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931 - Chapitre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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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1화

“말해 봐, 용천수가 너한테 뭐라도 했어?”강현우는 윤하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집어삼킬 것처럼 날카로웠고 그 분위기만으로도 쉽게 긴장이 감돌았다.잠시 망설이던 윤하경은 입술을 꾹 눌러 깨물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손을 뻗어 강현우의 목을 가볍게 감았다.“응, 만약에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도 했으면 대표님은 어떻게 할 건데요?”장난기가 어린 듯한 표정으로 살짝 눈썹을 올리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저랑 이혼하실 거예요?”그 말을 들은 강현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표정이 더없이 싸늘해졌다.“이혼?”차가운 목소리로 코웃음을 치며 낮게 말했다.“네가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그러면서 그녀의 허리 옆을 살짝 집으며 장난스레 덧붙였다.“정말 대단한 거짓말쟁이야.”그사이 차가 이미 아파트 앞에 도착해 있었고 운전기사가 차를 세운 뒤 강현우가 먼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윤하경이 아직 내리지도 못했는데 강현우가 다시 돌아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차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꺅!”갑작스럽게 강현우에게 안겨 세상이 한 바퀴 도는 것만 같았고 어느새 그녀의 몸이 그의 어깨에 메진 채 집 안으로 옮겨졌다.힘도 좋고 체격도 큰 강현우가 작고 가벼운 윤하경을 어깨에 둘러메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예전처럼 익숙한 듯 능숙했다.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망설임 없이 곧장 침실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침대 위에 툭 내려놓았다. 강현우는 조금의 다정함도 없이 윤하경을 침대 위에 던져 놓았다.폭신한 침대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윤하경의 몸이 이불 사이로 파묻혔고 언제 벗겨졌는지 신발은 보이지도 않았고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이 침대 밖으로 살짝 드러나 있었다.강현우는 고개를 숙여 윤하경의 발목을 손으로 잡아 끌어당겼고 그와 동시에 그의 큰 몸이 자연스럽게 그녀 위로 드리워졌다.“아... 아파요!”발목이 아파서 눈물이 맺힌 눈으로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말했다.강현우의 손은 남다르게 크고 거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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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강현우는 한선아가 왔다는 소리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결국 윤하경 위에서 몸을 일으켜 내려가려 했고 윤하경은 그가 방해받아 짜증 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윤하경은 가볍게 기침하며 강현우에게 말했다.“먼저 내려가 봐요. 어머님이 오셨으니 분명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아요.”강현우는 별다른 대답 없이, 조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여기서 얌전히 있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윤하경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 모습이 정말 순진해 보여서 강현우는 잠시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평소처럼 순하게 대답하는 윤하경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순하게 말하는 모습에는 오히려 더 경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강현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방을 나가기 전에 한 마디를 남겼다.“정말로 알아듣고 있는 게 좋을 거야.”마치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뜻이 분명히 느껴졌다.윤하경은 그 말에 잠깐 입술을 다물었지만 이미 강현우는 멀어지고 있었다.강현우가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거실에 서 있는 한선아의 모습이 보였다.“무슨 일로 오셨어요?”그가 다가가 묻자 한선아는 노여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곁에 있던 장식품을 집어 들어 힘껏 던졌다. 유리 장식품이 그의 발치에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강현우는 한 번 내려다볼 뿐 태연하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별일 없으면 여행이나 더 다녀오시죠.”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런 말투가 오히려 한선아를 더 화나게 했다.“현우야,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해?”한선아는 이를 악문 채 그를 쏘아붙였다.“그동안 우리가 강씨 가문에서 쌓아온 모든 걸 이렇게 무너뜨릴 거니? 지금 그 여자 때문에 강한 그룹도 다 버리겠다는 거야?” 화가 치밀어 모든 말을 쏟아내는 한선아는 평소의 우아하고 단정한 귀부인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그때, 2층.윤하경은 강현우의 말을 듣지 않고 맨발로 방을 살짝 빠져나와 계단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거실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언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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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한선아는 강현우가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더욱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하지만 강현우의 말 역시 그녀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한선아는 앞으로 다가와 손을 번쩍 들어 강현우를 때리려 했다.그러나 강현우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선아를 뚫어지게 바라봤고 한선아의 손은 결국 허공에 멈춰버렸다.“강현우, 너 정말 미쳤구나.”한선아는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손을 내렸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우를 바라봤다.“너는 정말 이 모든 걸 할아버지에게 다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셈이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데 지금은 다 잃어버렸잖아.”한선아는 마치 힘이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아 소파에 털썩 앉았고 강현우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넘긴 건 제 손에 있던 강한 그룹의 지분이에요. 