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561 - Chapter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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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1화

김단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사당에서 정성껏 음식과 물을 내어 주던 사람들, 방금 태어난 아기와 서 과부, 순박한 얼굴들이 눈앞을 스쳤다.그들을 절대로 화에 말려들게 할 수는 없었다.“가자.”그녀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한은 무공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고지운도 재빨리 짐을 정리했다.은인이 곧 떠난다는 말을 듣자, 마을 사람들은 사당 어귀로 몰려나와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했다.촌장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김단의 손을 붙들었다.“낭자의 큰 은혜를 우리 서 씨 마을이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 동네가 외져서 길도 험한데, 다친 분도 계시니… 마을에 소달구지가 한 대 있습니다. 낡았어도 걷는 것보단 나을 터이니, 부디 그걸로 한 길 모셔 가게 하십시오.”김단이 급히 사양했다.“촌장 어르신, 괜찮습니다. 우리는...”“낭자, 부디 사양 마시지요!”건장한 장정이 이미 소달구지를 끌고 와 두툼한 마른 풀을 가득 깔아 두었다.“낭자께서 서 부인 모자를 살려 주셨으니, 온 마을의 은인이십니다. 달구지 한 대쯤이야 무슨 대수겠습니까. 어서 오르십시오!”사람들의 간절한 눈빛, 창백한 소한의 얼굴, 지친 기색의 고지운이 한눈에 들어왔다.이 달구지야말로 지금 가장 절실한 길이라는 것을 김단은 알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촌장과 마을 사람들에게 정중히 한 번 허리를 굽혔다.“고맙습니다, 어르신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일행은 마른 양식 몇 꾸러미를 챙겨, 소박하되 든든한 소달구지에 올랐다.정 많은 장정이 고삐를 잡고 앞장섰고,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요한 마을을 천천히 빠져나와 마을 밖 샛길을 따라 나아갔다.달구지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빠르진 않았지만, 분명히 걸음의 고단함을 덜어 주었다.소한은 마른 풀더미에 기대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김단은 주위를 경계하며 둘러보았고, 최지습은 검자루를 눌러 쥔 채 길가 산림을 예리하게 훑었다.고지운의 안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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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2화

최지습과 호랑이군이 서 씨 마을에 닿았을 때, 그곳은 이미 지옥이었다.불길이 탐욕스럽게 초가지붕과 나무 대들보를 집어삼켰고, 검은 연기는 하늘을 막아섰다.코를 질식시키는 탄 냄새와 살이 그슬리는 악취, 짙게 응고된 선혈의 비린내가 뒤엉켜 공기를 메웠다.불길이 가장 거센 곳은 다름 아닌 어제 그들이 따뜻한 대접을 받았던 사당이었다.호랑이군은 굴에서 풀려난 짐승처럼 곧장 사당 쪽으로 돌진했다.싸움은 짧고도 잔혹했다.호랑이군은 천둥처럼 들이쳐 마을에 남은 자객들을 모조리 쓸어냈다.그리고 타오르는 잿더미와 시신 더미 사이를 헤집어, 구석과 지하 저장고, 혹은 시신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몇몇 생존자를 찾아냈다.그들은 온몸이 피와 그을음으로 범벅이었고, 눈빛은 속이 텅 빈 꼭두각시 같았다.호랑이군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는 그 순간에야, 사람의 체온을 느끼듯 목이 터져라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최지습은 초토화된 마을 한가운데 멈춰 섰다.발치엔 새까맣게 그을린 흙과 굳어붙은 핏자국이 얼룩졌다.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한 분노와 살얼음 같은 비애가 가슴 속에서 뒤엉켜 소용돌이쳤다.