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081 - Chapter 1090

1188 Chapters

제1081화

“네?”민진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그는 급히 발걸음을 돌려 강현우 쪽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이건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닙니까? 대표님과 사모님 사이의 갈등은 그저 오해였을 뿐이고 굳이 이혼까지 갈 일은 아니잖아요.”윤하경과 강현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민진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결말이 너무 안타까웠다.하지만 강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내 말대로 해.”차가운 눈빛이 민진혁을 스쳤고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민진혁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돌아서서 조용히 서재 문을 닫고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온 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윤하경이 변호사에게서 전화를 받은 건, 막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였다.벨 소리가 울리자 윤하경은 타월로 물기를 훑으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윤하경 씨.”강현우 측 변호사,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강 대표님께서 바로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지금 당장 오시죠.”윤하경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지금이요?”이혼을 준비하며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지만 상대가 이렇게 빠르게 수락하고 나서자 왠지 모르게 심장이 툭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결국 강현우가 이 도시에 따라온 이유는 진짜로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려던 걸까?’하지만 그 합의서에는 윤하경이 강현우의 재산을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이 이곳까지 다시 찾아올 필요가 있었을까.“그런데 전 이제 자려던 참이라서요. 내일 오전으로 미뤄주실 수 있을까요? 오전에는 시간 돼요.”하지만 상대 변호사는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죄송합니다. 강 대표님께서 꼭 지금 만나야 한다고 하셔서요. 시간이 없으시다고 하시네요.”윤하경은 무의식중에 미간을 찌푸렸다. 시계를 들어보니 밤 열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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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2화

민진혁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가시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윤하경의 차가운 태도에 더는 뭐라 말도 못 하고 민진혁은 그저 조용히 앞서 걸었다.여기는 예전에 강현우가 모성에 마련해 둔 고급 회의 공간이었다. 윤하경도 예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민진혁이 그녀를 한 룸 앞까지 데려다주었을 때, 그 앞에는 윤하경의 변호사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를 보자 변호사는 급히 이마의 땀을 훔쳤다.“윤하경 씨.”“왜 안 들어가 계셨어요?”윤하경이 물었다.변호사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기다리고 있었습니다.”실상은 무서워서 차마 들어가지 못한 거였다.조금 전, 먼저 룸 안에 들어갔을 때, 소파에 앉아 있는 강현우의 싸늘한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그 눈빛은 섬뜩하리만치 냉혹했고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비록 두 사람은 잘 알지 못했지만 법조계에서 강현우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던 터였다. 잔인하고 독단적이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가리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다.그래도 이런 사람은 그동안 많이 상대해 봤기에 처음에는 별로 두렵지 않았다.그런데 인사말을 건네는 순간, 강현우가 고개를 들며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당신이 윤하경 씨 변호사인가?”목소리는 낮고 깊었지만 그 울림은 마치 속을 꿰뚫는 듯했다.그 짧은 한마디가 그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고 머리에서 식은땀이 저절로 흘렀다.변호사는 억지로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네, 맞습니다.”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한참 동안 그를 노려봤다.그 눈빛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단 하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가 입술을 떼지 않자 변호사의 심장은 불편하게 쿵쾅댔다.그리고 한참 만에 강현우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좋아. 기억했어.”변호사는 말없이 굳었고 마치 저승사자한테 이름 불린 기분이었다. 상류층 인사들을 여럿 만나봤지만 강현우처럼 숨 막히는 인물은 처음이었다.같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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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3화

