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Bab 1281 - Bab 1290

1428 Bab

제1281화

허름한 국숫집 주인은 분주히 움직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강현우를 보고 잠시 굳어 섰다.“저... 뭐 드시겠습니까?”강현우는 메뉴판을 흘깃 본 뒤 담담히 대답했다.“여기 대표 메뉴로 주세요.”윤하경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똑같이요.”강현우는 여전히 긴장한 듯 윤하경을 감싸안으며 물었다.“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을까?”윤하경은 입술을 삐죽였다.“여기서 먹어야 맛이 제대로 나요. 포장하면 그 맛이 아니잖아요.”말투에는 은근한 애교가 묻어 있었다.사실 윤하경은 잘 알고 있었다. 강현우 같은 사람이 이런 낡은 가게에 익숙할 리 없다는걸.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제안했다.“그럼 현우 씨는 차에서 기다리실래요? 제가 금방 먹고 나갈게요.”하지만 강현우는 윤하경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쥐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됐어, 그냥 같이 먹자.”그가 들어서는 순간, 시끌벅적하던 가게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특히 근처에 앉아 있던 대학생들은 눈치를 보더니 허겁지겁 음식을 마저 먹고 서둘러 나가버렸다.윤하경은 어이없다는 듯 강현우를 바라봤다. 정작 이 모든 원인인 강현우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태연히 손수건을 꺼내어 젓가락을 꼼꼼하게 닦았다.단순히 젓가락을 닦는 행동인데도 그의 손끝을 거치니 마치 귀한 보물이 되는 듯해 보였다. 윤하경은 이런 강현우의 특유의 기품을 늘 신기하게 생각했다.곧 주인이 국수를 내왔다. 강현우는 젓가락을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먹어.”윤하경은 그의 태도에 순간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강현우는 금세 눈치를 채고 미묘하게 웃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봐?”“아니에요.”윤하경은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화려한 요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런 음식이 지금은 더 좋았다.그녀가 배부르게 먹고 나서 강현우를 바라보니 그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진한 향과 자극적인 맛이 입맛에 맞지 않는 게 당연했다.윤하경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맞으면 안 드셔도 돼요. 우리 그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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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2화

강현우가 짧게 대답했다.“그러세요.”순간 국숫집 주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윤하경과 강현우와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었다.그러나 나올 때 윤하경은 주인이 무료로 대접하겠다는 말을 굳이 사양하고 계산대 위에 지폐 한 장을 올려두고 나왔다.가게를 나선 뒤, 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현우 씨, 그거 알아요? 저 사장님, 여기서 장사하신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대요. 근데 가게 일은 전부 혼자서 하시더라고요.”강현우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윤하경은 눈을 반짝이며 이어 물었다.“안 궁금해요? 그분 부인은 어디 계시는지.”먹고 싶은 걸 먹어서인지 기분이 한결 좋아진 윤하경의 표정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현우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는 맞장구를 쳐줬다.“그래서 부인은 어디 계시는데?”윤하경은 입술을 굳게 눌렀다.“아이 낳다가 식물인간이 됐대요. 침대에 누운 지 20년이 넘었대요...”강현우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 윤하경이 아프다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아... 아파요.”고개를 들어 올린 윤하경은 강현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걸 보았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강현우가 낮게 말했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윤하경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저 진짜 그런 뜻 아니었어요.”하지만 강현우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고 무거웠다. 윤하경은 입술을 오므리며 한 번 더 말했다.“진짜 아파요...”그제야 강현우는 손에서 힘을 풀었지만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은 사라지지 않았다.자유를 되찾은 윤하경은 그의 팔을 흔들며 애써서 달래듯 말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제 말은... 사장님이 그만큼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셨다는 뜻이었어요. 평생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윤하경의 눈빛은 진지했다. 강현우는 이를 살짝 악물며 날카로운 턱선을 드러냈다.잠시 뒤,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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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3화

