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261 - Chapter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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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1화

“예…”주건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상대방이 묻는 것이 아마도 주익선의 원정 동행 허락 여부인 듯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허락… 허락하셨습니다.”진호범이 고개를 숙이며 씩 웃었다. '역시 이 고집불통 녀석이 결국 원하는 걸 해냈구나.' 그는 주건을 데리고 주익선이 머무는 객실 앞으로 향했다.“안에 있다. 들어가 보거라.”“예, 감사드립니다. 대인”“밖에서는 대인이고 할 것 없다. 그냥 날 숙부라 부르면 된다.”주건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는 이미 진호범이 떠난 뒤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주익선이 묵는 객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주익선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주건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허락하셨느냐?”“허락하셨습니다.”주건은 황급히 부인과 어르신이 써주신 서신을 두 손으로 올려드렸다.주익선은 급히 봉투를 뜯어보았다. 어머니의 서신은 과연, 태후마마께 청을 드려 아들이 나가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간곡한 글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편지는 훨씬 엄했다. 본분을 지키고 선을 넘지 말라, 어길 경우 돌아가면 다리를 꺾어버리겠다는 협박 섞인 경고였다.'도대체 이런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본분을 지키라니… 무슨 본분?주익선은 문득 자신이 이진을 좋아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말한 '본분'이란 바로 그 일이겠지. 하지만…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녀의 호위가 되어 지켜주면 안 되겠는가?……이튿날. 주익선은 어머니가 써준 서신을 소우연에게 내밀었다. 소우연은 정연이 남긴 그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고, 어미가 자식을 향한 지극한 애틋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서신을 이육진에게 건넸다.이육진은 손에 들지 않고 흘깃 보더니, 주익선을 향해 물었다.“네 아비, 어미가 너를 지극히 아끼는 것 같구나. 허나 네 놈, 네 아비의 기개를 조금이라도 닮아본 적은 있느냐?”주익선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저… 저도 압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을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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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2화

“괜찮으십니까?” 심초운이 황급히 물었다.이영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방금 전까지의 위엄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입맞춤하면 나을 것도 같고.”그녀가 활짝 웃으며 심초운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눈빛이었다.심초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감싸 쥐곤 낮게 물었다.“어디를 원하십니까? 여기입니까, 아니면 여기입니까?”그의 손끝이 이마를 짚었다가 코끝을 스치고, 마지막엔 입술 위에 멈췄다.이영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곧 손을 들어 그의 얇은 입술을 어루만졌다.“전부다.” 단호한 목소리였다.“전부다요?”“그래, 전부다.”심초운의 웃음은 초봄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환했다. 막 몸을 숙이려는 순간, 이영이 다시 속삭였다.“초운아, 전부라 하지 않았느냐.”그는 멈칫했다.그녀의 눈빛에는 교태와 장난기가 가득하였다.“이틀 동안 네가 그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정무를 처리하고 나서야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올 수 있었지.”“이렇게 급히 신을 찾으신 까닭이, 바로… 신이 그리우셨습니까?”“그래.”심초운은 차마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어떤 여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농담까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을까.“누님, 저…”“응?”“저는… 누님을 좋아합니다.”낮게 고백하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서로의 입술 위에 고정되었다.그가 몸을 숙이고, 그녀가 발끝을 들어 올렸다.천둥과 불길이 맞부딪히듯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졌다.이틀 동안 쌓였던 그리움 때문일까. 입맞춤은 곧 세상을 뒤흔드는 듯 강렬했다.이영은 정신이 아득해져 머리가 아찔해졌다.그 감각은 마치 온몸을 그의 품에 매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무심결에 낮게 신음이 흘러나왔다.“초운아…”심초운은 숨결이 뒤엉키는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며 읊조렸다.“누님…”두 사람의 호흡은 얽히고, 눈빛 속에는 오직 서로만이 존재했다.“침상으로 가자.” 이영이 명하듯 말했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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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3화

