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321 - Chapter 1330

1416 Chapters

제1321화

하석호는 무심결에 강현우 쪽을 힐끗 바라봤다. 강현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박히자 그는 잠시 입술을 다물고는 억지로 미소를 띠며 윤하경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꽃다발을 그녀 침대 머리맡에 올려두었다.“미안해. 요 며칠 좀 바빴어.”하석호는 낮게 중얼거렸다. 강현우가 오건우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뒤, 그곳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처참한 곳이었다. 오건우 같은 사람에겐 친구도 손을 내밀 이도 없었다. 결국 옆에 남아 준 건 오건우뿐이었다.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역시 바쁘신 양반이지.”말투는 짐짓 비꼬는 듯했지만 하석호는 오히려 그게 정겹게 들렸다. 세상 어디에도 이제 이런 말투로 자신을 대할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가슴이 더 무거워졌다.자신이 도와야 할 사람은 윤하경을 다치게 한 장본인이었으니까. 죄책감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와, 억지로 지은 미소마저 쓰디쓰게 번졌다.하석호는 고개를 숙여 윤하경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아? 아기는 어때?”윤하경은 손을 올려 배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다 괜찮아.”아이 이야기를 꺼내자 윤하경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첫날 입원했을 때 말고는 별일 없었고 의사도 하루만 더 지켜보면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윤하경은 배를 살짝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그냥 이 꼬마가 좀 장난꾸러기일 뿐이야.”“석호 씨.”윤하경이 말을 잇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강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다가왔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하석호를 곧게 겨눴다.“그만 가시죠? 하경이도 이제 쉬어야 하니까요.”하석호는 강현우의 말을 듣고 곧장 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얼굴빛이 달라졌다.“저는 제 여동생을 보러 온 겁니다. 강 대표께서는 그것까지 막으실 건가요?”강현우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비웃음을 터뜨린 듯한 얼굴을 했다. 마치 우스운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입가에 서린 냉소가 더욱 짙어졌다.굳이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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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2화

윤하경은 도저히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강현우와 하석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로 그렇게 팽팽히 맞서는 건지, 그게 궁금해 밤새 뒤척이다 결국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하석호는 이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복잡하다 해도 결국은 피를 나눈 친오빠였고 예전에도 자신을 도와준 적이 많았다. 윤하경은 강현우와 하석호 사이가 더 틀어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그렇게 밤새 잡념에 시달린 탓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강현우는 그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뭐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윤하경은 이미 며칠간 강현우의 세심한 돌봄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별다른 말 없이 순순히 몸을 맡겼다. 씻고 나온 뒤, 병원복 대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윤하경은 곧장 강현우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차는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창밖 풍경이 점점 황량해지자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여기까지 와서 뭐 하려고요?”강현우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 화면을 잠시 확인하더니 덮어버리고 짧게 대답했다.“곧 알게 돼.”더 묻는 건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약 20분쯤 지나 차는 커다란 철문 앞에 멈췄고 윤하경은 그 위에 쓰인 ‘경안 정신병원’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눈썹이 움찔하며 저절로 찌푸려졌다.“정신병원? 여기는 왜...?”강현우는 여전히 단호했다.“잠시 후면 알게 돼.”철문이 천천히 열리자 차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곳은 정신병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차갑고 음울한 감옥 같았다.윤하경은 이유 모를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그 순간, 그녀의 어깨 위에 따뜻한 체온이 깃든 외투 하나가 조심스레 얹어졌다.강현우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윤하경 어깨에 걸쳐주며 물었다.“춥지 않아?”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춥진 않은데... 들어오자마자 이곳 분위기가 너무 으스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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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3화

