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511 - Chapter 1520

1617 Chapters

제1511화

윤하경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이제 현우 씨가 내 뜻대로 했으니, 난 기뻐해야 하는 거겠지.”윤하경이 하석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우리 둘에게는 아마 지금 이런 상황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결말일 수도 있어.”하석호는 무심코 윤하경을 한번 바라봤다. 윤하경의 눈빛 안에 보이는 단호한 결심을 보고는, 더는 되돌릴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잠시 뜸을 들이던 하석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남은 절차는 내가 처리할게. 넌 모성에 머물면서 편히 지내. 다만 최종 서류를 받는 날에는 네가 직접 한 번은 와야 할 수도 있어.”“시간만 맞으면 갈게.”윤하경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한여름의 모성 풍경은 제법 근사했다. 태양은 하늘에 걸려 대지를 밝히고 길가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분명 활기찬 풍경인데, 윤하경은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서늘했다.돌아오는 길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고 차 안의 공기는 금세 고요해졌다.하씨 가문 저택에 도착하자 윤하경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좀 쉬고 올게. 조금 피곤하고 입맛도 없어. 저녁에는 굳이 나를 부르지 않아도 돼.”말을 마치자마자 윤하경은 바로 돌아섰다. 그 순간, 살짝 올려 있던 입꼬리가 곧바로 내려앉았다. 뒤에 서 있던 하석호는 그 뒷모습에서 어쩐지 옅은 쓸쓸함이 느껴졌다.방으로 돌아온 윤하경은 이불 속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해서 그런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침대에 몸을 눕자마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오래지 않아 윤하경은 깊은 잠에 빠졌고, 바깥에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까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저녁 무렵, 하석호는 가사도우미에게 윤하경의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윤하경이 먹기 싫다 했어도 뱃속 아기를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영양을 챙겨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다시 돌아왔다.“대표님, 문을 오래 두드렸는데도 아가씨가 열어 주지 않으셨어요. 제가 함부로 들어가기도 그래서...”하석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식기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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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2화

하석호가 다시 물었지만 윤하경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석호는 급히 손등으로 윤하경의 이마를 짚고는 문가의 가사도우미에게 말했다.“빨리 의사를 불러와.”곧바로 말을 고쳤다.“아니야. 차부터 대. 병원으로 가야겠어.”그러자 가사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둘러 내려갔다.하석호는 이불을 젖히고 윤하경을 품에 안아 들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본능적으로 윤하경의 배를 한 번 내려다본 하석호는 걸음을 더 재촉했다.차에 오르자 하석호는 윤하경을 차량 안의 침상에 눕히고 운전석에 앉은 기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말을 마친 하석호는 다시 윤하경을 살폈다. 이렇게까지 흔들어 깨워도 윤하경은 마치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하석호는 두 손을 모아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강현우가 서명했다는 사실을 굳이 알린 걸 후회했다.‘혹시 그 사실 때문에 몸살이 난 건 아닐까?’10여분 뒤, 차가 병원 현관에 멈췄다. 미리 연락받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차 문이 열리자마자 들것으로 윤하경을 옮겼다.하석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뒤를 따랐고 얼굴에는 말로 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여러 차례 검사를 마친 의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하 대표님,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순 고열로 일시적으로 의식이 떨어진 상태예요. 다만 뱃속에 아기가 있어 약을 아주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그래서 깨어나는 데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하석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정말 별일 없는 거죠?”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현재 검사로는 이상 없습니다. 혈액 수치가 조금 흔들리긴 하지만 발열로 인한 변화입니다.”그제야 하석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좋습니다. 가장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약으로 치료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깨어나게 해 주십시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료실로 돌아갔다.간호사가 체온을 내리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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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3화

