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311 - Chapter 1320

1420 Chapters

제1311화

“대표님.”민진혁이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봤다.“경찰에서 벌써 몇 번이나 우리를 찾아왔습니다...”하지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강현우의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곧장 날아오자 민진혁은 본능적으로 입을 닫았다.잠시 후, 강현우가 낮게 명령했다.“’헤븐’으로 가자.”차가 클럽 앞에 멈추자 강현우는 바로 차에서 내려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익숙한, 그 좁고 음습한 방.문이 열리자 낡은 의자에 묶여 있는 오건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머리카락은 엉겨 붙어서 흘러내리고 옷은 피와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재계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잘나가던 젊은 CEO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처참한 꼴을 하고 있어도 특유의 오만한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온몸이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인데도 그는 여전히 의자에 기대앉아 태연한 척 고개를 들고 있었다.문 여는 소리가 울리자 오건우는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고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려 강현우를 올려다봤다.“허.”입꼬리를 비틀며 피식 웃더니 상체가 흔들릴 만큼 힘없이 떨렸다.그러다 다시 눈을 내리깔고 못 본 척 시선을 거두었다.강현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섰다.차가운 눈빛이 내려꽂혔지만 정작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며칠 동안은 보자마자 주먹이 날아들었고 분풀이를 끝낸 뒤에는 의사를 불러 치료를 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손을 대지 않자 오건우의 눈빛에 잠시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잠깐 강현우를 올려다본 오건우가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왜, 오늘은 때릴 생각 없나?”강현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반문했다.“오건우, 넌 아직도 살려달라고 빌지 않을 거야?”“하하하하...”오건우는 무슨 세상에서 제일 큰 농담이라도 들은 듯 고개를 젖히고 웃어댔다. 그러나 웃음에 실린 힘 때문에 몸 곳곳의 상처가 찢겨 나가듯 아팠고 금세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몸 곳곳의 상처가 함께 터져 나오며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오건우는 이를 악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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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2화

오건우를 자기 손에 오래 붙잡아 두면 결국 경찰이 데려갈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서에 넘기기보단, 차라리 먼저 정신병원에 보내서 맛을 보게 하는 게 나았다.오건우는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듯,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는 이를 악물며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현우를 노려봤다.“죽여. 할 수 있으면 당장 날 죽여.”오히려 그 도발적인 말이 강현우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번지게 했다.“넌 운이 참 좋아. 하경의 뱃속에 내 아이가 있어. 그래서 널 죽이지 않는 거야. 아이에게 업보를 지우고 싶진 않으니까.”“뭐... 뭐라고?”오건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윤하경이... 네 아이를 가졌다고?”강현우는 그 놀란 표정이 영 거슬렸다. 자기 여자를 다른 남자가 그토록 의식하는 모습은 원래부터 집착과 소유욕이 강한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불쾌함이었다.이 악물던 그는 순식간에 손을 뻗어 오건우의 목을 움켜쥐었고 너무 힘을 주어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오건우,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꿈 깨. 윤하경은 내 여자야. 네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숨통이 조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도 오건우의 입가에는 여전히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그럼 날 죽여. 못 할 거잖아.”그는 거칠게 웃으며 다시 강현우를 자극했다.강현우는 오건우를 거칠게 밀쳐내더니 서늘한 표정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고는 문 쪽을 향해 낮게 말했다.“들어와.”곧 문이 열리며 우지원이 안으로 들어왔다.“형.”강현우는 손수건으로 천천히 손을 닦으면서도 고개조차 들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정신병원으로 보내. 원장한테 잘 보살펴주라고 해.”뜻밖의 지시라 놀랐지만 강현우가 오건우를 이렇게까지 살려둔다니 의외라 생각하면서도 우지원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윤하경이 아이를 가진 지금, 강현우가 굳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갔다.“알았어.”우지원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오건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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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3화

