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231 - Chapter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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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1화

짙은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어 얼룩진 빛결을 흩뿌렸다.김단은 멀지 않은 곳의 짙은 장기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장기는 독성이 있지요. 그런데도 영사들이 해마다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보면, 장기를 좋아한다기보다 다른 갈 곳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 보니 이 기산 곳곳에는 단주과가 많은데 장기가 감도는 곳엔 없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단주과가 쓰이지 않을까 생각해 몇 개 따서 시험해 본 것입니다.”“시험이라 하였소?”심묵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만약 실패했으면 어쩔 작정이었소?”혹시 영사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면?김단은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어쨌든 지금은 성공했잖습니까?”“……”심묵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김단의 성정이 요망서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다 김단이 불쑥 물었다.“약왕곡의 주인님은 정말로 백독불침이신가요?”그 말에 심묵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영사에게 할퀴였음에도 상처에 독이 도는 기미는 없었고, 조금 전 장기 속에서 그토록 오래 있었는데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그 때문에 김단이 이런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심묵은 웃으며 말했다.“부러운 것이오? 그대가 약왕곡의 주인이 되면, 노부가 이 백독불침의 비법을 가르쳐 주겠소.”김단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왜 저도 아무 이상이 없을까요? 혹시 아홉 번의 단혼산 때문인가요?”방금 전 그녀도 장기 속을 오래 걸었고, 일부러 숨을 참았다 해도 전혀 독에 중독된 흔적은 없었다.심묵은 김단의 빠른 눈치를 의외라 여겼는지 미소를 지었다.“맞소. 아홉 번의 단혼산에 중독된 자는 어떤 독에도 반응하지 않소. 하지만 반응이 없다고 해서 독을 풀 수 있는 것도 아니오. 어차피 죽음뿐이오.”김단은 눈을 크게 뜨며 심묵을 흘겨보았다.“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심묵은 김단의 말 속에 담긴 조롱을 알아차렸으나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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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2화

김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장서각에 해독법이 있습니까?”“그건 당연하도다.”“저를 속이는 건 아니시겠지요?” 김단이 다시 물었다.심묵이 미간을 찌푸렸다.“노부가 어찌 거짓을 말하겠느냐?”어차피 그는 전에 서재에 해독법이 있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다.김단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물었다.“만약 장서각에 해독법이 없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노부의 머리를 베어 네 발받침으로 주겠노라!”“……”김단은 잠시 말문이 막혀 마른 식량을 조금 떼어 입에 넣고는 중얼거렸다.“정말 쓸모없는 소리만 하시네요.”심묵은 그 말을 듣자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기세였다.“이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 무어라 하였느냐?”김단은 히죽 웃었다.“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심묵은 눈을 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만하거라. 죽음을 무릅쓰고 노부를 구하러 온 정을 봐서 이번은 눈감아 주겠다.”“약왕곡의 주인께 감사드립니다.”김단은 소리 내어 인사한 뒤, 다시 자신의 식량을 먹으며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그러나 심묵은 계속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기억 속 얼굴과 똑같은 옆모습을 보며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요망서, 보고 있느냐.네 후손은 너처럼 선하고 용감하구나.다음 날.김단이 심묵을 부축해 기산을 내려오자 약왕곡의 수많은 시자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맞이했다.심월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그는 창백한 입술을 떨며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스승님……”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어제 스승은 그를 구하려다 영사에게 포위되었고, 김단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세 마리 영사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심월의 그 모습에 심묵은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게 말했다.“사내가 울음이나 짜고, 그게 무슨 꼴이냐!”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더는 심월을 신경 쓰지 않고 시자들에게 몸을 맡긴 채 자리를 떠났다.이 광경을 본 김단은 앞으로 나서며 위로했다.“약왕곡의 주인은 겉으론 거칠어도 속정은 깊으니 사형께선 마음에 두지 마세요.”심월은 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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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3화