구해 낸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비틀거리다 최지습 앞으로 모였다.그중 흰 머리칼의 노인이 있었으니, 바로 어제의 그 인자한 촌장이었다.지금의 그는 옷이 해어지고 얼굴엔 그을음과 눈물 자국이 뒤범벅이었다.혼탁한 눈동자가 최지습을 꽂아 보더니, 부축을 뿌리치고 주저앉듯 무릎을 꿇었다.마른 손이 최지습의 핏빛 전포 자락을 움켜쥐었다.갈라진 목소리는 숨이 끊어지는 짐승의 울음 같았다.“은공… 은공이여! 대체, 이게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왜, 왜입니까!”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핏발 선 눈동자에는 하늘을 뒤엎을 듯한 울분과 의문, 그리고 절규가 엉켜 있었다.“우리 서 씨 마을은… 대대로 여기서 살며 법도 어기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습니다.그런 우리에게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무서운 벌을 내리십니까!어찌 이런 화를 겪으라 하십니까!”“그래요, 왜입니까! 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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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3화

부인은 불타는 잿더미와 새처럼 놀란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다시금 눈물을 쏟았다.“이 아인 우리 같은 손에 맡겨선 소용이 없습니다. 머잖아… 머잖아 죽음뿐일 겁니다. 은공, 귀한 분이시니 능히 길을 내실 터, 제발 이 아이에게 살길을 터 주십시오.”끝말을 잇지 못하고 포대기를 끌어안은 채 깊게 허리를 굽히며 흐느꼈다.최지습의 시선이 작은 포대기에 내려앉았다.막 세상에 나온 아이는 눈을 꼭 감고, 작은 입술이 두 번 가늘게 꿈틀거렸다.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리도 없었다.이성은 그에게 속삭였다.갓난아기를 데리고 달아난다면, 언제든 울음으로 자취가 드러날 것이니 스스로를 죽음으로 모는 셈이라고.그러나 부인의 애원, 촌장의 절망 어린 눈물, 피와 불길이 삼켜 버린 이 터전을 본 순간,모든 계산은 더 크고 답답한 책임과 죄책감 앞에 산산이 부서졌다.그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조심스레 포대기를 받아안았다.“좋다.”이어 몸에 지니고 있던 은전을 모조리 꺼내 촌장의 손에 쥐여 주었다.목소리는 납처럼 무거웠다.“마을이 이 지경이니, 살아남은 이도, 떠나간 이도 모조리 손이 필요합니다. 이걸로 뒷일을 도모하십시오.”촌장이 허겁지겁 손을 저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은공께 이미 많이 받았는데…”“사양하지 마십시오, 촌장 어르신. 저는 이 아이를 잘 길러 훗날 반드시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조상께 고하고, 뿌리를 잇게 하겠습니다.”그 말을 듣자 촌장의 눈물이 다시 북받쳤다.목이 메어 말은 나오지 않고, 고개만 연거푸 끄덕였다.뿌리를 잇는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운가.서 씨 마을에 아직도 맥이 이어진다는 뜻이니까.작별을 고하고, 최지습은 호랑이군을 이끌어 돌아갈 길에 올랐다.최지습은 사내답게 굳은몸이었으나 아이를 안아 본 적은 없었다.하지만 호랑이군 가운데는 이미 아비가 된 자들이 적잖았다.길 위에서는 그들이 번갈아 품에 안아 달랬고, 아이가 배고프면 미음을 조금씩 먹였다.그렇게 간신히 버텨 작은 읍내에 닿았다.밤은 눅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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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화