하석호는 경찰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우에게 다가갔다.“오늘 저는 현우 씨를 돕고 싶어서 온 겁니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오건우를 풀어주세요. 그가 받아야 할 건 당신의 보복이 아니라 법의 심판이에요.”하석호의 눈빛은 깊었고 말투는 마치 강현우를 생각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하 대표, 지금 당신이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지는 잊지 않았겠죠?”그 말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 있었다. 하석호는 할 말이 막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강현우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집안이 크게 흔들렸을 때 강현우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커녕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그러나 강현우와의 인연도 중요했지만 오랜 친구 오건우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소식을 들은 뒤에도 고민만 하며 시간을 끌다가 오건우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급히 찾아온 것이다.강현우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하석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무슨 뜻인지는 알아요. 현우 씨가 저를 도와준 건 평생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건우도 결국 한 사람의 목숨이에요. 하경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살려주세요. 조건이 필요하다면 뭐든 말씀하세요.”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간절했다. 친구를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강현우는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하 대표, 참 정이 깊으시네요.”비아냥이 섞인 말투에 하석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저도 알아요...”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그때 한 젊은 경찰이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팀장님, 오건우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확인이 떨어졌습니다.”“정신병원?”나이 많은 경찰은 미간을 찌푸리며 하석호를 의심스럽게 바라봤다.하석호는 크게 놀랐다. 오건우가 분명 강현우 손에 있었는데 어떻게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건가. 결국 강현우가 자신이 경찰서를 찾았다는 걸 눈치채고 미리 옮겨둔 게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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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4화

강현우는 늘 바쁘게 지내왔기에 윤하경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아침을 간단히 먹고는 하인에게 부탁해 정원에 요가 매트를 깔고 몸을 풀었다.초여름의 햇살은 따뜻하면서도 눈부셨다.아직 배에 티가 나지 않아 겉보기에는 임신 전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운동 브라와 밀착 요가 팬츠 차림으로 스트레칭하는 윤하경의 몸매는 그대로 드러났고 정수리에 높이 올려 묶은 포니테일 덕분에 작은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고개를 젖히는 순간, 금빛 햇살이 고운 피부 위로 쏟아져 내려 마치 온몸이 빛을 두른 듯 환해 보였다.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자 옆머리 가닥이 가볍게 흔들렸다.그 광경은 현실이라기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득하게 아름다웠다.마침 집으로 돌아온 강현우가 거실의 넓은 통창 너머로 그 장면을 보게 됐다.윤하경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바람의 감촉과 햇살의 따스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뜨겁게 데워진 듯한 한 벌의 재킷이 그녀 어깨 위로 툭 하고 얹혔다.곧바로 익숙한 강현우의 체향이 따라왔다.고개를 젖힌 채 눈을 뜬 윤하경은 빛을 등지고 서 있는 강현우와 눈이 마주쳤다.역광이라 표정은 뚜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 멈칫했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돌아오셨네요?”말은 했지만 요가 자세는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강현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의 동작을 지켜보다가 점점 인상이 굳어졌다.윤하경은 그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식사라도 하실래요? 제가 아주머니께 부탁해서...”하지만 그 말은 끝나지 못했다. 강현우가 갑자기 몸을 굽히더니 윤하경을 요가 매트에서 통째로 안아 올려버린 것이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그제야 윤하경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는데 표정은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굳어 있었다.윤하경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잘만 하고 있었는데 강현우는 또 왜 이러는 걸까.강현우는 그녀의 의아한 눈빛을 읽은 듯,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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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5화

윤하경은 강현우가 화난 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윤하경은 결국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알았어요. 갈아입을게요.”그녀는 맨발로 바닥을 딛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넉넉하고 편안한 홈웨어로 갈아입었다.그 사이 강현우는 휴대폰을 꺼내 민진혁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진혁은 막 집으로 돌아와 백지유를 품에 안고 잠시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화면에 뜬 발신자를 보자마자 곧장 그녀를 놓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백지유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순간 서운함이 올라왔지만 상대가 강현우라는 걸 알자마자 억지로 감정을 눌렀다. 대신 살짝 어두운 눈빛을 감추며 등을 돌렸다.강현우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낮게 지시했다.“여자 보디가드 몇 명 구해.”뜻밖의 말에 민진혁은 순간 멈칫하며 되물었다.“여자 보디가드요? 그건 왜...”강현우는 짧게 인상을 찌푸렸다.“시킨 대로 해. 괜히 묻지 말고.”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민진혁은 전화를 내려다보다 자신이 불필요한 질문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백지유가 침대 한쪽 끝으로 몸을 옮겨 앉아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분위기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웃으며 자신을 반기던 그녀가 이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민진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 곁에 몸을 기댔다.“왜 그래?”백지유는 짧게 코웃음을 흘리고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눈을 감아버렸다.민진혁은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 단단히 갇혔다.민진혁의 품에 갇힌 백지유는 작은 얼굴을 살짝 돌렸지만 삐죽 올라간 입술 끝은 분명 불만을 말해주고 있었다.민진혁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왜 그래, 진짜 무슨 일인데?”백지유는 짧게 코웃음을 흘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오빠는 하루 종일 일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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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6화