김단은 심묵이 자신을 장서각으로 데려가려는가 보다 생각하며 대답을 마치자 서둘러 문밖으로 나섰다.심묵은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다가오자 그제야 그를 이끌어 골짜기 안쪽으로 향했다.약왕곡은 본래 산세 험준한 곳에 숨어 있어 산과 산이 맞닿는 자리는 더욱 가파르고 거칠었다.장서각은 서쪽의 두 산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김단이 약왕곡에 머문 지 열흘이 넘도록 이곳을 알아채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그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장서각이 이토록 웅장하고 거대할 줄은.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천 길 푸른 절벽이 마치 억지로 가르듯 갈라져 흉측한 틈을 이루고 있었다.아홉 겹의 비첨이 흑철로 빚어낸 날카로운 발톱처럼 산의 뼈대를 뚫고 불쑥 솟아나 있었다.왼편 절벽에는 겨우 세 자 너비의 사다리 같은 바위 계단이 비틀리며 깎여 있어, 그 끝은 장서각의 정문으로 이어졌다.김단은 심묵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자칫 한 걸음 잘못 디디면 산 아래로 곤두박질쳐 산산조각 날까 두려웠다.“여기가 바로 그곳이로다.”수 미터 높이의 장서각 정문 앞에 선 심묵은 턱수염을 쓸어내리고는 기운을 모아 양손을 문에 붙였다.이내 내력을 담아 한 치씩 그 묵직한 장서각의 문을 밀어 열었다.문안으로 보이는 것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은 책장, 그리고 그 가득한 대나무 죽간과 비단책, 실로 엮은 고서들이었다.김단은 넋을 잃었다.심묵의 서재에 있던 의서들도 적잖다고 여겼으나, 이곳과 견주자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옆에서 심묵은 이미 차례로 각자의 촛불을 밝혀나가고 있었다.희미한 불빛이 장서각 안을 비추자, 전각 전체가 묘하고도 깊은 빛의 울림 속에 잠긴 듯했다.심묵이 나지막이 말했다.“예전에 노부가 이곳의 모든 책을 다 뒤져서야 아홉 번의 단혼산 해독법을 찾아냈다. 이제 너도 그리하면 되느니라.”그는 다시 장서각의 이층을 가리키며 덧붙였다.“이층에 방이 있도다. 오늘부터 너는 이곳에서 지내거라. 하루 세 끼는 내가 매일 가져다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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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4화

한양.임학은 한 무리의 상단과 뒤섞여 천천히 성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일부러 허리를 약간 굽히고, 오랜 세월 장사를 떠돈 사람처럼 지친 몸짓을 흉내 냈다. 무심코 삿갓을 더 깊게 눌러쓰며, 삿갓 가장자리 틈새로 예리하게 사방을 훑어보았다.성문 앞의 수비는 평소보다 세 배는 더 많았다.성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인원은 꼼꼼히 문초를 당했고, 짐짝 하나하나까지 뒤져 보았다.미리 이런 상황을 짐작하긴 했지만, 이를 대비해 최지습은 따로 행동하여 어젯밤에 이미 성문을 통과해 있었다. 그럼에도 임학의 가슴 한구석은 긴장으로 조여 왔다.“어디서 왔느냐? 무슨 장사를 하느냐?”얼굴 가득 살이 두툼하게 붙은 수비 하나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동그란 눈동자가 종처럼 커다랗게 번뜩이며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대군자께 전하오니, 저는 남쪽에서 와서 비단과 차를 조금씩 팔고 있사옵니다.”임학은 웃는 얼굴을 지으며,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남쪽 사투리를 섞어 말했다.말을 하면서도 소매 속에서 구리전 몇 닢을 꺼내어 조심스레 건네주었다.“군사 나리들이 애쓰시는구려.”수비는 구리전의 무게를 재듯 손안에서 굴리더니 코웃음을 치고는 손을 휘저었다.임학은 안도의 숨을 삼키며 사람들 틈에 섞여 성문을 빠져나갔다.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살기가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거리를 순찰하는 병사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백성들 또한 발걸음을 재촉하며 속삭이는 소리조차 낮췄다.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곳곳에 붙은 황방이었다.거기엔 두 개의 초상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나는 바로 그의 얼굴, 다른 하나는 김단의 얼굴이었다.“모반의 역죄인 임학과 김단을 수배한다. 주상을 해치고 세자를 음해하려 한 혐의가 있다. 밀고자는 은 천 냥을 상으로 주며, 숨긴 자는 같은 죄를 받을 것이다.”임학은 황방의 글귀를 읽는 순간, 속이 한순간에 옥죄어 오는 듯했다.중전의 손길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겨우 보름 남짓한 시간에, 주상과 세자 시해의 죄명을 자신과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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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5화

