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481 - Chapter 1490

1621 Chapters

제1481화

스티븐이 잠깐 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의 부상은 심각합니다. 치료는 장기적이라 이렇게 빨리 효과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먼저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강현우가 입 끝을 살짝 올렸다.“그래요? 그런데 백 선생님의 치료를 받는 동안, 다리에 반응이 왔습니다.”스티븐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강현우를 보더니, 다시 백중인을 힐끗 돌아봤다. 백중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쓰던 도구를 차분히 정리했다.“말도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스티븐이 고개를 저었다.강현우는 짧게 비웃고는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민진혁, 스티븐 박사님을 모셔다드려.”민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티븐 앞에서 손짓했다.“스티븐 박사님, 이쪽으로 오시죠. 그동안의 치료비와 약속드린 일당은 한 푼도 빠짐없이 정산해 드리겠습니다.”스티븐이 다시 한번 백중인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굳게 깨물고는 무표정하게 따라나섰다.백중인이 약상자를 덮으며 강현우를 보았다.“마음 단단히 먹게. 다음 차수 치료는 지금보다 더 아플 거야. 아직 한참 더 버텨야 해.”강현우가 짧게 웃으면서 대답했다.“나을 수만 있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얼마 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강현우의 눈빛에는 결심이 또렷했다.백중인이 혀를 차듯 말했다.“사람은 괜찮은데 어쩌다 이렇게 험한 일만 겪나. 사람 인생이란 게 말이야, 명예와 이익을 너무 바라면 안 돼.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며 조용히 흘러가는 것도 큰 복이야.”백중인은 그렇게 말끝을 맺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역시 오래 살수록 세상이 뚫어져 보이는 법이었다.강현우는 휠체어에 앉아 손가락을 천천히 움켜쥐었다가 폈다.휠체어는 복도에 나와 한참을 지나 통유리창 앞에 멈춰 섰다. 이유를 짚기 어려운 초조함이 강현우의 마음속에 스멀거렸다.잠시 후 돌아온 민진혁이 창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강현우를 발견했다.“대표님, 스티븐이... 안 가겠답니다.”강현우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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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2화

강현우는 인파가 오가는 거리 너머로 윤하경만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운전석의 민진혁이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내려가실까요? 하경 씨가 이제 집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습니다.”민진혁은 시계를 흘끗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강현우는 뭐든 번개처럼 밀어붙였는데 지금은 다리 탓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윤하경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늘 당당하고 거침없던 사람이었는데 이 순간 눈빛에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던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강현우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낮게 말했다.“아니야. 돌아가자.”강현우는 또다시 바라보기만 하고 내리지 않았다. 민진혁은 더 설득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말없이 핸들을 돌렸다.윤하경은 강현우가 다녀간 사실을 모른 채, 방숙희와 단지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이혼 협의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정말로 현우 씨와 이혼해야 할까?’윤하경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혼 서류가 있으면 강현우가 직접 마주하러 올지도, 아니면 끝까지 변호사에게만 맡길지도 몰랐다.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확신이 없었기에 낮에 카페에서 갑자기 마음을 접었다.이혼 협의서 아래 적힌 자기 이름을 오래 바라보던 윤하경은 미간을 서서히 찌푸렸다. 누구라도 알아볼 만큼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산전 검진일이 돌아왔다. 원래는 소지연이 함께 가 주기로 했었지만 윤하경은 끝내 소지연을 오지 못하게 했다.소지연과 유호천이 장미자와 크게 부딪친 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요즘 두 사람은 유씨 집안 사람들에게 자주 길목을 막히고 있었다.집을 나서려던 순간, 소지연이 전화를 걸어왔다.“조금만 기다려. 어머님이 또 현관을 지키고 있어.”그러자 윤하경은 담담히 말했다.“괜찮아. 오늘은 나 혼자 갈게.”소지연은 끝내 동의하지 못했지만, 문 앞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 방법이 없었다.윤하경은 산전 검진을 여러 번 다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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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3화

