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921 - Chapter 930

959 Chapters

제921화

강현민의 눈빛에는 점점 더 짙은 절망이 드리웠다.지금 이 순간, 강현민이 해야 할 일은 절대로 강현우에게 윤하경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만약 강현우가 윤하경이 어디 있는지 알아버리면 이제는 아무런 뒷배도 없는 자신은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강현민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봤다.“나를 해외로 보내줘. 그리고 내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약속해. 그러면 윤하경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강현우는 이런 조건이 나올 줄 알고 있었던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사람이란 다 자기 분수를 모른 채 마지막까지 쓸데없는 발악을 하려 드는 법이었다.강현우는 비웃듯 말했다.“네가 지금 나한테 협상할 만한 위치라고 생각해?”그 말을 하며 강현우는 강현민의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강현민은 아파서 이가 갈릴 정도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강현우에게 함부로 대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 남자가 진짜 미친놈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괜히 기분을 건드렸다가는 여기서 바로 끝장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았고 목숨이 달린 일 앞에서 강현민은 체면이고 뭐고 내던졌다.“현우야, 나... 나 그래도 네 삼촌인데. 제발 한 번만 살려줘. 응?”지금은 강호석이 더는 자기 편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강현민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목숨만은 건지고 싶어서 강현민은 비굴하게 애원했다.“삼촌?”강현우가 냉소적으로 웃었다.“그래, 내 좋은 삼촌이지.”조금 뜸을 들이던 강현우는 갑자기 강현민을 놔줬다.“좋아. 윤하경이 어디 있는지 말해. 그러면 내가 널 해외로 보내줄게.”옆에 있던 우지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강현우를 바라봤다.“형, 그 사람 그냥 놔둬도 되는 거야?”우지원은 분명히 이런 불씨를 남기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막 입을 열려던 우지원을 강현우는 손짓으로 말리며 눈빛을 보냈다.강현민은 이렇게 순순히 약속을 들어줄 줄 몰랐는지 얼굴에 한순간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그래, 좋아. 비행기만 태워주면 바로 주소 말해줄게.”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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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어쩐지 윤하경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강현우는 잠시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기억난 거야?”윤하경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구하러 오실 줄 몰랐어요.”차 사고 현장에서 자신을 데려간 사람이 강현우 쪽이 아니란 걸 알았기에,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와 준 게 믿기지 않았다.강현우는 그런 윤하경을 보고 얼굴이 더 굳어졌다. 그는 다가와 대충만 감겨 있는 다리를 확인하며 물었다.“걸을 수 있어?”윤하경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못 걷겠어요.”강현우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비웃듯 말했다.“이게 네가 그렇게 복수하겠다고 했던 실력이냐?”강현우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윤하경은 이를 악물며 억울하고 화난 표정으로 강현우를 노려봤다.하지만 강현우는 그런 하경의 모습을 보고 전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침대 곁으로 다가와, 몸을 굽혀 윤하경을 번쩍 들어 안았고 윤하경은 깜짝 놀라 버둥거렸다.“내려주세요. 혼자 갈 수 있는데요.”윤하경이 버둥거리자 강현우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짝 위협하듯 말했다.“계속 이러면 진짜 내려놓는다.”순간 움찔한 윤하경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휠체어에 태워서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그래?”강현우가 팔에 힘을 살짝 빼자 윤하경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그러자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고 결국 강현우의 코트 깃을 꽉 움켜잡았다.강현우는 진짜로 그녀를 바닥에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윤하경이 아래로 미끄러질 듯한 그 짧은 순간만 그대로 두고 곧바로 다시 품에 단단히 안아 올렸다.“아까는 안 안긴다고 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냐?”강현우는 장난스럽게 윤하경이 자기 옷깃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봤다.그 눈빛에는 놀림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 윤하경은 그런 시선이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어졌다. 강현우가 자기를 일부러 놀리는 걸 알기에 괜히 더 얄밉고 속상했다.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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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윤하경의 병실과 검사 일정이 모두 정리되고 나서야 유호천이 겨우 틈을 내어 강현우를 찾아왔다.“형, 벌써 업계에 소문 다 났어. 강씨 집안에서 형이랑 완전히 연 끊는다고.”강현우는 그 얘기를 들어도 특별히 동요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 뭐, 신경 쓸 일 아니네.”유호천은 답답한 듯 이마를 짚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형, 이건 사실상 형이 집안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잖아. 아무렇지도 않아?”강현우는 잠시 유호천을 바라보다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런 일 안 생겨도 걔네가 내가 회사 잡는 거 순순히 둘 리 없지.”유호천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됐어.” 강현우는 유호천의 말을 끊고는 단호하게 말했다.“유진 그룹이랑 강한 그룹 관련된 모든 협력 사업, 오늘부로 다 끊어. 당장 처리해.”유호천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 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강현우가 한 번 더 유호천을 돌아보며 말했다.“아직도 왜 거기 서 있어? 빨리 연락하러 가.”그제야 유호천은 정신이 든 듯, 급하게 밖으로 나가 집에 연락을 넣었다.[강현우, 강한 그룹 대표직에서 전격 사임!]다음 날 아침, 모든 뉴스와 기사 첫머리에는 큰 제목이 걸렸다.[강현우, 강씨 가문과의 관계 단절!]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뉴스가 나왔다.두 소식이 동시에 퍼지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각종 추측과 뒷이야기가 오갔다.누구는 강현우를 안타까워했고 또 누구는 그의 몰락을 바라며 비웃었다. 그동안 강현우가 만든 적이 적지 않았던 만큼, 뒤에서 손뼉 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한편, 윤하경이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 소지연은 이미 침대 옆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윤하경이 눈을 뜨자 소지연은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다가왔다.“하경아, 드디어 깼네?”반가움에 소지연은 윤하경의 팔을 덥석 잡았지만 윤하경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빼며 물러섰다.아직 소지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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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백서진이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지난번에 사용했던 동전을 다시 꺼내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그의 손끝이 살짝 힘을 주자 동전이 테이블 위에서 빠르게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윤하경이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 창밖으로 들어오던 햇살이 이미 어스름하게 저물고 있었다.윤하경은 잠시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순간 알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을 넋 놓고 있는데 백서진이 다정하게 다가와 윤하경의 시선을 끌었다.“윤하경 씨, 몸 상태는 괜찮으세요?”윤하경은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아직 대답할 틈도 없이 병실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열렸다.각진 얼굴에 무표정한 강현우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강현우는 윤하경을 잠깐 바라본 뒤, 곧장 백서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어떻습니까?”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고 백서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짧게 답했다.“방금 끝나서 아직 잘 모르겠네요. 마침 대표님도 오셨으니 직접 물어보시죠?”강현우는 그 말에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묘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곧장 윤하경 곁으로 다가와서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조용히 물었다.“나, 기억나?”한 치의 미사여구도 없이 던진 말이었다. 윤하경은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저었다.강현우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혔고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차갑고 서늘한 인상 탓에 지금처럼 화가 난 얼굴은 더더욱 위압적으로 느껴졌다.강현우는 곧 백서진을 다시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분명한 불신과 의심이 담겨 있었다.백서진은 억울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세요?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강현우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내가 널 부른 게 시간 낭비는 아닌가 해서.”백서진은 억장이 무너진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런 대우는 처음이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금방이라도 뭔가를 터뜨릴 듯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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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5화

