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의 모든 챕터: 챕터 1501 - 챕터 1510

1566 챕터

제1501화

김단은 침상 곁 둥근 의자에 천천히 앉아, 차갑게 식은 침상 기둥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극도의 피로가 무거운 산처럼 내려와 어깨를 짓눌렀고, 그렇게 머리를 침상머리에 기대다 그만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한의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버겁게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오래도록 의식을 잃었던 탓에 시야는 온통 흐릿했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초점이 맞춰졌다. 눈앞에 먼저 들어온 것은 익숙한 휘장의 천장이었고, 고개를 옆으로 조금 돌리자 침상 기둥에 기대 선잠에 빠진 듯한 김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젖힌 채 잠들어 있었고, 땀에 젖은 몇 가닥 잔머리가 맑은 이마와 뺨에 들러붙어 있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은 눈두덩 아래 짙은 그늘을 드리웠고, 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으며, 꿈속에서도 미간을 찌푸려 심한 피로가 배어났다.정녕… 그녀였구나.그 인식이 소한의 가슴속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물결을 일으켰다. 쓰라림, 혼란, 그리고 그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미묘한 떨림까지.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의 허약과 통증을 잊은 채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바로 곁, 이유 없이 마음을 놓이게 하는 그 창백한 잠든 얼굴을 한 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었다.그러나 팔을 겨우 한 치 들어 올리자마자, 거칠고 강한 구속감이 또렷이 전해져 그 동작을 막아 섰다. 소한의 눈동자가 번개처럼 수축하며 단숨에 정신이 맑아졌다. 고개를 내려다보고서야 두 손목이 질긴 우근끈으로 침상 난간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매듭은 능숙하여 혈맥을 조이지 않으면서도 도무지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었다.감금되었다는 분노와 서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번쩍 치올랐다.“윽!”목구멍 깊은 데서 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고, 몸을 비트는 그 움직임에 본디 깊지 않던 김단의 잠이 깨어났다.김단은 거의 그 순간에 눈을 번쩍 떴다.소한이 눈을 뜬 채 여전히 몸을 비트는 것을 보자, 방금 전까지의 허약과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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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2화

김단의 온몸이 번개 맞은 듯 굳어 붙었다. 허리춤을 짚고 있던 손이 순간 풀렸고, 맑던 눈동자엔 믿기 어려운 경악이 한꺼번에 차올랐다.그녀는 소한의 얼굴을 매달리듯 노려보았다.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에서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듯, 거의 떨림이 묻히는 음성으로 물었다.“너… 너, 전부 떠올린 것이냐?”소한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서서히 내려가다 끝내 그녀의 아랫배에 멎었다. 비록 여러 겹의 옷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 자신이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칼끝을 그녀의 몸에 박아 넣었던 순간은 뚜렷이 기억났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피로 그를 살렸다.“미… 미안하다…”세 글자였으나, 쇳덩이처럼 김단의 가슴에 곧장 내려앉았다.김단은 커다란 충격 속에서도 번개처럼 무엇을 떠올렸다. 그녀는 소한의 손목을 거칠게 붙들고, 세 손가락으로 정확히 맥을 짚어 깊이 들여다보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맥은 전보다 한결 고르고 힘이 붙었으나, 두개 속에 엉겨 붙은 응혈의 막힘은 여전히 선명했다. 흩어지지 않았다.김단의 마음이 와락 내려앉았다. 소한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네 머릿속 응혈은 분명히 남아 있어. 아직 풀리지 않았어. 넌 기억을 되찾지 못했어!”그렇다면, 날 속이려는 건가. 결박을 풀게 하고 다시 손을 대려는 건가.소한은 그녀의 의혹 어린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의 눈에도 깊은 혼미가 떠올랐다. 고개를 저으며 낮게 중얼거렸다.“나도 모르겠다… 방금, 나는 아주 길고 긴 꿈을 꾼 듯했지.”그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꿈속에… 작은 뜰이 있었고, 온갖 빛깔의 매화가 피었어. 너는 연황색 치마를 입고 나를 쫓아 달렸지. 나는 나무에 올라 너에게 열매를 따 주고, 너는 나무 아래에서 얼굴을 들어 웃었어. 눈이 별처럼 빛나고…”그의 목소리는 점점 옅어지더니, 마치 아득하되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잠긴 사람처럼, 입가에 저도 모르게 지극히 온화한 미소가 엷게 번졌다.말을 잇는 사이, 소한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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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3화