“아!”방숙희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곁에서 윤하경이 짧게 신음을 토했다.방숙희는 도둑이고 뭐고 잊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사모님, 괜찮으세요?”윤하경은 미간을 세게 좁히며 말했다.“의사...”그제야 정신이 든 방숙희가 급히 의사를 불렀다.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현우는 당장 앞으로 나가려다 휠체어에 올린 손끝이 굳어 버렸다.곁에 서 있던 민진혁도 막 내딛던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안 가시겠습니까?”의료진이 분주히 윤하경을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강현우는 입술을 질끈 다문 채 오래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보내. 방금 그놈을 아예 손발을 못 쓰게 해.”강현우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네.”민진혁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무심코 강현우의 손등을 보았다. 곧은 핏줄이 불거질 만큼 휠체어 팔걸이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민진혁은 다시 한번 강현우를 힐끗 보고 속으로 길게 한숨을 삼켰다. 오랫동안 곁을 지키면서 강현우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예전의 강현우는 무슨 일이든 단숨에 해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금, 윤하경이 위급한 순간에도 뛰쳐나가려다 멈춘 것은 지금의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강현우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강현우는 휠체어를 천천히 밀어 병원 쪽으로 향했다.병원 안.강현우는 병실 문 밖에서 가만히 앉아서 안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윤하경 씨, 다행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원래 태기가 조금 불안정한 편인데, 방금 놀라서 태아가 살짝 긴장했을 뿐입니다. 당분간은 아마도 푹 쉬어야 합니다.”윤하경은 배를 어루만졌다. 아기는 금세 진정되었지만 놀란 탓인지 배 속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진정을 되찾은 건 아니였지만 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보호자는요? 몇 가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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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4화

“대, 대표님...”방숙희가 놀라 무심결에 불렀다가, 강현우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치자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졌다.안쪽 침대에 앉아 있던 윤하경이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방숙희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강현우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기침을 한 번 가다듬은 방숙희가 웃으며 둘러댔다.“아니에요. 나가다가 너무 급해서 앞을 못 보고... 하마터면 다른 사람하고 부딪칠 뻔했어요.”몸을 일으킨 윤하경의 시선이 문 쪽에 머물렀다. 휠체어의 발 받침대가 어렴풋이 보였고 팔걸이 아래로 정성스레 다려 칼주름이 또렷한 바짓단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윤하경의 표정이 잠시 굳고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별다른 말을 잇지 않았다.잠깐의 정적 뒤, 방숙희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입원 절차을 밟고 올까요?”“네.”윤하경은 낮게 답했지만 눈은 여전히 문틈에 비친 바짓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방숙희는 강현우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몇 걸음마다 뒤돌아보며 병실을 나섰다.방숙희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은 그저 안타까웠다. 분명 서로를 아끼는데, 자꾸만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지기만 했다.윤하경은 입술을 다문 채 조용히 문 쪽을 바라봤다. 바로 지금 강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한다면, 윤하경은 가방 속의 이혼 협의서는 영영 꺼내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문밖.강현우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대표님.”민진혁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낮게 속삭였다.“아까 그 자식을 붙잡았습니다. 지금... 어떻게 할까요?”강현우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깊게 가라앉아 있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하게 변했다.강현우는 마지막으로 윤하경 쪽을 한 번 더 보더니 휠체어를 돌려 떠났다.짙은 그림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윤하경은 잠깐 굳어 서 있다가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곧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록을 적던 의사가 놀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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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5화

