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261 - Chapter 1270

1428 Chapters

제1261화

배지훈은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 완전히 기운이 빠져 있었다. 언제나 깔끔하게 손질하던 머리칼은 흐트러져 물에 젖은 듯 축 늘어졌고 땀이 줄줄 흘러내리며 바닥에 떨어졌다.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그러다 배지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바닥에 땀방울만이 아니라 눈물까지 섞여 떨어지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울 거면 나가서 울어.”강현우는 원래 남의 감정에 휘둘리는 성격이 아니었다.한참을 침묵하던 배지훈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며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지만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 강현우가 언제나 냉정하고 신중했다면 배지훈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였다.진해리와의 사랑도 단순히 이어진 게 아니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붙잡은 관계였다.사실 두 사람이 함께한다 했을 때 강현우는 내심 탐탁지 않아 했다. 그때 진해리와 거의 약혼까지 이야기가 오가던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뒤늦게서야 배지훈이 진해리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걸 깨달았고 진해리 역시 일부러 강현우와의 만남을 이용해 배지훈의 마음을 자극했다.강현우가 그 연극에 응한 것도 오랜 인연 때문이지 달가워서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 벌어진 이 일은 전부 배지훈이 바깥에서 함부로 굴며 생긴 문제였다.그 틈을 타 다른 여자가 욕심을 부리다 결국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강현우가 배지훈을 두둔해 줄 이유는 없었다.강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배지훈에게 차갑게 말했다.“정신 차려. 해리한테 솔직히 사과해. 해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갚아.”평소라면 남의 일에 굳이 끼어들지 않을 강현우였지만 오래된 정 때문에 최소한의 조언은 건넨 셈이었다.하지만 말이 끝나자 배지훈은 벌떡 일어나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 절대 해리한테는 들켜서는 안 돼.”그의 눈빛은 애원에 가까웠다.“현우야, 네가 방법 좀 찾아 줘. 이번 일... 해리한테는 비밀로 해 줘. 해리가 알면 그 성격에 날 끝내 버릴 거야.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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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2화

강현우는 이마를 찌푸린 채 잠시 말을 고르고 나서 낮게 물었다.“사람은 찾았어?”뜻밖의 질문에 배지훈은 잠시 멍해졌다가 강현우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떠올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찾았어.”강현우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이번 일은 진씨 집안에 숨길 수 없어. 해리의 검사 결과가 이미 나왔으니 곧 진실을 캐물어 올 거야. 내 말을 따르려면 네가 먼저 고개 숙이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그 여자를 진씨 집안에 넘겨.”차갑고도 단호한 말이 이어지자 배지훈은 순간 얼이 빠진 듯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거야?”배지훈이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내뱉은 말이었다.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짧게 웃었다.“왜, 아까워서 못 하겠어?”배지훈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게 아니야.”그 여자를 떠올리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가슴속에서는 천 번, 만 번을 찢어도 모자랄 만큼 증오가 끓어올랐다.배지훈은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내 말은... 꼭 해리랑 진씨 집안에까지 알려야 하냐는 거야.”강현우의 눈빛은 더 깊게 가라앉았다.“무슨 소리야. 일이 터졌다고 머리까지 굳어 버린 거냐? 말귀 못 알아듣겠으면 당장 꺼져.”차가운 목소리에 배지훈은 움찔했다. 강현우가 화를 내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곧 생각을 정리한 배지훈은 지금 상황에서 강현우의 말이 유일한 길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진씨 집안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었다.망설임을 거둔 배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강현우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밖으로 나온 배지훈은 전화를 걸었고 잠시 뒤 건장한 경호원들이 여자를 끌고 왔다.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편이었지만 이미 거칠게 다뤄져 몰골은 형편없었다. 눈빛은 흐릿하게 흐려져 있었으나, 배지훈이 눈앞에 나타나자 순간적으로 반짝였다.“지훈 씨... 제발 저 좀 살려줘요...”여자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말투에는 가련한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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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3화

