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Chapter 631 - Chapter 640

731 Chapters

제631화 무릎을 꿇다

“쯧쯧쯧.”진시호가 혀를 차며 비아냥거렸다.“박진성, 6일 전에 그렇게 찾아왔다면 너의 그 눈물겨운 사랑에 감동해 마음이 조금 움직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동진을 떠나서 꼬박 엿새가 지나서야 다시 나타나서는 이런 말을 한다고?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닌가?”민여진은 가만히 눈을 뜬 채, 그의 말에 마음 깊이 동의했다.박진성은 이미 자신을 버린 사람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양성으로 떠났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박진성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하게 말을 되풀이했다.“원하는 게 뭐냐고.”진시호는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담배를 비벼 껐다. 얄밉게 웃는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원하는 게 뭐냐고? 그때 나 두들겨 팼던 거 기억 안 나? 얼굴 부은 거, 사흘이 지나도 안 가라앉더라. 자다가도 통증 때문에 깨곤 했지. 이도 몇 개나 나갔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진시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나한테 무릎 꿇으면 한 번 생각해 볼게, 민여진을 내줄지.”그 말을 들은 민여진은 깜짝 놀랐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다잡고 침착해졌다.그런 모욕을 박진성이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곧 등을 돌리고 나가버릴 게 분명했다. 이미 빠져나갈 길을 미련해 두었으니 이렇게 홀로 찾아온 것일 터였다.그러나 박진성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무릎 꿇을게. 그런데 그걸 네가 견딜 수 있겠어?”진시호는 입꼬리만 끌어당긴 채 차가운 눈길로 말했다.“웃기시네. 적어도 너보다 6년은 더 고생하며 지내왔어. 그런 내가 못 견딜 게 뭐가 있겠어? 무릎 꿇을 건지, 거절할 건지 하나만 말해. 거절한다고 해도 붙잡을 생각은 없어. 다만...”진시호는 불쑥 손을 뻗어 민여진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머리가 뽑히는 듯한 통증에 민여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었다. 진시호는 노골적으로 도발했다.“다만 민여진은 오늘 곱게 넘어가지 못하겠지. 하지만 넌 그동안 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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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너의 가식은 필요 없어

진시호는 민여진을 보며 말했다.“보아하니, 네가 문채연보다 먼저인 모양이야. 박진성이 널 선택했네?”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민여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꿈을 꾸는 것 같았다. 박진성처럼 콧대 높고 오만한 남자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을 그가 진시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이제 됐어?”박진성은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무릎을 꿇어도 몸에 서린 기세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민여진 놔줘. 너한테 진 빚, 내가 갚을 테니까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마.”“글쎄...”진시호는 일부러 머뭇거리며 입꼬리를 얄밉게 끌어올렸다.“진짜 무릎 꿇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런데 무릎 한 번 꿇었다고 해서 모든 걸 지우기는 어렵지.”박진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네가 말했잖아. 내가 무릎 꿇으면 된다고.”“그래.”진시호는 시원하게 웃었다.“그런데 민여진 풀어준다는 소리는 안 했어. 그저 네가 무릎을 꿇으면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말이었지.”박진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진시호의 눈빛에는 묘한 만족감이 번졌다.그는 본래 박진성이 또 다른 수를 숨겨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진성은 아무것도 없이 홀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 무모함이 어이없을 지경이었다.여자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예전엔 문채연을 위해 나섰고 지금은 또 민여진을 위해 나섰다.“하지만 나도 그렇게 억지 부리는 사람은 아니야.”진시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내 앞에서 머리 한번 조아려. 그러면 전에 날 두들겨 팬 거, 없던 일로 해주지.”그는 박진성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이 정도면 꽤 의리 있는 거 아니야? 네 주먹질 때문에 난 병원 신세를 졌어. 그런데도 상처 하나 안 내고 여기서 끝내주겠다는데 이보다 관대한 게 어디 있겠어.”몸에 상처는 나지 않아도 매질보다 더 치욕스러운 행위였다. 고통이 아니라 모욕이었다.박진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진시호가 이렇게 쉽게 끝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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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건드리지 마