강현우가 어금니를 살짝 깨물고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바라봤다.얇은 입술이 굳게 다물렸고, 짙은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몸부터 잘 챙겨. 나머지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 얘기하자.”강현우가 손짓하자 민진혁이 휠체어를 밀 준비를 했다. 민진혁은 난처한 얼굴로 강현우와 길을 막아선 윤하경을 번갈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윤하경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스쳤다.“아이가 태어나도 이제 현우 씨와는 상관없어요. 우리... 여기서 끝내요.”말을 남긴 윤하경은 더는 쳐다보지 않고 병실 안으로 몸을 돌렸다.강현우는 그 자리에 오래 굳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민진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낼지 망설이던 찰나에야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가자.”그제야 민진혁이 휠체어를 밀어 병실을 벗어났다.헤븐 최상층.복도에 들어서기도 전에, 날 선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민진혁은 본능적으로 어깨가 굳었다. 가방을 훔친 그놈을 생각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둑은 천장 대들보에 묶인 채 매달려 있었고 우지원이 가죽 채찍을 내리치고 있었다.“감히 사모님 가방을 훔쳐? 어?”“잘못했어요. 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짝!”“악!”채찍이 내려앉는 순간, 비명이 방을 뒤흔들었다.강현우와 민진혁이 문턱을 넘자, 우지원에게 얻어맞아 정신이 흐려진 도둑이 미친 듯이 살려 달라고 외쳤다.“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도둑의 눈이 강현우에게 꽂히자 연신 고개를 흔들며 목숨을 구걸했다.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차갑게 바라만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강현우는 길고 단정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제야 우지원이 채찍을 내던지고 다가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형님, 죄송합니다. 요즘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마땅히 걸리는 놈이 없어서요. 순간 참지 못했네요.”강현우는 짧게 대답하고 눈길만 들었다가, 천장 대들보에 매달린 남자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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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6화

어둑한 공간에 강현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번졌다. 듣기에는 낮고 맑은 음색이었지만 귀에 닿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그제야 도둑은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만만할 거라 여겼던 강현우가 이 방에서 가장 냉혹하고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현우는 앉아 있기만 해도 몸에서 새어 나오는 압박감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도둑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구걸하는 말조차 잊은 채 대들보에서 바닥으로 내려졌다.우지원이 혀끝으로 어금니를 한번 눌렀다. 어디서 꺼냈는지 번뜩이는 비수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그제야 도둑은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떤지 알아차렸다. 미친 듯 몸을 뒤로 빼 보았지만 사지가 단단히 묶여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우지원이 허리를 굽히더니 주저함 없이 칼을 휘둘렀다.강현우는 피투성이로 늘어진 도둑을 담담히 내려다보다가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강현우는 휠체어 팔걸이를 잡고 스스로 방에서 빠져나왔다.암실 같은 방을 지나면 곧바로 호화롭게 꾸며진 헤븐의 복도가 펼쳐졌다. 강현우는 늘 머무는 스위트 룸으로 들어갔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윤하경의 흔적이 겹쳤다. 이곳에는 두 사람이 함께한 추억이 적지 않았다.강현우는 병실 앞에서 윤하경이 던진 말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형님, 애들이 그놈을 처리해서 내보냈답니다.”보고하러 들어온 우지원은 강현우가 방 한가운데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보았다. 조금 전 민진혁에게서 대충 사정을 들은 우지원은 콧등을 문지르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형님, 요 며칠 장부를 가져와서 한번 보실까요?”강현우는 대답하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우지원은 강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콧등을 한번 문지르며 말없이 강현우의 뒤에서 함께 섰다.한편, 병원.윤하경은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강현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재생됐다. 방금 쏟아낸 말은 갑자기 흥분되어서 내뱉은 것이었다. 윤하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방금 했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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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7화