어머니 지분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여전히 이 집의 둘째 며느리로 계세요.”강현우의 말을 듣고 한선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네가 싸우지 않겠다고 해도 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한선아가 위층을 쳐다보자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지금 윤하경은 한선아에게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꼈다. 이 모든 결과가 사실 자신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일이 결국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일까 한선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두고 볼 거야. 네가 이 여자한테 얼마나 휘둘리는지.”한선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 나가면서 강현우가 아끼는 골동품 꽃병을 집어 던져버렸다. 강현우는 바닥에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흘끗 보기만 하고 아무렇지 않게 컵에 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물컵을 내려놓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윤하경은 이미 눈치를 채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강현우가 들어왔을 때 윤하경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에게 뜨거운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저기...”윤하경이 돌아서 그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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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강현우는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윤하경을 침대 위로 밀어 눕혔다.방 안에 퍼진 아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마저도 금세 햇빛의 온기를 머금은 듯했다.강현우는 평소에는 늘 차분하고 냉정한 듯 보이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윤하경은 자신이 도대체 몇 번이나 그의 손에 휘둘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머리가 어지러워 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겨우 몸을 일으켜보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침대로 쓰러질 것 같아 속으로 강현우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냉정하고 엄격해 보이는데 침대 위에서만큼은 정말 상대를 봐 주지 않고 지칠 때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란 생각에 투덜거렸다.윤하경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고 아직 맨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욕실 쪽에서 강현우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내가 말한 대로 진행해. 오늘부터 강한 그룹은 전면적으로 견제해. 만약 그쪽에서 나를 찾으면 내가 지금 경성에 없다고 전해.”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현우는 잠시 말이 끊기더니 이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그래, 나 오늘은 모성에 다녀올 거야. 아내 고향에 같이 좀 다녀와야 해서.”윤하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순간, 욕실 문이 열리며 강현우가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방으로 들어섰다.윤하경은 괜히 어색해져서 몸을 움찔했다. 사실 일부러 전화를 엿들으려던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남의 사적인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 더 민망해졌다. 그렇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누워버리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어정쩡했다.윤하경은 조심스레 헛기침하고는 어색하게 그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저기...”강현우는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윤하경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날렵한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고 오늘따라 한결 더 여유롭고 유쾌한 기색이 느껴졌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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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전용기에 몸을 실은 채 윤하경은 잠시 고개를 돌려 노트북 화면을 두드리며 일에 집중하고 있는 강현우를 바라보았다.“사실... 현우 씨가 많이 바쁘시면 저까지 굳이 따라오지 않으셔도 돼요.”그 말을 들은 강현우는 손길을 멈췄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크고 단정한 손으로 노트북을 천천히 덮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너랑 같이 안 와서 서운하다는 거야?”강현우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묻자 윤하경은 잠시 멍해졌다. 이 사람은 정말 말을 기막히게 자기 식대로 바꿔버린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분명히 아무 의도 없이 평범하게 한 말인데 그의 귀에 들어가면 꼭 뜻이 이상하게 변해버린다. 강현우가 살짝 한쪽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그래? 나는 오히려 네가 더 아쉬워하는 줄 알았는데?”그 한마디에 윤하경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 별장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부끄러워졌다.당황한 윤하경은 강현우를 째려보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피곤하네요. 전 그냥 좀 누워 있을게요.”기내에는 아늑하게 마련된 침대가 있었다.윤하경이 이불을 덮고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체온을 가진 강현우가 바로 뒤따라 들어와 조심스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윤하경의 뒷목을 간질였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윤하경은 강현우의 품 안에서 조금 움직이려 했지만 곧 이어진 그의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만히 있어.”윤하경은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금방 강현우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고 깊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잠이 든 듯 들렸다.