옛적에 선황과 태후도 대낮에 이런 일을 서슴지 않았었다.“상궁마마,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습니다.”궁녀의 말에 송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물러가거라.”송이는 발걸음을 옮기며 정실 곁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물었다.“폐하, 따로 분부하실 것이 있습니까?”이영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만 물러가거라.”잠긴 목소리.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예전에는 어머니의 쉰 목소리를 보면서도 그 까닭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심초운과 얽히고 뒤엉긴 뒤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이 감각은 신선조차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저녁이 되기 전까지 두 번이나 물을 들였으니, 둘은 더는 방자하게 굴 수 없다고 뜻을 모았다.심초운이 막 몸을 닦아주자, 이영은 곧장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심초운이 고개를 저었다.“폐하, 이리 하심은 옳지 않습니다.”“허.”“옳지 않은 것은 제가 아니라 마마이십니다.”그에게는 넉넉한 기력이 있었으나, 그녀는 달랐다.날마다 정무에 지쳐 있었으니, 남녀의 일에 깊이 빠질 수는 없었다.이영은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연말이 되면 저 대신무리에게 미리 휴가를 내마. 그때는 마음껏 즐길 수 있겠느냐?”심초운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기억하십니까? 그때 말씀하시기를, 만약 형님께서 흠천감에서 나오지 않으시고 혼례도 치르지 않으신다면, 누님께서…”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영은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다행히도, 내 곁에는 너 하나뿐이구나.”“만약 또 다른 이가 곁에서 속삭였다면, 나는 어리석은 임금이 되어 아바마마의 얼굴을 욕되게 했을지도 모른다.”심초운은 단호히 답했다.“마마 곁에는 저 하나뿐입니다. 제가 누님을 제어할 터이니, 결코 혼군이 되시지 않을 것입니다.”그의 눈길은 언제나 그녀만 좇았다.하루 이틀만 떨어져도 애가 탔으니, 두세 시간을 함께하는 순간조차 짧기만 했다.이영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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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4화

초구가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대인께서 곧 도착하십니다. 더는 지체하시면 아니 됩니다.”이영은 심초운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짓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날 좀 안아 일으켜다오.”“예, 폐하.”그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이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나무랐다.“초운이, 너도 참 별나지. 침소에서는 이따금 ‘누님’, 이따금 ‘영이’, 또 어느 때는 ‘폐하’라 부르니… 도대체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지?”그녀 역시 그를 ‘부군’, 때로는 ‘초운’이라 불렀다.심초운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을 여미고는 그녀의 의복을 하나하나 손수 입혀 주었다.“폐하, 그렇다면 문덕전은 더는 가시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문덕전으로 향했다가 진유와 그 일파에게 가로막혔던, 씁쓸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그의 가슴속 그리움은 마치 주술에라도 사로잡힌 듯, 한층 더 진하고 뜨겁게 일렁였다.오히려 그녀를 손에 넣지 못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욱 간절하고 애달팠다.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인생의 술이란, 말년으로 갈수록 더 독하고 진해지는 법임을 말이다.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어찌하여 마침내 천하를 내려놓으시고, 함께 산천을 두루 유람하려 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심초운은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부디 형님께서 나라를 굳건히 지탱해 주시기를… 그래야 내가 누님과 함께 자유로이 떠날 수 있을 터인데.’이영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그건 오라버니께 달렸겠지.”그는 풀이 죽은 듯 괜히 그녀를 끌어안았다가, 성난 체하며 품을 풀어버렸다.“흥, 이제 안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녀의 가녀린 손길이 다시 그의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안아 다오.”그는 일부러 고개를 돌리며 투정을 부렸다.“싫다니까요.”이영은 오히려 은은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로 속삭였다.“그럼 이렇게 하자구나. 앞으로 내가 먼저 찾아가 널 만나 주마.”그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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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5화

이영은 몸을 굽혀 심초운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위엄으로, 심초운을 완전히 제압한 듯 손아귀에 움켜쥔 모습이었다.“폐하…?”송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분명 조금 전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나온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이천은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이 알아서 수습하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이영은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 심초운의 손을 놓으면서도 오히려 도발하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오라버니,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이천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폐하, 남녀의 정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어찌 대낮부터…”“오라버니, 지금은 해질 무렵입니다. 곧 어두워지겠지요.”“그렇다 하여도…”“제게는 오직 단 한 명의 시군밖에 없습니다. 결코 남녀 간의 정에 빠져 허송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라버니께서 아무래도 잘못 보신 듯 합니다.”이천은 말문이 막혔다. 분홍빛으로 물든 뺨, 윤기 어린 입술, 전혀 거리낌 없는 당당한 태도.괜한 참견을 한 것이었을까.심초운은 두 손을 모아 이천에게 예를 표했다.“형님,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용서라니.그가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 셈인가.“오라버니.” 이영은 짙은 숨결을 토해내듯 술잔을 들어 직접 이천 앞에 따랐다.“차라리 두어 잔 함께하심이 어떠하십니까?”“용 대인께서도 종종 술을 드시곤 했는데, 형님만 마다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이천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촉촉히 젖은 듯한 눈동자에 가득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지나치게 고지식하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스스로의 수행이 우스워지는 듯했다.이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흘 뒤면 의화원에서 꽃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때라 합니다. 초운이가 상매연을 마련했으니, 오라버니께서도 자리를 빛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심초운 또한 술잔을 들어 올렸다.“형님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부디 거절 마시고 받아 주시옵소서.”부부가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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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6화