최지습은 비웃듯 낮게 웃었다.“중전이 스스로 하늘을 손바닥에 올린 줄 아는 모양이지.”“대군자가는 어떤 소식을 알아내셨습니까?” 임학이 물었다.최지습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탁자 앞에 섰다. 거칠게 그려진 한양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주상과 세자는 어전에 연금되어 있고, 중전의 심복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조정의 대신들은 절반은 이미 제압당했고, 나머지 절반은 눈이 가려졌다.”임학은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책을 궁리했다.“우리가 반드시 주상과 세자를 구해내어 중전의 음모를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원으로는……”“사람이 필요 없다.”최지습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울리자, 임학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대군자가 홀로 궁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최지습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금군의 근일 교대 시간을 알아냈다. 틈을 타 잠입할 수 있다. 고 영감이 궁 안에서 호응할 사람을 배치해 두었으니, 내가 혼자 드나드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약왕곡에서 받은 해독약만 주상께 먹이면, 주상께서 조정의 신하들 앞에서 직접 진실을 밝히실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금군 역시 중전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때 중전이 노발대발해 피바람을 일으킨다면, 두려운 것은……”임학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조정의 대신들 모두가 그 궁문을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네가 먼저 소하를 찾아야 한다.”최지습이 말을 이으며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이것이 소하의 해독약이다. 어제는 그의 관저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이미 인원을 배치해 두었다. 오늘 자정, 예종원군 관저의 뒷문으로 들어가면 된다.”임학이 약병을 받자, 최지습이 다시 입을 열었다.“나와 소하의 명망이라면, 성 밖의 삼만 대군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만약 중전이 정말 살육을 명한다면, 그때는 폭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임학은 굳은 결심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나 최지습의 이마에 맺힌 미세한 땀방울을 보며 여전히 걱정스레 말했다.“대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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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6화

밤빛이 먹물처럼 짙게 깔렸다.우뚝 솟은 궁성의 담장 안은 금군의 경계가 삼엄했다.밤바람이 간혹 처마 끝을 스치며 스산한 울음소리를 흩뿌렸다.최지습은 궁성 담장의 그늘 속에 몸을 숨겼다.온몸을 감싼 야행의가 어둠과 하나가 된 듯 보였고, 매서운 매눈 같은 그의 시선만이 경계의 빛을 띠며 번뜩였다.그는 잠시 하늘의 별자리를 올려다보았다.지금은 이미 해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금군의 교대 시각이 올 터였다.최지습은 눈썹을 가늘게 모으며 한없이 집중한 채 기회를 엿보았다.잠시 뒤, 멀리서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울려왔다. 금군이 마침내 교대에 들어갔다.그의 눈빛이 번뜩이자, 최지습은 밤빛을 방패 삼아 유령처럼 담장 옆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다.얼마나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최지습은 소천을 발견했다.소천 역시 최지습을 알아보고 황급히 몸을 숙여 예를 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노비가 대군자를 뵙습니다.”“예를 차릴 것 없다.” 최지습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주상은 어떠하신가?”소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주상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셨습니다. 제 의부께서… 오늘 밤은 버티시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최지습의 심장이 순간 조여들었으나, 얼굴에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길을 안내하라.”소노가 그들을 데리고 수많은 샛문과 좁은 길을 지나며 순찰하는 금군을 피해갔다.궁의 구조가 낯설지 않은 최지습이었지만, 오늘 밤의 회랑과 모퉁이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리는 듯 했다.가짜 산석을 돌아설 즈음, 소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손짓으로 침묵을 요구했다. 앞쪽에서 쇳소리와 함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군 한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최지습은 잽싸게 산석 뒤로 몸을 숨기며 숨을 죽였다. 다행히 금군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금군이 멀리 사라지자, 소노는 그제야 조심스레 다시 길을 이끌었다.“대군자, 앞쪽이 바로 강녕전이옵니다. 하지만 오늘은 경비가 평소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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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7화