백지유는 훌쩍이며 작은 목소리로 민진혁에게 미안하다고 했다.알고 보면 다 아는 이치였지만 마음이라는 게 늘 뜻대로 되지 않아 괜히 사소한 데 집착하며 스스로 힘들어지고는 했다.민진혁은 백지유의 눈물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거친 손끝으로 백지유의 눈가를 조심스레 훑으며 닦아주자 속으로는 더 안쓰러운 마음이 차올랐다. 여자의 눈물이란 언제나 버거웠지만 하물며 그것이 백지유의 눈물이라면 더더욱 가슴을 짓눌렀다.“울지 마. 곧 자리 옮기고 나면 그때는 네 옆에 제대로 있을 거야.”민진혁은 낮게 속삭이며 백지유의 머리를 감싸안더니 고개를 숙여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렇게 보상해 줄게.”그 말과 함께 민진혁은 곧장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순간 놀라 멈칫했지만 곧 민진혁의 품에 몸을 기대며 안겼고 방 안은 금세 포근한 온기로 가득 찼다.한편, 윤하경은 옷장에서 편안한 홈웨어로 갈아입고 나왔다. 루즈한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 대충 올린 단정한 머리까지 더해지니 임신부라기보다는 오히려 대학생처럼 앳된 인상이 더 짙어졌다.그 순간 전화를 막 끊은 강현우의 시선이 윤하경에게 닿았다.그는 무심히 턱을 굳히며 눈살을 좁혔다. 임신한 아내를 마주한 눈빛 속에 알 수 없는 번잡한 감정이 스쳐 갔다.아직 겨우 석 달, 앞으로도 일곱 달은 더 남았다. 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그 시간을 헤아렸다.윤하경은 남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강현우가 얼굴을 찌푸린 걸 보고는 혹시 자신의 옷차림에 문제가 있는지 시선을 내려 확인했다.그러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물었다.“저... 이렇게 입은 게 마음에 안 드세요?”강현우는 얇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짧게 잘라 말했다.“아니야. 아무 문제 없어.”그러고는 대화를 끊듯 덧붙였다.“가자.”“어디로요?”윤하경이 당황해 묻자 강현우는 단호히 말했다.“가보면 알게 돼.”그는 더 기다릴 틈조차 주지 않고 성큼 다가와 윤하경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러고는 계단 아래로 이끄는 듯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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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7화

강현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윤하경 쪽으로 돌아와 직접 문을 열어줬다.“내려.”강현우는 고개를 숙이며 윤하경을 내려다봤다.윤하경은 강현우의 얼굴이 지나치게 굳어 있는 걸 보고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강현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차갑게 물었다.“스스로 내릴래, 아니면 내가 안아줄까?”윤하경은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혼자 내려갈게요.”윤하경은 지난 경험을 떠올리며 얌전히 따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윤하경이 차에서 내려 강현우의 팔에 손을 걸자, 강현우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고 굳게 다물린 입매도 살짝 풀렸다.윤하경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자 다시금 숨이 멎는 듯했다. 끝없이 펼쳐진 장미밭에는 붉은 장미, 흰 장미, 분홍 장미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춤추듯 흔들렸다.윤하경은 자신이 거대한 바닷속에 잠긴 작은 물방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코끝을 스치는 짙은 장미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아찔해, 윤하경은 순간 어지러울 정도였다.강현우는 윤하경의 손을 잡고 꽃밭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윤하경은 그제야 장미로 장식된 무대가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강현우는 윤하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낮게 말했다.“오늘은 리허설이야. 대략 순서만 익혀 두면 당일에 허둥대지 않을 거야.”윤하경은 눈을 크게 뜨며 강현우를 바라봤다.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강현우처럼 바쁜 사람이 이런 준비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윤하경은 강현우가 회사 일에만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웨딩 준비도 차근차근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윤하경은 문득 자신이 그저 뒤에 숨어 누리기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윤하경은 강현우가 본래 형식적인 의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현우가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건 오직 윤하경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뿐이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윤하경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채 가슴이 뭉클하게 저렸다.“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한참을 참다 입을 뗀 윤하경의 목소리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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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8화

