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럼 덕빈마마의 사람이라고 한 것도 거짓말이겠군.”그제야 어린 궁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도련님, 좋은 자리를 봐가면서 앉으시지요. 머지않아 조선의 왕은 세자저하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도련님께서도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그 말에 임학은 싸늘한 웃음을 머금으며 되물었다.“그 말, 중전마마께서 직접 시키신 것이냐?”궁녀는 눈을 내리깔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임학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단호히 말했다.“중전마마께 아뢰거라. 먼 훗날 이 나라의 주인이 누가 되든 우리 임가는 오직 전하에게만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이다. 세자저하께서 즉위한다면 그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고요한 공간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왔다.“임 도련님, 그리 급히 떠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중전마마였다.임학은 다시 몸을 돌려 단정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중전마마를 뵙습니다.”그녀는 우아하게 걸어오더니 그의 앞에 섰다.“도련님께서는 중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귀한 목숨을 또다시 위태롭게 만드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그녀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고 말에는 뼈가 섞여 있었다.“그 아이를 이리 주시지요.”곁에 있던 유모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며 나가섰다.그러자 임학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걸음 물러섰다.“중전마마의 걱정은 잘 알겠으나 제 목숨은 누이가 구해준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누이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만약 이 길 끝이 죽음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야 그저 누이에게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그 말에 중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렇다면, 임 도련님은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뜻이군요?”“그런 뜻은 없습니다.”임학은 냉정하게 받아쳤다.“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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