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271 - Chapter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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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1화

그녀는 몸을 일으켜 단정한 자세로 절을 올리며 인사했다. “소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하겠습니다.”“저 밖에 이미 어린 내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자마마께서 직접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그럼에도 이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 오십시오.”“예.”어차피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겁에 질린 메추리처럼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두 사람은 들어온 길을 따라 다시 걸어 나갔다.그런데 곧, 심연희는 방금까지 정박해 있던 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당황했다. “분명 아까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없네요?”분명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초구였다! 아니면 그 어린 내시가 제멋대로 한 짓일까? 아니었다. 그 어린 내시에게 그런 배짱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명 초구가 꾸민 일일 터였다!그런데 초구는 왜 자신을 속인 걸까?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심연희는 문득 깨달았다. 초구와 다른 이들이 분명 자신과 이천을 엮어보려는 심산이었다.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얼굴이 화끈거렸다.이렇게 뻔하면 이천이 눈치채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신은 무슨 낯으로 그 앞에 서야 한단 말인가.하필이면 자신은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감히 불자를 신좌에서 끌어내리려 했던 터였는데.“사람이 이미 떠난 모양이군요.”이천이 담담하게 말했다.심연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히려 울음보다도 더 서글퍼 보였다. “소녀도... 도통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그럼, 이제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호수 가운데 섬 너머를 바라보니 아까 들어온 길보다는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무공으로는 도중에 물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네?”그녀가 다른 배를 찾고 있을 때, 문득 누군가가 팔목을 감싸 쥐었다. 이어서 몸이 붕 떠오르며 가볍게 하늘을 나는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천은 심연희를 육지로 데려왔다. 다만 그곳은 온통 앙상한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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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2화

마음이 이렇게 흔들릴 줄이야. 어쩐지 사부님께서 그에게 복숭아꽃 비녀를 건네주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낭자,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그가 천천히 물었다.심연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사내의 눈매는 온화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빛나면서도 따스했다.“이곳은 보통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흠천감입니다.”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했다. “하지만 낭자께서는 이미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심연희가 입술을 달싹였다. 맞다, 그녀는 이미 흠천감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소문처럼 뼈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나 숨 막히는 고통 같은 건 전혀 없었다.어찌 된 일일까?아버지가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흠천감이라 해서 무조건 금단의 장소는 아니며, 특별한 명격을 지닌 자라면 들어올 수 있다고.그렇다면 자신도 특별한 명격을 가진 것일까?순간 심연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도 흠천감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 명격은 왜 특별한 것입니까?”그녀가 아는 이른바 특별한 명격의 소유자들. 정 도사, 용강한, 경문… 그들 모두 고독한 삶을 살아온 자들이었다. 또한 황제 폐하, 태후 마마, 진녕공주…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이천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특별한 것일까?그의 시선이 그녀의 귀밑에 꽂힌 하얀 옥으로 만든 복숭아꽃 비녀에 머물렀다. 어쩌면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인연' 때문일지도 모른다.그 인연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이천은 알 수 없었다. 만약 나쁜 인연이었다면, 사부님께서 굳이 그를 도와주지는 않으셨을 것이다.한순간, 이천의 마음에 물결처럼 흔들림이 일었다. 스스로의 본심조차 알 수가 없었다.그 인연을 받아들여 하나의 숙명을 매듭짓고 싶으면서도, 이토록 맑고 자유로운 소녀를 자신이 결국 떠나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될까?만약 마음을 수양하는 대가가 한 무고한 소녀를 상처 입히는 것이라면, 그는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것 아닐까?장공 스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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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3화

