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931 - Chapter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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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1화

“안 살 거면 가시오.”노인의 말투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단호했다. 김단은 즉시 이 노인이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사지를 마비시킨다는 독약, 그건 어디에 있습니까?”노인은 김단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물었다.“낭자, 독을 사려는 거요? 아니면 약을 사려는 거요?”김단도 그에게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었다.“제가 독을 사든 약을 사든 무슨 상관입니까? 두 개 다 사면 안 되나요?”노인은 김단의 당돌한 태도에 놀란 듯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사지를 마비시키는 독을 찾고 있는 게지? 그게 바로 이 융골산이오. 한 모금만 마시면 평생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할 거요. 밤마다 뼈를 갉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테니 아주 독한 놈이지. 누구에게 쓰려는 것이오? 낭자의 남편?”김단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한빙산은요? 있습니까?”그녀의 질문에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김단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낭자의 정체가 무엇이오?”김단은 싸늘하게 대답했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쪽은 약왕곡에서 온 사람인가요?”김단이 그 이름을 언급하자 노인은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다. 그에 김단은 소리 높여 외쳤다. “도령님, 저 사람을 잡으세요!”김단의 뒤에 서 있던 임학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인파 속에서 튀어나와 도망치려던 노인을 단숨에 붙잡았다. 그에 노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울먹였다.“내게 왜 이러는 것이오? 그리고 낭자는 약왕곡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오?”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제가 물어야 할 말이죠.”노인은 김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약왕곡에서 온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낮게 중얼거렸다.“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소.”김단은 곁에 있던 도령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 눈치를 채고 노인을 근처 찻집으로 데려가자 그 노인은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내 약! 내 약 가져가면 안 되오.”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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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노인은 김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슬며시 물어보았다.“내가 보건대 낭자가 원하는 건 한빙산이 아니라 그 해독제인 것 같소.”그 말에 김단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앞의 노인이 이렇게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물음에 얼굴이 굳어졌다. 노인은 김단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 슬그머니 웃으며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상하군. 한빙산의 독은 체내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한숨 자고 나면 독성이 사라질 텐데 굳이 해독제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오?”그렇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노인은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흠... 혹 융골산과 상호 작용을 일으켜 체내에 오래 남게 된 것이오?”마치 모든 퍼즐이 맞춰진 듯한 그의 표정에 김단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를 꾹 참으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럼 한빙산의 해독제는 있습니까?”“없네.”노인은 고개를 저었다.“그 독은 애초에 약효가 오래가는 것도 아니었소. 예전에 약왕곡의 주인이 독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만들어 낸 것일 뿐, 체내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으니 굳이 해독제를 만들 필요가 없었소.”그렇게 말하며 노인은 김단을 한 번 바라보았다.“굳이 한빙산을 사려고 애쓸 필요도 없네. 약왕곡의 주인도 한빙산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군. 나중에 누가 독을 사겠다고 하니 그냥 있는 대로 다 팔아 버렸다고 들었소.”노인이 김단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자 김단의 가슴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원래는 약왕곡에 가서 독을 사는 척하며 해독제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한빙산의 해독제가 없다는 것은 맹영지 쪽에서도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하의 독은 어떻게 처리해야 한단 말인가? 불안감이 엄습해오자 김단은 무력하게 뒷걸음질 치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소하의 몸이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고 그의 생명이 한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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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러나!”노인은 이를 악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약왕곡의 간악한 자들이 계략을 써서 내게 독을 먹였기에 아무것도 못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약왕곡 전체를 뒤엎었을 것이오.”분노로 가득 찬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단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약왕곡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한빙산에 대한 그의 말도 거짓은 아닐 터. 다섯 번째 도령이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래서, 그 한빙산이라는 독, 정말 해독제가 없는 겁니까?”“아, 내가 말했잖소. 그 독은 몸 안에서 금방 사라진다고. 굳이 해독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시오. 암튼, 믿든 말든 알아서들 하시오.”노인은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도령은 여전히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그럼 그 한빙산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십니까?”