다들 여자의 마음은 바닷속 바늘 같다고들 하지만 민진혁은 정작 자기 대표님의 속마음이야말로 더 알 수 없다고 느꼈다.민진혁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투정은 투정일 뿐이고 일은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다.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민진혁은 강현우와 함께 모성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강현우는 굳은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은 새까맣지만 눈여겨 보다 보면 창밖에는 별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오랫동안 강현우를 모셔 온 민진혁은 지금 그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한참 만에 민진혁이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착륙하면 어디로 모실까요? 마중 나올 사람을 미리 부르려고요.”강현우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낮게 말했다.“병원으로 가.”병원이라는 말을 듣자, 민진혁은 윤하경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짐작했다.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경성에서 모성까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기에 비행기로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착륙하자마자 마중 나온 사람들은 곧장 그들을 병원으로 모셨다.몇 시간이 흘렀지만, 윤하경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우가 도착했을 때, 하석호는 복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이마를 짚은 모습이었다. 인기척이 나자 하석호는 눈을 뜨고, 엘리베이터 쪽에서 휠체어에 밀려 오는 강현우를 바라보았다.사고 이후 둘이 얼굴을 마주한 건 아마 처음이었다.예전에는 늘 몸에서 빛이 나듯이 당당하던 강현우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하석호는 저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하석호가 알던 강현우는 늘 남다른 품위를 지닌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 강현우는 작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하석호는 만약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신이었다면 어떨지 상상했다.만약 자신에게도 강현우와 똑같은 일이 닥쳤다면, 평소 성격이 아무리 온순해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사실 오건우가 죽은 뒤로, 하석호는 강현우를 대하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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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4화

문 앞에 서 있던 하석호가 침묵을 깼다.“이분은 이 환자분의 남편이세요.”“아... 네.” 간호사는 짧게 대답하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윤하경의 처치를 이어 갔다.“상태는 어떻습니까?”강현우는 침대 곁에 앉아, 익숙한 윤하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간호사는 다시 강현우를 흘깃 보고 그의 눈동자에 서린 걱정과 다정함을 읽었다. 잘생긴 데다 아내를 저토록 아끼는 남자인데 휠체어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잠시 안타까웠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강현우의 매서운 시선이 곧장 자신에게로 꽂히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호사는 허둥지둥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큰 문제는 없습니다. 잠시 후면 깨어나실 거예요.”간단히 정리를 마친 간호사가 방을 나갔다.아침 해가 막 떠오르며 병실 창으로 따스한 빛이 스며들었다. 한 줄기 햇살이 정확히 윤하경의 하얗고 고운 얼굴을 비췄다. 강현우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윤하경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햇빛이 얼굴을 스치자 윤하경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강현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문득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이를 악물더니 손을 휠체어의 바퀴에 올렸다. 그리고 윤하경이 눈을 뜨기 전에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병실을 빠져나왔다.밖에서 기다리던 하석호가 다가왔다.“어때요? 깼어요?”강현우는 얇은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곧 깰 거예요. 들어가 보세요.”하석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현우의 말투로 보아 지금 떠나려는 건가 싶었다.“무슨 뜻이에요? 지금 그냥 가려는 건 간요?”하지만 강현우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지금은 아니에요.”하석호는 잠깐 굳었던 표정이 풀리려는데 강현우가 말을 덧붙였다.“적어도 하경이가 깨어나서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떠날 겁니다.”하석호는 물결 하나 없이 평온한 강현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병실 안에서 미세한 기척이 났다. 하석호는 강현우를 흘겨본 뒤 성큼 병실로 들어갔다.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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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5화