김단은 거의 한눈에 알아보았다.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떨림이 목끝에 얹혔다.“이건…?”최지습은 곧장 창을 닫아 바깥의 찬 기운을 막았다.숙희가 재빨리 다가가 최지습의 품을 들여다보고는 짧게 숨을 삼켰다.“아씨! 아기예요!”아기…김단의 가슴이 턱 하고 내려앉았다.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최지습에게 다가갔다.최지습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피로가 엉켜 있었다.그는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포대기를 김단에게 건넸다.떨리는 두 손을 내밀었다.마치 귀한 보물을 받듯, 또 달아오른 인두를 넘겨받듯, 단단히 그러나 부드럽게 그 작은 포대기를 안았다.익숙한 아기 냄새에 그을음과 쇳내 나는 피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포대기 모서리를 살짝 젖혔다.촛불 아래, 쪼글쪼글하고 발갛게 오른 작은 얼굴이 드러났다.그녀가 직접 받아낸 바로 그 아이였다.다만 지금, 아이의 볼에는 재가 조금 묻어 있었고 잠도 깊지 않았다.가는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그 아이야. 정말 그 아이야.”김단의 목이 순간 메었다.거대한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와 온몸을 덮쳤다.죽음의 끝자락에서 버티던 서 과부의 숨결,눈물로 감사를 전하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고요하고 평화롭던 그 마을의 풍경이...눈앞의 피 묻은 포대기 한 조각에 와르르 무너졌다.눈물이 예고도 없이 북받쳐 올랐다.굵은 방울이 뚝뚝 떨어져 아기의 볼을 적셨다.최지습은 김단이 무너져 흐느끼는 눈물과, 아기를 뼛속까지 끌어안으려는 듯한 그 자세를 바라보며, 고개를 삼켰다.목소리는 잠겨 낮고 거칠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자갈을 갈아낸 듯 피비린 기운이 서렸다.“마을은 사라졌소. 우리가 돌아갔을 땐… 이미 늦었소. 몇 사람만 겨우 건졌지. 서 부인는… 빠져나오지 못했소. 마을 사람들이 이 아이를 내게 맡겼소. 함께 가면 이 아이가 못 살 거라며.”짧은 말들이 지옥 같은 참상을 그려 냈다.고지운은 숨을 들이켰다. 아이를 품은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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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5화

최지습이 그 점을 모를 리 없었다.그럼에도 아이를 굳이 데려왔다는 건 이미 다음 수를 마련해 두었다는 뜻이었다.과연 그랬다.그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소하를 잠깐 본 뒤, 방 안 사람들을 훑어보고 마지막에 김단의 얼굴에 시선을 멈췄다.“이제 더는 숨어 다닐 수 없소.”원래라면 목씨 가문과 당국 황실의 눈을 피해 조용히 당국을 떠날 작정이었다.그렇게 하면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저들은 숨어 있고 우리는 드러나 있다. 더는 끌려갈 수 없었다.게다가 우리에겐 부상자가 있고, 아이 가진 사람도 있고, 이제는 아이까지 있다.궁지로 몰리기 전에...쥐처럼 도망 다니며 죄 없는 자들까지 엮느니, 차라리 스스로 빛 아래로 나서야 했다.대낮으로 나서자.김단은 품에서 우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최지습의 말을 곱씹었다.미간이 살짝 모였다. 결심이 선 듯 아이를 안고 문을 나섰다.1층의 텅 빈 전청으로 내려왔다.어둑한 호롱불 아래, 가게 관리자 하나가 계산대에 엎드려 졸다가 아기 울음에 깨어 눈을 비볐다. 방해받은 기색이 얼굴에 비쳤다.“가게 관리자.” 김단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내 아이가 배가 고파하네. 지금 당장 유모가 필요하다만.”가게 관리자가 멍하니 있다가 난처한 얼굴로 손을 비볐다.“아이고, 부인, 이거 큰일입니다. 한밤중이라 읍내 집집마다 다 잠들었을 텐데 어디서 유모를 구하겠습니까. 우선은… 미음으로 좀 달래시고 날이 새면 제가…”김단은 미세하게 눈썹을 올렸다.목소리가 차갑게 낮아지며, 알아채기 어려운 비웃음이 스쳤다.“목씨 가문이 이제는 한밤중에 유모 하나 구할 능력도 없다는 말인가.”“목… 목씨 가문?”가게 관리자의 난처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졸음 기운이 사라지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김단을 믿기지 않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김단은 그의 허둥댐을 보자 더는 군말을 아끼고, 한 손을 비워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탁.손에 닿아 매끈한, 목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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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6화

