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741 - Chapter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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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1화

이천의 큰손이 그녀의 손을 다시 감싸 쥐었다.“흠천감을 나가면… 또 네 방으로 가도 되겠느냐?”심연희의 눈매에 엷은 그늘이 드리워졌다.설마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걸까?이천은 황가 사람이거늘,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건 곧 죄악이 아닌가.“전하?”심연희는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수치와 두려움이 뒤섞여,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저… 앞으로 또 꿈을 꾸게 될까요?”이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인연부는 이미 대인께서 다 가져가셨다. 게다가 대인이 계시니, 이제는 다시 그런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설령 꾼다 하여도, 예전처럼 이어지거나 네 잠을 괴롭히진 않을 게야.”“다행입니다.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않아도 된다니.”심연희의 눈동자엔 여전히 불안이 어려 있었다.그녀는 마치 전생의 잔영을 본 듯, 서늘하고도 아픈 표정을 지었다.“전하…”그녀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아직도 마음이 시립니다.”그녀의 그런 눈빛에 이천의 가슴이 저릿하게 죄어왔다.그녀가 무엇을 본 것인지, 혹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그는 알 수 없었으나, 그저 그 모든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와 참을 수 없었다.“연아.”그가 낮게 부르자, 심연희가 고개를 들었다.“꿈이라도 좋다.”그녀는 속삭이듯 말하며 발끝을 들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어차피 여긴 환상이지 않습니까. 전하… 한 번만 더 저를 안아주세요.”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 떨렸고, 그 떨림은 곧 그의 심장에도 전해졌다.이천은 숨을 고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녀의 체온이 닿는 순간, 세상 모든 소리가 멎는 듯했다.입술이 스쳤다.처음엔 조심스러웠다.그러나 곧 두 사람의 호흡이 엉키며, 떨림은 열기로 바뀌었다.둘 다 서툴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입맞춤은 자연스러워졌고, 끝내 서로를 놓지 못할 만큼 깊어졌다.얼마 후, 이천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신호를 보고서야 천천히 몸을 떼었다.“연희야, 가자구나. 대인께서 신호를 보내셨다.”그는 그녀의 붉어진 입술을 손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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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2화

비록 심연희는 아달이 명주의 목숨을 직접 장검으로 끊어 고통을 덜어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천은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정하게 달랬다.“두려워하지 말거라. 이번 생엔 절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심연희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그만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그녀는 마지막 순간, 명주에게 속삭이듯 내뱉었던 그 말을 떠올렸다.'명주야… 만약 내게 정말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는 서방님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세상일이란 참으로 기이했다.정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니…이번 생에서 경장명과 여러 인연이 엮였지만, 그녀는 전생의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다시는 눈이 멀어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멍하니 서 있던 경장명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부적을 움켜쥔 채 검을 들어 몽춘의 처소로 향했다.인연 부적에 대해 캐묻자, 몽춘은 끝까지 부인했다.하지만 이미 모든 걸 잃고서야 깨달음을 얻은 경장명은 더 이상 속을 인물이 아니었다.오히려 잔혹하다고 해야 할까.그는 몽춘을 붙잡아 하루 밤낮 동안 형벌을 내렸다.결국 몽춘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실토했다.그 부적은 오래된 진산의 노도사, 무의에게 가서 구한 것이라 했다.진상을 알아낸 경장명은 망설임 하나 없이 검끝으로 그녀의 목을 꿰뚫었다.그는 그런 사술 따위는 믿지 않았다.하지만 마음 한편이 흔들렸다.그렇지 않았다면, 왜 자신이 점점 심연희를 잊고 몽춘 같은 여종에게 마음을 빼앗겼겠는가.그 후 경장명은 진산으로 향했다.노도사를 찾아가 부탁했다.“전생의 심연희의 마음속 고통을 지워주시오. 그저 행복했던 기억만 남게 해주시오...”그게 죄책감 때문인지, 후회 때문인지는 몰랐다.그는 벼슬을 버리고 노도사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했다.그 대목에 이르러서야, 이천은 비로소 깨달았다.“외삼촌의 도술은 전생에 진산의 노도사에게서 배운 것이었군요.”용강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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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3화