예상대로라면 지금 이 순간 강현우는 분명 문밖에서 이 얘기를 몰래 듣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하석호가 잠깐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하지만 나보다 더 조급해 하던 사람이 있었어.”“누구야?”윤하경이 무심코 물었다가 곧 누구를 말하는지 깨닫고 말끝을 삼켰다.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나랑 현우 씨는 이혼할 거잖아. 앞으로 그런 농담은 하지 마.”하석호는 혀로 뺨 안쪽을 살짝 밀어 올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문틈 너머로 휠체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다시 윤하경에게 시선을 돌리며 또렷하게 물었다.“솔직히 말해. 오늘 아픈 것도... 강현우가 이혼 합의서에 이미 서명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무너져서 그런 거지?”윤하경은 순간 굳어버렸고 급소를 찔린 듯 눈빛이 흔들렸다.대답이 없자 하석호가 다시 물었다.“마음에 아직도 강현우가 있는데 왜 굳이 이혼을 하는 거야? 아직 되돌릴 수 있어. 못 놓겠다면... 다시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어.”그 말에 윤하경은 깍지 낀 두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문밖의 강현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큰 숨을 한 번만 크게 쉬어도 안에 있는 윤하경을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사실 강현우는 윤하경의 대답이 무엇일지 누구보다 신경 쓰였다.‘만약에 하경이가...’그러나 다음 순간, 윤하경의 한마디가 강현우의 기대를 순식간에 깨뜨렸다.“이제는... 불가능해.”윤하경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줄은 몰랐던 하석호는 입을 다물며 미간을 찌푸렸다.“정말이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희 둘 다 서로를 아직 놓지 못했어.”윤하경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그건 오빠 착각이야. 나랑 현우 씨는 이제 더는 가능성이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이 얘기는 꺼내지 마.”윤하경은 하석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하석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고 더 말하려던 찰나, 의사가 들어와 진료를 시작했다. 하석호는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물러서며 입을 다물었다.검사를 마친 의사가 하석호를 돌아보며 말했다.“환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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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6화

강현우는 휠체어를 해 뜨는 쪽으로 돌려 앉아 있었다. 주황빛 햇살은 분명 따뜻했지만, 뒤에 선 하석호는 강현우에게서 단 한 줌의 온기도 느끼지 못했다.하석호가 미간을 좁히더니 앞으로 나서 물었다.“방금 하경이가 한 말을 다 들었어요?”강현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담담히 말했다.“네.”짧은 침묵 끝에 강현우가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하경이를 잘 부탁해요.”그 말에 하석호는 눈살을 더 찌푸렸다.“다시 붙잡을 생각은 없어요?”“붙잡는다고요?”강현우는 코웃음을 쳤고 말투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제 꼴 좀 봐요. 하경이가 나한테 시간을 더 낭비하게 할 이유가 있겠어요?”하석호는 강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어젯밤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지금의 강현우는 한층 더 허물어져 있었다. 아까 윤하경의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분명 이 자리에 있는데도 어쩐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강현우는 연기를 길게 토하고 갓 떠오른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깊은 눈동자에 햇빛이 비쳤지만 그의 시선에는 한 가닥의 희망도 없었다.“됐어요.”강현우는 자신을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아마 하경이 말대로, 이게 우리 둘에게는 제일 나은 결말일 수도 있어요.”하석호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계단 쪽에서 쉰 여자 목소리가 터졌다.“강현우, 이 나쁜 자식아!”강현우는 윤하경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휠체어 위로 힘이 풀린 듯 굳어 섰다. 입술로 가져가던 담배도 허공에서 멈췄다.하석호도 윤하경이 뒤따라올 줄은 몰랐던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여긴 왜 올라왔어?”윤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하석호가 밖으로 나가자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던 윤하경은 문틈 사이로 휠체어의 그림자를 보았다. 뒤를 밟아 올라온 옥상에서 마침 강현우의 말을 죄다 듣고 만 것이다.윤하경은 민진혁을 비켜서 강현우 쪽으로 걸어갔다.“그래서... 그게 이유였어요? 날 만나러 오긴 왔으면서도 끝내 마주 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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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7화

