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071 - Chapter 1080

1188 Chapters

제1071화

하석호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윤하경을 옆눈으로 힐끗 바라보았다.“무슨 일 있어? 강현우랑 또 다퉜어?”윤하경은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아니야.”그저 다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방금 전 병원에서 강현우가 자신을 바라보던 그 시선만 떠올려도 심장이 쿡 하고 아파졌다.윤하경은 태어나서 이렇게 억울한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과거 구지호에게 배신당했을 때도 아버지 윤수철이 자신보다 윤하연만 챙겼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강현우가 보였던 그 의심 가득한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가슴 깊숙이 찔렀다. 하석호는 출장차 막 경성에 도착한 참이었다. 윤하경의 전화를 받고 곧장 달려왔던 터였다.“이제 어디로 갈 거야?” 하석호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우리 집 갈래?”윤하경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강현우가 절대 못 찾을 만한 곳이면 좋겠어. 지금은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싫어.”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길게 한숨을 내쉰 윤하경은 눈을 감았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머릿속은 그녀의 의지와 다르게 계속 강현우가 자신을 바라보던 순간을 되짚고 있었다.하석호는 알겠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차를 몰아 조용한 외곽의 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얼마 전에 산 집인데 아직 아무도 몰라. 당분간 여기서 쉬어. 경찰서 일은 우리 회사 변호사가 처리할 거야.”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안전벨트를 풀고 내리려던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석호를 돌아보며 당부했다.“혹시 강현우가 물어보면 나 여기 있는 거 절대 말하지 마.”만약 지금 아니고 아직 수사 중인 사건 때문에 경성에서 떠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윤하경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하석호는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알았어.”“말리지도 않아?” 윤하경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그러자 하석호는 웃으며 말했다.“말려서 뭐 하겠어. 너 마음 상하게 한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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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2화

“신인아는 언제 죽은 거야?”“오늘 아침.”하석호가 대답했다. “미안해. 네 허락 없이 너랑 강현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알아봤어.”“괜찮아. 사과할 필요 없어.윤하경은 애초에 하석호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 아니었으면 그에게 변호사를 부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애초에 사건만 알면 조금만 들춰봐도 금방 전말이 나오는 일이었다.어차피 숨긴다 한들 소용도 없었다.잠시 말을 멈춘 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하석호를 바라보며 말했다.“근데 이건... 외할아버지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줬으면 해. 아직 내가 무혐의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걱정하실까 봐.”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방금도 외할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너 본 적 있냐고 괜찮냐고 물으시더라.”그 말을 듣자 윤하경의 가슴이 한층 먹먹해졌다. 하병철은 정말 윤하경에게 잘해줬다. 그런데 지금 이 처지는 너무 우습기까지 했다.하석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말했다.“근데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 지금 신인아가 죽었잖아. 만약 네 혐의를 제대로 벗지 못하면 너도...”“내가 한 일 아니야. 그러니까 두려울 것도 없어.”윤하경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윤하경은 신인아를 죽이지 않았고 그게 진실이라면 겁낼 이유도 없었다.윤하경은 단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신인아는 정말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자기 목숨까지 걸고 둘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는 건가? 나를 정말 그렇게까지 미워했던 걸까.’윤하경은 시선을 내리고 말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하석호가 말했다.“아마 경찰이 곧 다시 와서 상황을 물어볼 거야.”“응, 괜찮아.”윤하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 하석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인이 들어와 경찰이 도착했다고 알렸다.윤하경은 그날 경찰서에서 했던 말 그대로만 반복했고 그 외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경찰이 돌아간 뒤, 하석호가 윤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무 걱정하진 마. 강현우 쪽에서도 네가 여론에 휘말리지 않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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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3화