주상 역시 이미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최지습 또한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황형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신제는 모든 준비를 이미 마쳤사옵니다. 내일 조참만 기다리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갑작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갑옷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최지습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재빨리 문가로 몸을 옮겨 문틈 너머를 내다보았다.금군 한 무리가 빠르게 집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수색하라! 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강녕전으로 숨어드는 것을 보았다!”하 총령이 날카롭게 외쳤다.“중전의 명이시다. 무단으로 침입한 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라!”고 영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군자, 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사옵니까?”최지습의 미간이 깊이 내려앉았다.설마 자신의 자취가 이렇게 빨리 드러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문을 열어라! 금군이 역적을 수색한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주상은 최지습의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쥐며, 마치 모든 희망을 그에게 맡기는 듯했다.최지습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더는 물러설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그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고, 눈빛이 유난히 침착해졌다.“문을 여시오.”“대군자! 그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고 영감이 공포에 찬 얼굴로 외쳤다.그러나 최지습은 담담히 말했다.“자객으로 몰려 즉사하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나서는 편이 낫소.”고 영감이 수백 번 마지못해도, 결국 지금 이 선택이 최선임을 깨달았다.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침내 문을 열었다.하지만 이곳은 강녕전, 함부로 남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금군은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고, 오직 하 총령만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최지습을 보자 순간 얼어붙으며, 마치 귀신을 본 듯 놀라 굳어섰다.최지습은 침상 곁에 단정히 앉아, 서늘한 눈빛으로 하 총령을 노려보았다.“본 대군자가 여기에 있거늘, 감히 누가 경거망동한단 말이냐!”하 총령의 눈가에 잠시 당혹이 스쳤으나, 곧 강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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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8화

하 총령이 이를 갈며 외쳤다.“주상께서는 분명 대군자 손에 죽은 것이 아니옵니까! 어찌 말도 안 되는 ‘내가 임금을 시해했다’는 누명을 씌우십니까!”오늘 이 자리에서, 설령 주상마저 함께 목숨을 잃는다 해도, 결코 최지습을 이곳에서 살려 보낼 수는 없었다.곧이어 집 밖에서는 정연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활을 든 병사들이 이미 사격 준비를 마친 것이다.하 총령은 즉시 사람들을 거느리고 마당으로 나가, 언제든 화살을 쏠 태세를 갖추었다.그러나 그때, 안쪽에서 주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비록 허약했지만 위엄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하원! 짐이 명하노니 당장 물러서라!”하원은 번쩍 놀라 멈추었다.주상께서…… 말을 하실 수 있다고?그렇다면 이는 곧, 주상 체내의 독이 이미 풀렸다는 뜻이었다.그렇다면…… 더더욱 주상을 살려둘 수 없지 않은가!하원은 더욱 냉랭하게 외쳤다.“주상께서는 분명 역적에게 협박을 받고 계십니다!”“망언을 그만두어라!” 주상이 분노에 찬 음성으로 꾸짖었다.곧이어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으나, 그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말했다.“평양원군은 짐의 친동생이다. 어찌 역적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이냐! 너희가 참언을 믿고 강녕전을 포위한 것이야말로 대역무도한 짓이다!”문 밖에서는 낮은 수군거림이 일었다.금군들이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러나 하 총령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주상께서 병이 깊어 정신이 혼미하시옵니다! 모두들 명을 들어라, 안으로 돌입해 주상을 구하라! 중전마마께서 크게 상을 내리실 것이다!”최지습은 하원이 죽을 각오로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음을 직감했다.그는 주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황형, 잠시 침상 밑으로 몸을 피해 주십시오. 신하된 제가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어 보겠습니다.”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주상에게 한 줄기 생명의 길을 열어 주려는 것이었다.최지습은 말을 마치자마자, 곁에 드리워진 휘장을 거칠게 잡아 뜯었다.그것을 방패 삼아 화살비를 막아낼 요량이었다.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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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9화

