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의 모든 챕터: 챕터 911 - 챕터 920

955 챕터

제911화

목씨 가문의 마차는 크기도 했지만, 매우 안정적이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마차 안에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방석이 깔려 있었고, 옆의 나무 상자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약초 향에 김단의 마음은 더욱 편안해졌다.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김단은 문가로 다가가 차창을 열고 최지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생각에는, 목씨 가문의 두 오라버니들이 어떠신 것 같습니까?”“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속셈은 없어 보이오.”최지습은 솔직하게 대답했고, 김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하지만 최지습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목씨 가문처럼 큰 가업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어찌 속셈이 없을 수 있겠소?”그러니 목설하나 목설원이나, 오늘 보인 친절함과 호의는 모두 꾸며낸 것일지도 모른다.최지습의 판단에 김단 역시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마차에 기대앉아, 시선을 밤하늘로 돌렸다. “하지만 그분들은 저희에게 너무나 흔쾌히 약재를 내주었습니다. 제 의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약재에 함정을 놓지는 않았을 겁니다.”어차피 함정을 놓는다 해도, 그녀에게 들통날 것이 뻔하니 말이다.“오늘 일로 보아하니, 저 자들이 낭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오.”최지습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자신의 판단을 말했다. “아마도 낭자를 목씨 가문으로 데려가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소.”그 말을 들은 김단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쨌든 목씨 가문에 간다고 해도, 임학과 함께 가지는 않을 겁니다!”그녀의 말투에는 보기 드물게 고집이 느껴졌다.최지습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전쟁이 끝나고도 낭자가 정말로 목씨 가문에 가고 싶어 한다면, 내가 함께 가 주겠소.”그 말을 들은 김단은 순간 기쁨이 가득 찬 표정으로 밤하늘을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최지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그렇소.”최지습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은 목설원의 말을 떠올리고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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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김단은 최지습에게 자신은 그에게 조금의 사심도 없다는 것을 표현했고, 최지습이 자신을 오해하여 피하지 않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다. 마차 밖을 바라보던 최지습이 그녀의 말을 들은 뒤, 순간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말이다.이내 그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소.”언제나 그렇듯, 그는 그저 좋은 오라버니일 뿐이었다.그렇게 흉측한 외모, 많은 나이를 가진 그가, 어찌 감히 그녀 곁에 설 수 있겠는가?좋은 오라버니라도 되어주지 못한다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밤은 더욱 깊어졌다.달빛이 길 위를 밝혔고, 오직 마차 한 대만이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으며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마치 두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듯했다.다음 날 저녁, 김단과 최지습은 드디어 부대으로 돌아왔다.마차가 천천히 멈추자, 김단은 차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때, 그녀의 시야에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났다.최지습이 마차 옆에 서 있었다. 어떠한 감정의 표정도 없었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이리 오시오, 조심하고.”목씨 가문의 마차는 컸고, 보통 마차보다 높았다. 그는 김단이 넘어질까 걱정했던 것이다.어젯밤 이후, 두 사람은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었지만 김단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전처럼 가깝지 않고 무언가 벽이 생긴 것 같다고 느꼈다.물론, 이전에도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최지습이 먼저 나서서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것을 본 그녀는 이를 거절할 수 없어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하지만 발을 헛디뎠고, 휘청거리며 그대로 최지습의 품에 안겨 버렸다.“쿵.”귓가에 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가슴에서 울려오는 심장 박동 소리였다.하지만 그것이 최지습의 것인지, 김단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씨!”김단은 그제야 급히 최지습의 품에서 벗어나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숙희였다!그녀는 다급히 달려왔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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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그런 어색한 순간들이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그래서…그래서 그녀가 지금 최지습을 보며 두근거리고 있는 것일까?맞다, 분명 그럴 것이다.그러니 이 순간만 지나면, 분명 괜찮아질 것이다!그녀는 최지습에게 줄곧 존경심만을 품고 있었다.그는 조선의 전신이었고, 드높은 대군이었다.그가 그녀를 의붓 여동생으로 삼아 준 것 역시, 정암의 체면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다.그런데 그녀가 어찌 감히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이에 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고, 이 묘한 감정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기로 결심했다.그녀가 변방에 온 것은, 첫째로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로 약왕곡에서 한빙산의 독을 구해 해독제를 얻어 소 오라버니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그 외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부대에는 충분한 양의 자줏빛 서리풀이 있었다.장병들은 며칠에 걸쳐 약을 마셨고, 경증 환자들은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중증 환자들도 침상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이에 장병들은 모닥불 잔치를 열어 이를 축하하기로 했다.