그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몇 분 만에 숙면에 빠진 걸 알 수 있었다.윤하경은 한동안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 되어 안내 방송이 들릴 때가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도착했어요.”조용히 말하자 강현우가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그 말투에 왠지 모르게 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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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작은 선물?”윤하경은 뒤따라오는 차들을 바라보다 그 순간 ‘작은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이번 방문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 미리 연락도 하지 못한 탓에 두 사람이 하씨 집안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그들이 올 줄 모르고 있었다.문 앞에는 평소처럼 경비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비원들이 윤하경을 보고 반갑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 아가씨가 돌아오셨네요! 얼른, 어서 회장님께 알려요!”경비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윤하경의 마음에는 묘한 시림이 스며들었다. 그 말투만으로도 그동안 외할아버지가 자신 일로 얼마나 애태우며 걱정하셨는지 짐작이 갔다.윤하경은 입술을 다물고 강현우를 바라봤지만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뒤따르던 검은색 차들이 일제히 하씨 집안 대문 앞에 멈춰 섰다.그러고는 차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했다.모두 손에 상자나 쟁반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비록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규모와 분위기만으로도 그 안의 물건들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윤하경은 답답한 마음에 살짝 이마를 짚으며 낮게 물었다.“조금만 더 조용히 올 수는 없었어요?”강현우는 눈썹을 한 번 들어 올리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이 정도가 과한가? 나는 딱 알맞다고 생각하는데.”윤하경은 강현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강한 그룹이랑도 사이가 이렇게 안 좋은데... 뭐든 너무 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실 꼭 필요하지 않은 건, 줄일 수 있으면 줄여도 되잖아요.”실은 그녀는 지금 강현우가 경제적으로 괜찮은지 걱정되고 있었다.언론에서는 강현우가 완전히 몰락해서 이제 사가에 돌아가면 고개도 못 들 거라고 떠들고 있었으니 그의 씀씀이가 이렇게 크면 혹시나 부담될까 내심 불안했다.강현우의 씀씀이가 늘 크다는 걸 잘 알기에 혹시 그의 현재 상황이 이 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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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윤하경이 모습을 드러내자 평소 늘 엄격하던 하병철의 눈가가 살짝 붉어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윤하경은 가슴이 저릿해져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할아버지, 죄송해요. 저 때문에 많이 걱정하셨죠...”하지만 하병철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됐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평생을 사업 판에서 군림하며 한마디면 모든 것이 정리되던 하병철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손녀를 걱정하는 평범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윤하경은 그런 하병철 앞에서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떨구고 촉촉해진 눈가를 손끝으로 가볍게 훔쳤다.그때 문득 자신 곁에 서 있는 강현우가 떠올라 하병철에게 조심스럽게 소개했다.“할아버지, 이쪽은 현우 씨예요. 전에 뵌 적이 있으시죠...”그러자 하병철은 별다른 대꾸도 없이 강현우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윤하경의 손을 이끌고 안쪽으로 들어갔다.“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그 태도는 누가 봐도 강현우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강현우는 그런 상황을 보고도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윤하경이 뒤를 돌아 강현우를 힐끔 바라봤는데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어쩐지 위로해 주려던 시선을 거두며 길게 이어진 복도와 정원을 지나 몇 사람은 마침내 하병철의 응접실로 들어섰다.윤하경은 하병철을 부축하여 소파의 주인 자리에 앉게 해드렸다. 이제 막 강현우와 나란히 앉으려고 돌아서는데 하병철이 곁자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하경아, 이리 와서 앉아라.”윤하경은 잠시 멈칫했고 조심스레 강현우를 한번 바라봤다.아무리 생각해도 하병철이 지금 노골적으로 강현우를 견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소 하병철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었다. 하여진과도 예전에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던 분이니 말이다.엄마 생각이 문득 스쳐 가며 윤하경의 눈동자에는 잠깐 슬픈 빛이 떠올랐다.그러나 곧 마음을 추스르고 하병철의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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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하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품위 있고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니 윤하경도 더는 별다른 걱정이 들지 않았다.강현우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 일은 분명히 제 잘못이 큽니다.”그 한마디에 하병철은 예상치 못한 듯 잠시 강현우를 바라봤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강현우가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오늘 이렇게 자신의 앞에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들었던 소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하병철은 조용히 시선을 내려 찻잔에 떠다니는 찻잎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본인 생각에는 뭐가 잘못이었다고 보나?”강현우는 그 조용한 물음에도 침착하게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제가 너무 서둘렀던 게 잘못입니다. 하지만 하경이처럼 훌륭한 여자는 제가 서두르지 않으면 누군가 먼저 데려갈 것 같아서요.”하병철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입은 참 살갑네.”