해 질 녘의 어둠이 진한 먹물처럼 황혼 하늘에 번져 내렸다.우문호가 화약 냄새와 먹향이 스민 서재에 막 발을 들인 순간,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망토를 아직 벗지도 못한 채, 그림자 사이에서얼음장처럼 차가운 분노를 머금은 칼날이 독사처럼 번뜩였다.치익.검끝이 그의 귓바퀴를 아슬하게 스치며 몇 올의 옆머리를 베었다.뒤쪽 자단목 서안에 칼날이 깊숙이 박혔고, 검자루는 윙 하고 떨렸다.우문호는 몸을 재빨리 뒤로 뺐다.번개 같은 시선이 자객을 꽉 붙들었다. 정실 부인 목몽설이었다.촛불이 살짝 흔들렸다.황도에서 손꼽히는 그녀의 고운 얼굴에 서리가 내린 듯한 냉기가 흘렀고, 평소 장난기와 요염함으로 반짝이던 그 눈동자에는 지금 맹렬한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설이오?”우문호의 목소리에는 놀람보다는, 어느 정도 체념이 스며든 관대함이 느껴졌다.마치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를 바라보는 듯한 태도였다.“한밤중에 무슨 연극이오. 남편인 나를 죽이려 드오?”입말은 가볍게 흘렸지만 손놀림은 전혀 느리지 않았다.그는 이어지는 매서운 검세를 비켜 나갔다.값비싼 자기와 옥기들이 칼날의 기세에 금이가고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흩뿌려졌다.목몽설은 대꾸할 생각도 않았다.그저 입술을 꽉 깨물었고, 눈에는 배신당했다는 분노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발놀림은 번개처럼 빠르고, 그 술수는 치밀하고 정교했다.진정 화가 난 것이었다.한 동작 한 동작이 우문호의 급소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서재의 값비싼 장식품들이 순식간에 화를 입었고, 파편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우문호의 무공은 그녀를 앞섰다.그러나 그는 끝내 공격을 하지 않았다.꽃 사이를 누비는 나비처럼 좁은 공간을 가볍게 누비며 피했다.몸짓에는 여유로운 품이 묻어났다.가끔 손을 내어 검끝을 쳐냈지만 힘은 꼭 맞게 조절했다.칼을 튕겨내되 그녀의 손마디가 저리거나 무기가 떨어지지 않게 했다.마치… 함께 맞춰 주는 연습 상대처럼, 혹은, 장난이라도 치듯이.“그만하오.”우문호가 마침내 빈틈을 보았다. 팔을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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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7화

목몽설이 우문호의 품에서 몸을 비틀며 외쳤다.“대답하오. 자네가 자객을 보낸 것이오?”우문호는 분노와 몸부림으로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보았다. 고집과 억울함이 엉긴 표정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스치듯 건드렸다.그는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문득 풀었다. 다만 한 손으로는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거머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려 시선을 맞췄다.그의 눈빛은 깊었고,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지오. 금일의 일이 참으로 내 소행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곧장 시인하였을 것이오. 설이 그대에게 숨길 까닭이 무엇이오. 설사 그러하였다 한들, 네가 어찌하겠소.”목몽설은 순간 멈칫했다.그래, 우문호가 인정한다 한들 그녀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눈 속의 불꽃은 순식간에 꺼졌고, 남은 것은 잿빛의 허탈과 슬픔뿐이었다.몸부림치던 힘도 빠졌다. 힘 없는 손목이 그의 손에 그대로 매달렸다. 그녀는 그의 차갑고도 잘생긴 얼굴을 외면했다. 목소리는 낮아졌고, 들릴 듯 말 듯 떨림과 체념이 섞였다.“정말… 자네가 아니오?”우문호는 그녀의 눈에서 빠르게 꺼지는 불빛과, 서서히 번져드는 회색 낙담을 보았다.고집스레 고개를 돌린 작은 얼굴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들었다.그는 턱을 눌러 주던 손을 거두고, 손목도 놓았다. 한 걸음 물러서 거리를 두었다.