강현우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 윤하경은 결국 지하층 가장 끝에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방문은 안팎으로 겹겹이 잠겨 있었고 윤하경은 괜스레 강현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이 사람... 이렇게까지 잠가둬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에요? 설마 도망칠까 봐 그런 거예요?”강현우는 특별한 감정도 없이 담담히 대답했다.“그럴지도 모르지.”그는 윤하경의 손을 이끌어 어느 문 앞에 섰다. 병실처럼 가운데에 작은 유리창이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유리를 통해 비친 방 안은 어두웠고 침대 끝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헐렁한 환자복 차림에 어깨가 처져 있었지만 등에 힘을 주고 곧게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윤하경은 눈살을 좁히며 중얼거렸다.“어딘가 익숙한데... 누구지?”곧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봤다.“대체 누군데요?”강현우는 차갑게 입술을 다물었다가 낮게 말했다.“네가 아는 사람이야. 지난번 널 납치했던 배후지.”“뭐라고요?”윤하경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납치범이라니...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요?”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자신과 얽힌 원한은 이미 대부분 끝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강현우는 비웃듯 짧게 웃더니 옆에 서 있던 중년 남자를 흘끗 바라봤다.그는 곧장 앞으로 나서더니 문을 두드렸다.“오건우, 손님이 왔어.”“오건우...?”그 이름을 듣는 순간, 윤하경은 눈이 커졌다. 믿기지 않는 듯 방 안의 넓은 어깨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방 안에 앉아 있던 초라한 남자의 모습이 믿기지 않게도 오건우였다.윤하경은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지난번에 본 오건우는 여전히 잘나가는 듯 기세가 등등했는데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이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웠다.그는 마치 자신임을 확인시키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는 비웃음 섞인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강현우와 윤하경을 본 순간 그 웃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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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4화

방 안의 오건우는 갑작스러운 자극에 몸부림치듯 떨기 시작했고 곧 고통에 찬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원장이 잠시 망설이다 강현우와 윤하경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대표님, 사모님... 환자가 발작 증세를 보입니다. 치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강현우는 짧게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오늘은 여기까지지.”그는 윤하경의 어깨를 감싸안고 병실을 벗어났다.납치의 배후가 누구였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윤하경의 마음은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긴 표정에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원장은 두 사람을 따라오며 최근 상황을 보고했다.“대표님, 경찰이 며칠 사이 여러 차례 다녀갔습니다. 사모님 납치 사건과 관련해 계속 조사 중입니다. 저희도 최대한 협조했지만 오건우가 전혀 입을 열지 않아 진척이 없습니다.”강현우는 코웃음을 흘리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예, 대표님.”원장은 두 사람이 차에 오르는 걸 끝까지 배웅하다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천천히 발길을 돌려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차 안은 한동안 고요했다. 윤하경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마음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다.그러던 중 강현우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무슨 생각해?”낮고 차가운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내가 오건우한테 너무 잔인했다고 생각하는 거야?”윤하경은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오랜 시간 강현우를 지켜온 경험상, 이건 대답을 잘못하면 곧장 불길이 치솟을 질문이었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한참을 고르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럴 리 없죠. 현우 씨가 그렇게까지 한 건 저를 위해서잖아요. 제가 그걸 잔인하다고 하면 제가 너무 배은망덕한 거죠.”강현우는 윤하경의 말을 듣자마자 몸에 걸쳐 있던 냉기가 조금 누그러졌다.“정말 그렇게 생각해?”“당연하죠.”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현우가 듣고 싶어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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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5화

강현우의 표정만 봐도 윤하경은 이미 답을 알 수 있었다. 하석호가 굳이 경성까지 온 건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오건우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니 강현우가 하석호를 볼 때마다 눈빛이 그렇게 싸늘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아마 하석호가 직접 강현우 앞에서 오건우를 대신해 선처를 부탁했던 모양이었다. 그만 놓아주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됐다.윤하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중간 콘솔 위에 올려져 있던 강현우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렇게 오래 함께해왔는데도 윤하경은 여전히 강현우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특히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앞 유리를 통해 비스듬히 스며들어 그의 옆얼굴을 비추는 순간, 그 단정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더 선명히 드러났다.매일 보고도 가끔은 이렇게 새삼스레 놀라곤 하는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어쩐지 엉뚱하다는 걸 깨닫고 윤하경은 마음을 다잡았다.“석호 오빠는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예전에 저한테도 많이 도와줬고요.”윤하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오건우 때문에 부탁했다 해도 그건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잖아요.”윤하경은 하석호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그 입장이었다면 친구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끝까지 한 번쯤은 살려달라 빌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최소한 할 만큼 했다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을 테니까.하지만 강현우는 그런 간청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크다.강현우는 코끝으로 비웃음을 흘리듯 짧게 웃었다.“그래서 넌 아직도 내가 무자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윤하경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어떻게 그래요. 이렇게까지 절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서 저는 오히려 고맙기만 한걸요.”강현우의 미간이 살짝 풀리더니 곁눈질로 윤하경을 바라봤다.“오늘따라 말이 꽤 예쁘네. 혹시 숨겨둔 꿍꿍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에이, 무슨 소리예요.”윤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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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6화