윤하경은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야. 생각난 건 없어.”“아...”소지연은 짧게 대답하더니 살짝 실망한 듯 입술을 내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괜찮아, 넌 꼭 괜찮아질 거야.”소지연은 옆에 앉아 있던 간식을 윤하경 앞으로 내밀었다.“자 맛있는 거 좀 먹어봐.”윤하경은 소지연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소지연은 혼자 소파에 앉아 간식을 꺼내더니 TV를 켜면서 물었다.“보고 싶은 거 있어?”윤하경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난 아무거나 틀어놓을게.” 소지연은 심심한 듯 리모컨을 내려놓고 감자칩 봉지를 뜯었다.적당히 틀어놓은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여자 앵커가 단정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번 사태로 인해, 강한 그룹 전 대표가 해임되며 주가가 다시 한번 요동쳤습니다.”“주가가 20% 넘게 하락했습니다.”“강현우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며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됩니다...”윤하경은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순간 얼어붙었고 소지연도 고개를 들어 TV를 보고는 혀를 차듯 말했다.“전에는 너랑 강현우가 이어진 게 강현우 쪽만 엄청 이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 사람이 너 때문에 여기까지 한 걸 보면 진짜 대단한 남자 같긴 해.”윤하경이 고개를 돌려 소지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소지연은 어깨를 으쓱였다.“너는 아직 모르는구나?”이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아, 그래. 네가 기억을 못 하니까 강현우도 아직 말 안 해줬겠지.”감자칩을 하나 집어 먹으면서 소지연은 윤하경 쪽으로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당겼다.“나 유호천한테 들었는데 강현우가 너 때문에 집안하고 완전히 등을 졌대. 지금은 집안에서도 이름을 뺐고 강한 그룹 대표 자리에서도 쫓겨났어. 완전 가족이랑 인연 다 끊은 거지.”윤하경은 그 말을 듣고 놀라 눈을 크게 떴고 충격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소지연은 그 모습을 보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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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윤하경은 위층으로 올라갔고 우지원은 1층에 남아서 윤하경이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조용히 집을 나섰다.현관 앞에 서서 한 번 더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끝내 떠올리지는 못했다.‘헤븐’으로 돌아간 우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현우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때 우지원이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형수님은 무사히 모셔다드렸습니다.”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형수님이 언제쯤 대표님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강현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한가해?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준비됐지?”우지원은 즉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모두 약속대로 정리됐습니다.”...윤하경은 넓은 별장 방에 혼자 앉아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강현우가 올 줄 알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한 시가 넘어서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욕실에는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했고 윤하경은 고개를 젖힌 채 흐르는 물줄기를 한참 맞으며 씻었다. 얼굴을 감싸는 따뜻한 물에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고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샤워를 마치고 두툼한 가운을 입은 채 욕실을 나서던 순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강현우가 소파에 앉아, 머리를 살짝 숙인 채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방안은 어두웠고 그의 또렷한 이목구비는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윤하경은 순간적으로 짧게 소리를 질렀지만 강현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시 서서 마음을 가라앉힌 뒤, 조심스럽게 다가가 강현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강현우...?”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깊이 잠든 것 같던 강현우가 눈을 뜨며 윤하경의 손목을 확 잡아끌었고 윤하경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윤하경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안 자고 있었어요?”강현우는 옅게 웃으며 윤하경을 바라봤다.“왜, 이제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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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7화