노인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걸 왜 묻는 것이오?”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사실 제 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독이든, 만들어진 방법만 안다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거든요.”다섯 번째 도령은 김단의 의술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담을 느낀 김단은 곧장 부정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노인은 김단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정말이오?”“당연하죠!”다섯 번째 도령이 즉시 대답했다.“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노인은 도령을 한 번 훑어보더니 그의 군화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자네는 병사인가? 최근에 평양원군의 병영에서 독이 퍼져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것이오?”“그건 제 누이가 다 해결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도령은 으쓱하며 대답했으나 곧 의문이 생겼다.“하지만 병영에서 독이 퍼졌다는 건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노인은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 어렵다고 그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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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김단은 노인의 마지막 말에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는 무심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로 약병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허름하고 초라한 모습이 평범한 노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혹시 그녀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까? 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지만 결국 발걸음을 옮겨 찻집을 떠났다. 뒤따라오던 도령은 은화를 만지작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한빙산의 해독제를 찾는 것이오? 누가 중독되었소?”김단은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가요.”그 말에 도령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김단 앞에 다가섰다.“소하가 말이오? 무슨 일이오??”김단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담담히 진실을 털어놓았다.“소하 오라버니께서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던 건 융골산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라버니의 체온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승님께 여쭤봤더니 한빙산에 중독되어 그런 거라고 하시더군요. 만약 해독제를 찾지 못한다면 오라버니께서는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그렇게 심각한 것이오?”도령은 숨을 삼키며 물었다. “하지만 아까 그 노인이 한빙산에는 해독제가 없다고 했잖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오?”김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럼 직접 약왕곡으로 가서 주인에게 물어보는 건 어떻소? 어차피 그 독은 약왕곡의 주인이 만든 것이니 해독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오.’김단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그곳은 평범한 곳이 아닙니다. 아까 그 노인이 말했잖습니까? 무공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유를 얻었다고 말입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그곳은 마치 한 번 들어가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 같았다. 한 번 발을 들이면 평생 갇혀 독을 시험하고 약을 만드는데 이용될 수도 있었다. 김단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자유와 소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소하의 목숨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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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깊고 어두운 절망의 나락 속에서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타올랐다. 김단은 길게 숨을 들이쉬며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며칠 뒤 돌아가면 도령님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어.’그렇게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던 그때 도령의 목소리가 갑자기 낯설게 변했다.“어…?”의아한 소리가 들려오자 김단은 고개를 돌려 도령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얼굴에 깊은 긴장을 드리우고 있었다.“도령님, 왜 그러십니까?”김단은 그에게 다가서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 얼룩이 스며들어 있었다.“이게 언제 이렇게 된 거지?”다섯 번째 도령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왼손 엄지로 얼룩을 문질렀다. 하지만 닦아낼수록 얼룩은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넓게 퍼져갔다. 순간 김단의 눈에 불안의 빛이 스쳤다. 그녀는 다급히 도령의 손을 잡아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익숙지 않은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까 그 은화는 어디 있습니까?”김단의 질문에 도령은 왼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여기 왼손에.”김단은 왼손도 덥석 잡아 펴 보았다. 작고 검은 점이 손바닥 안쪽에서 천천히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도령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스쳤다.“이, 이게 대체 무슨...?”그는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김단은 미간을 세게 찌푸리더니 옷자락으로 은화를 털어내 땅에 떨어뜨렸다.‘딸랑.’은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손대지 마세요! 그 은화에는 독이 묻어 있습니다!”김단의 다급한 외침에 한 여인은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정말입니까?”그 순간, 갑자기 도령이 가슴을 움켜쥐더니 신음을 내뱉었다.