민진혁과 하석호가 내려가자, 넓은 옥상에는 윤하경과 강현우 둘만 남았다.강현우 손끝에 밴 담배 냄새에 윤하경이 코끝을 찡그리자, 강현우는 말없이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한마디도 없이 휠체어를 돌려 떠나려 했다.그때 윤하경이 강현우의 팔을 붙잡았다.“강현우!”너무 격해져서인지 윤하경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로웠다. 강현우는 무의식적으로 멈춰 섰고 굳이 억지로 뿌리치지는 않았다.윤하경은 이를 악물고 강현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헤어진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 세기가 지나버린 듯했다.“강현우.”윤하경은 길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은 뒤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강현우는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낮게 말했다.“네가 말한 대로 하자. 이혼해. 널 자유롭게 해 줄게.”“자유?”윤하경이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좋아요. 그럼 아이는요?”강현우의 넓은 손이 순간 굳더니 낮게 말을 이었다.“양육권은 너에게 주고 양육비는 내가 정기적으로...”“강현우!”윤하경은 참지 못하고 강현우의 말을 끊었다. 정말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강현우가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봤고 눈빛에는 잠깐의 흔들림이 스쳤다. 윤하경은 충혈된 눈으로 코앞의 강현우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분명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정작 다시 마주하자 겨우 세운 결심이 산산이 무너졌다.윤하경은 한 걸음 다가섰다. 살짝 부른 아랫배가 강현우의 시선 높이에 딱 맞았다. 윤하경은 몸을 숙여 강현우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아이가... 벌써 움직여요. 가끔은 발길질도 하고, 가끔은 기지개를 켜고, 어떤 날은 뱃속에서 딸꾹질도 해요.”윤하경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하루하루 자라고 있어요. 현우 씨, 평생 저를 다시 보지 않겠다는 거... 정말이에요? 그럼 저는 이 아이에게 새 아빠를 찾아서,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게 할까요?”강현우의 소유욕은 원래 강했고 윤하경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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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8화

아침의 따뜻한 햇살이 꼭 껴안은 두 사람 위로 내려앉으면서 옥상의 풍경에도 금세 온기가 돌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윤하경이 숨이 막힐 즈음에서야 강현우는 윤하경을 놓아주었다.둘은 서로 마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 대신 눈빛만 얽혔고 밀려오던 감정은 끝내 잔잔히 가라앉았다.한참 뒤에야 윤하경이 뒤늦게 몸을 일으켰다.“제가... 선을 넘었네요. 이혼할 거면 그냥 해요.”조금 전의 행동은 순간 욱해서였고, 정신을 가다듬자 윤하경은 자신도 지나쳤다고 느껴졌다.그 순간, 강현우가 다시 윤하경의 손목을 당겨 그녀를 무릎 위에 앉혔다.부상 이후 잠잠하던 강현우의 눈에는 다시 빛이 돌았다.“불을 붙인 건 네가 먼저야. 하경아, 이번에는 후회할 기회가 없어.”복도 끝에서 모든 대화를 또렷이 들은 하석호와 민진혁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민진혁이 히죽 웃다가 곁에 선 하석호를 의식하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하석호가 민진혁을 흘겨보며 낮게 말했다.“그만 봐요. 둘 다 꽤 허기졌을 텐데요.”민진혁은 곧바로 눈치를 채고 오케이 사인을 보내더니, 씩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두 사람이 드디어 화해하면 아래 사람들도 고생이 끝날 것이다. 무엇보다 강현우의 표정부터 달라질 테니까 말이다.하석호는 잠깐 옥상을 둘러본 뒤 아직도 다정하게 얽혀 있는 두 사람을 한 번 더 힐끗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한 시간 남짓 지나, 민진혁이 양손 가득 음식 상자를 들고 병원으로 돌아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즈음, 윤하경과 강현우는 이미 옥상에서 내려와 병실로 돌아와 있었다.두 사람이 마주 보는 눈빛이 어찌나 다정한지 문가에서 지켜보던 민진혁은 괜히 마음이 누그러졌다.“대표님, 아침 식사가 도착했습니다.”민진혁은 일부러 분위기를 깼다.다음 순간, 강현우의 눈빛이 서늘하게 민진혁을 스쳤다.그러자 민진혁은 목을 살짝 움츠리며 변명했다.“그게... 사모님께서 많이 배고프실까 봐요. 두 분은 앞으로도 시간이 많지만 뱃속의 아기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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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9화