“놓으라고요.”윤하경이 작게 말했지만 강현우는 오히려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를 더 놓아주기는커녕, 몸을 숙여 윤하경의 목덜미에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윤하경은 순간 그가 또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긴장했지만 예상과 달리 강현우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른 채, 따뜻한 숨결만 그녀의 피부 위에 조심스럽게 닿았다.살짝 간지럽고 묘하게 마음이 간질거리는 감각이었다.윤하경은 그런 강현우를 억지로 밀어내지 못했고 그저 그의 온기와 체취에 온몸이 자연스럽게 휘감기는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방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결국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침이 밝아올 때쯤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눈을 떴을 때, 밤새도록 곁에 엎드려 있던 강현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대신 자신 위로는 고급스러운 담요 한 장이 덮여 있었다.윤하경은 길게 속눈썹을 떨며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그제서야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강현우를 발견했다.어젯밤과는 달리, 오늘의 강현우는 한결 또렷한 눈빛이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털어 말린 채, 심플한 그레이 홈웨어만 걸치고 있었지만 날렵한 몸매는 감춰지지 않았다.예전처럼 차갑고 거리를 두는 분위기는 조금 옅어졌고 잠시 동안 그의 눈길이 윤하경에게 머물렀다.“일어났어?”강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윤하경은 민망함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일어났어요.”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강현우가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다.“준비해. 이따가 나랑 같이 나가자.”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옷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은 윤하경은 소파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왔다.이미 강현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었고 윤하경도 옷방에서 적당한 옷을 골라 입었다.겨울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날씨였지만 집 안은 늘 따뜻했고 준비된 옷들 역시 얇아 보여도 충분히 포근했다.윤하경은 몸에 꼭 맞는 검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무릎 아래까지 오는 롱코트, 그리고 머리는 단정하게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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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8화