윤하경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허리에는 강현우의 커다란 손이 단단히 감겨 있었고 마치 놓치기라도 할까 봐 꼭 붙잡고 있었다.답답하고 더워서 살짝 몸을 옆으로 틀자 강현우의 넓은 몸이 곧장 따라붙었다. 윤하경은 이를 악물다 결국 포기하고 목을 움츠린 채 그의 품에 안겨 다시 잠이 들었다.하지만 한밤중, 배고픔에 눈을 떴다.저녁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속이 허전하고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였다.윤하경은 살금살금 강현우의 팔을 치우고 다행히 그가 깊이 잠든 틈을 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부엌에 내려가 뭔가 먹을 걸 찾으려 했는데 1층으로 내려가는 순간 민진혁이 몰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윤하경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민진혁은 평소라면 저택에 머물며 강현우의 지시를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왜 이 시간에 그것도 몰래 나가는 걸까?호기심이 동한 윤하경은 발소리를 죽이며 몰래 뒤를 따랐다.민진혁은 정원을 지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그곳에서 작은 도시락을 들고 서 있던 백지유가 돌아서며 환하게 웃었다.“지유야.”“진혁 오빠.”백지유는 반가운 듯 달려와 민진혁을 끌어안았다.“너무 보고 싶었어요.”멀찍이서 지켜보던 윤하경은 순간 놀라움에 발을 멈췄다.지난번부터 백지유가 민진혁에게 마음이 있는 건 눈치챘지만 이렇게 금방 연인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민진혁은 백지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윤하경은 백지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걸 알아챘다.백지유는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비비듯 기대며 말했다.“이거 제가 만든 야식이에요. 빨리 드세요, 다 식겠어요.”민진혁은 그녀를 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이 시간에 안 가져와도 된다니까. 너 시험 준비하느라 바쁜데 좀 쉬어야지.”백지유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아요. 오빠가 오늘 밥도 못 먹었다고 해서... 그게 더 걱정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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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4화

“많이 했으니까 같이 드세요.”백지유가 수줍게 웃으며 내밀자 윤하경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백지유는 민진혁을 한번 바라보더니 새 젓가락을 챙겨 윤하경에게 건넸다.윤하경은 그대로 받아 한입 맛봤다.확실히 솜씨가 좋았다. 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 많이 먹진 않았다. 아직 민진혁은 젓가락도 들지 않았으니까.딱 내려놓으려던 순간,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정원을 가로질러 들려왔다.“뭐 하는 거야?”강현우의 목소리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윤하경은 반사적으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쪽을 바라봤다.“별거 아니에요.”윤하경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강현우의 시선이 식탁 위 음식으로 향했고 눈빛에 피곤함과 함께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스쳤다.깊은 잠에서 깼을 때, 윤하경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숨에 집 안을 뒤져 겨우 정원에서 찾은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었다.하지만 지금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윤하경을 보니 차마 한마디도 책망할 수가 없었다.“배고팠어?”윤하경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녁에 제대로 못 먹은 것도 모자라, 괜히 떼써서 매운 국수를 찾은 게 떠올라 좀 미안했다.강현우는 따로 뭐라 하지 않고 대신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그리고 백지유를 보며 짧게 말했다.“부탁 하나 해도 될까? 집에 와서 밥 좀 한 번 해줄 수 있겠어? 페이는 네가 정해.”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백지유는 잠시 민진혁을 바라본 뒤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그동안 신세도 많이 졌는데 밥 한 끼쯤이야. 페이라니요.”강현우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민진혁에게 시선을 돌렸다.“부엌으로 안내해.”윤하경은 괜히 번거로워지는 것 같아 말리려 했지만 솔직히 너무 배가 고파서 입을 닫았다.그렇게 모두가 안으로 들어왔고 백지유는 익숙한 듯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민진혁도 옆에서 거들었다.소파에 기대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하경은 문득 부러움이 밀려왔다.연인 사이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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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5화

“네? 자리요?”민진혁은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강현우를 바라봤다.“제가 뭘 잘못했나요?”강현우는 짧게 그를 흘겨보더니 곁에 앉아 있는 백지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지금 연애 중이지. 결혼까지 생각해 본 적 있어?”민진혁은 순간 멍하니 굳었다가, 무심코 백지유를 바라봤다.백지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대답을 기다리며 긴장한 숨결만 내쉬고 있었다.민진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웃었다.“저... 생각은 해봤습니다.”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더니 윤하경에게 반찬을 덜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됐지. 지금 네 자리는 새벽부터 밤까지 붙들려야 하고 밤샘 근무도 많아. 결혼을 앞둔 사람에겐 맞지 않아.”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마침 서쪽 신도시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 책임자를 맡아.”민진혁의 얼굴은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감사합니다, 대표님!”옆에 있던 백지유도 얼른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저와 진혁 오빠까지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강현우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윤하경은 그를 바라보다가 왠지 예전과 달라진 걸 느꼈다.늘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던 사람이, 이제는 부하 직원의 미래까지 헤아려 주다니.강현우는 윤하경의 시선을 감지하곤 고개를 돌려 짧게 말했다.“뭘 그렇게 봐. 얼른 먹어.”“네...”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수저를 들었다.식사가 끝난 뒤, 강현우는 민진혁과 백지유를 돌려보냈다. 떠나기 전, 민진혁에게 새로 자리를 맡을 후임자를 추천하라고 지시했다.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윤하경은 현관 앞에 서서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방으로 올라와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윤하경은 휴대폰을 켜려 했다.그러나 강현우가 냉정하게 전원을 꺼버렸다.“잘 자는 게 몸에 제일 좋아.”휴대폰은 그의 손에 넘어가 침대 머리맡에 올려졌다. 윤하경은 팔을 뻗어봤지만 닿지도 않았다.결국 볼을 부풀리며 눈을 감았고 언제 그랬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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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6화