“오라버니, 어떻게 여기 계세요?”심초운도 물었다. “어찌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것이냐?“심연희가 눈썹을 찌푸리며 심초운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무슨 뜻인가요?”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초구가 감히 저를 희롱할 배짱은 없어요. 배를 몰고 가라고 지시한 분이 오라버니 아니었나요?”심초운은 순간 멍하니 굳어버렸다. “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그럼 초구가 그렇게 대담할 리 있겠어요?”“그놈이 돌아오면 내가 직접 벌을 내리마.”아직 의화원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초구는 자신이 주인의 방패막이로 끌려나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대체 어떻게 돌아온 것이냐?”심초운이 다시 물었다.심연희는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이천이 여동생을 안고 호심도에서 날아 나온 일도 이제는 심초운에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이천이 자신을 흠천감으로 데려갔다는 말이 나오자, 그는 크게 동요했다.역시 그러했다.용강한이 어찌 함부로 이천에게 복숭아꽃 비녀를 선사했겠는가? 심연희가 어찌 손을 거쳐 노 도사의 백옥 복숭아꽃 비녀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이미 운명으로 정해진 일이었던 것이다!심연희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뜻밖이었어요. 제가 감히 흠천감에 발을 들일 수 있을 줄이야.”그녀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심초운도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네 명격도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겠구나.”“물어봤는데, 왜 특별한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그러다 그녀는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오라버니, 혹시 제 명격이 고독지명 같은 건 아니겠죠?”심초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헛소리 하지 마라.”“예전에는 흠천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태후마마, 선황 폐하, 그리고 진녕공주 같은 분들 뿐이었어요. 아니면 정 사부님이나 경문 아저씨뿐이었죠. 그런데 그분들은 모두 고독한 운명을 타고나셨잖아요…”“너는 그들과 다르다. 명격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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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4화

남매는 함께 이곳저곳을 뒤져보았지만,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가져오는 도중에 잃어버린 게 아닐까?”하지만 두 남매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심초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마 가져오는 길에 잃어버린 게 맞을 거야.”그는 태연하게 말했다.“괜찮다. 나중에 다시 화공에게 부탁해서 그려 오면 되지.”“제 초상화를 또 그리게 하실 건가요?”심연희가 웃으며 물었다.“설마 황자마마께서 저를 마음에 두실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심초운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도 맞다. 그럴 필요까진 없겠구나.”이미 그녀는 흠천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초상화 따위는 무의미했다.심연희는 오라버니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녀 역시 이천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이미 수리가 끝났지만, 형님께서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실 뜻이 없는 듯하구나.”심초운은 직접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목이 마르던 심연희는 잔을 들어 마시고는, 오라버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다렸다.심초운은 자신도 잔을 따르고 한 모금 머금은 뒤 말을 이었다.“폐하는 날마다 조정 일로 분주하여, 뵙기도 어려울 게다.”그는 시선을 여동생에게로 돌렸다.“네가 흠천감에 들어갈 수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한번 청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제, 제가요?”심연희는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자기 코끝을 가리켰다. 그저 언급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자신은 그저 미천한 신분이거늘 무슨 자격으로 감히 이천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또한 이번 일은 이천더러 거처를 옮겨달라는 부탁이었다.어찌 감히 그에게 나아가 거처를 옮기라 청할 수 있단 말인가.심초운은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담담히 말했다.“너는 내 여동생이다. 내 체면을 봐서라도, 아니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체면을 봐서라도, 형님께서는 너를 탓하시진 않을 게다.”“그렇다고는 하나…”“허나 황자마마께서 흠천감에서 나오지 않으신다면,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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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5화