우문호는 반쯤 열린 창 앞에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서 있었다. 얼룩진 빛과 그림자 속에서 그 형상은 유독 깊고 어두워 보였다.우달은 몇 걸음 뒤에 손을 늘어뜨린 채 모시고 서서, 숨결마저 낮추었다.“백독불침… 그녀의 피… 정말로 골식독을 풀 수 있단 말이냐?”우문호의 목소리는 높지도 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으나, 서늘한 칼끝을 담금질한 듯 고요를 베어냈다.우달이 미간을 낮추어 아룄다. “예, 전하. 심월이 친히 그렇게 말하였사옵니다. 그리고… 소한의 상태도 좋아 보였사옵니다.”“허…”우문호가 문득 가느다란 웃음을 흘리자, 적막한 서재의 공기는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으나, 우달은 주인의 등 뒤로 모은 손가락 마디가 힘에 겨워 도드라지고, 창백한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또렷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마저 비틀어 으스러뜨리려는 듯한 기세였다.그가 방심하였다.그날 구요현망침이 세상에 드러났을 적에, 이미 김단의 자취를 헤아렸어야 했다. 그러나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심묵이 약왕곡 같은 큰 권한을 어린 아씨의 손에 맡길 줄이야. 심월이 마음에 불평을 품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농락당했다는 분노와 거센 상실의 감각이 독한 넝쿨처럼 우문호의 심장을 휘감았다. 김단의 값어치는 순식간에 그조차 다루기 껄끄럽고, 은근한 두려움까지 일게 하는 높이로 치솟고 있었다.우달은 우문호의 눈에 서린 숨김없는 살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아뢰었다.“전하, 약왕곡은 제 의술을 믿고 예부터 각 방세를 업신여겨 왔사오니 오만이 오래되었사옵니다. 이번 내분으로 김단과 심월은 이미 물과 불이 되었사오니, 이 틈을 타 약왕곡을 뿌리째 뽑아버리심이 어떠하옵니까?”우문호는 입끝을 아주 차갑게 올렸다. 웃음기는 눈에 미치지 못해 도리어 서늘함이 더했다. 그는 서안으로 걸음을 옮겨 느릿하게 앉으며 낮았으나 묵직한 음성으로 내리쳤다.“이 세상에서 죽은 이를 살리고 백골에 살을 붙이는 명의를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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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4화

이튿날, 새벽빛이 옅게 번졌다.김단은 소한의 두개골 속에 맺힌 어혈을 흩어 주려 전념하여 침을 놓고 있었다. 손놀림은 정밀하고 한결같았으나 이마에는 이미 잔땀이 맺혔고, 오래된 집중과 기력 소모 탓에 본래 창백하던 낯빛이 더욱 엷어졌다.소한은 고요히 누워 있었다. 두 손은 여전히 결박되어 있었으나 시선만은 내내 김단을 뒤따랐고, 묘하게도 신뢰와 탐색이 뒤섞여 있었다.그때, 문밖을 지키던 암위가 소리 없이 내실로 스며들어와 김단 곁에서 낮게 아뢰었다.“약왕곡의 주인, 우문호의 측근 우달이 향불 반쯤 전에 망우루의 별실로 들었습니다. 심 선생도 그 안에 있습니다.”김단의 침을 집던 손가락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잠시 멈칫했으나 곧 마지막 한 침을 또렷이 내려찍었다. 그녀는 손을 거두고 깨끗한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마음이 살짝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우문호가 움직이리라 짐작은 했다. 다만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뒤라면 그가 자신을 끌어들이려 들 것이라 여겼다. 뜻밖에도 심월을 찾다니. 어찌하여서인가. 혹, 소한을 겨냥하려는 계책인가.무거운 눈길이 침상 위 소한을 스쳤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었고, 맑은 그 눈빛은 예전의 깊고 어두움과는 사뭇 달랐다.김단이 미간을 살짝 모았다.“편히 쉬세요. 조금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말을 끝내고는 암위를 이끌고 발길을 돌렸다. 문을 나서자 김단이 낮은 목소리로 분부했다.“내 청첩 한 통을 당국의 세자 우문각의 손에 직접 올려라. 약왕곡의 주인 김단이 의논할 중대사가 있다 전하되, 당국의 안녕과… 우문호에 관한 일이라 전하여라.”강룡도 이 고장의 뱀을 누르지 못한다.호랑이군과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당국 황도에서 우문호의 얽힘을 완전히 떨쳐 내고 되레 억제하려면 반드시 토착 세력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우문호와 노골적이든 은밀하든 다투어 온 세자 우문각이야말로 더없이 알맞은 인물이었다. 허약한 소한을 데리고 온전히 물러나 오히려 한 수 더 둘 수 있을지 없을지는, 대부분 세자 우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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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5화

