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641 - Chapter 1650

1653 Chapters

제1641화

‘말을 저렇게 뻔뻔하게도 하네...’윤하경이 고개를 조금 뒤로 젖히고 강현우를 올려다봤다.신이 정성 들여 빚어 놓은 얼굴을 달고서 어떻게 저리 태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윤하경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현우 씨는 매일 바쁘시잖아요. 하셔야 할 일도 많을 텐데 제가 더 붙잡고 있으면 폐만 끼치죠.”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슬쩍 문을 다시 한번 잡아당겼다.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결국 포기하고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묻는 눈으로 강현우를 노려보았다.강현우는 문틀에 어깨를 기댄 채 턱을 살짝 들어 올리고 담담하게 말했다.“나 요즘 되게 한가해. 회사 일도 내가 직접 안 나서도 되는 게 대부분이야. 시간 많아.”한마디로 정리하면 안 나간다는 뜻이었다.“...”윤하경은 문틀만큼 우뚝 선 강현우를 올려다보며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더 줬다.바로 옆에 윤하민이 서 있다는 걸 생각하며 입가까지 치밀어 오른 말들을 겨우 삼켰다.둘은 한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눈으로만 버텼다. 누가 먼저 물러설지 버티기라도 하듯,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결국 이 기묘한 정적을 깬 건 윤하민이었다.“엄마, 나쁜 아저씨랑 놀아도 돼요?”윤하경이 뒤돌아보자, 윤하민이 살금살금 다가와 윤하경 팔을 살짝 잡고 속삭였다.“나쁜 아저씨 너무 불쌍해 보여요...”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 윤하민에게 살짝 안심시키듯 미소를 보내 주었다.윤하경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다시 한번 강현우를 훑어보았다.오늘 여기서 확실히 정리를 안 해 두면 이 사람은 정말 밤새도록이라도 문 앞을 지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들어와요.”말투만 들으면 영 반갑지 않은 티가 역력했지만 강현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윤하민에게 말했다.“하민아, 성 모양 놀이터 주문해 놨어. 이따 재밌게 놀아. 좋아?”윤하민은 두 손을 마구 치며 환하게 웃었다.“좋아요! 너무 좋아요!”그 모습을 바라보는 윤하경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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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2화

윤하경은 서둘러 윤하민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했다.“엄마가 좀 나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그러자 꼬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강현우를 버려두고 곧장 윤하경의 팔을 꽉 잡았다.“싫어요. 엄마, 어제도 그렇게 말했잖아요.”“하지만 엄마는 진짜로 일이 있어.”윤하민은 동그란 눈을 또르르 굴리더니 말했다.“그럼 나쁜 아저씨도 같이 가요? 난 나쁜 아저씨랑만 놀게요. 엄마 일하는 거 안 방해할게요.”윤하민은 윤하경 팔에 매달리다시피 꼭 껴안고 허락하기 전엔 절대 안 놓겠다는 태도였다.윤하경은 잠시 말없이 윤하민을 내려다보면서, 어제 일 때문에 윤하민의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고 강현우를 바라봤다.“그럼 강 대표님은 시간 괜찮으세요?”서먹한 호칭을 들은 강현우는 입가를 살짝 굳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오늘은 하루 종일 하민이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그럼... 부탁드릴게요.”윤하경이 먼저 차에 올라타자, 강현우와 윤하민도 곧바로 그 뒤를 따라 탔다.윤하민은 두 사람 사이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한 번 번갈아 보더니 작은 얼굴 가득 알 수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윤하경은 윤하민과 강현우 말고도 경호원 몇 명을 더 데려왔다.주아연이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사람을 넉넉히 챙겨 온 것이다.검은색 차량 여러 대가 줄지어 서서 소지연이 머무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도 이미 그 건물 아래에 세워진 몇 대의 검은 차와, 주변을 지키고 서 있는 검은 옷의 경호원들이 눈에 들어왔다.“강 대표님은 차 안에서 하민이랑 같이 있어 주세요. 저는 위에 잠깐 다녀올게요.”윤하경이 이렇게 말하자, 강현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윤하경은 이미 몸을 돌려 차에서 내려 버렸다.주아연 쪽 사람들은 윤하경이 다가오는 걸 보자 곧장 발을 옮겨 길을 막으려 했다.하지만 곧바로 그녀 뒤에 일렬로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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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3화