밤이 찾아오고, 부대에는 십여 개의 모닥불이 타올랐다.최지습은 호랑이군들과 함께 둘러앉아 고기와 술을 즐기며 그들이 부르는 형편없는 노래를 들었지만, 표정은 줄곧 굳어 있었다.“형님,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호랑이군들 중에서는 둘째 도령이 가장 세심했다.그는 술 한 병을 건네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최지습은 그를 한번 보고는 술병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말했다. “별 일 아니다.”“그럼 있는 거군요.”둘째 도령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최지습은 말없이 그를 쏘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위를 둘러보니, 모닥불 앞 병사들은 모두 즐거워하고 있었다. 최지습은 바로 이것이 자신이 바라던 것이라고 생각했다.병사들이 즐거워한다는 것은 승리의 증거였고, 모든 것이 잘 풀렸다는 것을 뜻했다.그것으로 충분했다.그 밖의 다른 일들은 걱정거리라고도 할 수 없었다.“어이쿠, 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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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그 소리를 듣자, 최지습의 몸이 굳어졌다.그의 옆에 앉아 있던 둘째 도령은 이를 알아차리고 그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흥겹게 술을 마시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둘째 도령의 웃음소리를 듣고 그제야 그와 최지습을 바라보았고, 이어서 옆에 있던 김단을 발견했다.다섯째 도령이 김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단이 낭자, 숙희 낭자, 이쪽으로 앉으시오!”다섯째 도령이 가리킨 자리는 최지습 옆의 빈자리였다.그들이 늦게 왔기에 다른 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김단은 최지습의 뒷모습을 흘깃 본 뒤 숙희를 데리고 그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셋째 도령은 김단의 손에 술병을 하나 쥐여준 뒤, 최지습과 둘째 도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무슨 이야기하셨습니까? 둘째 형님은 왜 이리 신이 나신 거고, 형님은 왜 또 남에게 돈이라도 빌린 것처럼 구시는 겁니까!”셋째 도령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최지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최지습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심지어 김단조차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최지습은 옆에 있는 그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일부러 그녀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그는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자객의 일을 생각 중이었다.”그 말을 듣자, 둘째 도령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정말 골치 아픈 일입니다. 그 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단이 낭자의 안전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형제들과 상의를 해 보았는데, 매일 번갈아 단이 낭자 막사 앞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드러난 창은 피하기 쉬워도 숨겨진 화살은 막기 어렵죠. 게다가 우리는 언제든 출병하여 싸워야 하니,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둘째 형님은 도대체 왜 웃고 계시는 겁니까?”모두가 김단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는 와중, 유독 둘째 도령만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도대체 둘째 도령이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그는 최지습이 점잔을 빼는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하지만 지금 단이 낭자 앞에서 최지습의 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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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그 말을 들은 최지습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녀가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명성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의 위엄을 해칠까 염려해서였다.그녀의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울렸고, 최지습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김단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도령님들께서 번갈아 가며 저를 지키시는 것도 반대입니다. 지금 자객의 움직임이 전혀 없으니, 그 자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김단이 자신을 미끼로 삼아 어둠 속으로 숨어 든 자객을 낚으려는 것임을 깨달았다!이는 확실히 좋은 계획이었다.하지만 너무나 위험했기에, 호랑이군 모두가 이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그런데 뜻밖에도, 김단이 먼저 나서서 이를 제안한 것이다.한동안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둘째 도령조차 웃음을 거두었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 어린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그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다.그 역시 그녀의 특별함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그녀는 그에게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했다.마침내 최지습이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그 말과 동시에 그는 술병을 들어 김단을 향해 눈짓했다.김단은 그 뜻을 알아채고 자신의 손에 든 술잔을 들어 최지습의 잔에 가볍게 부딪치며 웃었다. “오라버니들, 오늘은 취하도록 마셔도 됩니다.”김단의 한마디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순간 커진 소리에 다른 병사들의 주의가 쏠렸다.모두들 이쪽을 바라보았고, 김단이 남자들처럼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김단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오직 멀리 있던 임학만이 표정을 굳혔다.김단이 연달아 세 번째 병을 마시는 것을 본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와서 김단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조금만 마시거라.”김단은 깜짝 놀랐다. 