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211 - Chapter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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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1화

이육진이 소우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연아, 아직 더 전할 말이 있느냐?”소우연이 입술을 달싹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께서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영이의 혼례를 축하한다 전해달라 하셨습니다.”“외삼촌께서...”그 소식을 들은 이영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그런데 지금 외삼촌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소우연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세한 거처는 적어두지 않으셨더구나.”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이 이렇듯 축하를 전해온 것만으로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사함이 밀려올랐다. 마치 모든 일들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예전의 그 어둠 같던 나날들은 없었던 일과 같노라고 말해주는 듯하였다.잠시 더 안부를 주고받은 뒤, 소우연은 이영에게 돌아가 심초운의 곁을 지키라 하였다.“그럼 물러가겠습니다.”이영은 공손히 예를 올리고 물러섰다.소우연은 영락궁 문 앞까지 나와 이영의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이육진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사흘 뒤면 우리도 경성을 떠날 채비를 하자구나.”소우연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 볼을 타고 굴러내렸다.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련합니다.”“전에는 나를 떠나기 싫어하더니, 이제는 아이들이 그리우냐...”그렇지 않은가.이육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걱정 마라. 내가 모든 길을 미리 계획해두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되돌아오면 되지 않느냐.”그래서 그는 첫 번째 행선지를 강남으로 정해두었다. 그곳의 경치를 구경한 후에라도, 소우연이 더 멀리 나아가고 싶어 한다면 앞으로의 길과 산천을 계속 유람하면 되고, 만약 아이들이 그리워진다면 상운국 주변만 돌아다녀도 무방하였다.“예.”소우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금융궁 침전. 궁 안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침전에 들어서기 전, 그녀는 당안과 송이 같은 시녀들을 모두 바깥에 대기시켰다.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원래는 심초운이 침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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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2화

시간이 고요히 멈춘 듯하였다.이영은 가리개 속에서 심초운이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것만을 알 뿐, 어떠한 움직임도 느낄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끝내 입술을 열지 못하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청년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누님, 저는 이 순간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오늘을...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심초운은 그렇게 말하며 이영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의 손이 포근히 맞닿아 있었다.“팔뚝만큼 큰 용봉초, 창호지에 붙은 커다란 붉은 '희' 자, 붉은 이불로 덮인 혼례상, 그리고 온 침상에 뿌려진 땅콩과 대추, 용포를 곱게 차려입은 누님까지 말입니다.”그의 목소리가 따스하게 이어졌다.“멀리 놓인 상 위에도 땅콩과 용안, 혼례 사탕과 과자들이 모두 붉은 '희' 자로 봉해져 있고, 술병에도 역시 '희' 자가 붙어 있습니다...”이영은 그저 심초운이 조곤조곤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이런 다정한 모습은 평소 그의 성정과는 사뭇 달랐다.“저는 오늘을 영원히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누님, 저희의 혼례날의 이 모든 광경을 한평생 잊지 않겠습니다.”그가 말하며 잡은 손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마치 긴장한 듯 떨리는 기색이 역력하였다.이영은 그 손을 도리어 꼭 쥐며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나 또한 기억하마.”그래서 일부러 가리개를 준비하였던 것이었다. 그녀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와 혼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만 서로의 신분이 하늘과 땅처럼 달랐을 뿐.“누님, 저는 이렇게 누님께 장가를 왔으니, 누님께서 한평생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평생토록 저를 버리지 마셔야 합니다.”그는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 신랑처럼 말하였다.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혼인한 이는 세상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황제라는 것을 말이다. 이들의 혼사는 평범한 백성들의 혼인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설령 자식이 생기더라도 그 아이의 성은 '심'이 아니라 '이'가 될 터였다.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가 어떠하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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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3화