윤하경은 아마 이렇게까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막상 입을 뗀 지금, 그 말에서는 추호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주아연은 너무도 도가 지나쳤다. 소지연은 이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자기 아이 하나 품에 안고 싶을 뿐인데 그조차 용납하지 못해 이렇게까지 찾아와 난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애초에 남의 가정에 끼어들어 상위 포지션에 올라선 사람이면서도 이렇게 소란을 피울 낯짝은 또 있었다.경성 상류 사회에 주아연 같은 처지는 적지 않지만 일을 이만큼 크게 벌이며 시끄럽게 구는 사람은 아마 주아연 하나뿐일 것이다.윤하경의 서슬 퍼런 말에 주아연은 잠시 얼어붙었고 윤하경을 바라보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네가 감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입으로는 큰소리쳤지만 눈빛은 이미 겁을 먹었다는 걸 다 말해 주고 있었다.윤하경이 가볍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그럼 한번 해 보든가.”“주아연, 내가 너라면 집에서 얌전히 꽁꽁 숨어서 배의 애나 무사히 낳을 생각을 하지,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고 치진 않을 거야. 그런데 넌...”윤하경이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며 비웃음이 묻어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참 불쌍할 만큼 멍청하네.”“너!”이제 와서 윤하경은 주아연의 바닥 사정도 웬만큼 파악하고 있었다. 주아연의 부모는 한때 국내에서 장사를 해 그럭저럭 돈을 모았지만 온 가족이 전 재산을 들고 외국으로 나갔고 거기가 더 잘될 거라 스스로 믿었다.그러나 몇 년 사이 그 돈을 거의 다 까먹었고 체면 차리던 상인은 어느새 평범한 노동자로 전락해 번 돈으로 겨우 끼니만 이을 정도가 되었다.주아연이 다시 이쪽으로 돌아온 것도, 장미자가 뭔가 달콤한 미끼를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조건이라는 건 결국 그 집 아이를 하나 낳아 주는 대가였을 게 분명했다.“네가 외국에서 뭐 하고 살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뭐라고?”윤하경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바늘처럼 날카로웠고 주아연의 안색은 눈에 띄게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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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4화

윤하경은 순식간에 기가 꺾여 급히 다가가 소지연을 부축해 앉혔다.“나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 마음에 담아 두지 마.”달래는 말을 건네며 소지연을 소파까지 데리고 가 조심스레 앉혔다.“근데 너한테 이런 일이 생겼으면 제일 먼저 나부터 찾았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주아연이 정말 문 부수고 들이닥쳤을지도 몰라.”보모가 눈치 있게 다가와 뜨거운 물을 따라 내밀었고 소지연은 컵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에야 겨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하경아, 네가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아. 근데... 나도 너무 지쳤어. 방금은 솔직히... 주아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만 하면 그냥 같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목소리는 낮았지만 방금 전 주아연의 말이 얼마나 깊이 상처를 남겼는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윤하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급하게 소리쳤다.“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 때문에 네가 죽어? ”주아연이 쓰레기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소지연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윤하경을 달랬다.“그냥 말만 그랬던 거야.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런 인간 하나 때문에 목숨 걸기는 너무 아깝지.”그 말을 듣고서야 윤하경의 가슴이 조금 내려앉았다.요즘 소지연이 겪는 일이 워낙 많으니 잠깐 극단적인 생각이 스쳐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소지연의 성격은 자기와 비슷해서 한 번 휘청해도 끝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주저앉는 타입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여러 일들을 떠올리다가 윤하경이 쪼그려 앉아 소지연을 올려다봤다.“지연아, 아예 나랑 같이 북유럽으로 돌아갈래? 거기 가서 아이 낳고 그다음 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되잖아.”소지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침묵했다.그러다 고개를 저었다.“하경아, 조금만... 시간 좀 줘. 내가 더 생각해 볼게.”윤하경은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억지로 다그치지 않았다.“알겠어. 그럼 나도 당장은 안 나가고 당분간은 국내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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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5화