심월은 잠시 침묵하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사매, 저는 애초 사매를 해할 뜻이 없었습니다. 사실… 사매께 기회를 드린 바도 있었습니다.”그는 말을 멈추고 시선을 벽 너머로 던져, 멀리 목씨 가문 금역을 바라보는 듯했다.“그 금역의 벽에 새겨진 의술… 그것은 약왕곡 선대가 피와 땀으로 빚어낸 결정체입니다. 약왕곡의 것이니 마땅히 주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매는 어찌하셨습니까. 그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셨지요. 사매의 눈에는 오직 소한의 상처만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것들을 약왕곡으로 모셔와 후세 제자들에게 은택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돌아갈 바른 곳이자, 사매께서 약왕곡의 주인으로서 다하셔야 할 책무가 아니겠습니까.”그의 목소리는 차츰 격해져, 눌러 담은 통한과 꾸짖음이 배어들었다.김단은 입술을 꼭 다문 채 말이 없었다.심월의 시선이 다시 김단에게로 돌아와 꿰뚫듯 매달렸다.“그리고… 약천 아래의 자옥정초입니다.”그는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제가 누차 말씀드렸지요. 그것은 약천이 존재하는 근본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약천은 그저 평범한 온천일 뿐, 예전의 신효는 다시 없습니다. 그것은 약왕곡의 지보입니다.”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리며 더욱 격해졌다.“스승께서 스스로 장사를 치르실 때, 뒷산의 절반을 날려버리면서도 오직 약천만은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약천이 유일무이하며 얼마나 귀중한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매는 어찌하셨습니까.”심월은 번쩍 김단을 노려보며 실망과 규탄을 숨김없이 드러냈다.“사매께서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슴에는 오직 소한의 상처만 있을 뿐, 약왕곡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곡의 주인 자격이 없으십니다.”마지막 말은 거의 찢어지는 포효로 터져 나와, 오래 쌓인 원한과 비통이 실렸다.텅 빈 방 안에는 그의 목소리만 메아리쳤고, 끝모를 서늘한 비애가 감돌았다.김단은 고요히 듣고 있었다. 얼굴에는 책망에 치밀 분노란 없고, 다만 연민에 가까운 평온만이 비쳤다.김단의 시선이, 분노와 실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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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6화

심월은 김단의 단정한 말끝을 들으며 가슴속 어딘가에서 오래 잊었던 기운이 불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그 말이 마치 잠긴 상자를 여는 열쇠처럼, 기억의 가장 깊은 곳을 번개처럼 열어젖혔다.아득한 사이, 그는 막 스승 문하에 들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그때의 그는 의술에 대한 가장 소박한 동경을 품었고, 마음 한켠에는 김단과 다름없는 선량함이 있었다.그 또한 두 손으로 병통을 몰아내고, 위태로운 목숨을 건지길 바랐다.스승의 엄한 낯빛 아래, 약초를 가려내고 침법을 익힐 때 이따금 비치던 그 흐뭇한 눈길마저, 지금 이 순간 또렷이 살아났다.그러나 그 뒤는 어찌 되었나.몇 냥의 약값을 두고 병이 나은 자가 도리어 은혜를 물어뜯듯 약왕곡을 해약을 썼다 모함했고, 강호의 이른바 명문정파들은 불로장생이라는 허황한 전설을 좇아 한데 작당하여 약왕곡을 위협했다. 그리하여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한때 그가 살려 낸 이들이 장검을 휘둘러 자신의 목을 겨눌 때…그 모든 장면이 독을 머금은 가시덩굴이 되어 가슴을 휘감고 날마다 조여들었다.처음의 열정과 신뢰는 그렇게 서서히, 산산이 질식되어 갔다.“허.”심월의 목구멍에서 짧고도 씁쓸한 냉소가 새어 나왔다. 비어 있는 메아리 같아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그는 눈을 들어, 마른 우물 같은 눈동자로 김단을 깊숙이 겨눴다. 억지로 뜯겨나간 옛 상처가 도지는 듯한 격통과, 거의 집착에 가까운 의문이 소용돌이쳤다.“인명이 최상이라 하십니까? 사매, 그럴싸한 말은 참으로 번지르르합니다. 그렇다면 제게 대답해 보십시오.”그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지며 칼끝처럼 시렸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오늘 사매께서 온 힘을 다해 살려낸 그 목숨이, 내일은 사람을 가려 물어뜯는 독사가 될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사매가 구하셨다는 그 무고함이, 돌아서서는 더 큰 이익을 좇아, 사매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독니를 꽂을까 두렵지 않으십니까!”말이 이어질수록 그는 격해져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이마의 핏줄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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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7화