배지훈은 진해리의 어머니 이문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저는...”말을 꺼내려다 이를 악물었지만 정작 본인조차도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한심한지 잘 알고 있었다.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그는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봤다.곧이어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여자를 끌고 들어왔다.손발이 꽁꽁 묶인 채 바닥에 내던져진 여자는 마치 짐짝처럼 구겨져 있었다.그제야 여자는 배지훈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진씨 가문에 넘겨진 순간 끝장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여자는 비틀거리며 몸을 끌어 배지훈 쪽으로 눈물 어린 시선을 보냈다.그러나 돌아온 건 냉정한 목소리뿐이었다.“이건 제 잘못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배지훈은 진씨 부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리에게 약을 먹인 사람은 이미 잡아 왔습니다. 두 분 뜻대로 처리하셔도 좋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문주가 벌떡 일어나 여자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평소에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여자의 얼굴이 옆으로 확 꺾이며 붉게 부풀어 올랐다.이문주는 손가락을 떨며 여자를 가리켰다.“네가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내 딸과 손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내가 가만뒀을 것 같아?”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고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여자는 입에 천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울먹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배지훈은 그 광경을 보며 뭐라도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문주의 시선이 곧장 자신에게로 향했다.다음 순간, 그의 뺨에도 차가운 손길이 날아들었다.“그리고 너, 배지훈!”‘짝’ 하고 울린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우리 해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붙잡아 두는 거야! 싫으면 이혼하면 되잖아. 우리 진씨 가문은 해리를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런데 네가 감히 우리 아이를 이런 식으로 짓밟아?”이문주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고 마지막에는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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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4화

진경호는 아내 이문주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이혼 문제는... 그래도 해리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이문주는 손가락으로 남편을 가리키며 분노를 쏟아냈다.“내 딸을 내가 몰라요? 해리는 차라리 부서져도 굴욕은 못 참는 성격이에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배지훈과 이혼하겠다고 할 거잖아요!”배지훈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그도 알고 있었다. 이문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겉으로는 고분고분하고 귀하게 자란 공주 같아 보여도 진해리는 속이 단단하고 한번 마음을 정하면 절대로 바꾸지 않았다. 모든 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이혼을 택할 게 분명했다.배지훈은 깊은 후회를 삼켰다.‘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일이 여기까지 와 버린 걸까.’진경호는 더 이상 아내와 말싸움을 하지 않고 무릎 꿇고 있는 배지훈을 바라봤다.“됐네. 이 여자는 우리가 맡아두겠네. 자네는 이제 돌아가게.”배지훈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자리를 지키려 하자 진경호는 손을 들어 경호원들을 불렀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들어와 배지훈과 그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냈다.문이 닫히자 이문주는 치를 떨며 남편을 노려봤다.“해리는 당신 딸이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쉽게 놔주겠다는 거예요? 최소한 이혼 협의서라도 받아놨어야죠!”진경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차분히 말했다.“내가 해리 아버지니까... 지금은 일을 더 키우지 않으려는 거야. 해리가 막 출산을 마쳤는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버티겠어.”이문주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분노와 억울함이 너무 커서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아이고 내 불쌍한 딸아...”진경호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그만하고 우선 이 여자를 처리해.”모두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반은희에게로 향했다.반은희는 절망적인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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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5화

윤하경은 배지훈을 오래 알아 왔지만 이렇게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듯 초췌했고 늘 깔끔하게 손질하던 머리는 엉겨 붙어 있었다.옷차림도 어제와 똑같았고 안에 받쳐 입은 셔츠는 단추가 삐뚤어져 있었다.그는 진해리의 병실 앞에서 쓸데없이 서성거렸다. 밖에서 아무리 기웃거려도 안쪽 병실은 보이지 않는데 습관처럼 창에 시선을 두었다가 금세 도망치듯 눈을 돌리고는 했다.그 주저하는 모습이 더 비참해 보였고 윤하경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진해리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그런데도 왜 다른 여자와 얽혀 이렇게까지 만든 걸까. 이 화려한 세상에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사람은 드물다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그 순간 문득, 강현우도 언젠가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쳤다. 윤하경은 그 생각을 애써 떨치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가 병실 문을 열려는 순간, 배지훈이 급히 팔을 잡았다.“하경 씨.”윤하경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무슨 일이세요?”낯선 사람에게 말하듯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였다.배지훈은 입술을 깨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잠시 후에... 해리가 뭐 먹고 싶어 하는지 좀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윤하경은 코웃음을 쳤다.“그게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서 물으셔야죠.”배지훈의 눈빛은 이미 힘을 잃고 가라앉아 있었다. 늘 당당하고 오만하던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도망치듯 병실 쪽을 흘깃 볼 뿐이었다.“지금은... 차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해리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무너져 있었다. 밖에서 다른 여자와 얽힐 때는 흔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제 와서야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어리석은 짓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그러나 윤하경은 한순간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지훈 씨, 이런 꼴을 당할 줄 몰랐다면 애초에 그런 일은 하지 말았어야죠. 직접 물으세요. 저는 대신해 드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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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6화

