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인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길게 자란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과연 그대 말이 옳소.”그는 이만한 나이에도 여전히 기력이 왕성했다. 몸에 큰 병도 없고, 하루 세 끼 잘 먹고 잘 쉬며, 매일이 평온했다.마음속으로는 문득 생각했다.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평안하길…’용강한이 흠천감을 나서려 하자, 정 대인이 물었다. “이번엔 여기서 며칠 더 쉬다 가지 않겠소?”“흠천감은 이제 전하와 그대의 세상이지 않소? 이젠 내가 머무를 곳이 없지.”정 대인은 짧게 웃었다. “그대 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소.”용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이 이제는 불편했다. 묘한 반감이 들어,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정 대인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그저 담담히 말했다. “그래, 좋소. 하지만 틈이 날 때면 나를 보러 오시오.”“조만간 새 거처로 초대하겠소.”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그럼, 실례했소.”“그래, 천천히 가시게. 멀리까지는 배웅하지 않겠소.”정 대인의 미소 속에는 묘한 감회가 스며 있었다. '새 거처'라… 그 말은 곧, 용강한이 경성에 자리를 잡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단지 들러보는 것이 아니라, 가끔 찾아가 머물 수도 있으리라.한편, 이천은 심연희를 국공부에 데려다준 뒤 함께 저녁상을 나누었다. 식사 내내, 심연희는 몇 번이나 반찬을 그의 그릇에 덜어주었고, 그 눈빛 속의 온기가 그를 녹일 듯했다.하지만 이천이 부드럽게 미소 지어 답할 때마다, 심연희의 얼굴에 스치는 감정은 묘하게 읽히지 않았다.그는 문득, 흠천감에서 본 환영 속 장면을 떠올렸다. 전생의 그녀는 경장명에게 깊이 상처받았었다. 아마 그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으리라. 그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식사 후, 두 사람은 국공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심연희는 명주에게 명하여 월동문 근처를 지키게 했다. “아무도 들어오게 하지 말거라.”“예, 아씨.”명주는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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