‘설마 하민이가 진짜 맞힌 걸까?’소지연은 살며시 배를 내려다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사실 유호천과 같이 있었던 그날은, 이미 서로 헤어진 뒤였다. 둘은 완전히 끝난 사이였고, 그날도 우연히 마주쳤다. 소지연은 마음이 너무 아파 괜히 술을 과하게 마셨고, 그 꼴을 유호천이 보고 말았다.그리고 그날 밤,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잠자리를 가졌다.소지연은 유호천과 주아연 사이의 일을 알게 된 뒤로, 유호천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만큼 역겨웠다. 그러니 그날 밤은 정말 사고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 단 한 번의 사고로 소지연은 아이까지 생겨 버렸다.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소지연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질 만큼 괴로웠다.아이가 찾아온 때가 영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과연 이 아이를 지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끝없이 고민했다.하지만 결국 소지연은 혼자서라도 이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다.이미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더는 제멋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이번 아이를 잃어버리면 앞으로는 정말 다시 임신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세상에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남지 않은 마당에, 자신과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인 존재가 곁에 있어 준다면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일지 소지연은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결국 일이 터졌다.산전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거기서 유호천과 주아연을 마주친 것이다. 소지연도 이렇게 빨리 변수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목숨까지 잃을 뻔했으니 말이다.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소지연은 하민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몰래 상상했다.그래서 지금처럼 윤하민이 아무렇지 않게 남동생이라는 말을 꺼내자, 소지연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그래도 이내 웃음을 띠며 물었다.“그럼 나중에 하민에게 동생이 생기면, 잘 챙겨 줄 거야?”“네.”윤하민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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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6화

“헛소리하지 마.”소지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하경이 먼저 쏘아붙였다.말을 내뱉고 나서야, 본인도 반응이 조금 과했다는 걸 깨달았다.윤하경은 코끝을 손가락으로 슬쩍 문질렀다.“에이, 그런 거 아니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랑 그 사람은 절대 다시 안 이어져.”소지연이 낮게 응하고는 말했다.“그래도 보기에는... 강현우 씨가 아직 포기 못 한 것 같던데.”“그건 현우 씨 본인 사정이고...”윤하경은 병실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한 번 더 되풀이했다.“지금 나한테서 강현우 씨는 그냥 하민의 아빠일 뿐이야. 그 외에는 아무 관계도 없어.”윤하경은 말끝을 힘주어 마무리했다.“정말 단 하나도 없어!”소지연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아.”소지연은 입으로 맞장구를 치면서도 말투에는 못 믿겠다는 기운이 가득했다.윤하경은 결국 손을 들어 소지연의 이마를 톡 하고 튕겼다.“야, 소지연, 장난치지 말고... 나 진심이야.”그래도 아까보다 얼굴빛이 한결 나아진 소지연을 보니, 윤하경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윤하경은 소지연 맞은편에 다시 앉으며 물었다.“지연아, 우리 집으로 옮겨서 같이 살래?”“됐어.”소지연이 고개를 저었다.“여기 사는 데도 이제 익숙해졌어.”윤하경은 소지연이 괜히 자기한테 짐이 되기 싫어서 그러는 걸 알고 있었다.괜히 우기면 더 부담될 것 같아, 잠시 생각을 고르고는 방향을 바꿨다.“그럼 이렇게 하자. 여기 네 집에 경호원 몇 명만 두고 갈게.”소지연이 입술을 달싹이며 거절하려 하자, 윤하경이 먼저 말을 잘랐다.“거절은 안 돼. 네 안전부터 챙겨야지.”“주아연은 지금 완전 제정신 아닌 거 알지? 또 언제 무슨 짓 할지 누가 알아.”아까도 주아연이 윤하경을 보고 물러난 건 무서워서였을 뿐, 소지연을 두려워해서는 아니었다.언제 또 발작하듯 달려들지 모르는 사람이라, 윤하경은 차라리 사람을 붙여 두는 편이 마음이 놓였다.소지연은 잠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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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7화