’포레스트’는’ 워낙 가격대가 높은 곳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강현우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요즘 강현우는 연예인보다도 더 자주 뉴스와 잡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인물이었다. 윤하경은 그 시선들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 소문으로 들었는데 대표님께서 이제 강한 그룹과 아무 관계도 없으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데 다시 오셔도 괜찮으세요?”강현우는 메뉴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가볍게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누가 여기가 강한 그룹 소유라고 했어?”윤하경은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여기가 원래 강현우 개인 소유였구나. 괜히 걱정했네.’윤하경은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럽게 웃었다.“괜히 오해했네요. 아무리 회사에서 나오셨어도 대표님은 여전히 대표님이시네요.”강현우는 짧게 코웃음을 치며 종업원을 불렀다. 그리고 메뉴판을 윤하경에게 건네줬다.“먹고 싶은 거 시켜.”“저도 같은 걸로 해주세요.”윤하경은 별로 식욕이 없어 짧게 대답했다.그러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고 잠시 뒤 두 사람 테이블 앞에 누군가가 다가왔다.강현우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가 곧 무심한 척 시선을 돌렸다.이때 오건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두 분, 여기서 이렇게 식사하시는 모습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오건우는 강현우를 보며 존댓말로 말을 이었다.“요즘 대표님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많던데 그래도 여유 있게 식사하실 수 있는 모습을 보니 다행입니다.”강현우는 오건우를 잠깐 쳐다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식사하실 거면 자리에 앉으시고 아니면 양해 부탁드릴게요.말은 무심하게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느껴졌다. 오건우는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역시 대표님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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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9화

오건우는 이쪽저쪽에서 모두 무시당하자 순간 표정이 굳었지만 곧 다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강현우를 바라봤다.“대표님, 오늘은 이렇게 여유로워 보이시는데 과연 내일도 기분이 좋으실지 모르겠네요.”오건우는 일부러 의미심장하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내일 강한 그룹 대표 취임식에 저도 초대받았거든요. 대표님은 안 가십니까? 본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누군지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오늘 오건우는 처음부터 강현우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예전부터 오건우는 강현우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고 오늘은 대놓고 그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 강현우가 몰락했다는 소문이 퍼진 뒤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뒤에서 몰래 수군거릴 뿐, 앞에서 노골적으로 비웃는 사람은 오건우가 유일했다.사실, 오건우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현우는 오건우의 말을 듣고도 무심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랜만에 뵙는데 오 대표님이 요즘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잡담하는 법을 배우셨나 봅니다.”말은 고상한데도 대놓고 상대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느껴졌다.이 말에 윤하경이 순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두 남자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자 윤하경은 쑥스러운 듯 컵을 들어 입을 축이고는 손짓하며 말을 넘겼다.“두 분 계속하세요.”오건우가 다시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힐끗 확인한 오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하경을 향해 말했다.“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네요. 다음에 시간 날 때 다시 연락드릴게요.”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아까 한 말, 꼭 생각해 보시죠.”오건우가 자리를 뜨고 나자 마침 음식이 나왔다. 강현우는 휴대폰을 내려두고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고 윤하경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몇 번 힐끔 바라보다가 자기 밥을 먹었다.식사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식사를 마치고 둘은 자연스럽게 차에 올랐다.출발한 뒤, 차 안은 적막했다. 얼마간 침묵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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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0화

윤하경은 자신이 꽤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강현우에게 다 들켜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억울한 듯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봤다.“언제부터 아신 거예요?”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들킬 만한 실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눈치챘는지 알 수 없었다.강현우는 그 말을 듣자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뻗어 윤하경의 턱을 잡았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했다.“역시 나한테 거짓말했구나.”그는 이를 악물며 낮게 말했다.“간도 크지.”강현우의 살벌한 분위기에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올려다봤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저도 이제야 기억이 돌아왔어요.”윤하경은 조심스레 강현우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강현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정말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강현우는 짙은 미간을 더 깊게 찌푸리며 어둡고 깊은 눈빛으로 윤하경을 내려다봤다.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이 상당했다.“왜 말하지 않았어?”그는 매서운 어조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언제까지 날 속이려고 했지?”솔직히, 이 순간의 강현우는 누구라도 겁을 낼 만했다. 윤하경도 그가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다들... 대표님이 저 때문에 가족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혹시 저랑 아무 상관이 없어지면 대표님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사실 윤하경은 강현우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걸 내던질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마음 한쪽에 죄책감이 남았다. 사실은 자신의 기억이 돌아온 건 지난번 백서진이 진료하러 왔을 때였다.그때 이미 기억이 돌아왔지만 막상 강현우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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