김단은 한 글자 한 글자 천근만근 눌러 내렸다. “설마 우리더러 그것을 이용해 같은 문중을 해치고, ‘보호’라는 이름을 내세워 배척과 잔혹한 짓을 행하라는 것입니까!”이익을 위해 이간하여 몰아냄…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함…심월의 낯빛이 순식간에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몸이 흔들렸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추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휘청였다.그는 무의식중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깊이 박혀 날카로운 통증이 번지자, 간신히 버텨 섰다.김단은 그가 혈색을 잃어가는 얼굴과 격렬히 떨리는 동공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유난히 고요했다. “사형께서 진정 제가 약왕곡의 주인 자리에 합당치 않다 여기신다면… 그 자리를 사양할 수 있사옵니다.”심월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 자리를 자신에게 내주겠다는 말을 할 것이라 짐작했다.그는 분명 스스로는 받지 않겠다 말했다. 만약 김단이 정말 그런 말을 꺼냈다면, 그것은 그를 송두리째 업신여김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김단은 말끝을 바꾸어, 음성까지 싸늘히 식히며 전례 없는 결단을 실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결코 그대께 내어 드리지 않겠사옵니다.”심월의 동공이 번뜩이며 좁아졌다. “무… 뭐라 하셨습니까?”김단은 그의 놀란 눈길을 피하지 않고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주인 자리를 그대께는 내어 드리지 않겠사옵니다.”“제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어느 날 그대께서 다시 ‘위협’을 느끼시고, 다시 공포와 이른바 ‘대의’에 눈이 가리우시면, 또다시 ‘약왕곡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 독한 손길을 손 장로께, 모 선생께, 그리고 오로지 의술만을 궁구하며 남을 해칠 뜻 한 줌도 없는 우리 문하의 동문들에게 뻗치지 않으시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사옵니까! 저는… 그들의 목숨을 걸고, 원한에 뒤틀린 그대의 마음이 언제 또다시 통제를 잃을지 내기할 수는 없사옵니다!”쾅.김단의 말이 아홉 하늘의 우레처럼 심월의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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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8화

김단의 눈빛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고요히 그를 마주보며 말했다. “압니다. 암위가 알려 주었습니다.”심월의 입끝이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웃음 같기도, 자조 같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는 캐묻지 않았다. 이제는 중요치 않은 듯했다.“저는 당국을 떠나려 합니다.”김단의 미간이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얕게 구겨졌으나, 그대로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았다.“약왕곡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거의 귓속말처럼 낮게 덧붙였다. “스승께 직접 여쭙겠사옵니다.”“제가 정말 잘못한 것이옵니까.”마지막 몇 마디는 그의 기력을 다 쥐어짜낸 듯 칼날 같은 쓸쓸함과 참회의 무게를 머금고 있었다. 말을 끝낸 그는 더는 김단을 보지 않고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그의 등 뒤로 길고 쓸쓸한 그림자를 끌어냈다.김단은 제자리에서 미간을 굳게 모은 채, 녹지 않는 서릿발처럼 서 있었다. 심월의 모습이 문밖 눈부신 광휘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한마디도 더하지 않았다.한편, 밀폐된 석실 안의 공기는 답답하고 눌려 있었다.숙희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가느다란 팔을 영칠의 겨드랑이 밑으로 밀어 넣어, 왜소한 몸으로 그의 무게 대부분을 떠받쳤다. 장정다운 영칠의 큰 몸은 이 순간 산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한 걸음 내딛는 일조차 고되었다. 영칠은 그녀의 짐을 덜어 주려 했으나, 사지를 짓누르는 탈력감에 서 있기조차 버거워 몸의 중심을 결국 숙희 쪽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허… 허…” 숙희의 숨은 급하고 무거워졌다. 차가운 바닥을 밟을 때마다 마치 솜을 딛는 듯, 두 다리가 미세히 떨렸다. 스스로 힘이 세다던 말은, 이처럼 우람한 영칠의 체구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땀방울이 귀밑머리를 타고 흘러 이마 앞 잔머리를 적시며 살갗에 바짝 들러붙었다.“아니면… 잠시 쉬지?” 영영칠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그 속에는 뚜렷한 쇠약함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한 줄기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팔굽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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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9화