그는 자신이 겪은 굴욕을 떠올렸다. 박진성에게 짓눌려 땅바닥에 처박히던 그 순간이 속을 뜨겁게 뒤흔들었다.곧장 악에 받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때려. 죽을 때까지 패.”“도련님...”경호원들이 눈치를 주고받았다.“정말 때려도 됩니까? 회장님께서...”진시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는 날이 선 눈빛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너희 주인이 누군데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야, 박진성이야?”그 말이 떨어지자 머뭇거림은 사라졌다.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박진성의 얼굴에 꽂혔다.박진성은 고통을 삼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주먹질은 더 거칠고 잔혹했다. 흉통이 깨지고 오장육부가 갈라지는 느낌이었다.민여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 안에 울리는 둔탁한 소리, 그 사이사이에 섞인 박진성의 억눌린 신음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민여진은 목이 터지라 외쳤다.“그만해! 제발 그만!”아무도 듣지 않았다.진시호는 담뱃재를 가볍게 털며 내려다보았다.“박진성, 이런 꼴을 당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애초에 널 이렇게 만들 기회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네가 하필 민여진을 좋아했으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피가 입안 가득 터져 나왔다. 거실 바닥이 붉게 번졌다. 민여진은 진시호의 옷깃을 붙잡았다. 떨리는 호흡을 억누르며 간신히 말했다.“그만해. 박진성이 죽으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어.”“죽게 두진 않을 거야. 다만 어른한테 개긴 죄는 치러야겠지. 이 정도 훈육은 괜찮잖아?”진시호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가 손짓하자 주먹질은 멈췄다.박진성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입에서 피가 한 웅큼 흘러나왔고 그는 억지로 그것을 삼켜냈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진시호를 노려보았다.진시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차갑고 서늘한 눈빛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판은 자신이 휘어잡고 있고 상대는 피투성이로 짓밟혀 있는데 왜 두려움이 일렁이는지 알 수 없었다.그 사실이 더욱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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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기운이 숨어 있었다. 진시호는 그 소리에 잠시 멈칫했으나 곧 다시 민여진에게 몸을 기울이며 입술을 가져다 댔다.그때,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안이 창백한 얼굴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도련님, 밖에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순식간에 차 수십 대와 헬리콥터 한 대가 집을 둘러쌌다. 자물쇠는 이미 총알에 맞아 부서진 상황이었고 이내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진시호가 도망치려는 찰나, 진서호를 비롯한 부하들은 전부 제압되고 말았다.서원이 소파 위의 민여진을 보고는 다시 박진성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늦었네요.”박진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서원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들고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진시호 앞으로 걸어갔다.얼굴은 어두웠고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다.진시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박진성! 뭐 하려는 거야? 날 죽이면 경찰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진씨 가문도, 진한 그룹도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박진성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걱정 마. 그냥 죽이는 건 너무 가벼운 벌이지.”“뭐라고?”탕!“아악!”총성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진시호는 피가 흐르는 팔을 감싼 채 바닥에 쓰러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이 끊어진 건 아니었으나 그는 몸을 경련하다가 이내 정신을 잃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민여진의 머릿속은 하얗게 번져갔다. 그녀는 옷깃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민여진 씨...”서원이 망설이며 물었다.“괜찮으십니까.”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정신을 추스른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진시호... 죽은 건가요?”“아니요, 아직 쓸모가 있는 목숨이라서요. 대표님께서 진한 그룹이랑 흥정할 패로 쓰실 예정입니다.”민여진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흥정? 이것 때문에 박진성이 돌아온 건가?’박진성은 총을 던져버렸다. 소파에 앉아 넋이 나간 듯한 민여진을 보고는 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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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우선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같이 가줄게.”박진성이 손을 뻗자 민여진은 몸을 살짝 돌려 피했다.“집에 데려다줘. 안진 마을로 갈 거야. 거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민여진...”“부탁할게.”민여진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두통이 심했다.“굳이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어. 내가 납치됐을 때 넌 단호하게 양성으로 돌아갔잖아. 그제야 알았어, 네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사실 늘 알고 있었지만 네가 생각보다 더 가차 없다는 건 그때 확실히 알았지. 다행히 기대도 안 했으니 괜찮았던 거야. 그냥 여기까지 하자. 며칠 쉬고 싶어.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박진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무함이 스치듯 지나가더니 쓸쓸한 웃음이 피어올랐다.“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이기적이고, 차갑고, 위험하면 널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그럼?”민여진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 말에 박진성은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낮게 내뱉었다. “알겠어. 데려다줄게.”이번에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직접 민여진을 비행기에 태웠다.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군데군데 새빨갛게 번진 상처가 있었고 걸음마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섞였다. 서원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상황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괜찮아.”박진성은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진시우한테 연락해서 민여진 데려가라고 해. 무사히 도착해야 하니까. 그다음 우린 바로 진한 그룹으로 가자.”...민여진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 여자가 다가왔다.“민여진 씨, 안녕하세요. 저는 장정아라고 합니다. 진 도련님이 보내서 모시러 왔어요.”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민여진이 잠시 망설이자 여자가 휴대폰을 내밀었다.“도련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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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마음껏 다가가