그는 오른손을 들어 세 손가락을 하늘로 세웠다. 눈빛은 정면을 꿰뚫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나 우문호가 여기서 맹세하오. 오늘 김단 일행을 습격한 일이 내 소행이라면, 하늘의 벼락을 맞아 비명횡사하고 대가 끊기리다.”맹세는 가차 없이 내리꽂혀, 바닥을 울리고야 말았다.목몽설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혼인까지 했건만, 목몽설은 끝내 자기 남편을 알 듯 말 듯했다.예전에는 그를 음험하고 독한 자로만 여겼다. 그런데 방금, 그 사람이 자손을 걸고 맹세했다. 마음 어딘가에서, 스스로도 낯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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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화

영칠은 약왕곡의 암위 아닌가.어째서 여기 있지.목몽설의 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는 찰나였다. 우문호가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등 뒤에서 실체를 가진 듯한 냉기가 아무 예고 없이 번졌다.책상 위 촛불이 세차게 흔들더니, 불꽃이 움츠러들며 빛이 흐려졌다.보이지 않는 공포의 손에 목이 조여진 듯, 벽에는 뒤틀린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우문호의 등줄기가 즉시 굳었다. 본능에서 솟은 한기가 척추를 타고 정수리까지 치올랐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발소리도, 옷자락을 가르는 바람도 없었다. 공기의 흐름조차 변하지 않았다.방심이 아니었다. 상대의 몸놀림이 극에 달해, 이 적막 속에 스며 든 것이었다.거센 위기감에 근육이 팽팽해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받아치려 했으나 이미 늦은뒤였다.밤빛보다 더 짙은 그림자 하나가, 등뒤 세 자도 못 되는 지점에 소리 없이 서 있었다.차가운 검끝이 지옥의 서리를 머금은 듯, 정확하고 흔들림 없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독사의 혀끝이 스치는 듯한 감각이었다. 피가 굳어 버린 듯 몸이 얼었다.검날에 스민 희미한 핏내까지 또렷이 코끝을 스쳤고, 우문호의 몸은 돌처럼 굳어 숨마저 고였다. 둘째 황자 관저의 경비가 허술한 편이 아니었고 바깥에는 우달 같은 고수까지 버티고 있었건만, 영칠은 이렇게 흔적 하나 없이 스며들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섬뜩했다.그가 목을 따러 왔다면, 반격의 틈은 한 올도 없었을 것이다.등뒤의 시선은 심연처럼 고요해 인간의 온기라곤 찾을 수 없었고, 그 시선이 그의 후경의 급소를 틀어쥔 채 꼼짝 못 하게 겨누고 있었다.서재에는 촛불이 탁탁 튀는 소리와 북처럼 요동치는 그의 심장 박동만 남았으며, 그때 서늘하고 쉰 목소리가 등뒤에서 떨어져 방금 목몽설이 던진 말을 그대로 되뇌되, 한층 더 짙은 살기를 실었다.“전하, 정말 우리 약왕곡의 주인을 죽이라고 사람을 보낸 일이 없습니까?”우문호의 속은 거세게 뒤집혔으나 얼굴은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서있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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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9화

우문호의 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내려앉았다. 무거운 망치로 맞은 듯했다.촌락을 몰살했다니.그 우둔한 우문각이 그런 미친 짓을 했단 말인가, 스스로 빌미를 내주는 짓을!경악이 가시자 뜨거운 환희가 용암처럼 치밀어 올랐고, 하늘이 내려 준 기회라 직감했다.세자 우문각을 잔혹하고 패악한 자로 못박아, 나라를 어지럽힌 치욕의 말뚝에 묶어 둘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이자 명분으로 그 자리를 바꿔 앉을 기회였다.그는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힘껏 눌러담았으나, 내뱉는 목소리에는 이미 미세한 조급함이 스며 있었다.“약왕곡의 주인은… 무엇을 원하나.”이런 소식이 공짜일 리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영칠의 음성은 여전히 차갑고 또렷했다. 