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Chapter 601 - Chapter 610

620 Chapters

제601화 누가 한 짓이야

일그러졌던 표정을 풀고 다시 침착함을 찾은 박진성이 민여진이 건네는 휴대폰을 받으며 말했다.“휴대폰 수리 맡겨 줄게.”넋이 나갔던 민여진의 얼굴에 드디어 환한 빛이 들었다. 초점 없던 눈에 의아함이 가득 번졌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대답했다.“고마워.”고맙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민여진에게 그 휴대폰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었다.박진성은 민여진 몰래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지금의 박진성은 민여진을 또 다른 자신에게 떠밀고 있었다. 물론 늘 그래왔었지만 말이다.종업원이 재빨리 수건과 외투를 가져오자 박진성은 차가운 바람에 민여진이 떨지 않도록 외투를 민여진의 머리에 덮어주었다.복잡한 감정으로 가득해 심란한 표정을 짓던 박진성이 곧 날카롭게 변한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았다.“누구 짓이야? 누가 민여진 민 거냐고.”그러자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본인이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진 거예요. 시각장애인이니까 얼마든지 실수로 넘어질 수 있잖아요.”“그래요. 앞을 못 보는 탓에 이런 사고가 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실수일 리 없다는 걸 박진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진성이 알고 있는 민여진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레 내딛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민여진은 시각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니었기에 흐릿하긴 하지만 조금은 앞을 볼 수도 있었다.민여진은 절대 실수로 물에 빠졌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었다.“주동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게요. 셋 셀 동안 자백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CCTV를 확인할 거예요. 그땐 용서 같은 건 없어요.”박진성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셋.”“둘...”“제가 그랬어요.”진희원이 사람들 틈에서 걸어 나왔다. 순순히 자백한 이유는 간단했다. CCTV를 확인한다면 진희원이 민여진에게 다가간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기회를 빌려 박진성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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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왜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까

“수영장에 뛰어들든 아니면 지금부터 동진에서 영원히 사라질 각오를 하든 선택해요.”박진성이 싸늘하게 입꼬리를 씩 올리며 품속의 여자를 더 꼭 끌어안았다.“날 박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내가 누군지 알죠? 나에게 듣보잡 회사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도 알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내심 테스트는 그만하는 게 좋을 거예요.”“박 대표님... 잠시만요!”진희원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했다. 민여진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박진성의 말투는 여지없이 차가웠다. 진희원이 물속으로 들어간다면 박진성의 명령 없인 그녀를 구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박 대표님, 저 수영 못 해요. 저기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제발요. 전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녜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3.”박진성이 냉담한 태도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2.”진희원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이대로 물속에 들어간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은 전부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다.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는 이 바닥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하지만 박진성의 명령을 거스르기엔 회사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박진성이 하나를 외치기 전, 진희원은 자포자기한 듯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거칠게 이는 물보라를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았다.진희원이 물속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살려줘! 살려주세요! 솔아! 안솔!”안솔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저 멍청한 X가. 이 타이밍에 날 불러?’“안솔?”익숙한 이름에 박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되짚던 박진성은 조금 전 진시우가 언급했던 사람의 이름이 안솔이라는 것을 떠올렸다.이호현이 술에 취해 여자 화장실에 쳐들어간 일은 단순한 실수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누군가 이호현에게 여자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줬고 그 사람이 바로 안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처음은 우연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도 안솔이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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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누구 오기로 했어

“고마워.”옷깃을 꼭 잡은 민여진이 시선을 내리고 나지막이 말했다.“휴대폰도 그렇고 물에서 구해준 것도 전부 다. 고마워.”박진성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수도 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죽음의 끝자락에서 살려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괜찮아.”창백한 얼굴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민여진을 보는 박진성은 그녀를 품에 안아 위로해 주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야 했다. “걱정하지 마. 널 괴롭힌 인간이 두 발 뻗고 자는 일은 없을 거야. 이제 동진에서 진희원이라는 이름은 사라질 테니까.”민여진은 관심 없다는 듯 그럴 필요 없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쉬어.”박진성이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내일 데리러 올게.”그 말에 민여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들었다.“당신...”“바로 옆 방에 있을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문 두드려.”박진성이 먼저 방을 나선 건 민여진의 예상 밖 일이었다.주먹을 꽉 움켜쥔 민여진은 박진성이 방을 나서고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켜 협탁의 전화를 찾아 손을 더듬었다.전화 연결음이 들리고 곧이어 프런트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필요하신 게 있으세요?”“그게...”민여진이 한숨을 내쉬었다.“그... 전화할 데가 있는데 혹시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네?”직원이 의아함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특정 브랜드의 물품을 콕 집어 요구하거나 그 계절엔 볼 수 없는 물건을 가져다 달라는 고객은 많이 봤지만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부탁은 처음이었다.민여진이 말했다.“휴대폰을 실수로 물에 빠뜨려서요. 친구에게 안부라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직원이 그제야 흔치 않은 부탁의 의도를 이해한 듯 얼른 대답했다.“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시면 저희 직원이 가져다드릴 거예요.”“고마워요.”자리로 돌아온 민여진은 괜히 마음이 들끓는 것 같았지만 직원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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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재윤에게 안부를 전해야 해