이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은근히 웃었다.“그렇다면 내가 다른 짐승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혹은 네가…”그 말끝을 채 잇기도 전에, 심초운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저희는 반드시 잘 지낼 것입니다. 다음 생에도 부부로 함께할 것입니다.”그녀가 사내든 여인이든, 심지어 짐승일지라도 그는 상관없었다.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이영과 평생을 함께하는 것뿐이었다.“나는…”“누님, 허튼소리 마옵소서.”그는 검지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다시 가져다 대어, 그녀가 더는 자신을 놀리지 못하게 하였다.이영은 심초운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다가, 붉은 입술을 살며시 다물었다.말은 잇지 않았으나, 심초운을 보면 볼수록 가슴속이 근질거렸다.그녀는 마치 못 견디겠다는 듯 발끝을 들어 그의 목을 감았다.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천둥이 번쩍 치고 불꽃이 튀는 듯하였다.심초운의 얼굴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그녀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너, 부끄러워하는구나.”“누님, 부디 절 불쌍히 여겨 주세요.”심초운은 다정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홀연히 그녀를 번쩍 안아 침상 위로 옮겼다.그의 눈동자는 사냥꾼처럼 그녀의 붉은 입술에 고정되었고, 이내 몸을 숙여 그 입술을 맞췄다.그 모습은 부드럽고도 달콤하였다.입술이 맞닿는 순간, 마치 온몸 깊은 곳에서 끝없는 욕망이 끌려나오는 듯하였다.심초운은 순간적으로 몸이 떨렸고, 이영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그녀의 손끝에 힘이 미세하게 떨렸다.문득 술이 과하면 색정이 일어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아니다, 이건 술 때문이 아닐 것이다.어릴 적부터 황태녀로 자라온 만큼 주량 또한 단련돼야 했다.신하들과 술자리를 가져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니 말이다.게다가 방금 마신 것은 고작 세 잔, 이렇게 취할 리 없었다.“누님…”그의 낮고 걸걸한 목소리가 귀끝을 스쳤다.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나른하고, 은근히 매혹적이었다.“아니… 그 술, 뭔가 이상한 것 같구나…”그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럽게 풀어졌다.심초운도 입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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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4화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 뒤섞였다.이영이 먼저 다가와 그의 입술을 스쳤다. 한 번, 또 한 번… 그 짧은 닿음이 차츰 심초운의 자제력을 허물어뜨렸다.“누님… 저, 더는 참지 못하겠습니다.”“그렇다면 참지 말거라.”심초운은 순간 귀를 의심하였다.그 틈을 타 조심스레 물었다.“누님, 지금 제게 침상에 오르라는 말씀이십니까?”“그래. 오늘이 바로 우리의 혼례날이 아니더냐. 내가 어찌 너를 외롭게 두겠느냐.”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르륵, 옷자락이 바닥에 흩날렸다.촛불이 은은하게 흔들리고, 빛과 그림자가 어지럽게 얽히며, 숨결과 낮은 신음이 겹겹이 쌓여갔다.침전 밖.송이와 함향이 문 앞에 서서 기척을 살피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듣자마자 당안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전했다.송이가 낮게 속삭였다.“과거 폐하께서 황자마마가 흠천감을 떠나지 않고 혼례도 치르지 않으면, 절대로 침상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라 하셨는데… 근심을 덜었네요.”함향이 미소 지었다.“그런 일도 있었느냐?”송이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신이 실언을 했다고 여겼으나, 오래도록 친분이 있는 함향이기에 이내 덧붙였다.“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 마세요. 선황 폐하와 태후마마께도 말입니다.”함향이 고개를 끄덕였다.“염려 말거라. 지금으로선 대수로운 일도 아니니, 굳이 아뢰지 않아도 될 것이다.”잠시 후, 송이가 묻듯 물었다.“그런데 태후마마께서는 어찌하여 마마께 신방의 술을 바꾸라 하셨나요?”함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태후마마께서 내리신 술은 임 장군 댁 약방에서 빚은 특효 약주다. 흥을 돋우는 효험이 있지. 혹 시군께서 너무 긴장하여 고생하실까 염려하시어, 첫날을 더 즐겁고 덜 아프게 하려 하신 것이지.”송이는 눈을 크게 떴다.함향이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과거 주 부인께 들으니, 당시 태후마마와 선황 폐하의 첫날밤에도 이 술을 쓰셨다 하더구나.”“그렇습니까…”그들은 침전 안에서 새어 나오는 기척을 애써 외면하며, 일부러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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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5화