“윽…”그러고는 몸을 웅크리고는 검은 피 한줄기를 토해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김단은 그를 부여잡고 떨리는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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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김단은 지금 목설하의 질문에 답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급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맥을 짚으며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오라버니,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도령님을 구하는 게 급선무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손끝으로 다섯 번째 도령의 맥박을 읽어갔다. 미세한 맥의 강약, 속도, 깊이와 얕음을 느끼며 김단은 방법을 강구하려 애썼다.“오라버니, 유황을 구해주실 수 있나요?”상황이 꽤 긴박하다는 것을 느낀 목설하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바로 준비해 오겠소.”그가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자 임학이 숨 가쁘게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도령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놀랐지만 김단은 임학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침착하게 은침을 꺼내 도령에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임학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질문들을 꾹 눌러 삼켰다. 지금은 묻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조용히 옆에 서서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거라.”김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목설하는 빠르게 유황을 구해왔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김단은 유황을 독한 술과 함께 욕조에 부어라고 지시했다. 그 말을 들은 임학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고 목설원 역시 하인들과 함께 술 항아리를 힘겹게 날라와 욕조에 붓고 또 부었다. 욕조가 술로 가득 차자 임학은 김단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준비는 끝났어.”김단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도령을 들어 욕조로 옮겼다. 그녀는 도령의 머리까지 술에 잠기게 하고 코만 밖으로 드러냈다. 손으로 그의 머리를 지탱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손은 점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애써 버티는 김단을 보고 있던 임학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내가 할 것이니 너는 가서 쉬거라.”임학은 손을 뻗어 김단 대신 도령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주었다.“한 시간 정도는 이렇게 있어야 합니다.”“알겠다.”임학은 짧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김단은 욕조 속에 있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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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김단이 알고 있는 해독법은 전부 스승님께서 준 의서에서 배운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스승을 믿었기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방법을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도 알 지 못했기에 그 노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자 목설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당당하게 말했다.“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목 가는 일 처리 하나는 끝내주거든.”그 한마디만 남긴 채 그는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 김단의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는 것을 본 목설원은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시오. 설원이 사람을 찾는 데는 도가 텄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오라버니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누이의 일이 곧 내 일이지. 그러니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그 말을 들은 순간, 김단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시선을 옆에 있는 병풍으로 돌렸다. 그녀도 임학이 병풍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학은 그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질투와 서글픔을 억누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임학은 손을 바꾸어가며 도령의 머리를 바치던 순간 다급하게 외쳤다.“단아, 이리 와 보거라!”그 소리에 김단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병풍 뒤로 향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욕조 안의 물 위로 검은 점들이 점점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검은 점들은 물 아래 깊숙이서부터 실처럼 피어올라 은침이 꽂힌 자리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목설하도 김단의 뒤를 따라와 그 장면을 보고는 놀라움에 숨을 삼켰다.“이게 무슨 일이오?”김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마도 도령님의 몸속에 있던 독이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그녀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반 시진밖에 지나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도령이 깨어날지도 모른다. 김단이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 때 목설하는 임학의 이마에 맺힌 굵은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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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갑자기 임학의 외침 소리가 들린 것은 반 시진이 더 흐른 뒤였다. “깨어났어!” 그 말을 들은 김단은 곧장 병풍 뒤로 달려갔고 그곳에서는 도령의 상반신을 부축하고 있는 임학의 모습이 보았다. 그는 옷소매를 뻗어 도령의 눈가에 흘러내린 독주를 조심스레 닦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도령이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김단을 스쳐 지나 다시 임학에게로 향했다. 도령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얼굴로 물었다.“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도령님께서는 독에 중독되셨습니다. 혹시 그 노인... 기억하시나요?”김단이 도령에게로 다가서며 부드럽게 묻자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그 노인네가!”하지만 이제 막 독이 풀린 상태라 그의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전신에는 기운이 없었다. 