김단의 뜻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듯했다.“우리는 그저 당국을 무사히 떠나길 바랍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길을 막는다면…”검끝의 냉기가 한 겹 더 내려앉았다.“…우린 돌아와 베어낼 겁니다.”말이 끝나는 순간, 목덜미를 옥죄던 얼음 같은 압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그는 등뒤의 자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뼛속을 파고들던 살기는 밀물이 빠지듯 사그라져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우문호는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몇 번이나 숨을 고른 뒤에서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뒤에는 아무도 없었다.방금 목을 스치던 그 살기와 그림자 같은 존재가 모두 환영이었던 듯했다.다만 목덜미에 가늘고 선명한 따가움이 남아 있었다. 그는 무심코 손을 들어 손끝으로 쓸었다.손끝에 찍힌 것은 선혈—가는 피줄 하나였다. 우문호는 붉게 물든 손끝을 오래 내려다보았다.그의 가슴속에서 약왕곡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두려움에 가까운 무게로 내려앉았다.그리고 아주 미세한, 뒤늦은 섬뜩함이 따라왔다.우문호는 그동안 약왕곡을 이용할 카드이자 경계해야 할 잠재적 위협으로만 여겼다.지금에서야 그들 깊이를, 그리고 원한을 갚을 때의 매서움을 제대로 깨달았다.다시 돌아와 벨 것이다.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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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0화

허름한 여인숙에서 이틀을 쉬고서야 다시 길에 올랐다.신분이 드러난 탓에, 목씨 집안은 널찍한 마차 세 대를 새로 마련했다.차 안에는 두꺼운 방석을 깔아 관도의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그러나 아기는 예측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덩굴처럼 모든 신경을 얽혔다.인시 삼각, 사방은 여전히 어두웠다.마차는 굴곡진 도로를 따라 미세하게 흔들렸고 나무 차축은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그때, 갑자기 날카롭고 애절한 울음소리가 고요를 가르며 터져 나왔다.서달이 배가 고팠던 것이다.김단은 번개처럼 눈을 떴다. 며칠 동안 돌보며 익숙해진 동작이었다.작고 불안하게 뒤틀리는 몸을 품에 안았다. 그 아이의 작은 몸짓에 김단의 마음이 짓눌려왔다.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그 몸을 따뜻하게 감쌌다.숙희도 곧바로 눈을 떴다.두툼한 솜이불로 감싼 보온 상자를 열고, 데운 염소젖을 꺼냈다.작은 은숟가락으로 아기의 입술에 살며시 대주었다.아이는 허겁지겁 빨았고 울음소리는 서서히 가라앉았다.작고 빠르게 삼키는 소리만 고요한 차 안에 맴돌았다.하지만 그 평온은 한 시진도 가지 못했다.갑자기 비에 파인 깊은 구덩이가 나타나, 바퀴가 깊숙이 꺼지며 마차가 세차게 튕겨졌다.“와아—”방금 배불렀던 서달이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고, 피가 터질 듯 아픈 표정이었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허공에서 마구 휘저었고, 포대기는 터질 듯한 위태로운 상태였다.“어찌 된 거예요. 놀란 건가요.”숙희가 멍하니 서 있었다.김단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죽을병에 걸린 환자라면 차라리 방법이 떠올랄 텐데,지금 앞에 있는 것은 오로지 울음으로 자신을 전하는 갓난아기에 불과했다.눈앞에서 맴도는 듯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마차 안에는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김단과 숙희는 좁은 공간을 빙빙 돌며 다급해졌다.마침 그때 최지습이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무슨 일이오?”낮은 목소리였다.김단은 구세주를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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