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웃음을 머금은 채, 조용히 옆방 고지운의 방문을 밀고 들어섰다.방 안은 촛불로 따뜻했고, 약초 향이 가득했다.고지운은 침상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다. 볼에 서린 노을빛 홍조는 귀밑까지 번져 쉽사리 가시지 않았고,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누가 보아도 방금 전 옆방의 대화를 들었음이 분명한, 뚜렷한 수줍음과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상념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김단은 침상 곁으로 걸어가 고지운의 붉어진 얼굴에 시선을 두었고, 입가에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놀리고 싶어 하는 듯한 짓궂은 미소가 감돌았다.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길게 늘여가며 놀렸다. “어머나, 공주 마마 얼굴이 어찌 이리 붉어지셨습니까? 방 안이 후텁지근한 것인지, 아니면… 혹시 ‘귀가 뜨거워질 만한’ 어떤 말씀을 들으신 것은 아닌지요?”그녀는 ‘귀가 뜨거워질 만한’ 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고, 얇은 벽 쪽을 의미심장하게 흘끗 보았다.고지운은 그녀의 시선에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뺨은 후끈 달아올라 불덩이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커다란 눈에는 수줍음과 함께 원망이 실려 있었다. 김단을 흘겨보며 나지막이 투정했다. “낭자! 자네 지금… 일부러 나를 놀리는 것이군!” 모기만 한 작은 목소리에는 그녀 특유의 순진하고도 애교 섞인 투정이 담겨 있었다.김단은 잔잔히 웃음을 터뜨리며 침상 곁에 앉았다. 옆에 놓인 식혀 둔 약그릇을 들어 숟가락으로 살살 저었다.웃음을 거둔 후, 그녀의 표정은 점차 엄숙하고 진지해졌다. 그녀는 맑은 눈빛으로 고지운을 바라보았고, 목소리에는 전례 없는 진중함이 실렸다. “자, 이제 장난은 그만하겠습니다.”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침착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 마마, 방금 전 모든 말을 들으셨겠지요. 공주 마마 마음속에 서운함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하 오라버니의 그 말씀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들리셨을지, 얼마나 억울하셨을지도 압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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