강현우는 담담하게 한마디 뱉듯 말했다.“앞으로 내 앞에 얼굴 비치지 마. 하경이가 난 너랑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두고 싶으니까.”배지훈은 말이 막혔다.여자가 친구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배지훈은 이를 악물고 애원하듯 목소리를 높였다.“현우야, 도와줘. 해리가 나를 용서하지 않아. 애도 못 보게 하고... 이혼하자고까지 해.”머리를 쥐어뜯듯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강현우는 차갑게 노려보다가 꼬집듯 내뱉었다.“다른 여자랑 잤을 때 내 허락받았어? 이제 와서 내 의견을 구해?”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웠다. 배지훈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강현우, 정말 너무 하네!”배지훈이 소리쳤다. “그렇게 비꼴 필요가 있어?”강현우는 차갑게 비웃었다.“이제 알았어?”배지훈은 말문을 잃었다. 진심으로 당혹스러웠지만 지금 자신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강현우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지만 대부분은 술자리뿐인 사람들뿐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간곡하게 말했다.“현우야, 도와줘.”배지훈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정말 이혼하고 싶지 않아.”강현우는 괴로움에 차 있던 배지훈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마치 꾸짖듯 말했다.“이혼하기 싫으면 진심을 보여. 나한테 빌지 말고 네 재산, 네 명예를 걸고 해리와 그녀 가족에게 가서 빌어. 다시 돌릴 여지가 있는지 물어봐.”그는 잠시 말을 끊고 배지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하지만 내가 아는 해리는...”그 말이 배지훈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진해리는 성격이 강하고 한 번 결심하면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 여자였다. 설사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배지훈은 싸워야 했고 잘못한 사람은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배지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나중에 그 아이가 나를 보 아빠라고 불러줄까...”배지훈은 말을 잇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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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7화

진씨 집안은 원래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배지훈이 끝내 물러서지 않고 매달리자 결국 사태가 보기 흉하게 번지고 말았다.재벌가의 추문은 언제나 대중이 좋아하는 가십거리였고 배지훈이 진씨 사람들에게 얻어맞는 장면은 누군가의 손에 찍혀 곧바로 인터넷에 퍼졌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그 여파는 배씨 가문의 주가에도 파장을 일으켰다.물론 그건 뒤의 이야기였다.진해리는 방 안 발코니에 서서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가는 배지훈을 내려다봤다.집에 올 때부터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성한 데가 하나도 없어 정말로 집 잃은 개처럼 보였다.그 눈빛이 잠시 흔들리자 곁에 있던 어머니 이문주가 딸의 마음을 읽은 듯 다가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해리야, 여자는 원래 쉽게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란 걸 알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생각해야 해. 배지훈이 저지른 일은 네 아버지 마음을 철저히 짓밟은 거야. 넌 우리가 애지중지 키운 보물 같은 딸인데... 게다가 네 뱃속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 뻔했잖니. 직접 저지른 건 아니어도 결국 모든 게 배지훈과 연결돼 있어.”이문주는 딸의 등을 다독이며 눈물을 글썽였다.“아직 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있어. 오늘 네 아버지랑 가서 봤는데... 그렇게 작은 몸으로 버티고 있더구나.”“엄마, 그만해요.”진해리는 더는 듣지 못하고 이문주 품에 안겨 오열했다.“알아요.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어린 시절의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스스로도 역겨웠다. 자신을 그렇게 상처 준 남자인데도 방금 전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는 또다시 불쌍하다는 감정이 스쳤으니.얼마 지나지 않아 진경호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해리야, 이리 와서 좀 보거라.”진해리는 눈물 자국을 훔치고 일어나 다가갔다.“아빠, 이게 뭐예요?”진경호가 건넨 것은 배지훈이 직접 가져온 서류였다.“네 남편이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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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8화