생각에 잠기니, 심초운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영의 또렷한 눈매만 가득했다. 과연 이영은 언제나 시원한 기운이 서린 눈빛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황자마마께는 확실히 정해진 인연이 있습니다.”심연희가 이를 악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분은 반드시 흠천감을 나서야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어요.”심초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그런데 만약 그분이 저를 흠천감에서 내쫓는다면…”“오늘 형님께서 너를 향해 불쾌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셨느냐?”“아니요.”“집안 사정을 고려해서라도 너를 함부로 노여워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혹시 모르니 한번 시도해보아라. 잘못되면 달아나면 되지 않겠느냐.”“달아나요?”심연희가 심초운을 빤히 바라봤다. “제가 과연 그분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을까요?”“걱정 마라. 그분은 결코 분노에 휩쓸리는 성품이 아니다.”이천의 성정은 용맹한 사부처럼 너그럽고 관대하다. 치졸하게 심연희를 쫓아낼 리가 있겠는가.“제가 다시 생각해볼게요.”“그래.”심초운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한동안 남매 사이에 말이 끊어졌다. 그러자 심연희는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황제께서 바쁘시니, 자신이 흠천감에 들어가 이천의 배필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결심을 굳히자 긴장도 풀리고, 오히려 궁금해져서 물었다. “오라버니는 어째서 일찍 돌아오셨어요? 연회는 오라버니 주관이 아니었나요?”“초구가 있으니 괜찮다.”“그럼 폐하께서는요?”혹 폐하께서 의화원에 계시다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시면 어쩌려고? 심초운은 어쩜 이렇게 태평하단 말인가.심초운은 동생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고 빙긋 웃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문덕전에서 주장을 검토하고 계신다. 의화원에 계시진 않을 게야.”그 말을 듣자 심연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그러니 오빠가 이렇게 태연하게 금융궁에서 자신과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전에 내가 준 궁패는 아직 갖고 있느냐?”심초운이 물었다.심연희가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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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6화

“초운아.”이영이 걸어나왔다. 뒤에는 당안이 따르고 있었고, 어전 문 앞에는 호위무사들과 궁인들이 서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심초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폐하.” 그녀는 잠시 짬을 내어 나온 것이었다. “상매연은 어땠느냐?”“말하자면 깁니다. 저녁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저녁?”이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밤도 아마 제멋대로 굴지 못하겠구나.’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그럼 안으로 들어가자구나.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다오.”심초운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싸늘해졌다.오늘 밤도 자신은 문덕전에서 홀로 자고, 그녀는 금융궁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혼례를 하고도 홀아비가 된 듯한 이 기묘한 허전함은 대체 무엇인가.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맡기고, 마치 새색시처럼 황제 폐하의 손에 이끌려 걸어갔다.당안은 어전의 문을 닫으며 곁에 있던 태감에게 말했다.“목욕물을 준비하거라.”“……”“어서!” 당안이 웃으며 말했다.“예, 어르신.” 태감이 황급히 뛰어갔다. 물론 열탕방에는 언제나 뜨거운 물이 있었으나, 따로 정성껏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혹여 안에서 물을 찾을 때 제때 올리지 못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어전 안.심초운은 이영에게 이끌려 들어가, 곧 내전 안의 온돌 위에 앉혀졌다.“이제 어찌 된 일인지 말해보거라.”심초운은 아직 약간의 불만이 남아 있었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이영이 그의 품에 쓰러져 안겼다. 그런 다음 목을 감아 올리며 눈빛 가득 애정을 드러냈다.그 순간, 그에게 남아 있던 모든 화는 눈부신 그 눈동자 속에 씻겨 사라지고 말았다.남은 것은 거친 호흡, 그리고 그녀를 향한 꺼지지 않는 갈망뿐이었다.“그렇게, 그렇게 절 자꾸만 흔드시면 안 됩니다.” 심초운은 그녀의 장난스러운 손을 붙들며 애써 절제했다.“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저, 그의 곁에 기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허나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흔들렸다.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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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7화