윤하경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해리 씨,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조카가 퇴원할 때 제가 큰 선물 따로 준비할게요.”장난스러운 말투에 진해리의 얼굴에도 모처럼 진심이 담긴 웃음이 번졌다.“보니까 내 딸이 아주 괜찮은 대모를 얻었네요. 앞으로 기대해야겠네요.”윤하경이 오자 진해리의 얼굴빛이 한결 밝아졌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진 못했다. 진해리는 슬쩍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리더니 조심스레 물었다.“그 사람, 아직도 밖에 있죠?”윤하경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되물었다.“누구 말이에요?”진해리는 입술을 희미하게 올리며 힘겹게 웃었다.“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하경 씨도 알잖아요.”그제야 윤하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길을 떨구었다. 진해리가 전혀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답게 이미 모든 걸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윤하경은 진해리의 손을 꼭 잡으며 낮게 말했다.“지금 해리 씨가 할 일은 몸부터 회복하는 거예요. 다른 건 가족이랑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요.”진해리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그 사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와서도 저를 못 보는 거예요?”윤하경은 대답하지 못했다.진실을 말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건 너무나 잔인했고 자신의 입으로 진해리의 가슴을 찢을 수는 없었다.윤하경의 침묵에 진해리는 이미 짐작한 듯 숨을 고르더니 낮게 말했다.“하경 씨, 그 사람 좀 불러줄래요? 직접 묻고 싶은 게 있어요.”윤하경은 거절하려 했지만 진해리의 여린 눈빛과 갓 아이를 낳은 여린 얼굴이 겹쳐 도저히 매몰차게 말할 수가 없었다.잠시 망설인 끝에 윤하경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솔직히 지금은 안 보는 게 나아요. 몸이 좀 더 회복된 다음에...”“하지만 지금 안 보면 계속 마음만 괴로울 거예요. 하경 씨, 제발 부탁이에요. 저는 움직일 수도 없고 휴대폰도 부모님이 가져가 버렸어요.”윤하경은 속으로 곧장 눈치를 챘다. 진경호와 이문주가 일부러 진해리의 연락 수단을 막아둔 것이다. 그만큼 알려주고 싶지 않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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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7화

배지훈은 윤하경을 지나쳐 병실로 들어갔다.윤하경은 눈치 있게 따라 들어가지 않고 문을 닫은 뒤,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강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병실 안.발소리가 들리자 진해리가 고개를 들어 배지훈을 바라봤다. 한순간 멍해졌지만 금세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이제야 올 생각이 났나 보네.”언제나 자신만만하던 배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군 채 이를 악물었다. 진해리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어떻게 서운하지 않을 수 있을까.출산의 가장 힘든 순간에 남편이 곁에 없었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진해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배지훈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리라 믿어 왔다.하지만 지금은 그 꿈이 산산이 부서진 듯했다.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세 식구의 웃음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렇다고 이렇게 무너지고만 있을 수 있을까. 진해리는 눈앞에 초라하게 서 있는 배지훈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대답은 분명했다.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게 허무하게 무너진 현실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말해.”진해리는 떨리는 목소리를 눌러 담으며 배지훈을 똑바로 바라봤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 나는 들을 준비가 돼 있어.”배지훈은 고개를 들더니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든 몸이 회복된 다음에 집에 돌아가서 얘기하자.”“집?”진해리의 입가에 더 짙은 냉소가 번졌다.“어느 집을 말하는 건데?”배지훈은 순간 굳어졌다. 진해리가 이미 뭔가를 눈치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그는 이를 악물며 애써 말을 돌렸다.“지금은 네 몸이 먼저야.”“내가 아이를 일찍 낳은 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지?”진해리는 눈을 똑바로 맞추며 단호하게 물었다.“누가 나를 해치려 한 거 맞지?”겉으로는 곱고 여린 상류층 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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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8화

진해리는 조급해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고 차분한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방선자는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진해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지듯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해리야, 우리 집 못난 아들이 네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그래도 한 가지만 알아줘. 우리 배씨 집안은 너 하나만을 며느리로 인정하고 손녀 역시 우리 전부야. 나랑 네 시아버지랑 얘기했는데 손녀가 돌 지나면 배인 그룹 주식 10%를 우리 손녀 앞으로 넘기기로 했어.”꽤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잘못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배지훈이 저지른 일이 크다는 뜻이었다.진해리의 눈빛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녀는 방선자의 손을 조용히 뿌리치고 고개를 들었다.“고맙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예요.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우리 아이가 왜 갑자기 세상에 나와야 했는지 그 이유예요.”방선자는 순간 말을 잃고 굳어졌다. 자신이 아무리 달래고 조건을 내밀어도 진해리가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란 걸 알아버린 것이다.방선자는 이를 악물고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네가 한 짓은 네 입으로 말해.”하지만 배지훈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고 고개를 떨군 채 침묵만 흘렀다.배강현은 얼굴이 굳은 채 아들을 노려보다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잠시 멈칫하더니 끝내 두 번째 뺨을 올리지는 못했다.그는 한숨을 내쉬며 진해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해리야, 네가 이성적인 아이라는 거 아버지도 잘 알아. 지훈이 문제는 내가 확실히 책임지게 할 거야. 우선 지훈이가 가진 지분의 절반을 너와 아이 앞으로 넘기게 할게. 나머지 절반은 훗날 네가 둘째를 낳으면 그때 줄게. 우리 배씨 집안의 큰며느리는 오직 너뿐이야. 아이를 위해서라도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진해리는 그 말이 몹시 우스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아버님, 아직 진실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 벌써 둘째 얘기를 꺼내시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그녀는 눈을 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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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9화