예전 같았더라면 지금처럼 강현우가 냉정하게 굴면 윤하경은 겁부터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윤하경은 강현우가 결코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윤하경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이렇게 무섭게 굴면 아이가 놀라잖아요.”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떨어뜨려 윤하경의 아랫배를 바라봤고 차갑던 눈빛이 순간 부드럽게 풀렸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황 집사한테 말해.”“네.”윤하경은 처음 강현우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가 섬뜩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강현우가 한 번 마음을 주면 끝도 없이 아낌없이 감싸주는 사람이란 걸 이제 알게 됐다.윤하경은 강현우가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곧장 부드러운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눈을 천장에 고정한 채로, 아까 정신병원에서 본 오건우의 처참한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오건우는 예의 바른 사람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특별히 나쁘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그렇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윤하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건우가 왜 자신을 납치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는 당당하고 의욕 넘치던 사람이 이제는 답답하고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다니 그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때, 침묵을 깨는 진동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윤하경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열어보니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소지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사진 속 소지연은 극지방 어딘가에 있는 듯, 두툼한 패딩을 입고 귀여운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얼굴에는 선글라스를 걸쳤지만 활짝 웃으며 드러낸 붉은 입술에는 자유와 즐거움이 묻어났고 등 뒤 하늘에는 찬란한 오로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윤하경은 사진만 봤는데도 소지연의 웃음에 전염된 듯 마음이 절로 밝아졌다.잠시 후,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하경아, 나 지금 아스이란드야.”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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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7화

유호천은 격앙된 소지연의 반응에 얼굴이 굳더니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했다.그러자 소지연이 손을 번쩍 들어 막아섰다.“거기서 멈춰. 더 이상 오지 마.”유호천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그는 그대로 제자리에 서서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소지연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억지로 숨을 고르려 했다.스스로 다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 마주친다 해도 그냥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자고.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고.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막상 다시 보니 억눌렀던 감정이 제멋대로 터져버렸다.한참 만에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소지연은 다시 눈을 떴다.여전히 열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유호천을 바라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유호천, 다시는 날 찾지 마. 몇 번이나 말했잖아.”이 말은 이미 수없이 해왔던 말이었다. 하지만 유호천은 늘 못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너 혼자 외국에 있으면 위험해. 난 그냥...”“유호천.”소지연이 단호하게 끊었다.“내가 위험하든 말든, 이제 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우리, 이제는 다 큰 어른이잖아.”소지연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분명했다.“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그 담담한 말이 오히려 유호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지연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유호천은 소지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예전처럼 가볍게 웃던 눈빛은 사라지고 꾹꾹 눌러 담은 감정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그는 어렵게 소지연의 일정을 알아내고 몰래 따라온 끝에 결국 이렇게 들켜버렸다.소지연이 자신을 혐오한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을 접으려 해도 매번 그녀가 꿈에 일상에 끊임없이 나타나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다른 어떤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늘 소지연뿐이었다.마치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주문이라도 걸린 듯 말이다.그래서 더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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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8화

“그 분...”프런트에 있던 직원이 막 대답하려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어 유호천을 흘끗 보더니 얼굴빛이 단번에 싸늘해졌다. 순간, 그는 유호천을 수상쩍은 인간 취급하며 표정을 굳혔다.“죄송합니다. 저희는 고객의 정보를 어떤 경우에도 공개할 수 없습니다.”“만약 손님이 연장을 안 하시면 방은 다른 고객께 배정하겠습니다.”예상치 못한 냉대에 유호천의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이 호텔은 원래라면 자신이 발도 들이지 않을 허름한 숙소였다. 소지연이 머물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것뿐.어릴 적부터 온 세상을 떠돌며 살아왔지만 호텔 직원에게 이렇게 대놓고 눈총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만 지금은 어찌할 수 없었다.그는 결국 얼굴을 굳힌 채 가방에서 검은색 블랙카드를 꺼내 내밀었다.“연장해 주세요. 계속 묵을 거니까.”직원은 코웃음을 치며 결제를 처리했지만 여전히 싸늘한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소지연은 창밖 끝없이 이어진 눈밭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객실 전화를 걸었다.“도시락이랑... 와인 한 병 부탁드려요.”마음이 복잡할 때면 늘 술이 먼저 떠올랐다.잠시 뒤,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열자 아까 그 청년이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객님, 당분간은 가급적 객실에만 계시고 돌아다니지 마세요.”소지연은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직원은 방금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까 하다가 괜히 겁을 줄까 싶어 곧 말을 바꿨다.“큰일은 아니고요. 그래도 혼자 여행 중이시잖아요.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여기는 한국만큼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무슨 일 생기면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그는 메모지 한 장을 뜯어 휴대폰 번호를 적어 건네며 덧붙였다.“제 이름은 오윤입니다.”소지연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오윤은 서둘러 몸을 돌려 문을 닫아버렸다. 허공에 손을 멈춘 채 멋쩍은 웃음을 지은 그녀는 손을 내려놓으며 잠시 눈썹을 치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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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9화