막상 와 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찾기 쉽지는 않았다.윤하경은 하이힐을 신고 골목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그래도 오래 헤맬 필요는 없었다. 키 큰 강현우가 윤하민을 목말 태우고 있어서, 사람들 틈 사이에서도 두 사람은 금방 눈에 띄었다. 잘생긴 얼굴에 좋은 체격, 거기에 귀여운 아이까지 매달려 있으니 자연히 시선이 쏠렸다.윤하민은 양손에 탕후루 두 꼬치를 들고 있었다. 입에 잔뜩 묻혀 먹으면서도 강현우 팔을 잡고 더 사 달라고 졸랐다.“나쁜 아저씨, 저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요.”“날씨가 너무 추워. 그건 안 돼.”강현우가 단칼에 잘라 말하자 윤하민의 표정이 금세 구겨졌다. 다시 한번 불쌍한 척하려던 찰나,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윤하경이 눈에 들어왔다.윤하민은 바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엄마! 엄마, 여기요!”“여기 맛있는 거 진짜 많아요!”강현우도 그쪽을 바라봤다.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네온사인 불빛 사이로 흰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윤하경이 사람들 틈에 서 있었다. 다들 바삐 지나가는데,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윤하경뿐이라 더 눈에 띄었다.윤하경은 곧장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단 건 좀 그만 먹어.”윤하경이 윤하민을 한번 째려보더니 손을 내밀었다.“이제 내려와. 슬슬 집에 가야지.”윤하민이 주위를 한 번 훑어보고 입술을 내밀었다.“엄마, 조금만 더 구경하면 안 돼요? 진짜 조금만요.”윤하민이 눈을 살짝 접어 올리며 올려다보자, 눈동자가 촉촉하게 빛났다. 윤하경은 금세 마음이 약해졌다. 윤하민의 저런 표정을 보면 예전부터 속수무책이었다.결국 윤하경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윤하경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말했다.“하민이는 아홉 시에 자야 하니까, 집에는 여덟 시까지는 도착해야 해. 딱 그때까지만이야.”“와, 좋아요! 엄마가 제일 좋아요.”윤하민이 들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윤하경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여전히 예쁜 얼굴에 웃음까지 더해지니, 주변 풍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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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8화

윤하민은 이런 게임은 처음 보는지 눈을 반짝이며 신나서 손뼉을 쳤다.강현우도 그런 윤하민을 다정하게 내려다보더니, 부스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사장님, 이걸 가지려면 얼마나 쏴야 해요?”강현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커다란 판다 인형이었다.가게 사장이 윤하민과 윤하경까지 한 번 훑어보더니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백 발 중에 아흔 발만 맞추시면 드립니다.”“좋습니다.”강현우가 낮게 대답하더니 윤하민을 슬쩍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었다.“잘 보고 있어. 네가 갖고 싶은 건 내가 이겨서 다 줄게.”“감사합니다!”윤하민은 깡충깡충 뛰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탕후루를 한 입 더 냠냠 베어 물었다.강현우가 에어건을 집어 드는 순간, 훤칠한 키에 단단한 어깨까지 더해져 그 자리만으로도 시선을 모았다.잠시 뒤에는 구경꾼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사격 실력이 궁금해서인지, 딴 마음으로 쳐다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현우는 이런 시끌벅적한 곳에 거의 와 본 적이 없었다.어릴 때부터 금수저로 자란 덕에, 사격하고 싶으면 개인 사격장과 코치가 늘 준비돼 있었으니 굳이 이런 곳까지 올 일은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겁이 날 이유도 없었다. 강현우는 진짜 총을 다뤄 본 사람이었다.총구가 부드럽게 표적 쪽으로 돌아가고, 방아쇠가 한 번씩 당겨질 때마다 오색 풍선들이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연달아 터졌다.강현우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하지만 윤하민에게는 달랐다.윤하민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마구 흔들며 환호했다.“대단해요. 나쁜 아저씨 최고예요. 더 힘내요!”옆에서 지켜보던 윤하경은 강현우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걸 보고 코끝을 한번 문질렀다. 그러고는 윤하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역시 딸은 아빠를 딸바보로 만든다더니...’윤하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윤하민은 강현우에게 확실히 특별한 존재였다.윤하경이 강현우를 안 지 벌써 여러 해지만, 강현우의 이런 얼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강현우는 늘 표정이 잘 드러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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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9화