민여진은 장정아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여진는 장정아가 무안해할까 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지난 며칠 사이 일들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저 먼저 들어갈게요.”저택 안으로 들어선 민여진은 차가운 현관문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힘이 다 빠져나간 몸은 껍데기만 남은 듯 가벼웠다.그제야 깨달았다. 임재윤을 잃고 난 뒤, 자신에겐 속을 털어놓을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할 수도, 토해낼 수도 없는 마음은 그저 안쪽 깊은 곳에 파묻혀 썩어가며 진흙처럼 눅눅하게 번져갔다.이틀 뒤, 민여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장정아가 초대한 저녁 약속 자리에 나갔다.그동안 장정아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거침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불과 반 시간도 안 되어 호칭은 민여진 씨에서 여진 씨로 바뀌었고 장정아는 자기 집안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이렇게 지나치게 다정한 성격은 처음이었지만 그게 묘하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장정아는 입만 열어도 속이 훤히 보일 만큼 단순했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다.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장정아는 다섯 가지 음식을 연달아 주문했다.민여진이 웃으며 저지했다.“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니에요? 다 못 먹고 남으면 아깝잖아요.”장정아는 사장에게 그냥 그대로 메뉴를 받아 적으라는 눈짓을 보내고는 일회용 젓가락을 뜯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다 못 먹으면 포장하면 되죠. 그리고 오늘은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민여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장정아는 두 손으로 턱을 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오늘 진 도련님도 오실 거예요.”민여진은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진시우가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고장 난 휴대폰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고 유심 카드는 박진성의 손에 있는 상태였다.“오늘 오신다고요? 다 나으신 거예요?”“네!”장정아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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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그녀 역시 짜놓은 판의 일부

천천히 다가오는 진시우에게서 장정아는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눈부심을 넘어 세상이 흔들릴 만큼 압도적인 기운이었다.“민여진 씨.”진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민여진에게 예를 표했다. 이내 시선을 옮겨 장정아를 향해 얕게 웃으며 말했다.“그쪽이 정아 씨군요.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생 많았어요.”장정아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평소의 씩씩함과 외향적인 성격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머릿속은 흐릿하기만 했다.민여진이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정신을 다잡은 장정아는 손을 비비며 얼떨떨하게 대답했다.“아, 아니에요... 고생하지는 않았어요...”진시우는 가볍게 웃었다.“전화 속 목소리는 발랄했는데 막상 뵈니 많이 수줍어하시네요.”민여진은 웃음을 꾹 눌러 삼켰다. 장정아는 원래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마음이 끌리는 상대 앞에선 늘 한없이 작아졌다.민여진이 말을 돌렸다.“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리신 건가요?”“네.”진시우는 자연스럽게 장정아 옆자리에 앉았다. 민여진이 질문을 이어갔다.“하 비서님은요?”“안진 쪽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다녀와야 해서 오늘은 못 왔습니다.”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여진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먼저 드시죠. 아침 비행기 타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쯤 많이 허기지실 것 같네요.”“배고프긴 하네요.”진시우는 더는 사양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장정아만이 젓가락을 손에 쥔 채 한참 머뭇거릴 뿐이었다.진시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정아 씨, 입에 안 맞으세요?”그 순간, 장정아는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말했다.“저, 저를 정아 씨라고 부르지 마세요.”진시우는 멈칫했다.“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정아 씨라고 할까요?”“네...”식사가 끝나자 장정아는 먼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진시우는 눈을 거두지 못하다가 이내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장정아 씨가 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요.”민여진은 웃음을 삼켰다. 사실은 그 반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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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나한테 와