“전개가 왜 내가 예상한 거랑 다르지?”소지연이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윤하경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조용히 흘렀다.“지연아, 아마도... 나랑 현우 씨의 인연은 정말 여기까지인가 봐.”윤하경의 말끝에 담긴 허탈함은 또렷했다.밤낮으로 기다려 겨우 마주한 사람인데, 변명 한마디 없이 또 떠나가 버렸으니 누구라도 버티기 어려웠다.거꾸로 생각하면 강현우가 윤하경을 자기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윤하경이 그렇게 느끼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소지연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독이려는 찰나,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사모님, 여사님께서 내려와 식사하시랍니다.”소지연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하경아, 시어머님이 밥 먹자고 부르셔. 일단 다녀올게. 끝나면 바로 전화할게.” “응.”윤하경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전화를 놓은 소지연이 문을 열자, 미소 가득한 가정부가 공손히 말했다.“사모님, 여사님께서 말하시기를 집으로 손님이 오셨으니 내려와서 함께 자리 지켜 달라고 하셨어요. 실례가 되지 않게요.”“알겠어요.”계단을 한참 내려가기도 전에, 거실 쪽에서 맑게 울리는 장미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아유, 아연이는 참 말도 예쁘게 하네.”“아니에요. 아주머니야말로 지난번 뵐 때보다 오늘은 더 어려 보이세요.”거실에 들어서자 장미자가 한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소지연을 본 장미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형식적으로 소개했다.“내 친구의 딸이야. 이름은 주아연이라고 해. 온 가족이 해외에 살고 있어. 이번에 잠깐 들어와서 우리 집에 머물기로 했어.”장미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아연을 돌아봤다.“이쪽은 호천의 아내야. 지연 언니라고 불러.”주아연이 소지연을 힐끗 보더니 밝게 일어나 인사했다.“지연 언니, 안녕하세요.”소지연도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아연 씨, 안녕하세요.”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유호천이 밖에서 들어왔다.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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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8화

주아연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 같은 얼굴이었다.하지만 소지연은 주아연이 자신을 훑을 때 스치는 시선에서, 은근한 도발의 뜻을 분명히 읽었다.그때 하녀가 와서 알렸다.“여사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장미자가 때맞춰 일어나 주아연의 손을 잡고 다정히 토닥였다.“이 애는 참, 아직도 어릴 때처럼 호천의 주위만 빙빙 도네. 먼 길 오느라 피곤했지? 일단 밥 먹고 올라가 쉬어.”주아연은 장미자의 팔을 끼고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대며 살갑게 응석을 부렸다.“알겠어요. 아주머니. 아주머니랑 호천 오빠를 보니까 괜히 신나서 그래요.”장미자는 주아연을 이끌고 천천히 식탁으로 향했다.소지연과 유호천은 한 발 뒤에 따랐다. 소지연이 살짝 눈썹을 올리더니 옆의 유호천을 보고 툭 내뱉었다.“쯧, 이런 착한 여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네.”유호천은 그녀의 말투에 숨어 있는 질투를 눈치채지 못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나도 거의 잊고 있었어.”그 말에 소지연은 눈을 굴렸다.“잊었다고?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역시 여자의 촉은 정확했다. 주아연의 태도에는 분명 남다른 의도가 있었다.아까도 굳이 새언니 대신 지연 언니라고만 불렀다. 결혼한 아내라는 자리를 겉돌게 만드는 호칭이었다.굳이 주아연한테서 인정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소지연의 추측을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했다.식탁에 둘러앉자 주아연은 유호천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그러고는 어릴 적 유호천과 얽힌 추억을 슬쩍슬쩍 꺼내며 분위기를 끌었다.오랜 시간 동안 해외에서 지낸 탓인지, 몸짓과 말투에는 어딘가 해외에 있던 습관이 배어 있었다.주아연은 웃음소리가 큰 편이라 들으면 시원하다 싶었다.다만 소지연 앞에서 유호천과 남다른 사이라는 걸 은근히 과시하지만 않았다면, 꽤 사랑스러웠을 것이다.“호천 오빠, 나 처음 생리 시작했을 때 기억 나? 그때 오빠네 집에서 같이 놀다가 바지에 피 묻은 걸 보고는 거의 울 뻔하면서 병원까지 데려갔잖아.”그러자 소지연과 유호천의 젓가락이 동시에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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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9화