하석호는 떠나기 전,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그 시각, 강현우는 병원 영안실 앞에 서 있었다. 신인아의 차가운 시신을 바라보며 눈썹을 깊이 찌푸리고 있었고 단단히 다문 입술에서는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느껴졌다.그때 민진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고 그의 손에는 얇은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강현우는 고개를 돌려 민진혁을 바라보았다.“줘.”민진혁은 재빨리 서류를 건넸고 속으로 안도했다. 며칠 동안 윤하경의 소식이 전혀 없어 강현우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었고 신인아 사건까지 겹쳐 그를 마주하기도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윤하경이 직접 무언가를 보내온 이상 관계를 회복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서류를 펼친 강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첫 페이지에 커다랗게 쓰인 글자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입술이 일자로 굳고 이가 ‘딱’ 소리를 낼 만큼 악물렸다.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찢어버렸고 흩어진 종잇조각이 바닥 위로 흩날렸다. 민진혁은 그 광경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고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들 사이에서 ‘이혼’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사모님이... 이혼하시겠다는 겁니까?”놀람을 감추지 못한 민진혁은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는 윤하경의 결단이 어쩐지 대단해 보였다.강현우는 이를 꽉 문 채 낮게 말했다.“윤하경이 지금 어딨는지 당장 알아내.”“네!”민진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람을 시켜 수소문에 나섰다. 그리고 강현우를 힐끔 돌아보았다. 이 남자가 여자한테 먼저 차인 건 아마 처음이었다....한편 윤하경은 미리 하석호에게 연락해 자신의 행방은 절대 강현우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해두었다. 강현우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하씨 집안이 아무리 강씨 집안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더라도 이 정도 일쯤은 하석호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며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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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4화

민진혁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로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맥이 탁 풀리며 속으로 울상이 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그 앞에 급하게 멈춰 섰고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리고 차가 멈추자 곧바로 강현우가 내렸다.“윤하경은 어디 있어?”강현우가 차 문을 닫으며 물었다.민진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그게... 사모님 비행기가 방금 막 이륙했습니다.”그 말을 하자마자 주변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것 같았고 민진혁은 강현우의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이런 표정,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건 용천수랑 강현민이 함께 윤하경을 납치했던 그때였다.“전용기 준비해.”강현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하지만 대표님, 지금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진혁은 강현우에게 무릎을 걷어차였다.“닥쳐.”“네...”참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강현우의 한마디에 민진혁은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전화를 걸기 위해 돌아섰다.30분 후, 강현우 역시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윤하경은 모성에 도착하자마자 여느 때처럼 여유 없이 곧장 하씨 저택으로 향했다.오랜만에 외할아버지를 뵙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예상치 못한 사람이 그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은 윤하경의 발걸음을 순간 망설이게 했다.정원의 정자 안. 하병철과 오건우가 마주 앉아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정적 속에서 어딘지 낯설었다.그러다 하이힐 소리가 돌길 위로 가볍게 울려 퍼지자 그제야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보았다.“하경아.”하병철이 손을 들어 윤하경을 반갑게 불렀다. 오건우가 있는 것을 본 순간, 윤하경은 잠깐 발걸음을 돌릴까 고민했지만 이미 하병철에게 들켜버린 뒤였다. 결국 윤하경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외할아버지.”그렇게 인사를 건넨 뒤, 뒤늦게 오건우를 향해 짧게 말을 건넸다.“오 대표님.”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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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5화

“그래요?”오건우는 옅게 웃으며 마디가 또렷한 손가락으로 바둑알을 집어 올려 바둑판 위에 놓자 또렷한 소리가 정적을 가르며 퍼졌다.“아직 끝난 게임도 아닌데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누가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오건우의 목소리는 느긋하고 부드러웠다.하병철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괜한 짓 하지 마.”“무슨 말씀이세요, 농담입니다.”오건우는 싱긋 웃으며 가지런한 흰 이를 드러냈다. 그 웃음은 바깥세상에서 말하는 차가운 재벌가 대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하병철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그러길 바란다.”하병철은 정직하고 엄격한 성품이었기에 얽히고설킨 복잡한 일들을 가장 싫어했다.오건우는 대꾸 없이 가볍게 웃은 뒤 고개를 숙여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매 아래로 잠깐이나마 예리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한편, 강현우는 모성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하씨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하석호가 보안팀에 미리 지시를 내려두었기에 여느 때처럼 들어가지는 못했다. 강현우는 대문 앞에 선 채 싸늘한 눈빛으로 경비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보안요원들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꿋꿋하게 말했다.“대표님, 윤하경 씨는 여기 안 계십니다.”누가 봐도 서툰 거짓말이었다.하지만 하석호의 명령인 만큼, 그들은 결코 강현우를 들이게 할 수 없었다.강현우는 눈썹을 좁히며 민진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민진혁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그럼 저희 대표님께서 하병철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전해만 주세요.”경비는 가볍게 기침하더니 옆 사람과 눈짓을 나누었다.“오늘은 회장님께서도 바쁘십니다. 다른 손님을 접견 중이셔서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거짓말은 아니었다. 오건우는 모성에 있을 때마다 하병철을 자주 찾아 바둑을 두고는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그 말을 듣고 난 뒤, 민진혁은 강현우 옆에서 그 기운이 한층 더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경비원들도 속으로 땀을 흘릴 지경이었다.강현우는 한참을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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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6화