심초운은 옷고름을 느슨히 풀어 헤치고 목욕통에 몸을 담갔다.그리고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 안았다.이 순간만큼은 여기가 황궁이 아닌 것만 같았다.확실히 지금 그녀는 그의 정실 부인이었다.그는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으며 낮게 속삭였다.“누님,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응…”그녀의 대답은 코끝이 막힌 듯 나지막했다.그저 눈을 가늘게 감은 채, 그가 전해주는 모든 감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혼례 첫날밤, 기쁨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이번이야말로 욕망의 파도 속에 몸을 던진 첫 걸음이었다.그러나 이내 심초운의 손길이 차츰 얌전함을 잃더니, 아까의 열기를 다시금 이어 갔다.“여기서는… 안 된다.”이영은 단호히 거절하였다.욕조는 좁고, 움직임 또한 불편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흥이 오른 어린 짐승이 그 말을 귀담아들을 리 없었다.“누님, 누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침전 안에서는 누님께서 제 말을 듣겠다고요.”“너… 윽…”“누님이 불편하시다면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면 고치겠습니다…”물방울이 튀고, 그의 말투는 다소 노골적이었으나 그 속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움이 서려 있었다.“누님, 두려워 마옵소서. 결코 해치지 않겠습니다.”“이… 망나니 같으니.”“저는 한 평생 누님 한 사람만을 탐할 것입니다.”이영은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집요한 유혹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었다.“심초운, 너… 나를… 혼… 혼군으로 만들지 말거라.”“누님께서는 저만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아닌지요?”“좋아…”그들은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며, 서로를 끝내 놓지 않았다.한 시진이 지나서야, 이영은 더는 버티지 못해 그만두라 하였다.심초운은 그녀의 몸에 약을 발라 주고 옷을 입힌 뒤, 침상 위에서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번졌다.“누님, 오늘… 참으로 행복합니다.”이영은 품에 기대어 있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미간을 좁혔다.“내 기억에… 예전에 어마마마께서 아바마마 품에 기대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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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6화

닭이 울 무렵, 당안이 앞으로 나아와 아뢰었다.“폐하, 아침 조회에 나가셔야 할 시각입니다.”아침 조회라는 말이 귓전에 들리자, 이영은 흐릿한 정신으로 몸을 뒤척였다. 온몸이 뼈마디까지 풀려버린 듯 나른하기 그지없었다.심초운이 몸을 일으켜 세우자, 그녀의 힘겨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의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지난밤 한 차례로 그쳤어야 했는데, 괜스레 탐욕을 부린 탓이었다.“마마, 소신이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이영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감은 채 극도의 피로에 젖어 있었다.오늘은 즉위 후 첫 번째 아침 조회, 절대로 늦어서는 아니 되었다.사각거리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기 시작했다. 그가 심초운이라는 것을 이영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그의 손길에 맞춰 팔을 뻗고, 다리를 들고, 심지어 그의 품에 기대어 몸을 돌리기도 했다.따뜻한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살며시 내려앉아 부드럽게 어루만질 때, 이영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준수한 얼굴이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마마, 아침 조회에 나가셔야 할 시각입니다.”그의 표정은 기뻐 보였지만, 그 속에는 약간의 미안함이 스며 있었다.이영은 눈을 뜬 채 그의 준수한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고맙구나.”그녀가 고맙다 하였다.심초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마마를 위해서라면, 평생이라도 기꺼이 모시겠습니다.”일어서자, 송이가 궁인들을 거느리고 들어와 세면 도구를 가져왔다.“저것은?”이영이 묻자, 송이가 곧바로 밖을 향해 말했다.“가져오너라.”“예.”이내 궁녀가 대답하며, 검은 탕약 한 그릇을 받들고 들어왔다.이영은 그것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단장을 마친 후, 당안과 송이 등을 거느리고 자리를 떠났다.심초운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폐하, 조심히 다녀오세요.”하늘이 막 밝아오기 시작하는 시각에 그녀는 용포를 입고 침전을 나섰다.궁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떠나는 그녀의 뒷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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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7화