임학이 자신의 술병을 빼앗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이에 김단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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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삽시에 분위기는 어색하게 변해버렸다. 김단 곁에 앉아 있던 도령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임학의 어깨를 감싸며 웃어 보였다.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즐겨야 하지 않겠소? 단이가 한 잔 더 마신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임학,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맙시다. 취하면 뭐 어떻다고 그러시오? 어차피 숙희 그 아이가 곁에서 잘 돌봐줄 텐데.”그는 웃으며 슬쩍 임학을 끌어당겨 원래 자리에 앉히고 잔을 쥐여주었다.“나를 못 믿겠다면 대군자가를 믿으면 되지 않소? 걱정 말고 나랑 한잔 합시다!”임학은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어 두어 모금 들이켰다. 그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눈이 멀어 사람을 잘못 믿은 죄, 앞뒤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은 죄 그리고 소중한 이의 가슴을 도려낸 죄까지. 그의 죄는 김단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새겨놓았다. 하지만 임학은 세 해 동안 단 한 번도 김단을 찾지 않았다. 분명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녀를 보러 가지 않았다. 만약 그때 한 번이라도, 남몰래 조용히 김단을 보러 갔다면 그녀는 지금처럼 자신을 밀어냈을까?임학은 떨리는 손으로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독한 술이 그의 죄책감을 없애주길 바랐다. 도령은 옆에서 임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김단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괴로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김단은 완전히 취해 있었다. 자신의 몸을 숙희에게 맡긴 채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난 더 마실 것이다. 술을 가져오거라.”“안 돼요, 아가씨. 이제 그만 마셔야 합니다”숙희는 힘겹게 그녀를 부축하며 설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지습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숙희를 내려보며 물었다.“도움이 필요하느냐?”숙희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제가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그렇게 말하고는 휘청이는 김단을 부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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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네.”숙희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께서 자꾸만 술을 찾으시네요. 안 그래도 막 물을 길어다 얼굴이라도 닦아드리려던 참이었는데... 군의관님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 계신 겁니까?”육 영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별일은 아니오. 방금 김 의녀께서 술에 취한 모습을 봐서 해장차라도 드리려고 잠시 들렀소. 이거 받으시오. 조금 식으면 김 의녀께 드리시오.”“네. 감사합니다, 군의관님.”“별말씀을.”육 영감이 손을 내저으며 천막을 떠나자 숙희 또한 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막 안, 김단은 여전히 흐느적거리며 술을 찾고 있었다.“술… 술을 내오거라...”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거운 발걸음 하나가 조심스레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 걸음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침상 곁이었다.“의녀님?”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으나 김단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낮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의녀님, 해장차를 가져왔으니 한 모금만 드시지요.”그러나 김단은 입술만 살짝 움직일 뿐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레 찻잔을 내려두고는 김단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의녀님…?”그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고 술 냄새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그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잠시 시선을 거두었다. 오늘 낮, 그는 김단과 임학이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김단이 잔을 들이켜며 마음을 달래려 했던 것도 눈에 또렷이 새겨 넣었다. 아무런 미동이 없는 김단을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는 천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김단의 머리 위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는 못생기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그 비녀가 짧은 비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날 밤, 우습게도 김단은 그 비수로 자신을 찌르려 했다. 그는 은밀하게 그녀의 머리칼 사이에서 비녀를 뽑아냈다. 금속이 머리를 스치며 내는 미세한 마찰음이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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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눈앞의 이 자는 평소 육 영감의 곁을 자주 따라다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약재를 캐러 산에 올라갔던 날에는 그가 따라나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은 김단을 노릴 시간을 벌기 위한 핑계였던 것이다.그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는 즉시 입안에 숨겨둔 독약을 깨물려 했다. 그러나 그가 힘을 주기도 전에 최지습이 먼저 손을 뻗어 그의 턱을 단숨에 꺾어버렸다.“아악!”터져 나오는 비명과 함께 그의 입가에서는 피와 침이 뒤섞인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때 최지습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자를 끌고 가라. 그리고 육 군의도 함께 구금해서 심문하도록 하거라.”“예!”세 번째 도령과 다섯 번째 도령이 곧장 그 자를 끌고 나갔다. 그러자 최지습은 다시 김단을 돌아보며 물었다.“다친 곳은 없소?”김단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군.”잠시 침묵하던 최지습은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직 공범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소. 며칠 동안은 경계가 이어질 것이오. 