“휴대폰은 뭐 하려고? 그 인간... 그 남자한테 전화하려고?”민여진은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이미 오랫 동안 연락 한 통 하지 않았어. 휴대폰까지 망가져서 나한테 전화해도 받는 사람이 없으면 걱정할 거야. 그래서 미리 전화해서 안부라도 전하고 싶어.”박진성은 씁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임재윤의 휴대폰은 조금 전 물속에 뛰어들면서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민여진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민여진이 괜한 걱정을 하며 불안에 떨지도 몰랐다.그런 생각에 박진성은 직원에게 말했다.“괜찮으니까 돌아가세요.”그러자 직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휴대폰은...”“휴대폰도 가져가세요.”물기를 머금은 민여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박진성의 샤워 가운뿐이었다.“안돼...”민여진이 애원했다.“전화 한 통만 할게. 진성 씨. 휴대폰 망가졌다고 그 말만 하면 돼.”박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민여진. 난 한 번도 네가 그 인간과 연락하는 걸 막은 적 없어.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지 않아? 어쩌면 그 인간도 지금은 쉬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너도 이젠 쉬어야지.”“내일 아침이 되면 내가 휴대폰 돌려줄게. 그때 다시 연락해.”“진심이야?”“응.”박진성이 그윽하고도 단호한 눈빛으로 다짐했다.“이런 일로 널 속일 이유 없어.”“그래...”“오늘은 일찍 쉬어.”서류를 챙겨 민여진의 방을 나선 박진성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호텔을 나섰다.박진성을 본 프런트 직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박 대표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박진성이 대답했다.“여기서 제일 가까운 휴대폰 대리점이 어디예요?”“휴대폰 대리점요?”직원이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휴대폰 대리점이야 많지만... 이 시간까지 문을 연 곳이...”“위치만 알려줘요. 가게는 제가 천천히 찾을게요. 오픈한 곳이 한 곳만 있으면 돼요.”박진성이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까지 다급하게 대리점을 찾는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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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어젯밤에 나가셨어요

“만약 휴대폰을 새로 바꾼다면 지금 휴대폰과 똑같이 생긴 기종이 있을까요?”점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이건 이미 몇 년 전에 단종된 기종이에요. 통화와 문자만 가능한 제품이라 찾는 분이 많지 않으셔서 이젠 판매하지 않거든요.”박진성의 눈빛이 어둡게 빛났다. 민여진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통화와 문자만 가능한 휴대폰이 오히려 더 편리했다. 갑자기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다면 적응하는 데 한참 걸릴 것이 뻔했다.“수리 비용이 얼마든 상관없어요. 수리해 주세요.”“그...”점장이 의외인 듯 말을 흐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장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최대한 수리해 볼게요.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수리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부탁드려요.”...이튿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민여진은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렸다.민여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더듬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시간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아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민여진은 곧 물에 빠진 휴대폰을 박진성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침대에서 일어난 민여진은 건조된 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 지금 쯤이면 박진성은 진작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아무리 노크해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설마 방에 없는 건가?’미간을 찌푸린 민여진이 벽을 짚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프런트에 도착한 민여진이 직원에게 물었다.“박 대표님요?”직원이 대답했다.“박 대표님은 아마 방에 계실 거예요. 오늘 내려오는 걸 본 적이 없어요.”“아직 방에 있다고요?”민여진이 의아한 듯 말했다.“하지만 꽤 오랫동안 노크했는데 아무 인기척도 없던데요.”프런트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아마 피곤하셔서 그러실 거예요. 아무래도 어제 늦게 주무셨을 테니까.”“늦게 잤다고요?”민여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모르셨어요? 어젯밤 늦은 시간이었는데 박 대표님께서 외출하셨어요.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돌아오셨는데 비까지 맞으셔서 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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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예전처럼