그녀는 마치 깊은 늪에 몸을 던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문득 허공으로 내던져져 떠오르는 찰나, 온몸이 텅 비어 오히려 더없이 가벼워졌다.그녀가 말하는 것은 바로 주공의 예, 곧 부부의 정사였다.그 수많은 몸짓과 형태들이 담겨 있었다.비록 소우연이 건네준 책 속에서 정사들을 본 적은 있었으나, 그 속에는 그리 많은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았다.심연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시중에 떠도는 화본에는 오직 남녀 간의 사랑만 그려져 있었지만, 부친과 모친이 내어준 춘궁도의 장면들은 그야말로 절묘하기 짝이 없는, 여인들의 은밀한 비밀서 같았다.그 때문에 이영의 그에 대한 의존은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의 만남이 언제나 몰래 정을 통하는 일탈처럼 흘러간다는 점이었다.대낮에만 함께하고, 밤이 되면 그의 곁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그는 간절히 바랐다.이영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자고 싶었다.그러나 한 지붕 아래 같은 방에 머물면, 그가 이를 악물고 억제하려 해도, 그녀는 물뱀처럼 그의 몸을 휘감아오니 그는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었다.“폐하.”문밖에서 당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물이 준비되었습니다.”이어 문이 열렸다. 곁방의 정결실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이 모두 물러난 뒤에야, 심초운은 그녀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이영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심스레 속삭였다.“나와 함께 씻지 않겠느냐.”그녀는 그 시간을 즐겼다.그는 언제나 먼저 그녀의 몸을 정성껏 씻어주었다.가끔 그 둘은 씻는 동안에도 정을 나누곤 했다.이영은 이제 알았다.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반드시 두 번은 물을 새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물소리는 점점 더 격렬해졌고, 얼마나 흘렀는지 물은 이내 식어버렸다.몸을 살짝 떨며 이영이 속삭였다.“물이 차가워졌구나.”심초운은 주저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침상으로 갈까요, 누님?”“침상으로 가요.”아마도 당안이 이미 사람을 시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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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8화

“비슷하구나.”이영은 단호하게 말하며 심초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빛이 반짝였다.“네 말은… 오라버니와 연히, 그 둘 사이에 인연이 있다는 것이냐?”심초운은 먼저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손에 든 국그릇을 들고 와 숟가락으로 정성스레 떠 그녀에게 내밀었다.“어전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제가 드리겠습니다.”“음.” 이영은 짧게 대답하며 침상에 기댄 채,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그 비녀는 제 눈엔 사부님의 것과 무척 닮았습니다.” 심초운이 말을 이었다.이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외삼촌께서 남의 인연까지 관여했다는 말이냐?”심초운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예전 저희 두 사람의 일도, 사부님께서 적잖이 마음을 쓰셨지요.”그 일을 떠올리자 이영은 아직도 마음 한켠이 조금 불편했다.하지만 심초운이 있었기에 그녀의 시선이 다른 데로 옮겨졌고, 마침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또렷이 깨달을 수 있었다.그가 아니었다면, 마지막이 어떻게 끝났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심초운의 말대로라면, 심연희와 이천 사이에도 분명 인연이 있다는 뜻이었다.“연희가 흠천감에 들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주 궁에 들도록 하거라. 마치 나를 보러 오는 것처럼 말이다.”“이미 잘 말해두었습니다.”그는 답하며 또 한 숟가락을 떠 그녀에게 먹여주었다.“그 아이가 곧이 알겠다 하더냐?”“예, 누님.” 여기까지 말하자 심초운은 마치 동생에게 떠밀려 마음이 북받치는 듯했다.“그 아이 말로는 형님께서 흠천감 밖으로 나오지 않으시면, 폐하께서 저를 곁에 들이지 않으실까 봐 애가 탔다 하였습니다.”“그런 일까지 있었단 말이냐?”“그렇습니다.” 그는 초구를 붙잡고 캐묻기 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심연희야말로 속을 태운 셈이었다.이영은 진심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가 남자를 쫓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라 하지 않던가.그렇다면 머지않아 이천도 속세에 발을 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그리되면 소우연과 이육진, 그리고 이진 또한 크게 기뻐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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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9화