강현우가 윤하민을 얼마나 예뻐하는지는 윤하경도 모를 리가 없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현우는 아까보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윤하민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앉아서 자기보다 큰 인형을 꼭 껴안고 이리저리 바라봤다.집에 있는 값비싼 인형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윤하민은 이미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모습이었다.윤하민은 강현우의 기분이 살짝 상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인형을 한참 쓰다듬던 윤하민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올려다봤다.“나쁜 아저씨, 아까는 진짜 멋있었어요.”“저도 가르쳐 줄 수 있어요?”원래 잘하는 사람에게 눈이 가기 마련이다.강현우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실력이었지만, 윤하민 눈에는 그야말로 영웅처럼 보였다.강현우는 잠깐 멈칫하더니 금세 굳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강현우가 고개를 숙이자, 동그래진 윤하민의 눈과 바로 마주쳤다.맑고 동그란 눈빛에는 존경이라는 감정만 가득했다.강현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손을 뻗어 윤하민의 코를 살짝 집었다.“당연히 가르쳐 줄 수 있지.”그렇게 말한 뒤, 강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길을 슬쩍 윤하경 쪽으로 보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내뱉듯 말했다.“그럼 내일 아저씨가 사격장에 데려가 줄까? 오늘 여기 온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야.”내일이라는 말이 나오자, 창밖을 보고 있던 윤하경의 시선이 바로 돌아와 강현우 얼굴에 꽂혔다.“내일은 안 돼요.”강현우가 말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윤하경이 먼저 반응했다.말이 떨어지자마자 윤하민은 잽싸게 몸을 돌려 엄마를 바라봤다.“엄마, 왜요? 왜 내일은 안 되는데요? 저 진짜 가고 싶은데...”윤하민은 손으로 윤하경 팔을 붙들고 양쪽으로 흔들어 대며 애교를 부렸다.강현우는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얼굴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윤하경은 결국 못 이기는 듯 한숨을 쉬었다.“내일은 엄마가 좀 쉬고 싶어서 그래. 다음에 가면 안 될까?”말이 떨어지자마자 윤하민의 어깨가 축 처졌다.윤하민은 강현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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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0화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가로등에서 떨어지는 은은한 노란 불빛이 차에서 내리는 윤하경 위로 내려앉으니, 낮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부드러운 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강현우는 이유 없이 눈동자가 잠시 깊어졌다가, 윤하경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금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내일 너랑 하민이 데리러 올게.”강현우가 그렇게 말할 때는, 딱 봐도 목표를 달성한 사람 특유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억지로 내려보려 해도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키 큰 강현우를 올려다보던 윤하경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요.”그 말만 남기고 윤하민의 손을 잡아 바로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상황 파악이라곤 전혀 못 하는 윤하민은 끝까지 문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럼 내일 꼭 일찍 와야 해요! 저 늦잠 안 잘 거예요!”강현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길가에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이 문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제야 차로 돌아가 떠났다.집에 돌아온 윤하경은 윤하민을 데리고 같이 씻고, 둘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온종일 한시도 쉬지 못했던 탓에 윤하경은 온몸이 축 늘어졌다.‘해외에서 지낸 4년 동안에도 이렇게 피곤했던 날이 있었나...’윤하경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윤하민을 품에 안은 채 금세 곯아떨어졌다.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닌 모녀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그래서 다음 날 아침, 강현우가 집에 도착했을 때도 두 사람은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결국 가사도우미가 방문을 두드리며 불러서야 겨우 눈을 떴다.“앗, 큰일 났어요!”윤하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윤하경을 바라봤다.“엄마, 우리 늦잠 잔 거 아니에요? 빨리 일어나요, 빨리요!”윤하경은 말이 막 나올 지경이었다.“괜찮아. 아직 시간이 넉넉해.”윤하경이 윤하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경성에서 강현우가 윤하민을 데리고 나가 놀겠다고 한 날에, 지각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세수하고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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