“지금 뭐라고 불렀어?”강현우가 이를 악문 채,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내듯 말했다.윤하경은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다시 말했다.“강현우 씨, 이 협의서에 문제없으시면... 그냥 사인해 주세요.”지겹도록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윤하경이었지만 그 말이 들려올수록 강현우의 눈빛은 더 깊고 어두워졌다.강현우는 묵묵히 윤하경을 올려다봤다. 며칠 만에 마주한 윤하경은 전혀 변한 게 없어 보였다. 마치 이혼이라는 결정이,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소한 선택처럼 느껴졌다.강현우의 손가락이 서서히 조여들었고 그 눈빛은 가라앉은 심해처럼 차가웠다.“진심이야?”그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윤하경은 마음속에서 쓴웃음을 삼켰다. 이미 이 지경까지 와버린 이상, 진심이든 아니든 아무 소용도 없었다.신인아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자신과 강현우 사이에 쐐기를 박아놓았고 그로 인해 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돼버렸으니까.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설령 강현우가 앞으로 신인아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그 기억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어느 날 불쑥 되살아나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이 끝내 그렇게 상처만 남긴 채 멀어져 버리는 건 더없이 비참한 일이었다. 그래서 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인생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그저 아름다웠던 기억만 남기는 것,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말일 것이다.오랜 침묵 끝에 강현우는 그녀가 내민 서류를 받아서 들었다. 한 장씩 넘기며 읽던 그는 금세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었다.“아무것도 안 받겠다? 참, 대단히 쿨하시네. 윤하경, 너 진짜 너답다.”윤하경은 말없이 강현우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뼈마디가 드러난 그 손이 지금 무슨 결정을 내리려는지, 눈으로 읽는 듯했다.그러다 강현우가 당연히 사인을 하려나 싶던 순간 그는 갑자기 협의서를 찢어버렸다.종이가 갈기갈기 찢기는 소리에 윤하경의 눈이 커졌다.“현우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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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4화

“다시 말해 봐.”강현우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은빛 이가 드러날 정도로 악물린 채였고 평소 늘 차갑기만 하던 그 눈동자조차 희미하게 붉어지기 시작했다.강현우는 분노가 올라오기 직전이었고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기가 눌렸다. 강현우가 어떤 사람인지, 그 수단이 얼마나 잔인한지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입술을 지그시 눌러 다문 윤하경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냥... 이렇게 계속 가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윤하경은 목소리가 낮아졌지만 뜻만큼은 단호했다.“강현우 씨, 이제 여기까지만 해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친구로 지낼 수는 있잖아요.”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현우는 폭발하듯 몸을 돌려 거실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러자 묵직한 테이블이 바닥을 구르며 멀리 나가떨어졌다.“친구? X발, 누가 너랑 친구 하재?”강현우의 목소리는 이를 악문 채 터져 나왔다. 넓은 공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위협적일 정도로 격앙돼 있었다.늘 차분하고 냉정하게 모든 걸 통제하던 강현우. 그런 그가 지금은 미쳐 날뛰는 사자 같았다.윤하경은 말이 없었다. 그 순간 강현우가 몸을 숙여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윤하경, 나 너한테 말했을 텐데. 우리 사이에서 끝내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윤하경은 밀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아무리 버텨도 그녀는 여자였고 오랜 시간 훈련으로 단단히 다져진 강현우의 몸을 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윤하경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강현우는 항상 자기 감정만 앞세우고 한 번도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준 적이 없었다.강현우의 숨결이 거칠게 밀려들며 그녀의 숨을 흐트러뜨렸다. 윤하경은 이내 이를 악물고 그대로 그의 입술을 물었다.강현우는 통증에 움찔했지만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강현우!”윤하경이 힘겹게 외쳤다. 하지만 그 말도 끝나기 전, 다시 그의 입술에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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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강현우는 이를 악문 채 하석호를 노려봤다.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곧 폭발하기라도 할 것처럼 짙은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윤하경은 슬며시 손을 들어 하석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나 괜찮아. 우리 그냥 가자.”지금 강현우는 언제 터질지 모를 상태였다. 자신이야 익숙하다지만 하석호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무엇보다 하석호 뒤에는 하씨 가문이 있었다. 윤하경은 자기 일로 하씨 가문까지 엮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석호는 눈썹을 찌푸린 채 강현우를 한 번 더 살피고는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윤하경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꾹 눌렀다. 그리고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차 안.하석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윤하경을 향해 물었다.“밖에 나올 거면 왜 사람을 좀 더 데리고 나오지 그랬어?”윤하경은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미처 생각 못 했어.”하석호는 시동을 걸고 도로로 빠져나왔고 앞만 바라보며 짧게 일렀다.“당분간은 조용히 집에 있어. 어디 나돌지 말고. 강현우가 아무리 대단해도 여기는 함부로 못 건드려. 우리가 있는데.”윤하경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오늘 너 그렇게 나서지 말아야 했어. 나 때문에 강현우한테까지 각 세우는 건... 의미 없어. 안 어울려.”윤하경은 강현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복심이 강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 사람.그에 비해 하석호는 너무 올곧고 선했다. 이런 사람이 강현우 같은 상대와 부딪히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하지만 하석호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치듯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담배를 꺼내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입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강현우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건 어디까지나 경성에서 얘기지.”하씨 가문이 이 모성에서 어떤 입지인지, 여기서만큼은 강현우가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윤하경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우가 정말 윤하경과의 인연을 놓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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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6화