소지연이 이를 꼭 물고 장미자를 바라봤다.“어머니, 제가 어찌 화를 내겠어요. 어머니는 어른이시고 우리는 배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의 말씀과 하시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장미자가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도리를 알면 돼. 살림이란 게 원래 배워야 할 게 많아. 너희 둘은 아예 다시 집으로 들어와 살아. 지난번에는 내가 좀 세게 나갔지. 마음에 두지 마.”소지연은 젓가락을 더 꽉 쥐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옆에서 유호천이 거절하려다 주아연이 놀란 듯 끼어들었다.“어? 호천 오빠랑 지연 언니, 여기서 같이 사는 게 아닌가요?”소지연이 고개를 돌려 주아연을 보았다. 주아연의 눈빛에는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어렸다. 마치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는 일이 큰 잘못인 듯싶었다.주아연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장미자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아주머니, 저라면 아주머니랑 하루라도 더 같이 살고 싶을 것 같은데요.”그러자 장미자가 주아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더더욱 애정이 번졌다.이윽고 주아연이 유호천을 보며 수줍게 말했다.“호천 오빠, 나도 돌아왔고 우리도 오래 못 봤잖아. 잠깐이라도 여기 들어와서 지내면 어때? 그러면 나도 덜 심심할 거야.”난처해진 유호천은 무심코 소지연을 보았지만 소지연은 그를 보지도 않고 가정부에게 말했다.“오늘 음식이 좀 느끼하네요. 녹차 한 잔 우려 주세요.”그 말이 떨어지자, 식탁에서는 유호천을 빼고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장미자와 주아연의 시선이 동시에 소지연에게 꽂혔다.소지연은 돌아서는 눈길을 느끼고 입가를 손끝으로 가볍게 가리며 담담히 말했다.“아연 씨, 왜 그렇게 저를 보세요?”“그냥 느끼해서 그랬어요. 다른 뜻은 전혀 없었어요.”주아연의 얼굴빛이 한층 더 굳었다.장미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 유호천의 찌푸린 이마를 보고는 끝내 삼켰다.소지연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하이힐 끝을 들어 유호천의 발등을 꾹 밟았다.예상치 못한 통증에 유호천이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다.“아!”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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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0화

2층 침실.문을 닫자마자 소지연은 유호천의 손을 탁 뿌리치고 흘겨보더니 화장대 앞에 앉아 휴대폰을 훑기 시작했다.유호천은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뒤에서 팔로 감싸안았다. 큰 몸을 굽혀 턱을 소지연의 어깨에 가만히 올리면서 물었다.“질투한 거야?”소지연이 눈을 한번 굴리더니 유호천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품이 너무 단단해 도리어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질투는 무슨 질투겠어. 나 같은 여자는 질투할 이유가 없겠지. 주아연 같은 여동생하고는 그냥 어릴 적 이웃 사이라면서?”소지연은 일부러 주아연의 나긋나긋한 말투를 그대로 흉내 냈다.소지연이 바보도 아닌데, 주아연이 말끝마다 슬쩍 심어 놓은 속뜻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유호천과 자신이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걸 과하게 티 내는 주아연의 표정에는 가식이 넘칠 지경이었다.유호천이 웃으며 손끝으로 소지연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질투 아니라더니, 말끝마다 질투 냄새가 진하게 나는데?”“코에 문제가 있으면... 병원이라도 가.”“그래?”유호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손끝으로 턱선을 들어 올리더니 입을 맞췄다.입술이 닿기 직전, 유호천의 낮은 웃음소리가 소지연의 귓가에 스쳤다.“그럼 제대로 확인해 볼까.”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호천의 입술이 소지연의 입술을 삼켰다. 두 사람의 숨결과 온기가 겹치고, 키스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방 안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갔고 아슬아슬한 숨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소지연은 억울한 마음에 밀쳐내려 했지만, 유호천은 힘이 세서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유호천은 되레 소지연의 작은 손을 살며시 감쌌다. 그러다 모자란다고 느꼈는지 소지연을 번쩍 안아 올려, 의자에서 떼어 침대 위로 부드럽게 눕혔다.유호천은 소지연의 약점을 너무 잘 알았다. 잠깐 버티던 소지연의 마음도 금세 풀렸고 유호천의 목을 감싸안고 낮게 숨을 토하며 그만하라고 애원했다.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분위기가 점점 더 달아오르는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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