민여진을 힐끔 쳐다본 박진성이 태연하게 물었다.“어떻게 알았어?”민여진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아까 네 방에 가서 노크했더니 너무 조용해서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직원이 알려주더라고. 네가 어젯밤에 잠깐 외출했었다고.”“응.”박진성이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외출했었지.”민여진은 말없이 박진성을 쳐다보았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왜 나갔었는지 설명도 안 하려는 거야?’민여진이 깊은숨을 들이켰다.“직원이 그러던데. 휴대폰 대리점을 찾으러 나간 거라고. 휴대폰 대리점은 왜 간 거야?”호흡을 가다듬던 박진성이 입꼬리를 올려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민여진. 네가 듣고 싶은 대답이 뭔데.”민여진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박진성이 물었다.“내가 널 위해서, 네가 슬퍼할까 봐 그 시간에 휴대폰 대리점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민여진은 도무지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스멀스멀 화가 치밀기도 했다.민여진이 원하는 건 애초부터 그런 대답이 아니었다.“진성 씨. 난 날 잘 알아. 그리고 당신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난 당신에게 기대 같은 거 안 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민여진의 목소리는 단호하기만 했다.그러자 할 말은 잃은 쪽은 오히려 박진성이었다. 소파에 닿아있던 손가락이 움찔, 가늘게 떨렸다.“난 그저 당신이 왜 그랬는지,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건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야.”“내 휴대폰도 망가졌어."그제야 안도한 듯 민여진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랬구나. 미안해.”박진성이 입술을 달싹였다.“사과할 것 없어. 널 구한 건 완벽히 내 자의였으니까. 다만 휴대폰은 나에게 없으면 안 되는 거라... 연락도 해야 하고... 그래서 늦은 시간에 나갔던 거야.”민여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진성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네 휴대폰 말이야. 갔던 김에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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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전부 기억하고 있어

민여진은 전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심지어 민여진은 박진성이 그랬던 것처럼 비꼬는 말투로 그의 말을 받아쳤다.박진성은 그제야 자업자득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민여진에게 했었던 그 모든 말들은 전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박진성의 심장에 꽂혔다.“난...”입술을 달싹이던 박진성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마음대로 생각해.”설명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박진성은 민여진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혐오와 원망을 느꼈다. 무력한 기분에 박진성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마음대로 생각하라고?”고개를 숙인 민여진의 눈빛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민여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그 말을 끝으로 민여진은 더는 말이 없었다.박진성이 말했다.“이미 프런트에 얘기해 뒀어. 내려가서 번호 얘기하면 통화 연결해 줄 거야.”“고마워.”민여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방을 나섰다. 프런트에 도착한 민여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민여진 씨? 통화하러 오신 거죠?”“네.”민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통화 가능할까요?”“네. 물론이죠.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연결해 드릴게요.”번호를 말하려던 민여진이 잠깐 멈칫하더니 물었다.“제가 알려드린 번호를 박진성에게도 알려주실 건가요?”의미 없는 물음이라는 걸 민여진도 알고 있었다. 직원이 임재윤의 번호를 박진성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민여진은 말릴 수가 없었다.민여진의 걱정을 눈치챈 직원이 대답했다.“아뇨. 걱정하지 마세요. 통화를 마치시면 통화 기록도 삭제할게요.”“고마워요.”민여진이 직원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다이얼을 누른 직원이 휴대폰을 민여진에게 건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연결음 소리에 민여진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잠시 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민여진이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재윤아!”“여진아?”수화기 너머로 예상보다 훨씬 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꽉 잠긴 목소리에 음색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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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담배 피웠어

찬 공기로 가득한 방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랬다면 방 안은 지금보다 더 지독한 담배 냄새로 진동했을 것이다.잠시 침묵하던 민여진이 물었다.“담배 피웠어?”“응.”작게 기침하던 박진성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야 명령조로 얘기했다.“옷은 침대 위에 뒀으니까 갈아입어. 이제 곧 출발해야 해.”옷을 갈아입은 민여진은 스타일리스트가 오지 않은 탓에 머리를 어깨 위로 풀어 내리고는 립스틱을 바르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박진성이 그런 민여진을 쳐다보며 물었다.“립스틱 발랐어?”“응.”민여진이 귀 옆의 잔머리를 쓸어 넘기며 박진성의 시선을 피했다.“민낯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메이크업할 수는 없어서 그냥 립스틱만 발랐어. 이상해?”“엉망진창이야.”입을 연 박진성이 민여진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쓸어 립스틱을 지웠다.“엉망진창으로 발라졌어.”민여진이 가만히 대답했다.“미안. 안 보여서 그냥 느낌으로 바른 거야.”시선을 내린 박진성이 말했다.“립스틱 줘 봐.”민여진이 립스틱을 건네자 박진성이 그녀의 턱을 올려 말랑한 입술에 섬세하게 립스틱을 발랐다.남자의 시선에 불편해진 건 오히려 민여진이었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서야 민여진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다 됐어?”손을 거둔 박진성이 대답했다.“응. 이제 가자.”전화는 고안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박진성과 민여진을 보고는 황급히 마중 나갔다.“박 대표님, 여진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진시호 대표님의 비서인 고안이라고 합니다. 날씨가 추운데 일단 차에 타시죠.”민여진을 부축해 차에 태운 박진성이 그녀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고안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혀서요.”“저희도 이제 막 준비를 마친 거라, 괜찮아요.”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던 박진성이 창밖의 풍경을 보며 말했다.“남산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고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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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아요