하지만 강현우의 행동은 분명 윤하경에게 상처를 줬고 하석호는 그런 윤하경을 위해 당연히 한풀이를 해줄 생각이었다.비서는 하석호의 의중을 전했고 그 말을 들은 강현우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세게 움켜쥐자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좋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죠.”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고 그제야 민진혁이 강현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 하석호 완전히 우릴 골려주는 거잖아요. 막 도착했으면서 무슨 회의가 있다는 건지.”하지만 강현우는 커피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려.”민진혁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 쪽으로 나갔다.그리고 하석호 사무실 쪽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이건 진짜 너무하잖아...”하석호 사무실 안에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었고 그걸 보는 민진혁은 더욱 분통이 터졌다.강현우는 강한 그룹을 이끌어온 인물이었고 어딜 가든 이런 식으로 대접받은 적은 없었다.두 시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느릿느릿 흘러가고 나서야 하석호는 손목시계를 슬쩍 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회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향해 분노 가득한 눈빛을 던지는 민진혁과 마주쳤다.하석호는 피식 웃더니 비서에게 손짓해 문을 열게 했다.문이 열리자 하석호는 일부러 더 과장된 미소를 띠었다.“오늘 같은 날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하시다니요, 우리 회사가 이렇게까지 빛나는 건 또 처음이네요.”말투는 그야말로 빈정거림 가득했고 강현우는 소파에 앉은 채 눈썹만 들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석호는 손짓으로 비서를 내보내고 문이 닫히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느긋하게 웃으며 물었다.“그래서 오늘 무슨 일로 오셨죠, 대표님?”뻔히 알면서도 묻는 태도에 강현우의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윤하경을 만나야겠습니다.”그 말에 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뭐. 당신 부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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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7화

여기까지 말한 뒤, 하석호는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러자 곧 비서가 문을 열고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왔다.“강 대표님, 나가주시겠습니까?”하석호는 분명히 윤하경의 편을 들고 있었다. 강현우는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강현우는 말없이 일어나 하석호를 몇 초간 응시하다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나섰다.연이어 두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한 강현우는 차에 올라서도 냉기를 풀지 못한 얼굴로 에어컨을 켰다.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민진혁이 느끼기에는 도무지 시원하지 않았고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겁기만 했다.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민진혁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운전대를 잡고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침묵이 한동안 이어지고 강현우는 낮게 말했다.“하씨 저택으로 가자.”“또... 가신다고요?”민진혁은 놀라서 룸미러로 그를 바라봤다.예상대로 룸미러 너머로 마주친 건 차가운 살기가 서린 강현우의 눈빛이었다.그는 덜컥 겁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조심스럽게 시동을 켜고 차를 몰기 시작했고 잠시 후 하씨 저택에 도착했지만 강현우는 들어가지 않았다. 강현우는 민진혁에게 정문 맞은편 도로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민진혁은 그제야 강현우가 윤하경을 기다릴 생각이라는 걸 직감했다.하늘은 어느덧 어둑해지고 있었다.민진혁은 룸미러로 강현우를 슬쩍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다가 또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이윽고 하씨 저택 정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민진혁은 잽싸게 고개를 들었지만 누가 나오는지 확인하자마자 기대가 무너졌다.윤하경이 아니라 오건우였다. 강현우는 그 모습을 보자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손등이 그 분노를 말해주고 있었다.오건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집 앞에 세워진 그 벤틀리를 발견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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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8화