정 대인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길게 자란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과연 그대 말이 옳소.”그는 이만한 나이에도 여전히 기력이 왕성했다. 몸에 큰 병도 없고, 하루 세 끼 잘 먹고 잘 쉬며, 매일이 평온했다.마음속으로는 문득 생각했다.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평안하길…’용강한이 흠천감을 나서려 하자, 정 대인이 물었다. “이번엔 여기서 며칠 더 쉬다 가지 않겠소?”“흠천감은 이제 전하와 그대의 세상이지 않소? 이젠 내가 머무를 곳이 없지.”정 대인은 짧게 웃었다. “그대 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소.”용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이 이제는 불편했다. 묘한 반감이 들어,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정 대인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그저 담담히 말했다. “그래, 좋소. 하지만 틈이 날 때면 나를 보러 오시오.”“조만간 새 거처로 초대하겠소.”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그럼, 실례했소.”“그래, 천천히 가시게. 멀리까지는 배웅하지 않겠소.”정 대인의 미소 속에는 묘한 감회가 스며 있었다. '새 거처'라… 그 말은 곧, 용강한이 경성에 자리를 잡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단지 들러보는 것이 아니라, 가끔 찾아가 머물 수도 있으리라.한편, 이천은 심연희를 국공부에 데려다준 뒤 함께 저녁상을 나누었다. 식사 내내, 심연희는 몇 번이나 반찬을 그의 그릇에 덜어주었고, 그 눈빛 속의 온기가 그를 녹일 듯했다.하지만 이천이 부드럽게 미소 지어 답할 때마다, 심연희의 얼굴에 스치는 감정은 묘하게 읽히지 않았다.그는 문득, 흠천감에서 본 환영 속 장면을 떠올렸다. 전생의 그녀는 경장명에게 깊이 상처받았었다. 아마 그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으리라. 그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식사 후, 두 사람은 국공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심연희는 명주에게 명하여 월동문 근처를 지키게 했다. “아무도 들어오게 하지 말거라.”“예, 아씨.”명주는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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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4화

“그럴 순 없다.”이천은 어렴풋이 느꼈다. 결코 이 일에 동의해선 안 된다는 걸… 어떤 일은 한 발 물러서면, 더 큰 위기가 닥쳐오기도 하니 말이다.심연희는 살짝 투정을 하듯 말했다. “뭐든 다 들어주신다면서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습니까?”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천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도망치려 한다는 걸.하지만 그는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도망치려는 이유는 자신과 경장명 사이에서 갈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란 걸 더 이상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그렇지 않다.”이천의 단호한 말에 심연희는 볼을 부풀리며 말이 막혔다. 가슴 한켠이 답답하게 아파왔다. ‘이 바보 같은 사람… 내가 지금 얼마나 큰 기회를 주고 있는지 모르고 있구나.’아마 이번 생에서는 심국공부의 모든 것이 평안했기에, 그녀는 부친과 모친, 그리고 이육진과 소우연, 심지어는 주 부인과 주 대인의 한결같은 부부의 정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자신이 더는 전생처럼, 남편이 다른 여인을 들이는 일을 참아낼 수 없을 거라 느꼈다.그 환영 속 전생에서 그녀는 이미 사랑에게 잔혹하게 짓밟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흥. 전하는 제 맘을 몰라요.”심연희는 이천의 품을 뿌리치고, 두 팔을 가슴 앞으로 모아 끌어안았다. 삐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혼례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돌아오신 뒤에 상의해도 늦지 않습니다.”그녀가 화를 내자, 이천은 더는 따질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존중하고 싶었다.“그래. 네 뜻대로 하자.”“그럼…”그녀가 살짝 눈을 굴리며 물었다. “언제 폐하와 예부에 가서 이 일을 아뢸 건가요?”“내일 바로 가서 말씀드리마.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말이야.”하늘을 보니 어느덧 늦은 밤이었다. 오늘 하루 그를 붙잡아 함께 저녁을 먹고, 정원을 산책하고, 몰래 안겨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마음이 벅찼다.“그럼 됐습니다.”그녀는 달콤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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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5화

“아… 왜, 왜 그러십니까?”“이유 같은 건 없어. 명주야, 나와 전하는… 아무래도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아.”심연희는 말을 잇다가 가슴을 움켜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슬픔은 한 시진이 넘도록 이어졌다.결국, 울다 지쳐 목이 메이고 눈물조차 말라버릴 즈음이었다. 곁에서 함께 있던 명주도 울다 지쳐 있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아씨가 이렇게 처절하게 우는 모습을 보았다.“혹시… 전하께서 아씨를 저버리신 겁니까?”명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분 사이는 다정했는데 말이다.심연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려 했다.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전생의 기억, 그때 명주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기둥에 몸을 부딪쳐 죽음을 택했었다.그 생각에 심연희는 명주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명주야, 이번 생엔… 반드시 너를 잘 대해줄게.”명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씨께서는… 늘 소인에게 잘 대해주셨잖아요.”심연희는 그녀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앞으로 '소인'이라는 말은 하지 마.”“예…?”“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전하께서 그러셨어. 조만간 폐하께서 노비 제도를 폐하실 거라 하셨어.”“머지않아 많은 이들이 양민의 신분을 얻을 거야. 더는 노비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살게 될 거란 뜻이지.”“저는 싫어요!”명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씨 곁을 떠나기 싫습니다. 국공부를 떠나기도 싫어요!”심연희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보 같으니. 노비가 아니어도 내 곁에 있을 수 있어. 다만 네가 자유로워질 뿐이야. 원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고, 그 또한 네 뜻이 되는 거지.”명주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 같은 집안 종들도 이제 팔려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유 따위보다 심연희의 곁에 머무는 것이 더 소중했다.심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 속에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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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6화