심초운의 가슴 속 어딘가가 은근히 저릿해졌다.초구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처음에는 심초운과 황제가 참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지, 큰 뜻을 품고도 궁궐 안에 묶여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더구나 대혼례가 끝난 이튿날, 황제가 마신 것은 피임약이었다.“초구야.”심초운과 하인은 나란히 금융궁을 나와, 궁궐 안을 목적 없이 거닐고 있었다.초구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도련님.”“전에는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초구는 주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심초운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 심초운과 이영 두 사람을 거의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사람이었다.“후회하십니까?” 초구가 조심스레 물었다.“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입 밖에 쉽게 꺼내지 못할 감정이 있었다.“사실 그분의 시군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그가 말을 잇지 않자 초구가 물었다.“황제께서 드신 그 탕약 때문입니까?”“그게 피임약이더냐?”“소인은 모릅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요.”심초운은 쓸쓸하게 웃었다. 대혼례 다음 날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신 탕약이 피임약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사실 그는 그 한 사발의 피임약 자체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그저, 지금의 자신에겐 이영만이 전부인 듯한 공허함이 가슴속에 번져올 뿐이었다.그제야 깨달았다.이육진이 과거에 왜 여인들의 상업 종사를 허락했고, 왜 여인들이 학문을 배우고 태의원에 들어가며 심지어 과거시험까지 치를 수 있도록 했는지.물론 과거에 응시하는 여인은 극히 드물었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장사를 하거나,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있었다.여인의 입장에서 서 보니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여인의 일생은 집에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부군을 따르며, 부군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결국 사는 내내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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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8화

“사실 손볼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허나, 그렇다 하여 아무도 돌보지 않게 둘 수는 없지.”이육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내 딸이 황제인데, 심초운 네가 시군이 되었으니 마땅히 몇 가지는 희생해야 하지 않겠느냐. 정무 또한, 영이가 이의가 없으면 너도 거들 수 있을 것이다.”그 앞부분을 들은 순간, 심초운의 가슴속에 전에 없던 묘한 압박감이 밀려왔다.마치 자기를 완전히 여인의 자리에 앉혀 놓는 듯한 기분이었다.그 순간, ‘내조’라는 말이 떠올라 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물론 스스로도 그럴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입으로부터 내조라는 단어를 듣자, 불시에 가슴을 치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이육진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이 소년이 이영을 깊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했으나, 시군이라는 자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 어떠한지, 아직 온전히 깨닫지는 못한 듯 보였다.자신과 소우연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이육진은 한 번도 소우연이 권력을 빼앗을까 경계한 적이 없었다.정무든 재정이든,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다.그리하여 둘은 평생토록 완전히 서로를 의지하며, 진정으로 비밀 없는 부부의 도리를 다해 왔다.하지만 심초운은 달랐다.그 뒤에는 심국공부라는 크나큰 집안이 있었다. 물론 심초운이 심소균을 신뢰하듯, 이육진도 그 집안을 믿었으나… 권력 곁에 오래 서 있다 보면, 과연 그 손이 뻗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대혼례 전에 이육진은 이영과 이 문제를 의논한 적이 있었다.이영은 단호하게, 당분간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다.그리고 마음속 생각을 모두 털어놓았다.그 속에는 이천이 흠천감에서 나와 혼인을 하고 자식을 두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다.이육진은 이미 이영에게 최선의, 가장 공정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지만, 세상 전체가 여전히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라는 것은 바꿀 수 없었다.여왕의 길은 실로 험난하다.그런 시기에 임신과 출산은 결코 적절치 않았다.이육진은 그러했기에, 이영이 이천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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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9화