심나연이 대답했다.“어머님이 싫어하셔서요. 보시고는 불같이 화를 내셔서 전부 잘라버렸어요. 뿌리까지 전부 뽑았고요. 나중에는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도우미들도 뭘 심을지 몰라 놔뒀더니 저렇게 황폐해졌어요.”심나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비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심나연이 얼른 걸음을 옮겼다.박진성이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여진에게 설명했다.“진시우의 어머니께서 대나무를 좋아하셨어. 그래서 생전엔 마당에 대나무를 많이 심으셨거든. 그러니 대나무를 보면 떠올릴 사람이 뻔하잖아.”멈칫하던 민여진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 이런 부잣집 사모님이 겨우 대나무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신 거네.”박진성이 냉소 지었다.“그걸 용납할 수 있는 분이셨다면 진시우 어머니도 죽진 않으셨겠지.”“뭐라고?”“아무것도 아냐. 들어가자.”박진성이 민여진의 손을 잡고 로비로 걸어갔다. 심나연은 여전히 투정을 부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로비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심나연이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영희가 아직 너무 어려서요. 게다가 오늘은 아이를 봐줄 분도 안 계셔서 제가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가 혹시라도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서 그만... 두 분께 실례를 했네요. 죄송해요.”“괜찮아요.”민여진이 물었다.“나연 씨 딸이에요? 이름이 영희?”“네.”심나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애 아빠가 지은 거예요. 맞을 영에 기쁠 희. 영희가 태어난 게 진씨 가문에 좋은 일을 가져올 거라고...”멈칫한 민여진이 금세 말을 돌렸다.“몇 살이에요?”“이제 6개월 됐어요.”민여진이 몸을 낮춰 아이를 달랬다.“왜 울어?”민여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이가 조그맣게 유치가 올라온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그 모습에 심나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영희가 평소엔 낯선 사람을 싫어하는데 여진 씨는 좋은가 봐요.”“그래요?”민여진의 눈빛이 부드럽게 빛났다. 하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민여진이 아이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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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괜찮아

민여진이 말을 마치자 어른들 사이의 날카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품에 있던 아이가 자그만 주먹을 꽉 움켜쥐고 울음을 내뱉었다.대성통곡하는 아이 때문에 당황한 민여진이 얼른 아이를 달랬다.“영희, 울지 마. 울지 마, 착하지? 아줌마 여기 있어.”진시호와 함께 내려오던 심나연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다급히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여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투정 부리는 거예요.”상쾌하던 진시호의 기분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렸다.“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기만 하더니 손님이 오셨는데도 눈치 없이. 얼른 데리고 올라가. 하나 같이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는...”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심나연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안고 방으로 올라갔다.그 모습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민여진이 입을 열었다.“진 대표님, 아이가 우는 건 정상 아닌가요?”“정상이요?”진시호가 콧방귀를 뀌었다.“남자아이였다면 저렇게 울기만 하지는 않았겠죠.”눈을 가늘게 뜬 민여진이 마음속으로 조용히 분노를 터뜨렸다.박진성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진 대표님께서는 사모님께서 딸을 낳으셔서 꽤 불만인 것 같네요?”진시호가 손을 내저었다.“아들을 못 낳은 탓이죠.”그 말에 박진성이 냉소 지었다.“진 대표님께서는 복에 겨워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시는 것 같네요. 만약 저에게 딸이 있었다면 전 그 아이를 불면 날아갈까, 귀하게 키웠을 거예요. 하지만 이해는 해요. 아무래도 그런 일로 생긴 아이이니 볼 때마다 괴로우시겠죠.”“하지만 아이는 죄가 없잖아요.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하고요.”박진성의 말에 돋친 가시를 느낀 진시호는 울컥, 분노가 치솟았다. 감히 진시호 앞에서 그 일을 들먹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박진성이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는 건, 진시호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잠시 후에 벌어질 일을 떠올린 진시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박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박 대표님보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도 내려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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