목설하는 하인들을 불러 도령을 욕조에서 부축하라고 지시했고 김단은 그의 몸에 꽂혀 있던 은침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나서야 목설하와 임학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리고 하인들은 그곳에 남아 도령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혔다.“아래층에서 잠시 쉬는 게 어떻소? 설원이 곧 돌아올 것이오.”목설하의 제안에 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목설원은 두 사람에게 조용히 물을 따라주었다. 김단은 그가 건넨 물잔을 받아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옆으로 돌리다 몰래 팔을 주무르는 임학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한 시진 가량 두 팔을 번갈아 사용했어도 근육이 많이 뭉쳤을 것이다. 김단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목설하가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도령의 독은 이제 다 풀린 것이오?”김단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대부분 해독되었다고 봐야지요. 다행히 중독된 시간이 길지 않았고 이틀 정도 더 쉬면서 약 두 첩을 복용하면 완전히 회복될 겁니다.”목설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이 스며든 눈빛으로 김단을 쳐다보았다.“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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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하지만 이틀 전에 죽은 사람이 어떻게 오늘 장터에 나타나 약을 팔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또 어떻게 도령님에게 독을 먹일 수 있었던 거죠?”그 순간, ‘쨍그랑’ 하고 잔이 탁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한 임학이 앉아있었다.“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틀 전에 죽은 사람이 장터에 나타나다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설마 귀신이라도 본 겁니까?”임학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애써 이 사실을 부정하려 했다. 임학의 얼굴에는 귀신을 본 것 같은 공포가 서려 있었고 목 형제의 마음속에도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정녕 오늘, 그들이 마주한 것은 귀신이었을까? 너무나 기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귀신일 리는 없어요.” 그 와중에도 김단은 놀랍도록 침착했다. 처음에 목설원의 입에서 노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기 어려웠지만 그 시신이 이틀 전 이미 숨을 거둔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곧 깨달았다, 오늘 자신이 본 노인과 발견된 시신은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조사해 봤는데 이 길상진에서 약을 파는 노인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소. 오늘 장터에서 그 노인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낭자가 서술한 것과 거의 일치했소. 그러니 같은 사람일 것이오.”“아니에요.”김단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확고했다.“귀신이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면 굳이 독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그 말에 목 형제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말대로 만약 귀신이라면 왜 굳이 독을 써서 사람을 해치려고 했겠는가? 그때 무언가 떠오른 목설하가 입을 열었다.“설원아, 할아버지 서재에 무림 인물들의 기이한 기술을 적어둔 책이 있었던 거 기억하느냐?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른들이 그걸 괴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잖니.”목설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납니다. 화골면장이며 축골술까지... 전부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요.”그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목설하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형님,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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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김단의 눈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은 한 시진 전 장터에서 만난 노인과는 나이도 외모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단은 직감적으로 이 자가 바로 도령에게 독을 먹인 그 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단은 눈썹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도령님을 놓아주세요. 그러면 말씀드리겠습니다.”그 자는 뜻밖에도 순순히 웃으며 도령을 풀어주었다. 김단은 서둘러 도령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살펴보았고 별다른 상처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가슴 깊숙이 묻혀 있던 긴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말해보시오. 누가 낭자에게 그 해독법을 가르쳐 주었소?”김단은 천천히 그를 바라보더니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장소를 옮겨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적합하지가 않아요.”그 사내는 방 안을 둘러보더니 김단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김단의 어깨를 움켜잡고는 그녀를 들어 올려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뒤에서 임학의 다급한 외침소리가 김단의 귀에 들어왔다.“김단!”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두 개 도로 떨어진 곳에 내려와 있었다. 사내의 뛰어난 경공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단은 그저 다른 방에서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납치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 그들은 한 고요한 누각의 지붕 위에 서 있었다.“여긴 아무도 없으니 말해 보시오.”지붕 위로 몰아치는 바람은 사납고 차가웠다. 김단은 떨리는 몸을 감싸안으며 하인 차림의 사내를 노려보았다.“진짜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왜 제가 그쪽에게 사실대로 털어놔야 하는 거죠?”“참 귀찮은 아가씨군.”그는 투덜거리며 목덜미를 잡아당기더니 얼굴 위에서 무언가를 벗겨냈다. 김단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부드러운 가면을 보고 몸서리쳤다. 소문으로만 듣던 사람의 얼굴을 벗겨 만든 가면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머리는 하얗게 물들어 있었으며 입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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