방선자는 잠시 굳어졌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저... 저 그런 뜻은 아니에요. 다만 해리가 낳은 아이가 배씨 핏줄인 건 사실이잖아요. 설령 이혼한다 해도 아이까지 진씨 가문에서 데려가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이문주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네 아들이 바람피워도 모자라서 내연녀까지 부추겨 내 딸을 해치게 했잖아. 덕분에 애가 조산까지 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여기 와서 우리 해리 속을 긁어대? 게다가 이제는 아이까지 빼앗겠다고?”이문주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졌다.“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절대 그럴 일 없어.”쾅!그 말은 진해리의 가슴속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이미 진실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문주의 입에서 직접 듣는 순간, 심장이 뭉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이문주는 흥분한 나머지 모든 걸 쏟아내고 말았다.진경호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으며 말렸다. 그제야 이문주는 자신이 실수로 진실을 말해버렸음을 깨달았다.놀란 눈길로 진해리를 바라봤지만 이미 그녀는 굳은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이문주는 무언가 수습하려 다가가려 했으나, 진해리가 손을 휘둘러 침대 옆 탁자 위의 물건들을 바닥으로 쓸어내렸다.“나가! 전부 다 나가라고 했잖아!”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진해리였지만 그 순간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해리야...”이문주가 조심스레 다가오려 하자 진해리는 차갑게 눈을 들어 쏘아보았다.“엄마도 나가요. 다들 당장 나가줘요.”배강현과 방선자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무릎 꿇은 아들을 한 차례 더 흘끗 본 뒤 결국 방을 나갔다. 진경호와 이문주 역시 찡그린 얼굴로 한동안 머뭇거렸지만 끝내 딸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병실을 비웠다.넓은 병실에는 어느새 배지훈과 진해리, 두 사람만 남았다.진해리는 눈가를 훔치고 다시 배지훈을 노려보았다.“너도 나가.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그러나 배지훈은 무릎을 꿇은 채 미동조차 없었다.진해리의 시선이 탁자 위 물컵으로 옮겨졌다.순간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어 그의 머리 위로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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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0화

배지훈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얼굴은 잿빛으로 굳어져 있었고 완전히 초라한 몰골이었다.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윤하경은 그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걸 보고 천천히 일어섰다. 방 안에서 벌어진 일은 소리가 커서 거의 다 들렸기에 무슨 상황인지 대략 알 수 있었다.진해리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두 집안의 문제였다. 양가 부모까지 들어왔을 때는 자리를 비켜야겠다 싶었지만 막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해리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차마 돌아갈 수 없었다.배지훈은 문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윤하경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자,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저... 지금 꼴이 한심하게 보이죠?”윤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처참한 몰골임은 분명했다. 자신이 아는 배지훈은 언제나 말쑥하고 거만했는데 이렇게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다.그럼에도 윤하경은 잠시 눈길을 준 뒤, 곧 시선을 거두었고 아무 일도 못 들은 듯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발소리를 들은 진해리가 얼굴을 손바닥에 묻은 채 고개를 들더니 울음으로 콧소리가 짙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저 혼자 있고 싶어요.”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법이다. 스스로 감당하고 풀어내야만 했다.“아이는 아직 인큐베이터에 있어요. 지금 아이 곁에는 해리 씨밖에 없어요.”진해리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며 울음을 삼켰다.윤하경은 안쓰럽게 한숨을 내쉬고 병실을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배지훈이 문 앞에 서 있었고 윤하경은 배지훈의 곁에 멈춰 서서 단호하게 말했다.“정말 해리 씨를 위한다면 지금은 그냥 가세요. 더는 상처 주지 말고요.”배지훈의 몸이 휘청거렸다. 분명 키가 훤칠하고 당당한 체구임에도, 지금 윤하경 눈에는 마치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애초에 이런 꼴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서 있을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윤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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