“지금 이 시점에 네가 강현우랑 이혼이라도 하면 그걸 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하석호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결과가 어떨지는... 너도 알잖아.”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슨해졌던 윤하경의 손가락이 다시 움켜쥐듯 모였다.가늘고 차가운 손끝이 꼭 쥐어진 채로 떨렸다. 그 순간, 묘한 무력감이 마음 한가운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이렇게 보니까, 예전에 엄마가 윤수철 때문에 하씨 집안과 등을 졌던 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나 봐.”그녀가 허탈하게 웃자 하석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윤수철?”“너 혹시, 고모가 윤수철 때문에 집에서 나간 거라고 생각했어?”윤하경은 멈칫했다.“아니었어?”하석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코끝을 스치듯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됐어, 어른들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방금 한 말이야. 그 부분, 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윤하경은 그의 말 속에 무언가 묘한 뉘앙스가 스며 있는 걸 느꼈다.‘그렇다면 예전에 엄마가 집을 나온 이유가 윤수철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까? 그럼 엄마가 말하던 평생을 걸었던 사랑은... 정말 윤수철이 아니었던 건가? 엄마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때 엄마가 하씨 집안과 결별을 선택했던 진짜 이유는 도대체 누구 때문이었을까?’한편, 하석호는 윤하경의 복잡한 생각을 모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니까, 너도 네 마음부터 확실히 정리해. 아니면 우선 할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하든가.”그 말에 윤하경은 정신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잘 생각해 볼게.”하지만 윤하경이 아직 어떻게 말을 꺼낼지조차 정리하지 못한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평소처럼 하병철을 뵈러 저택 응접실로 향했다가 뜻밖의 장면과 마주쳤다.강현우가 이미 하병철과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바둑돌을 손에 쥔 채 대국 중이었다.회사를 하석호에게 모두 넘긴 이후로, 하병철이 가장 즐기는 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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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7화

윤하경은 어색한 듯 몸을 살짝 옆으로 피했다.“이제 네 차례야. 조심해야 해. 이번에도 실수하면 이번 판은 진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라.”하병철이 웃으며 강현우에게 말했다.왠지 모르게, 단순히 바둑 얘기만은 아닌 듯한 말투였다.강현우는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바둑알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하병철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곧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봐라, 이 자식 일부러 실력 감췄지? 이 한 수로 판 전체가 살아났잖아. 잘했어, 잘했어.”“과찬이세요. 다 외할아버지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죠.”강현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지금 모습만 보면 마치 모범생 같았다. 어젯밤의 그 날카롭고 거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윤하경은 옆자리에 앉아 자꾸만 눈살을 찌푸리며 강현우를 힐끔거렸다. 하병철의 반응을 보니 강현우는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했다.“어르신, 식사 준비되었습니다.”바둑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하병철은 바둑판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일어섰다.“자 밥 먹자꾸나.”윤하경이 얼른 따라 일어나 부축하려 하자 하병철은 손을 내저으며 몸을 슬쩍 피했다.“오늘은 너희 건 안 만들었단다. 며칠 만에 봤으니 너희 부부는 각자 방에서 단둘이 오붓하게 보내.”‘결국 이 말 하려고 기다리게 한 거였나.’“네, 외할아버지.”강현우는 대답도 빠르다 못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윤하경은 눈을 굴리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돌아서 마당을 빠져나갔고 강현우는 묵묵히 그녀 뒤를 따랐다.대문을 막 지나선 순간, 윤하경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왜 따라오세요?”강현우는 고개를 살짝 젖히며 그녀를 바라봤다.“안 봐도 알겠지 않나?”윤하경은 살짝 이를 악물고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강현우의 눈에는 그녀의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과 꾹 다문 입술 라인이 선명하게 들어왔다.“강현우 씨, 어제 제가 드린 말씀이 충분히 명확했을 텐데요.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죠?”윤하경은 강현우가 끈질길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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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화