하지만 강현우는 그 말속에 진심 어린 배려가 깃들어 있다는 걸 이미 알아차린 듯했다.이때, 강현우는 가볍게 손짓해 밖을 향해 말했다.“들어와.”그러자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하병철은 준비해 온 선물들을 보며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외할아버지께 드릴 작은 성의입니다.”상자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는 최상급 옥으로 만든 바둑알 세트가 담겨 있었다.흑과 백, 양쪽 모두 윤이 흐르고 맑은 빛이 감도는 바둑알이었다. 하병철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걸 미리 알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었다. 그 외에도 서화와 골동품 등, 하나하나 정성이 담긴 귀한 물건들이었다.사실 하병철이 진심으로 좋아한 건 선물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강현우의 태도였다.누군가 자신에게 진심을 담아 예를 다하면 그만큼 손녀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니까.결국, 외할아버지로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손녀사위가 손녀를 어떻게 대할지에 관한 부분이었다.하병철은 만족한 듯 고개를 들어 소파 맞은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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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강현우는 마지막으로 하병철을 바라보고 말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병철이 갑자기 입을 가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집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회장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곧 하녀가 검은 한약이 담긴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윤하경은 그 한약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저릿해졌다.그래서 직접 약을 들어 하병철에게 드리려고 하자 하병철이 손을 저었다.“됐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너희는 각자 방에서 쉬어라. 저녁 먹을 때 내가 사람을 보내서 부를 테니 그때 내려오면 된다.”윤하경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네, 외할아버지. 저희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하병철은 힘없이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윤하경이 뭔가 더 말하려던 찰나, 강현우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고 방을 나왔다.별채를 나서며 윤하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외할아버지, 아까 보니까...”강현우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할아버지만의 생각이 있으셔. 말씀하고 싶지 않은 게 있으면 우리 같은 후손은 더 묻지 않는 게 맞아.”강현우는 윤하경의 손을 꼭 잡고 방으로 함께 걸어갔다. 윤하경은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집안 분위기도 하인도 모두 예전 그대로여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아마 하병철이 일부러 신경 써주신 게 아닐까 싶었다.“현우 씨...”윤하경이 뭔가 말하려 하자 강현우가 짧게 말했다.“이제 자자.”윤하경은 속상한 듯 강현우를 바라봤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지만 강현우는 모르는 척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에 함께 누웠다.그의 넓은 손이 허리를 감싸안았고 옷 너머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윤하경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결국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의 품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저녁 무렵 하인이 두 사람을 깨우러 왔다. 둘이 식당으로 갔을 때는 이미 하씨 집안 가족들이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음식도 이미 차려져 있었지만 아직 하병철은 자리에 보이지 않았고 식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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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하희연이 조용히 콧방귀를 뀌었다.“강현우, 네가 아직도 예전 그 강현우라고 생각해? 지금 너는 쫓겨난 신세일 뿐이야.”식탁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워낙 넓은 공간이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이 자리에 있는 몇 사람만 들을 수 있었다.강현우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말을 흘려들었고 하석호가 조용히 하희연을 바라보았다.“희연아,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버릇이 없어졌냐?”하희연은 대꾸도 하지 않고 하석호를 스쳐보더니 다시 윤하경을 향해 비웃듯 말을 이었다.“뭐, 지금의 강현우랑 너, 꽤 잘 어울린다. 하나는 쫓겨난 신세, 하나는 집도 없는 신세잖아. 안 그래?”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눈빛에는 악의가 가득했다.“그만해.”하석호는 이를 악물고 하희연을 노려봤다.“그럴 말이면 할아버지 앞에서 직접 해보든가.”하희연은 비웃는 표정으로 응수했다.“역시 또 할아버지 이름만 꺼내는구나.”윤하경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 순간 강현우가 조용히 손을 잡아주었다. 윤하경이 강현우를 쳐다보자 그의 눈동자에는 장난스러운 빛이 스며 있었다.이때 강현우가 식당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할아버지 오신다.”윤하경은 입을 다물고 하희연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속으로 이 말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이때 식당 안이 조용해지며 하병철이 집사의 부축을 받아 주인 자리에 앉았다.그는 강현우와 윤하경을 손짓해 부르며 말했다.“이리 오너라.”두 사람이 다가가자 하병철이 모두를 향해 또렷하게 말했다.“오늘부터 현우와 하경이는 우리 하씨 집안 식구다. 앞으로는 서로 더 아끼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그리고 매서운 눈길로 식구들을 둘러봤다.“누가 뒤에서 남 흉보거나 함부로 말하는 게 내 귀에 들어오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명심해라.”윤하경은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고 하병철이 분명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자 다들 앉으라.”그가 말하자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식탁 위 시선이 자신과 강현우에게 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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