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백족 성녀, 이 신분이 마음에 드십니까?”그 말에 란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음침한 눈길로 노려보았다.“대체 뭘 하시려는 겁니까?”“뭘 하자는 건 아니고, 방금 짐의 뜻을 분명 전달했습니다만.”신왕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성녀 전하, 돌아가서 잘 준비하세요. 짐이 사람을 파견하여 제사대를 마련할 테니, 내일 아침에 가마를 보낼 겁니다. 기도 의식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잘 협조해 주신다면 당연히 귀한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이런 작은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약간의 경고로 고통을 줄 것이다.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역시나 신왕은 그녀가 예상한 대로 아주 작은 기도 의식도 무조건 시키려고 강경하게 나왔다.불쾌함보다 의구심이 들었다.‘신왕이 대놓고 협박하는 것이 무슨 의도가 있지? 설마 다른 이유가 있나?’왕부로 돌아와 백월유에게 말했더니 이런 해답을 내놓았다.“백족 부락에 온지 한동안 되었으니, 오는 길에 제대와 비슷한 곳을 많이 봤겠죠?”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꽤 많더라고요.”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족 경계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보았던 인간돼지 제대였다.체신족이 인간돼지를 신으로 삼아 산 사람을 칼로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잔혹한 장면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그 뒤로 봤던 이족의 제대는 그처럼 잔인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기억했던 것이다.“우리 백족엔 부락마다 각자 신을 모시고 큰일을 진행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 의식을 진행해요. 본래 신왕이 말이 없어서 이번에 생략하는 줄 알았는데, 무우를 내세울 생각을 할 줄은 몰랐어요.”앞뒤를 따져보던 백월유는 신왕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아차렸다.어쩌면 그 늙은이는 란사의 몸에 계동의 문을 여는 피가 흐르고 성녀의 신분까지 있으니, 기도 의식을 맡긴다면 기도 효과가 더 좋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었다.백월유는 여기까지 생각했지만 란사는 더 깊은 것까지 생각했다.그녀가 영혼이 순수한 사람이기에 기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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