“어떻습니까?”이천이 더 이상 점을 보지 않자, 이영이 황급히 물었다.“아바마마, 어마마마께선 괜찮으시지요?”“무사하십니다.”괜찮다는 것이 정상이었다.그날 자신도 심초운과 함께 점을 쳐 보았는데, 역시 길하고 상서로운 괘였다.다만, 그들의 점술은 정확하지 못해 그저 반쯤 배운 수준일 뿐이었다.이영은 이천이 이렇게 말하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그럼 다행이네요. 이제쯤이면 금주에 도착하셨겠지요?”이천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아닙니다.”“아직이요?”“네, 보아하니 아직 경성에서 멀리 가지 못한 듯합니다.”이영은 단숨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럼 어디 계십니까? 아바마마, 어마마마를 뵈러 가고 싶습니다.”이천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폐하께선 이제 일국의 군주십니다. 한번 갔다 오면 조정의 정무가 모두 지체되지 않겠습니까.”이천의 말에, 이영은 순식간에 기가 꺾여 억울함과 투정을 섞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천은 이해가 되지 않아 곧장 물었다.“제게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이영은 곧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감히 그럴 리 있겠습니까.”이천이 돌아왔으니, 이 강산과 사직에 자신은 힘을 보탤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그저 늘 그 흠천감에서만 지내니 말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상매연이 열렸다.화려하게 차려입은 명문가 규수들뿐만 아니라, 잘 차려입은 명문가 공자들도 모여들었다.심초운이 그 잘 차려입은 공자들을 보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곁에 있던 초구를 바라보며 눈빛을 보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초구는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도련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도련님과 아씨 모두 참석할 수 있다고…”그 말은 맞았다.하지만, 이렇게 알록달록 차려입은 공자들이라니?이건 분명히 이영을 겨냥하고 온 것이 아닌가!초구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듣기로는 도련님께서 폐하께 시군을 뽑아드리려는 줄 알고 공자들이 아씨들보다 더 많이 모여든 것이라 합니다.”심초운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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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7화

호숫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배 위에서 어린 내시가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오셨습니까, 나으리.”그는 초구에게 그리고 심연희에게도 머리를 깊이 숙였다.“배는 이미 준비되었습니다.”초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호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연희 아씨, 저기 호심도가 보이십니까? 궁 안에서 매화가 가장 곱게 핀 곳입니다.”심연희의 시선이 호심도로 향했다. 섬에는 아담한 정자가 서 있었고, 그 둘레를 가득 메운 매화나무들이 은은히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점이 있었다. 부근에 다른 배는 없었다. 귀한 아씨들이나 공자들이 모여 있을 법도 한데, 단 한 척의 배, 그것도 자신을 태운 배뿐이었다.심연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래서… 날 이곳에 데리고 온 연유가 무엇이냐?”“무슨 일이지?”초구가 난처하게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렸다.“아씨, 염려 마옵소서. 소인이 어찌 감히 아씨를 희롱하겠습니까.”그럴 리 없었다. 초구가 감히 그런 무례를 저지를 인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저 호심도에 과연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그녀는 주변을 살피더니 초구를 따로 불러내어 낮게 속삭였다.“가지 않겠다.”“예?”“난 다 알고 있다. 폐하께서는 늘 문덕전에 거처하시고, 금융궁에는 만찬 외에는 계신 적이 없지 않느냐.”초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씨, 폐하께서는 대인을 매우 아끼십니다.”“정녕… 아끼신단 말이냐?”“그렇습니다.” 초구의 대답은 단호했다.허나 심연희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렸다.“정말 그러하시다면, 어찌하여 늘 문덕전에만 계신단 말이냐…”그러나 미혼의 규방 아씨가 더 깊은 말을 꺼내는 것은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내관과 이런 이야기를 길게 나누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웠다.초구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아씨, 혹 대인께서 폐하께 미움을 사, 가까이 모시지 못하실까 염려하시는 겁니까?”순간, 심연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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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8화

심연희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손에는 수많은 초상화들을 쥐고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꽃봉오리 같은 소녀들이거나 밝고 명랑한 미소를 띤 아가씨들로,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천의 풍광제월 같은 청수한 얼굴을 떠올리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쉬움이 밀려왔다. 도대체 어떤 처자가 그에게 어울릴 수 있을까?어린 내시가 배를 젓는 동안, 그녀는 한 장씩 한 장씩 살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천에게 어울릴 만한 이는 겨우 한두 명 정도인 것 같다고. 물론, 이는 그녀가 천박해서였다. 어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여,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보고 또 보다가, 심연희는 갑자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고, 그녀는 내심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아씨, 도착했습니다.”내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연희는 황급히 자신의 초상화를 맨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아, 그래.”내시가 배를 정박시킨 후에야 그녀는 몸을 일으켜 호심도에 올라섰다.“소인이 배는 여기 정박해 두겠사오니, 아씨께서 돌아가시고자 하시면 언제든 이곳에서 소인을 찾으시면 됩니다.”심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뒤돌아보니, 배는 이미 호심도의 뒷편에 와 있었다. 뒷면은 산과 물로 둘러싸여 있어 거의 황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눈앞의 작은 길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다리는 마치 납덩이라도 달린 듯 반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푸른 매화나무 한 그루 옆에 서서, 잠시는 호수를, 잠시는 매화를, 잠시는 정자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선 위치에서는 정자의 지붕만 보일 뿐, 정자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오라버니와 폐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 번 용기를 내보자.’매화 숲 사이로 들어가자 정자 안에서 흰 옷을 입은 이천이 작은 화로로 차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과도 같았다. 그의 무척이나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을 보니, 정말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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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9화