“이후로는 상소문을 형님께 조금 나누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심초운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낮고도 매혹적인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이영은 목덜미가 간질거렸지만, 그 말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예전에도 이육진은 그녀에게 상소문을 들고 용강한을 찾아가라 조언했었다. 결국 그 상소문은 그녀의 몫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덤으로 용강한을 십여 년 동안 흠천감에 붙잡아 두지 않았던가.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용강한 또한 스스로 기꺼이 흠천감에 남아 있던 셈이었다.이제 소우연도 궁을 떠났으니, 아마 용강한도 마음을 비우고 흠천감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참 좋은 생각이구나.” 이영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장 전해줘야겠다.”“오늘 바로 가시렵니까?”“그럼.”“연희는 미인계를 쓰고, 나는 나대로 방법이 있지. 서로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심초운은 무척 기쁜 듯, 두 사람이 머지않아 자유로워질 날을 눈앞에 본 것처럼 환히 웃었다.“그럼 지금 바로 형님을 찾아가겠습니다.”이영은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어전으로 향했다. 그녀는 상소문의 절반 가까이를 챙겨 들고, 우선 시험삼아 그에게 맡겨보기로 마음먹었다.심초운은 그녀를 끝까지 동행하다가 흠천감 앞에 이르러서야 입을 열었다.“그럼 저는 비풍정에서 기다리겠습니다.”“그래.”이영의 시선이 무심코 비풍정 쪽으로 향했다.그 정자는 어린 시절, 겨울마다 흠천감에 들를 때면 자신을 기다리던 당안, 송이, 그리고 심초운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그녀가 직접 개조한 곳이었다.이후 그녀는 친히 그 정자의 이름을 ‘비풍정’이라 불렀다. 심초운 역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생각했다.아마 그 정자는 단순히 자신이 기다렸던 추억만이 아니라, 그녀에게도 소중히 간직된 기억이리라.“초운아.”이영이 불쑥 그의 이름을 불렀다.심초운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십니까?”이영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여기서 기다리지 말거라.”“저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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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0화

이영은 상소문을 품에 안고 영은각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서 마주친 정 대인에게 물었다.“폐하, 황자마마를 찾으러 오신 것입니까?”“그렇습니다.” 용강한도 이젠 곁에 없으니, 흠천감까지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히 이천을 만나기 위해서였다.정 대인은 너털웃음을 지었다.“허허, 조금 전 제가 문을 두드려 보았는데, 무언가 풀리지 않은 듯 스스로 문을 닫고 수련에 들어가셨더군요. 아마 당분간은 나오지 않으실 듯합니다.”이영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방금 의화원에서 돌아온 게 아니었습니까? 심연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거늘, 어찌 이리 갑자기 문을 걸어잠궜단 말입니까?”정 대인은 그녀가 흥미를 보이자 권법 수련을 멈추고 옆의 석탁을 가리켰다.“폐하, 신과 함께 차라도 한 잔 드시지 않겠습니까?”흠천감 안은 그다지 춥지도 않고 바람조차 잠잠했다.이영은 의심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좋습니다.”그녀는 상소문을 내려두고 직접 정 대인에게 차를 따랐다.태연하고도 격을 낮춘 듯한 몸가짐에 정 대인의 마음이 한결 기뻤다. 과연 용강한이 친히 가르친 여왕답게, 한 동작 한 동작에 군자의 기품이 배어 있었다.“감사합니다, 폐하.”정 대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잔을 들어 다소곳하게 몇 모금 넘겼다.이영도 자신에게 차를 따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정 대인께서는 아무 까닭 없이 나서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묻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사실을 확인하여도 되겠습니까?”정 대인은 차향을 음미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여쭤보시지요. 아는 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외삼촌께서 출경하시기 전, 오라버니에게 복숭아꽃 비녀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훗날 심가의 장녀 심연희의 생일에 심가 둘째 딸 심교은이 한 노도사에게서 또 다른 백옥 복숭아꽃 비녀를 얻었다 합니다. 그 모양이 오라버니의 것과 흡사하다 들었습니다. 단지 재질만 다르다 들었는데, 혹 정 대인께서 그 연유를 아시는지요? 설마 외삼촌께서 일부러 꾸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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