그러나 숙희의 손끝이 차가운 석벽의 전돌을 스친 바로 그 순간, 발아래 언제 묻었는지 모를 미끄러운 이끼 조각을 밟고 말았다.“아!”순식간에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영칠을 떠받치던 힘도 함께 사라졌다.둘의 몸이 쌓아 올린 목패가 무너지듯 앞으로 거세게 고꾸라졌다.숙희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영칠의 묵직한 몸이 통제할 길 없이 그녀에게로 덮쳐 왔다. 숨결을 베어 가는 바람의 압박까지 생생히 느껴질 만큼의 공포가 일시에 그녀를 움켜쥐었다.“윽!”천균일발의 찰나, 영칠이 억눌린 신음을 토했다.금방이라도 그녀 위로 떨어질 판에, 그는 어디서 짜낸 듯한 기세로 허복에 힘을 끌어 올리더니 공중에서 몸을 억지로 비틀었다.쿵.예상하던 묵직한 충격은 숙희에게 떨어지지 않았다.그녀는 빙그르 도는 감각과 함께, 차갑고 단단한 바닥이 아닌, 온기 서린 단단한 받침 위로 내리꽂힌 듯 몸을 맡겼다.그 받침은…… 영칠의 넓은 가슴이었다.숙희가 화들짝 눈을 뜨자, 코앞에 영칠의 얼굴이 두드러졌다. 통증과 힘주기로 깊게 일그러진 미간, 매서운 선의 턱선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그녀는 극히 가까운 자세로 그의 가슴팍에 단단히 엎어진 채였다.영칠의 거칠고 무거운 숨이 북을 울리듯 얇은 옷자락을 타고 그녀의 고막과 몸으로 또렷이 전해졌다.숨을 들이킬 때마다 단단한 가슴은 힘 있게 그녀를 떠밀어 올렸고, 내쉴 때마다 서서히 가라앉았다.그의 목덜미를 타고 뛰는 맥동이 그녀의 뺨에 뜨겁게 와 닿았다.핏내와 약향, 그리고 사내 특유의 기운이 한데 섞인 냄새가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쌌다.그 순간 시간마저 응고된 듯하였다.숙희의 뺨이 불길에 그슬린 듯 순식간에 달아올라 새빨갛게 물들었다.가슴속 북소리가 광분하여 터져 나올 듯 목구멍을 찢고 치받았고, 쿵쿵 울림이 귀막을 잇달아 두들겼다.온몸의 피가 한데 끓어 얼굴로만 몰려오니 어질어질했다.그녀는 그대로 굳어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한 채, 숨조차 잊은 듯 멈춰 있었다. 아래에서 전해오는 생기 어린 기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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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0화

“콜록…” 영칠이 어색하게 기침을 한 번 하고는 가슴속의 이질감을 억눌렀다. 낮은 목소리에 미세한 긴장이 번졌다. “다… 다치지 않았느냐? 어서 일어나라… 장치는… 아직 열리지 않았…”그 소리는 벼락처럼 숙희의 혼미했던 부끄러움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아! 죄송해요!” 숙희는 놀란 토끼처럼 허둥지둥 영칠의 몸에서 일어났다. 뺨은 여전히 피가 맺힐 듯 붉었고, 눈빛은 당황하여 그를 보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존재하지도 않는 먼지를 털어 내며 북처럼 뛰는 심장을 감추려 했다.영칠도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얼굴을 돌렸다. 귓등의 붉은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어색함과… 미묘한 기운이 번졌다.비좁은 석실엔 침묵이 퍼지고, 가라앉지 않은 거친 숨결만 또렷이 들렸다.“그… 여긴 것이로다…” 영칠이 헛기침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 일을 도로 붙들었다. 조금 전 숙희가 눌렀던 그 석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다시 한 번 힘껏 눌러 보아라. 아마… 계속 눌러야 할지도…”숙희는 크게 숨을 들이쉬어 가슴속의 떨림을 누르고, 다시 한 번 온힘을 담아 그 석전을 눌렀다.“딸깍… 드르륵…”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침내 울렸다. 둔한 마찰음과 함께 신선한 공기가 순식간에 밀려들었다.“열렸어요!” 숙희가 반가움에 외치니, 눈빛에 찬란한 광채가 번졌다.영칠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짐을 덜어낸 듯 옅은 창백한 미소를 띠었다.바로 그때, 통로 안쪽에서 익숙한 부름이 울려왔다. “숙희, 아래에 있느냐?”숙희는 문득 굳어 섰다가 곧 기쁨에 겨워 외쳤다. “스승님! 접니다! 저는 아래에 있습니다! 영칠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독을 맞아 수족에 힘이 없어 도무지 걸을 수가 없습니다!”그는 격정에 받쳐 연달아 불렀다. 오래 뵙지 못한 경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니면 영칠의 형편이 가슴을 죄어서인지, 숙희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고, 작은 입술을 꼭 다물고 눈물을 애써 삼켰다.거의 다음 순간, 통로 안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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