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온전히 어둠이 깔린 때는 아니었으나, 두 사람은 물을 청하였다.심초운이 친히 그녀의 옷을 입혀주며 시중을 들던 중, 불현듯 깨달았다.이영이 한 가지 면에서는 제법 귀한 집 규수다운 기질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의 손길을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또 은근히 기꺼워하고 있었던 것이다.곰곰이 생각하니 그럴 만하였다.이영은 줄곧 저군으로 길러졌으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규수처럼 쑥스러워하며 꼼지락거릴 리 없었다.그녀가 드물게 그의 앞에서만 비치는 수줍음, 그것이야말로 본디 타고난 성정 속에 깃든 부드러움이었다.“지쳐 쓰러질 것 같구나.”이영이 고개를 약간 숙이며 눈살을 찌푸렸다.심초운이 낮게 웃었다.“그렇다면 앞으로 낮에는 더 이상 이렇게 저를 유혹하시지 마십시오.”그의 잘못이었다. 오전에는 참고 넘겼으나, 오후에는 결국 버텨내지 못했던 것이다.그녀의 말대로, 서로 눈길만 마주쳐도 참을 수 없이 입맞추고 싶고, 끌어안고 싶고, 맞닿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이 감정은 마치 독과 같아, 쉽게 놓아버릴 수 없었다.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완연히 깨달았다. 남녀의 기력 차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앞으로는 절대로 경솔한 마음을 품지 않으리라.“그래, 나는 반드시 명군이 될 것이야.”그녀는 남녀지사에 다시는 빠져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똑, 똑, 똑—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송이의 목소리가 들렸다.“폐하, 황자마마께서 이미 식당에 도착하셨습니다.”이영이 크게 대답했다.“알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허나, 온몸에 힘이 풀려 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심초운에게 안아 일으켜달라 청했다.심초운은 그녀를 소중히 감싸안았다.침상에서 내려온 후 몸을 돌려, 그녀를 가로로 안아 들며 나직이 말했다.“오늘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옵소서.”“응, 그래.”그는 이 순간만큼 이영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느꼈다.……경성 교외의 농장, 사방은 어둠이 내려 고요하기만 했다.소우연은 창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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