민여진은 갑자기 몸을 떨며 입을 막았다. 메스꺼움이 온몸을 덮쳤다.운전하던 진시우가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왜 그래요? 괜찮아요?”민여진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차멀미 때문에 그래요. 계속 운전하셔도 돼요.”진시우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속도를 줄일게요. 혹시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해요.”“네.”그녀는 팔을 감싸안으며 몸을 움츠렸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싸늘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반 시간쯤 지나 차가 멈췄을 때, 민여진은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물었다.“다 왔어요?”“네, 도착했어요. 안까지 데려다줄게요. 그리고 전 바로 안진에 갈 겁니다.”진시우가 안전벨트를 풀려 하자 민여진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완전히 앞을 못 보는 건 아니에요. 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요. 안진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잖아요, 얼른 가보세요.”그녀는 스스로 벨트를 풀고 내리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다시 시동을 걸려던 진시우가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춰 섰다.“아, 맞다.”그는 가방을 뒤적여 명함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게 뭐죠?”손끝에 닿은 건 단단한 종이였다.잠시 머뭇거리던 진시우가 말했다.“박진성의 명함이에요.”민여진의 눈빛이 흔들렸으나 곧 담담해졌다.“그 사람 명함을 저한테 왜 주시는 거죠?”명함을 버리려던 순간, 진시우가 덧붙였다.“박진성이 직접 준 거예요, 연락하라고요. 아직 여진 씨 물건이 자기 손에 있다면서 그러더라고요.”민여진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이내 명함을 움켜쥐었다. 종이 모서리가 살갗을 찔렀지만 다행히 피가 배어 나오지는 않았다.그녀의 물건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임재윤과 연락할 수 있는 번호가 저장된 휴대폰이었다. 단축번호가 설정된 그 휴대폰만이 그녀에게 익숙했다. 다른 기계는 손에 쥐어도 어디를 눌러야 잠금이 풀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민여진의 가슴속은 분노와 무력감으로 가득했다.박진성은 그녀가 휴대폰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고, 그걸 미끼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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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나한테 오라니까

민여진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정신을 다잡았다. 박진성은 이제 불쌍한 척 연기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가슴이 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굳힌 지금은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아프면 병원에 가. 난 의사가 아니야. 네 몸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겠니. 지금 당장 그 휴대폰을 줄 수 없다면 내가 진시우한테 부탁해서 받아올 거야.”“난 걔한테 주지 않을 거야.”박진성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단호하게 말했다.민여진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박진성,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나한테 오라니까.”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그럴 일은 없어!”민여진은 고함을 내질렀다. 창백한 얼굴에 분노가 번졌다.편의점 안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주먹을 움켜쥔 채 말했다.“박진성, 헛된 망상은 그만둬. 난 너한테 안 가.”잠깐의 정적 끝에 박진성이 입을 열었다.“그럼 휴대폰도 못 줘.”“너!”“아니, 휴대폰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박진성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창밖으로 내던져 산산조각 낼 거야.”민여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몸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정말 비열하네.”“응.”그는 담담하게 응수했다.“어차피 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잖아? 목적을 위해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 그렇다면 그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낫겠지.”민여진은 이를 악물고 전화를 끊었다.주인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다가와 물었다.“아가씨, 무슨 일 있어요? 혹시 협박 같은 거 받는 거라면 혼자 끙끙대지 말아요. 법이 있잖아요, 경찰도 있고.”민여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고맙습니다. 오해예요. 그런 건 아니에요.”주인아주머니는 눈에 띄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남자 친구랑 싸운 거네요? 연애라는 건 원래 다 그런 거예요. 나도 젊을 때 남편 때문에 속 뒤집힌 적 많았어요. 눈치도 없고 낭만이란 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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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정말 그렇게 모질게 굴 거야?

이런 식으로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민여진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더욱 차갑기만 했다.“박진성,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사람을 미칠 때까지 괴롭혀야 속이 풀리겠어?”박진성은 힘없이 웃었다.“민여진, 나 아파. 정말 못 견디게 괴로운데 옆에는 아무도 없어.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그래. 나 걱정하지 않는 거 알아. 그래도 작은 부탁인데 못 들어주겠어?”민여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진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날 비열하다고 욕해도, 뻔뻔하다고 욕해도 상관없어. 네가 오기만 하면 폰을 넘겨줄게. 안 그러면 폰은 물론이고 이혼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그는 호텔 주소 하나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민여진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무슨 일이에요?”주인아주머니가 다급히 물었다.“괜찮아요. 이번 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밖으로 나오자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 듯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박진성이 불러준 호텔 이름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피할 수 없는 악몽처럼 그녀를 괴롭혔다.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택시를 세워 주소를 말하고 호텔에 도착하자 직원이 바로 그녀를 알아보았다.“민여진 씨죠? 모셔다드릴게요.”“네.”엘리베이터는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직원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여기가 박진성 씨 방입니다. 저는 들어가기 어려우니 직접 들어가시면 됩니다.”직원이 카드키로 문을 열어주었다.민여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손을 더듬어 불을 켜니 복도의 조명이 희미하게 켜졌다. 그제야 겨우 시야가 트였다.그때, 안쪽에서 기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민여진, 너 맞아?”전화로 들리던 것보다 훨씬 탁하고 지쳐 있는 목소리였다.민여진은 시선을 내리고 벽을 짚으며 걸어갔다. 침대 위에 박진성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휴대폰은? 어디 있어?”박진성은 몇 초간 말없이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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