심연희가 목을 가다듬었지만, 아직 입을 열기 전에 이천이 다시 말했다.“앉아서 말하셔도 됩니다.”“아, 예.”그녀는 순순히 앉았고, 앉고 나서야 깨달았다. 원래 국공부를 떠난 후 이천 앞에서 그녀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보다도 얌전해졌다. 아니, 고양이도 가끔은 말썽을 피우는 법인데 말이다.이천 앞에서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몇 번이나 삼키면서도 감히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신이 말을 잘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이천이 말하며 찻잔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이 매원의 신선한 꽃잎으로 우린 것입니다. 맛 보시지요.”심연희는 옅은 노란색 찻물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감사드립니다.”이천이 가볍게 '음' 하며 답하고는 자신에게도 한 잔 따랐다.찬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이때서야 심연희는 조금의 이성을 되찾았고, 심지어 머릿속에서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 화본 속에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고결한 불자를 속세로 끌어내렸을까?아니, 그녀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몸으로 유혹하겠다는 걸까?‘어쩜… 내가 미쳤구나…’바로 이때, 그녀는 이천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책상 위에 놓인 초상화를 집어 드는 것을 보았다.이어서 남자가 한 장 한 장 살펴보는데, 눈빛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마치 다른 사람이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그녀는 일부러 가장 아름답고 가문도 좋은 명문가 규수들을 앞쪽에 놓았는데, 그는 왜 갈수록 빨리 넘기는 것일까?“황자마마, 이것들을 자세히 보셨나요?”그녀가 일어나 그에게 걸어가며 그가 무심코 책상에 놓은 초상화를 가리키며 물었다.이천이 '음' 하고 답했다.“이분은 진국공부의 진 아씨입니다. 이 분도 보셨습니까?”이천이 심연희를 바라보았다. 한 쌍의 맑은 물빛 눈동자가 무척이나 맑고 투명했고, 깜박거릴 때마다 그 긴 속눈썹은 마치 날개를 펼치려는 나비와도 같았다.그녀는 초상화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마치 자신이 신랑감을 고르는 것처럼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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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0화

“정말 맛있습니다. 황자마마, 감사합니다.”심연희는 아낌없이 칭찬했다.이천도 겸손하지 않았다. 자신이 차를 우리는 솜씨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고, 장공 스님과 정 도사까지도 크게 인정하는 바였다.어쨌든 그가 차를 우릴 줄 알게 된 후로는 일행의 차와 의식주 모든 것이 그가 계획해야 할 일이 되었다.생각해보니 그는 열 살 되던 해부터 일행의 의식주를 모두 챙겨야 했던 것 같다.호심도의 바람은 매우 거셌다. 호수 면은 반짝거리고, 꽃잎들은 호심도 안에 흩날렸다.그녀는 마음이 이상하였다.그와 함께 이런 호심도에 있다는 것 자체로 심장이 쿵쾅거렸다.그의 곁에 있으면 매우 편안하면서도 마음이 콩닥거려서, 그를 한 번 더 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다.용기를 내어 그녀는 계속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황자마마께서는 어려서부터 장공 스님을 따라 멀리 유람하시며, 세속의 공자들과는 다르시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여쭈어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이천이 그녀를 보았다. 그럼 물어보라는 뜻이었다.심연희는 그를 보며, 그가 별로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고 계속 말했다. “방금 그 초상화들 중에서 마마의 눈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으셨습니까?”물어본 후에는 오직 바람소리만 남았다.바람이 탁자 위에 놓인 그의 소매를 흔들고, 마디가 뚜렷한 그 손이 탁자 위에 평온하게 놓여 있다가 찻잔을 들어 유유자적하게 두 모금을 마셨다.심연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그녀가 너무 예의가 없었구나. 어떻게 황자마마께 이런 식으로 물어볼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무슨 신분이고 자격으로 감히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단 말인가?“죄송합니다. 소녀가 분수를 넘었습니다.”심연희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괜찮습니다.”심연희가 그를 보니, 깨끗한 손으로 찻잔을 들고 멀리 호수면의 물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지금껏 혼사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생각해보지 않으셨다고요?”“그렇습니다.”“그럼 지금은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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