강현우는 윤하경이 넘어질까 봐 재빨리 부축했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손이 허벅지와 엉덩이 쪽에 닿고 말았다. 얇은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가 윤하경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윤하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 했고, 그 순간 강현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스쳤다.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윤하경의 심장은 괜스레 빨리 뛰고 있었고 볼까지 달아올랐다.윤하경은 살짝 짜증 섞인 눈길을 보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강현우의 무릎에서 일어났다.“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설령 일부러였어도 괜찮아.”강현우의 저음이 가볍게 울리자 윤하경은 흘겨보며 단호히 말했다.“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강현우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옅게 웃었다.“알겠어. 밥 먹자.”변명할수록 더 구차해질 것 같아 윤하경은 더는 말하지 않고 식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민진혁이 사 온 아침은 두 사람이 좋아하는 메뉴로만 골라 담은 것이었고 호텔에서 포장해 온 탓에 모양도, 향도, 맛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마음의 매듭이 조금 풀려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많이 배가 고파서인지, 윤하경은 요 몇 주 사이 가장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강현우는 옆에서 천천히 식사하면서도 틈틈이 윤하경을 챙겼다.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있어 남들 눈에는 불편해 보일지 몰라도, 그의 동작 하나하나는 여전히 기품이 묻어났다.윤하경은 문득 생각에 잠겼다.‘강현우 같은 사람은 아마 태생부터 남다른 사람일지도 몰라.’하지만 다음 순간, 윤하경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현우의 휠체어에 가 닿았다.윤하경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휠체어로 내려가더니 불에 덴 듯 황급히 비껴갔다. 괜히 강현우가 마음 아플까 봐서였다.“언제 경성으로 돌아가요?”윤하경이 화제를 돌렸다.강현우는 젓가락을 내려두고 존재하지도 않는 얼룩을 닦듯 냅킨으로 입가를 한번 닦으면서 막 대답을 꺼내려는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문밖에서 민진혁이 머리만 내밀어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한 번 훑고는 말했다.“대표님, 백중인 어르신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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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0화

“응. 시간 되면 경성에서 또 보자.”그러자 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갑자기 진지해진 눈빛으로 윤하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시간 나면 반드시 보러 갈게. 그리고 너와 우리 사이는 원래 가족이야. 내 앞에서 괜히 조심할 필요 없어. 할아버지께서는 떠나셨지만 난 널 영원히 내 친여동생으로 생각해. 언제든 난 네 편이야. 만약 강현우가 너한테 진짜로 잘못을 저지르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네 편에 서서 강현우를 혼내줄 거야.”하석호의 표정은 단호했고 늘 온화하던 얼굴에도 서늘함이 스쳤다.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시계를 흘깃 봤다.“시간이 다 됐어. 우리는 먼저 가볼게. 안녕.”윤하경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하석호가 웃음을 터뜨렸다.“뭘 그렇게 진지하게 인사하는 거야? 보고 싶으면 오면 되고 내가 보고 싶으면 가면 되는 거지. 비행기 한 번 타면 끝이잖아.”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윤하경은 담담하게 다시 손을 흔들었다.“그럼. 다녀올게.”하석호는 짧게 대답하고 윤하경이 발을 옮겨 기내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제야 비로소 비행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창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강현우와 눈이 마주쳤다.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는 순간, 남아 있던 껄끄러움이 스르르 가시는 듯했다.비행기가 이륙한 뒤에야 하석호는 발길을 돌렸다.요 며칠 하성 그룹은 몹시 바빴다. 아래 전문 경영인들이 하나같이 반기 실적 보고를 준비하느라 회의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석호에게는 그런 회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비행기 안.윤하경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읽고 있었고 강현우는 맞은편 테이블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일에 몰두했다.문득, 윤하경이 옆눈으로 강현우를 한번 훔쳐보았다.한 번 보고, 또 한 번 보았다.윤하경이 몇 번을 힐끔거리다 못해, 강현우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서류를 내려놓더니 윤하경을 바라봤다.“뭘 그렇게 봐?”그러자 윤하경은 슬며시 웃으며 가까이 붙었다. 턱을 강현우의 어깨에 살짝 문지르면서 대답했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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