두 번째 도령을 비롯한 남은 도령들이 지킬 테니 오늘은 푹 쉬시오.”그 말만 남긴 채 그는 등을 돌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최지습은 김단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단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김단을 피하고 있었다. 그 거리감은 어쩐지 김단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그때 마침, 숙희가 물동이를 들고 돌아왔다.“아가씨! 물 떠왔... 어머, 깨어나셨습니까?”물이 있는 곳이 멀어 시간이 좀 걸렸던 숙희는 김단이 깨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단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혹시 네 아가씨가 애초에 취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느냐?”숙희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조금 전 호랑이군이 누군가를 끌고 가는 모습을 떠올렸다.“아가씨, 설마… 또 누가 해치려 들었습니까?”김단은 의아한 표정으로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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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그 시각, 다른 이들은 아직 모닥불 곁에 머물러 있었고 커다란 막사 안에는 임학 혼자 앉아 있었다. 최지습이 조용히 막사 문을 들추고 들어섰을 때 임학은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대군자가.”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그렇다고 해서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임학은 그저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 최지습은 그 잔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술인 것이냐 아니면 물인 것이냐?”임학은 잔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물입니다.”그제야 최지습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김단은 무사하다. 오늘 일은 첩자를 잡기 위한 연기였을 뿐이야.”“압니다.”임학은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언제 눈치챘냐고 묻는다면 아마 김단이 취한 듯 비틀거리며 숙희에게 기대어 처소로 돌아갈 때일 것이다. 그때 최지습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모닥불 옆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평소의 그라면 절대 김단을 그렇게 취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 취했다고 하더라도 김단을 직접 데려가지 않고 숙희에게 맡길 리 없었다. 김단은 이제 수많은 도령님들이 생겼다. 최지습과 호랑이군, 그리고 그녀 곁에는 소하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친 오라버니인 자신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그 사실이 이름 모를 고통이 되어 임학의 가슴속을 후벼팠다. 하지만 이건 모두 자신이 자초한 일이기에 쓰디쓴 마음을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했다. 입을 털어놓는 순간 자신만 더 초라해질 뿐이었다. 최지습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김단은 마음이 독한 아이가 아니다. 너의 진심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그러나 임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지습도 더는 묻지 않고 말없이 천막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사라지자 임학은 조용히 고개를 감싸안았다. 김단이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마음을 굳게 닫았다면 진즉에 등을 돌리고 그를 모질게 쳐냈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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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김단은 순간 멈칫했다. 최지습이 그렇게 단호하게 결단을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아닙니까? 혹시 공범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더 캐묻는 게 나았을 텐데요.”최지습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살려두는 건 무의미하오. 어젯밤, 일곱 번째와 아홉 번째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심문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 않았소. 아마도 어릴 적부터 훈련받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일 것이오. 그 자에게 있어 그런 고문은 일상의 연장이었을 뿐이고.”그래서 최지습은 그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그 말에 김단은 알 수 없는 오한이 등을 타고 지나가는 듯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그런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던 것일까? 상상조차 하기 두려운 일에 그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최지습은 김단의 변화를 감지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부드럽게 말했다.“세상은 넓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앞에 닥친 것을 잘 처리하는 것이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 사람의 시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최지습은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연병장 한편,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아있는 깃대를 향해 있었다. 김단도 그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깃대 꼭대기, 한 구의 시신이 높게 매달려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그 시신은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때, 마치 의도하기라도 한 듯 그 시신의 얼굴이 김단 쪽으로 향했다. 온몸의 피는 이미 말라붙었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눈동자는 그녀와 최지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아!”곁에 있던 숙희는 비명을 지르며 두 걸음 물러섰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몸을 떨었다. 김단 역시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곧 눈을 가늘게 떴다. 최지습과 호랑이군이 그 자의 손에 전멸당할 뻔한 것을 생각하면 그런 최후도 마땅하다고 느꼈다. 그를 저리 매달아두는 것이 잔혹하다고 느꼈지만 김단은 애써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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