진경호는 진해리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렸다.“해리야, 넌 아빠의 딸이야. 아빠가 가진 건 다 네 거다. 돈이야 결국 다 허무한 거고 이번 일은 배씨 쪽이 우리보다 더 큰 손해를 볼 게 뻔해.”진경호는 애써 목소리를 가볍게 만들며 몇 번이고 진해리의 어깨를 다독였다.“그러니 걱정하지 마. 네 곁에는 아빠가 있으니까.”그 말에 진해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문주는 서둘러 휴지를 건네며 나무랐다.“그만 울어. 막 출산한 몸으로 자꾸 울면 나중에 눈 나빠져.”“네...”진해리는 훌쩍이며 대답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어 부모를 안심시키려 했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기에 더는 걱정을 끼치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잠시 뒤, 진경호는 아래로 내려가 대문 앞에 서 있는 배지훈과 마주했다. 진해리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한 뒤, 오랜 세월 상업 전장을 누벼온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지훈아, 우리는 한때 가족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앞으로 서로 얼굴 볼 날이야 있겠지. 그때는 이혼 서류에 도장만 찍고 끝내. 공연히 법원까지 가서 배씨 집안 웃음거리 만들지 말고.”진경호의 말은 가차 없었다. 배지훈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2층 발코니를 올려다봤지만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미친 듯 웃어버렸다.그때 윤하경이 보디가드들과 함께 진씨 저택에 도착했다. 영양제를 가득 들고 온 그녀는 아직 배지훈이 자리를 뜨지 않은 걸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무 일 없는 듯 지나쳤다. 보디가드들이 앞서 정리하자 불과 십여 분 만에 윤하경은 진씨 집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거실에 들어서자 진경호와 이문주의 시선이 묘하게 얽혔다. 윤하경은 그 의미를 알아챘다.배지훈과 강현우의 관계가 깊다는 건 경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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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9화

진해리는 윤하경이 일부러 자신을 달래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이 고마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럼 우리 애기 대신 제가 감사 인사드릴게요.”윤하경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나중에 아기가 크면 그때 직접 저한테 고맙다고 하면 되죠.”두 사람은 잠시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윤하경은 끝내 자신이 임신한 사실은 꺼내지 않았다. 진해리가 이제 막 큰 상처를 겪은 터라, 기쁜 소식이라도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씹어 삼키지 않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배려였다.윤하경이 진씨 저택을 나설 때, 대문 앞에는 여전히 배지훈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흰 셔츠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모습으로 진해리의 동정을 얻으려는 듯했지만 윤하경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버티고 매달린다 해도 진해리의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게 분명했다. 진해리는 이제 결심을 굳혔다. 배지훈과 완전히 선을 긋겠다고. 여자로서 윤하경은 그 결정을 지지했다. 한 번의 배신은 모든 신뢰를 무너뜨렸고 그 선을 넘은 사람에게 다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윤하경은 더 이상 배지훈을 바라보지 않고 차 문을 닫으며 말했다.“출발해요. 집으로 가죠.”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운전석에 앉은 기사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 순간 기사 눈빛에 스친 낯선 기운도 놓쳤다.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피로가 몰려왔다. 윤하경은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하품을 삼켰다.“조금만 잘게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네.”기사의 목소리는 건조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룸미러 너머로 윤하경을 흘끗 보더니 그녀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드는 걸 확인하고는 입가에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윤하경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몸을 움직이려는데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고 손목과 발목이 무겁게 묶여 있어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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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0화

“혹시 원한이 있거나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요.”윤하경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담담해지려 애썼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주위는 마치 깊은 밤 묘지처럼 고요했고 숨조차 크게 쉬면 깨져버릴 듯, 적막이 섬뜩하게 퍼져 있었다.윤하경은 이를 악물고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탈출할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불과 십여 분이 지나자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사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녹슨 철 침대와 자신을 묶어둔 쇠사슬, 그리고 그 끝자락에 있는 작은 변기 하나뿐이었다. 아마도 자기 배설을 해결하라는 뜻일 터였다.윤하경은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쇠사슬의 길이는 고작 변기에 닿을 정도였다. 순간 절망이 몰려왔다.“도대체 누구야, 당장 나와!”처음에는 차분히 대화하려 했던 윤하경은 결국 욕설을 퍼부었다.“비겁하게 구석에 숨어서 이런 짓이나 하는 쥐새끼 같은 인간! 할 말 있으면 직접 나와서 해!”그때였다.“닥쳐.”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순간 윤하경은 눈을 크게 뜨고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불빛 사이, 방 한쪽 구석에 작고 까만 감시 카메라가 보였다.지금껏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누군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목소리는 인위적으로 변조된 듯 낯설고 기계적이었다.윤하경은 오히려 희미하게 웃었다.“역시 욕이라도 해야 나오는구나.”다시 말을 꺼내려는 순간, 카메라 너머에서 냉소가 흘러나왔다.“윤하경, 힘 빼지 마라. 네 뱃속의 아이부터 생각해. 여기서 음식과 물은 한정돼 있다. 살고 싶으면 체력을 아껴.”“뭐라고? 내가 임신한 걸 어떻게 알지?”윤하경은 얼어붙었다.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이들뿐이었다. 그런데 납치범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그러나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목소리는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윤하경은 필사적으로 다시 소리치고 욕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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