 새벽부터 약왕곡의 주인 서재 문 앞에 서서, 조심스레 조각무늬가 새겨진 배나무 문을 밀어 열었다.창살 틈새로 스며든 햇살이 서재의 바닥에 얼룩진 빛 그림자를 드리웠다.약왕곡의 주인은 이곳의 책들은 마음껏 열람해도 좋다 말했었다.그러나 서재는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넓었고, 세 면의 벽마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책장이 가득 들어서 있었으며, 그 위로 빽빽이 쌓인 고서와 의서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공기 속엔 묵향과 약초 향이 묘하게 뒤섞인 향기가 감돌았는데, 그 향내는 약왕곡의 주인에게서 풍기는 냄새와도 비슷했다.책장 위의 책들은 ‘의’, ‘약’, ‘독’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김단은 ‘독’이라 적힌 곳으로 가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백독보》, 《기방이초집》, 《만독해법》……그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책장을 넘겨가며 찾아보았으나, 아홉 번의 단혼산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발견하지 못했다.어스름한 저녁빛이 내려앉고 서재 안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지자, 김단은 아쉬운 듯 책을 내려놓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손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 속의 그 까만 점이 시야에 들어왔다.희미해진 글자는 보이지 않아도, 그 검은 점만은 도리어 더 선명해 보였다.그녀의 마음은 그만큼 더 불안해졌다.만약 이 독을 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훗날 최지습이 돌아왔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건 차가운 시신뿐이거나, 아예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다면…또 한 번 무겁게 한숨을 토했다.김단은 몸을 돌려 서재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러나 책장을 돌아서는 순간, 몸이 휘청이며 책장에 부딪쳤고, 오른손이 본능적으로 책장을 짚었다.그때였다.‘카닥’—가벼운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김단은 즉시 경계하며 돌아보았다.그러자 책장의 한가운데가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지며, 새까만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안쪽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이것은… 밀실인가?약왕곡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