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녀는 원래 억울함을 그냥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강현우가 늘 한결같이 그녀 편에 서줬다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오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윤하경이 신인아 이야기를 꺼내자 강현우의 날카롭고 단정한 얼굴이 곧장 어두워졌다. 그 표정을 똑똑히 본 윤하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봤죠? 신인아 얘기만 나오면 현우 씨 표정부터 달라져요. 앞으로 우리가 계속 이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 혼자 소송 걸면 되니까요. 한 번 안 되면 두 번, 두 번 안 되면 세 번.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윤하경은 고개를 들고 강현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 눈빛에는 단단한 의지와 결심이 담겨 있었다.윤하경의 말이 이어질수록, 강현우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거리도 가까웠던 탓에 강현우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정도였다.윤하경은 그가 지금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떤 무리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윤하경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자신의 팔에서 떼어냈다. 작고 단정한 얼굴 위에는 결연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현우 씨, 원래 그런 식으로 질질 끄는 분 아니시잖아요.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이 말은 가볍게 던진 말이 아니었다. 윤하경이 이미 수없이 생각하고 다짐한 끝에 뱉은 말이었다.윤하경은 이제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바로 그때, 강현우가 갑자기 벽을 강하게 내려쳤다.“쿵.”무거운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깜짝 놀란 윤하경이 고개를 돌렸을 때, 강현우의 주먹은 그대로 벽에 닿아 있었고 그 손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연한 그 피가 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했다.윤하경은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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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윤하경의 가슴이 살짝 떨렸다. 곁에 서 있던 집사는 그녀의 눈가가 붉어진 걸 본 듯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뒤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집사님, 혹시 방금... 밖에서 저랑 강현우 씨가 다투는 거 들으셨나요?”집사는 하병철의 최측근이었다. 만약 그가 들었다면 분명 바로 하병철에게 알릴 것이다. 그러면 지금껏 감춰온 것도 다 무의미해진다. 그런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집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보며 단정한 말투로 대답했다.“조금 들었습니다.”그는 늘 말투에 틈이 없고 표정도 무심해 보였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윤하경은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혹시... 방금 들으신 건, 외할아버지께 말씀 안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집사는 눈썹을 약간 움직였을 뿐,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겠습니다.”윤하경은 안도한 듯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집사는 다시 앞장서 걸었고 윤하경도 그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하병철의 뜰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해빛이 따스하게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정원을 포근하게 비추고 있었고 그는 마당의 야외 찻상 앞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요한 시간. 가지마다 돋아난 연둣빛 새싹, 환하게 비치는 햇살. 그 풍경을 바라보던 윤하경은 문득 어젯밤, 하석호가 차 안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고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시렸다.마침 하병철도 윤하경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손짓했다.“하경아, 이리 와라.”윤하경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띠며 마음을 다잡고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외할아버지.”윤하경은 얌전히 웃으며 인사한 뒤,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고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무슨 일로 부르셨어요?”하병철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깃든 눈빛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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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0화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나며 생명력을 가득 머금고 있는데 할아버지는...’하병철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하면... 내가 저세상에서 네 어머니를 마주해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겠지.”“외할아버지...!”윤하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하병철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이제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렴.”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알겠습니다.”윤하경은 하병철이 모든 말을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병철의 떠나자마자 윤하경은 하석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지금 어디야?”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다소 급한 기색이 느껴졌다. 윤하경은 잠시 멈칫하다가 답했다.“집에 있어. 무슨 일이야?”“회사로 좀 와줄 수 있어?”“무슨 일인데?”하석호는 이마를 짚으며 피곤한 듯 말했다.“사실 좀 문제가 생겼어. 전에 강현우랑 진행하던 프로젝트 말이야... 상황이 꼬였어. 네 도움이 필요해.”그 말에 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알겠어. 곧 갈게.”그 프로젝트는 원래 윤하경이 강현우 측과 직접 소통하며 초기 단계에서 주도했던 일이었다. 비록 이후 다른 사람이 맡아서 진행했지만 당시 공식 문서에 책임자 이름이 윤하경으로 남아 있었기에 윤하경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윤하경은 회의실 안에서 하석호가 팀장들과 회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석호는 회의실 중앙 자리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었고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윤하경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석호는 고개를 들고 자리를 가리켰다.“앉아 봐.”윤하경이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이야?”하석호는 입술을 다문 채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전에 강현우 쪽이랑 같이 진행하던 광산 프로젝트 말인데 사고가 났어. 지금 광원 두 명이 갱도 안에 갇혀 있고... 아직 생사도 확인이 안 된 상태야.”하석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윤하경을 바라보며 이었다.“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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