따뜻한 액체 한 방울이 최지습의 목덜미에 떨어졌다.그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것은 황형의 눈물이었다.늘 강인하던 천자가 이 순간 그의 등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최지습은 목구멍이 메어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는 그저 더욱 단단히 주상의 몸을 부축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뒤에서 날카롭고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 영감의 목소리였다!최지습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고, 주상의 몸도 팽팽히 굳어졌다.곧이어 밀실 안으로 연이어 발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최지습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마침내 모퉁이를 돌아서 밀실 밖으로 나왔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 폭의 정원 풍경이었다.주상의 목소리가 들렸다.“저쪽 가산 아래에 장치가 있다. 밀실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말이 떨어지자 최지습은 곧장 달려가 장치를 눌렀다.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돌문이 내려앉으며 밀실을 완전히 봉해 버렸다.그제야 최지습은 조금 안도하며 주상과 함께 가산 옆에 앉았다.죽음을 넘긴 순간이었으나,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주상은 오래도록 자신을 섬겨온 고 영감을 떠올리며 눈물이 분노와 뒤섞여 흘렀다.“짐이 반드시 그들에게 피로써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최지습은 여전히 침묵한 채, 경계의 눈빛으로 사방을 살폈다.곧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물었다.“황형, 여기는 대체 어디입니까?”그제야 주상은 분노에서 벗어나 최지습을 향해 미소 지었다.“구태부의 뒷마당이다.”그 말을 들은 최지습은 크게 놀랐다.곧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횃불을 들고 급히 몰려오는 무리를 보았다.그 선두에는 다름 아닌 구태부가 서 있었다.주상과 최지습을 본 구태부는 충격에 휩싸였다.이내 그가 이끄는 무리가 모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소신, 주상을 알현하옵고 대군자를 알현하옵니다!”황제가 피신하는 밀실이 태부의 관저와 통하고 있다니, 이는 구태부에 대한 얼마나 깊은 신임인가?한편, 주상이 밀실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중전은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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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0화

동시에 예종원군 관저.임학은 어둠을 틈타 예종원군 관저로 숨어들었다. 그는 머릿속에 새겨진 최지습이 보여준 지도를 떠올리며 소하가 머무는 처소를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마침내 뜰문을 밀어 열려는 찰나, 등 뒤에서 서늘한 살기가 몰아쳤다!임학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피했고, 차가운 검날이 목덜미를 스치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잘라냈다.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몸을 굴린 뒤, 오른손을 발톱처럼 세워 정확히 검을 쥔 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이각, 나다!” 임학은 낮게 속삭였다.상대가 순간 멈칫했다. “너, 임학인가?”이각은 마침내 장검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검끝을 임학의 목구멍 앞에 겨누며 말했다.“한밤중에 예종원군 관저를 무단침입하다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임학이 전에 김단을 도와 달아나게 한 일은 이미 그의 귀에 들어와 있었다.진산군 또한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니, 그 결단은 참으로 경의로웠다.그러나 지금은 대공자의 안위가 걸린 문제라, 그는 한순간도 경계를 풀 수 없었다.임학은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들며 말했다.“나는 평양원군의 명을 받고 예종원군께 해독약을 전하러 왔다.”이각의 눈빛이 즉시 빛났다. 그는 약병을 노려보더니 마침내 장검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따라와라.”방 안은 밖보다 더 어두웠고, 오직 침상 앞의 작은 촛불 한 자루가 미약한 불빛을 흔들고 있었다.한때 기개가 넘치던 소하는 지금 얼굴이 잿빛으로 질려 입술까지 비정상적인 창백함을 띠고, 숨결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침상 옆에는 소복을 입은 여인이 서서 축축한 천으로 소하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고 있었다.“예정빈, 이분은 임학이라 하며 김 낭자의 오라버니이십니다.” 이각이 낮게 말했다.여인이 몸을 돌자, 임학은 그제야 그녀의 용모를 똑똑히 보았다.높은 콧대와 깊은 눈매, 호박빛 눈동자가 등불 아래서 유리처럼 맑게 빛나고 있었다.바로 고지운이었다.김단의 이름을 듣자, 고지운은 즉시 긴장하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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