소지연의 머리는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병을 더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곳은 낯선 이국땅. 괜히 과음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결국 포기했다.그녀는 바닥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큰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그려는 것이었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리고는 했다.옷을 벗어두고 욕조에 몸을 담근 소지연은 고개를 젖혀 욕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결국 떠오른 것은 또다시 유호천의 모습이었다.분명 마음을 다잡고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잊어버리려 애써왔는데도 그는 끊임없이 불쑥불쑥 나타나 그녀를 괴롭혔다.소지연의 가슴속이 알 수 없는 짜증으로 뒤엉켰다. 욕조 가득 피어오르는 뜨거운 수증기는 그녀의 머리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고 결국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으며 졸음에 잠겨버렸다....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욕조 안의 물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에취!”깨어나자마자 튀어나온 건 재채기였다.“내가 언제 잠든 거지...”소지연은 중얼거리며 황급히 욕조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러나 오랜 시간 물에 몸을 담근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욕조에서 한 발을 빼는 순간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그 순간,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동시에 다리 쪽에서 뚝하는 소리가 울린 것을.“끝났다...”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동시에 다리를 파고드는 극심한 고통에 소지연은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차갑고 축축한 타일 바닥에 쓰러진 채,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뼛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응급 지식이 떠올라, 함부로 움직였다간 다친 부위를 더 망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그래서 그대로 누운 채 한참을 버텼다. 혹시 조금 쉬면 나아질까 싶었지만 반 시간이나 지나도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이미 종아리 부근이 붓기 시작한 게 눈에 띄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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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0화

오윤은 유호천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더니 차갑게 말했다.“손님, 지금 하시는 건 불법입니다. 만약 계속 이 여자분을 괴롭히신다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원래 성격이 급한 유호천은 그 말에 곧바로 욱해버렸다. 안에서 소지연이 분명히 구조를 요청하는데도 끝내 문을 열지 않자 결국 그는 성질을 못 참고 직원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문 열 거야, 안 열 거야? 당장 열어!”키가 큰 유호천이 몸을 숙이자 체격 차이 때문에 오윤은 전혀 버티지 못했다.하지만 그는 겁먹지 않고 눈을 치켜뜨며 맞받았다.“손님, 제발 진정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찰을 부를 겁니다.”“안에서 분명히 구조 요청하는 거 안 들려!”유호천의 목소리는 화로 가득 차 커졌다.순식간에 주변에 머무르던 투숙객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윤은 잠시 고민하듯 이를 악물더니 곧 소지연의 방 쪽을 바라보고 낮게 말했다.“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말 안에 계신 분이 도움을 요청하신 거라면 문을 열겠습니다.”그러면서 유호천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이제 손 좀 놓으시죠.”유호천의 두 눈가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불꽃이 일렁였지만 잠시 후 이를 악문 채 결국 손을 놓았다.그리고 남은 건 단호한 한마디뿐이었다.“어서 문 열어.”오윤은 대꾸하지 않고 구겨진 옷깃을 펴 정리한 뒤, 유호천을 곁눈질로 째려보며 소지연의 방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잠시 귀를 대어 소리를 들어본 뒤, 문을 두드렸다.“소지연 씨, 안에 계십니까?”아무 대답이 없자 오윤은 다시 물었다.“소지연 씨, 도움이 필요하신가요?”욕실에서 이미 목이 다 쉬도록 울부짖고 있던 소지연은 마침내 들려온 목소리에 눈가에 기쁨이 번졌다.“네, 저 지금 도움이 필요해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제발 문을 열고 들어와 주세요! 그리고 구급차도 좀 불러주세요!”소지연은 있는 힘을 다해 문 쪽으로 소리쳤다.오윤은 귀를 문에 붙인 채 그녀의 말소리를 듣고서야 유호천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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