이육진이 걸음을 멈추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내가 태후와 함께 바라는 것은 이 강산이 굳건히 서고, 백성들이 편히 살아가며, 천하가 태평하는 것이다.”“굳이 영이든, 천이든, 진이의 아이여야만 황제가 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심초운은 그 말에 눈이 크게 떠졌다.황제의 자리라면 누구나 목숨을 걸고 탐하는 자리인데, 어찌 이렇게 담담할 수 있단 말인가.선황 역시 그 황좌를 얻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지 않았던가.이육진은 그의 속마음을 읽은 듯, 잠시 말끝을 머금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인생이란, 결국 대단한 것이 아니다.”“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든 것을 느껴보기 위함이지.”“생로병사는 지극히 공평하여, 누구든 언젠가는 그날을 맞이한다.”“이 세상이 참된 것이라면, 혹 거짓일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느냐.”“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그의 시선은 세상의 구름과 바람을 내려다보듯 유유하였다.처음부터 그가 품었던 가장 큰 소망은 강산을 거머쥐어 소우연과 함께 살아남는 것이었다.이곳이 설화 속 세상이든, 허망한 꿈이든 상관없었다.그의 바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소우연 한 사람뿐이었다.“내 일생, 황위를 거머쥔 것은 태후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황좌를 내려놓는 것 또한 태후와 함께 세상을 두루 느껴보기 위함이다.”그렇다면, 왜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일까.이영이 아니어도, 다른 이가 황제가 될 수 있다고.그 까닭은 이영이 자신과 소우연의 피를 나눈 자식이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아이니 마땅히 지켜야 했다.세상 어느 누가 아이의 안위를 위해 먼 앞날까지 내다보며 모든 것을 버리겠는가.그런 마음은 천명마저 거스르는 것이었다.심초운이 낮게 읊조렸다.“세상을 느껴본다…”그가 가장 바란 것은 결국 이영이었다.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무렵, 이육진이 말을 이었다.“이영이 말하더군. 그대의 아이든, 천이든, 진이든, 누구의 자식이든 간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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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0화

“폐하,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자,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심초운의 가슴속에 기쁨이 번져나갔다.이육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리고 영이가 막 황좌에 오른 터이니, 그 아이의 몇몇 행보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거라.”순간, 심초운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아침 이영이 마신 그 탕약은 과연 피임약이었을까.“예, 폐하의 당부를 잊지 않겠습니다.”그제서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과연 선황은 혜안이 깊었다.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참으로 기특하구나. 말 한마디면 곧바로 깨달으니 말이다.”“과연 영이의 시군답다.”그러고 보니 용강한이 왜 심초운과 이영이에게 연이 있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나는 이만 태후를 만나러 가야겠구나.”“배웅해 드리겠습니다.”이육진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기세는 젊은 장수 못지않았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초운은 생각했다. '마음속에 그녀 한 사람만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 바로 저 모습이로구나. 폐하는 내 본보기시다.'게다가 이육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찌나 투명한지, 이영뿐 아니라 황자와 황녀 중 누구든 뛰어난 기량과 덕망이 있다면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그렇다면 황좌가 어찌 이영보다 귀하겠는가.앞날의 길을 찾은 심초운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도련님…”초구가 돌아와 보니 심초운의 표정이 전과 달리 한결 밝아져 있었다. 그 기운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도 전해졌다.심초운이 물었다.“초구야, 우리가 무슨 장사를 하면 좋겠느냐?”“장사 말입니까?”“그래, 장사 말이다.”곱씹어 보니 이건 초구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국공부로 돌아가 심소균과 심 부인에게 여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분은 평생 수많은 고을을 다녀보셨으니 분명 조언을 주실 터였다.초구가 머리를 긁적였다.“소인은 이런 일은 통 모르겠습니다.”사실상 너무도 난처한 물음이었다.그는 당장이라도 궁문을 나서고 싶었으나, 대혼례 후 시군의 신분으로서 아무 때나 궁을 나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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