“죄송합니다, 강 대표님. 차를 제가 들이받은 거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오건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 했다.강현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윽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방금 오건우가 들이받은 차는 다행히도 심각한 손상은 없었다. 약간 찌그러졌을 뿐, 충분히 운전할 수 있는 상태였다.강현우는 차량 앞쪽으로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었다.“내려.”“하지만 차가...”민진혁이 망설이다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강현우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친 순간, 그는 잽싸게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다.“네, 알겠습니다...”자리를 비켜주자 강현우는 운전석에 앉아 그대로 시동을 걸었다. 그러고는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채 거침없이 차를 몰아 오건우가 걸어간 방향으로 달려갔다.한편, 오건우는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강현우의 차가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곧장 돌진해 오는 것을 목격했다.오건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쾅!차가 사람과 부딪히는 굉음이 터졌다. 오건우의 몸은 공중으로 튕겨 나가 땅 위를 굴렀고 순간적인 고통이 온몸을 덮쳤다. 어디가 아픈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전부 다 아팠다.강현우는 차를 멈추고 문을 열고 내렸다. 그대로 오건우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어둠 속, 검은 슈트를 입은 강현우와 흰색 슈트를 입은 오건우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 없이 팽팽한 기운이 흘렀고 마치 작은 마찰에도 폭발할 듯한 긴장감이 공기를 휘감았다.강현우는 무릎을 굽혀 내려다보았다.“오 대표.”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내 성격, 원래 좀 좋지 않거든. 누가 내 물건에 손대는 거, 질색이지. 차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야.”강현우의 말투는 침착했지만 눈빛은 싸늘하고 얼굴에는 분노와 냉정이 또렷하게 묻어 있었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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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9화

윤하경이 하석호와 통화를 끝내고 막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오건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가 모성에 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전화가 오니 순간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윤하경은 잠시 망설인 끝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곧바로 오건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고 사진 속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윤하경 씨, 당신이 책임지지 않겠다면 난 하 회장님께 대신 책임을 묻는 수밖에 없겠네요.”그 메시지를 본 윤하경은 어이가 없어 그냥 물음표 하나만 보내고 말았다.한편, 병실 안.오건우는 윤하경에게서 온 물음표를 보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게 말이죠, 강현우가 친 거라서요. 근데 그쪽은 연락이 안 되네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윤하경 씨를 찾을 수밖에요.]윤하경은 그 메시지를 보고 진심으로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휴대폰을 내려놓고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그러나 잠시 후, 오건우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여보세요?”윤하경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윤하경 씨, 그렇게까지 냉정하실 줄은 몰랐네요.”키 180은 족히 넘는 오건우가 불쌍한 척 징징대는 소리로 말하자 윤하경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오 대표님, 진짜로 현우 씨가 친 게 맞다면 그 사람한테 가세요.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오건우가 낮게 웃었다.“그럼 제가 지금 하 회장님 댁에 찾아가서 윤하경 씨랑 강현우 씨 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볼까요? 겸사겸사 하 회장님께 대신 판단을 부탁드려야겠네요. 어때요?”윤하경의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오건우의 말은 누가 봐도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그는 분명 윤하경이 외할아버지에게 강현우와의 일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쉬쉬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잠시 침묵이 흘렀고 윤하경은 거의 이를 악물다시피 말했다.“주소 보내요.”그 말에 오건우는 딱 원하는 대답을 들은 듯 흡족하게 웃었다.“좋아요.”전화는 아무 미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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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0화

‘왜 이렇게 집요하게 나만 물고 늘어지는 건지.’윤하경은 오건우가 단순히 강현우와의 경쟁심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녀의 말을 들은 오건우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가 머리 검사를 받고 아무 문제 없다고 나오면 그때는 하경 씨가 내 제안 받아주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죠?”‘헛소리 작작 해, 이 양반아.’윤하경은 속으로 욕이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그녀는 조용히 오건우의 병상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그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갔다.그 순간, 오건우는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를 느꼈다.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하고 묘하게 유혹적인 냄새였다. 도대체 어떤 향인지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향이었다.오건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윤하경이 또박또박,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오 대표님, 나는 당신이 현우 씨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려는 도구가 아니에요. 그동안은 농담이라 생각하고 넘겼지만 이제 또 그러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작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띤 윤하경의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였다.오건우는 천천히 턱을 들어 그녀와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혔다.“왜 그렇게 확신하시죠? 제가 정말로 하경 씨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비교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고요? 그건 하경 씨가 너무 자신 없어 하는 거 아닌가요?”그는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다친 입꼬리에는 아직 푸르스름한 멍이 남아 있었지만 그가 웃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윤하경은 더 이상 대꾸할 생각조차 없었다.“어떻든 저는 관심 없어요. 그러니까 오 대표님도 이제 그만하시죠. 그리고 만약 제 외할아버지 귀에 뭐라도 들어가면 그땐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오건우를 내려다보며 마지막 경고를 내뱉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녀의 그 날 선 말들이 오건우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그의 눈에 비친 윤하경은 털을 곤두세우며 날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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