“왜 그래?”강현우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우리 부부잖아. 말 몇 마디 나누는 게 뭐 어때서. 심지어 입을 맞춘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지.”말이 끝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윤하경의 입술을 덮었다. 순간 주위에서 장난스러운 야유가 터져 나왔다. 윤하경은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며 재빨리 강현우를 밀어냈다.“이런 데서 장난치지 마세요!”말끝은 차갑게 뱉었지만 붉어진 얼굴은 화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강현우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귀여워 웃음을 터뜨렸다. 윤하경이 화를 낼수록 작은 고양이처럼 보였다. 잔뜩 털을 세워 위협하는 듯하지만 정작 상처를 줄 힘은 없는 모습 말이다.자신이 화를 내는데도 강현우가 웃자 윤하경은 오히려 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강현우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그만 가자. 얼른 끝내고 집에 가서 쉬어.”윤하경은 코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더는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리허설은 결혼식 당일의 순서를 맞춰보는 자리였다. 강현우는 임신한 윤하경을 배려해 절차를 최대한 줄였지만 규모와 화려함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윤하경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십 대의 드론이 불빛을 밝히며 모여들더니 어느새 두 사람의 사진을 만들어냈다.그 순간, 윤하경의 가슴은 알 수 없는 벅찬 울림으로 채워졌다. 강현우와 함께한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많은 어려움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저 하늘에 나란히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인연처럼 느껴졌다.강현우가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 고개를 숙여 물었다.“어때?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아니면 더 하고 싶은 거?”강현우는 윤하경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혹시라도 손을 놓으면 그녀가 금세 지쳐버릴까 두려운 듯 손끝에까지 힘을 주고 있었다.윤하경은 눈가가 붉어지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충분히 좋아요.”하지만 이내 얼굴이 굳더니 무의식적으로 아랫배에 손이 갔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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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9화

강현우는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낮췄지만 발밑은 점점 더 깊게 액셀을 밟고 있었다.윤하경은 자신이 피를 흘리는 걸 본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냉기를 느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아랫배 위에 얹으며 이미 마음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혹시... 이번 생에는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없는 걸까.’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마치 작은 칼날이 심장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처럼 아프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강현우는 차를 광속으로 몰아 불과 십여 분 만에 경성에서 가장 좋은 사립병원에 도착했다. 제대로 차를 세울 틈조차 없이 급히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을 때, 창백해진 윤하경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강현우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몸을 숙여 윤하경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강현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윤하경은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냉철하고 흔들림 없이 모든 걸 장악하는 그였는데 이렇게 손에 땀이 맺히는 모습은 거의 처음이었다.윤하경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힘겹게 대답했다.“응... 괜찮을 거야.”하지만 그 목소리는 떨려 나왔고 스스로도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강현우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병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의사! 빨리 사람 좀 와요!”그의 절박한 외침에 곧 의료진이 들것을 밀고 달려왔다.“환자를 여기 눕히세요.”윤하경은 병상에 누운 채 천장 불빛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봤고 머릿속에는 끔찍한 결과만이 가득 맴돌았다.응급실 문 앞에 다다르자 강현우는 거의 무너진 얼굴로 한 의사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내는 반드시 살려내. 알았어?”그는 낮게 윽박지르듯 이어갔다.“아이보다 어른부터 지켜. 만약 하경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 병원도 끝장이야.”윤하경은 강현우의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가 흥분한 나머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지금 시기에는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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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0화

윤하경은 의사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손을 아랫배에 얹었고 표정에는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의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덧붙였다.“다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그 말은 마치 안심시키는 약처럼 들렸고 윤하경의 눈에 다시금 작은 희망이 떠올랐다.“감사합니다.”윤하경이 고개를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고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별문제 없으면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발걸음을 떼던 의사는 다시 돌아와 당부했다.“앞으로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격한 움직임도 피하시고 한동안은 가능하면 침대에 누워서 쉬세요.”당부를 남긴 뒤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그제야 강현우의 얼굴빛이 조금 누그러졌다.간호사들이 윤하경을 병실로 옮길 때에도 강현우는 윤하경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손을 놓는 순간,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병실 안에 둘만 남았을 때, 그는 곁에 누워 윤하경의 어깨를 감싸안았다.“미안해.”윤하경은 잠시 멍해졌다가 그를 돌아보았다. 강현우가 사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목소리마저 진지했다.“왜 사과하세요? 현우 씨 잘못이 아닌데요.”그러자 강현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내가 널 그 자리에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강현우는 큰 손을 윤하경의 아랫배에 얹으며 낮게 단호하게 중얼거렸다.“이 녀석, 제발 버텨줘야 돼.”윤하경은 그의 손을 가볍게 밀쳐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애까지 겁주지 마세요.”뱃속의 아기가 아직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윤하경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방금 전까지의 긴장된 공기가 조금은 풀려나갔다.강현우 역시 입가에 옅은 웃음을 머금고 윤하경의 머리 위에 턱을 살짝 기대며 그녀의 향기를 들이켰다.잠시 후, 강현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결혼식은 미뤄야겠어. 괜찮아?”윤하경은 문득 그날 보았던 장대한 장미꽃바다가 떠올랐다.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하지만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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