이천은 국공부를 떠난 후, 마음이 영 불안했다. 왠지 그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영은 계속 용강한을 찾고 있었으니, 오늘 밤 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엔 용강한이 이미 흠천감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이리저리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이천은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그를 본 당안이 눈을 비비며 속으로 탄식했다. 이번 달 들어 이천이 밤중에 이영을 찾아온 게 벌써 두 번째였다. '대체 무슨 급한 일들이신지….'“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네.”이천의 말에 당안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전하,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그는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이영에게 보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궁 쪽에서 발걸음이 들려왔다. 이영은 평상복 차림으로 나왔는데, 얼굴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오라버니, 전 이제 시집간 몸인 거 모르십니까? 이 시각이면 이미 본채 안에서 쉬고 있어야 마땅합니다.”이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제 문제를 지금 해결 안 해주시면, 나중에 후회하다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이영은 말문이 막혀 잠시 그를 노려봤다. “오라버니, 이번이 두 번째예요.”그때 안쪽에서 느긋한 걸음소리가 들렸다. “또 오셨습니까, 형님?”넉넉한 옷차림을 한 심초운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태도는 참으로 여유롭고, 또 어딘가 천연덕스럽기까지 했다.이영은 얼굴이 달아오르며 급히 돌아서서 말했다. “어서 침전으로 돌아가거라. 금방 돌아가마.”심초운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는 이천을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형님, 다음엔 시간을 좀 가려서 오십시오.”“그래. 앞으로는 조심하마.”이천이 그렇게 말하자, 심초운은 이영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이영은 기가 막혔다. 이천 역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이리도… 자연스럽다니.'그는 문득, 자신도 심연희와 그런 나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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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7화

이영은 이천의 말을 들은 뒤, 곧장 그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연희가 혼례 날짜를 바꾸자고 한 건 아마 그 꿈 때문이겠지요.”“혹시라도 오라버니께서도 경장명처럼 될까 두려운 걸 거예요.”“처음엔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다가, 나중엔 무정하고 잔혹하게 변하는 그런 사람처럼요.”이천은 씁쓸하게 웃었다.“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이영이 고개를 기울이며 대꾸했다.“경장명도 분명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저도 요즘 심초운에게 맨날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그렇지만?”이천은 그녀의 말끝을 놓치지 않았다.심연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금위군에 새로 올라온 장 부도독이 꽤 인상이 반듯하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며칠을 질투로 속을 끓였다니까요.”이천이 단호히 말했다.“그런 말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죠.”“!!!”이영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하늘이시여…”“저도 한 나라의 황제로서 가끔은 신하들을 칭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그것도 조금, 아주 조금인데요! 게다가 좌승상도 칭찬했고, 위 대장군도, 주 장군도… 그리고 육부 대신들에게도 골고루 다 칭찬했어요!”이천은 그런 이영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심초운이 그렇게 신경 쓴 이유가 있었겠군요. 그 장 부도독이 정말 괜찮게 생겼나 봅니다.”심연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아바마마께서 어마마마께 한결같은 정을 두시고, 지금껏 변치 않으신 걸 보면, 참으로 위대하시죠.”이천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그의 속내는 아직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이영이 말을 이었다.“심초운도 본래 정무에는 손대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상운국의 혼인 율법을 직접 손보려 하고 있어요.”이천이 미소 지었다.“설마…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넣으려는 건가요?”“맞아요.”“그리고 그게 나라의 근본을 해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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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8화

이천 또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영이 방금 한 말 중 첫 번째 이유가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경장명이 그토록 연희를 희롱하고, 그 진심을 짓밟았지 않습니까. 그 전생의 환영을 겪고 나니, 사랑이란 것, 나아가 남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은 걸지도 몰라요.”“그렇겠군요.”이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라버니께서는 그저 더 많은 시간과 다정함을 들이세요. 연희에게 스스로 증명하시면 됩니다. 경장명 같은 자와는 다르다는걸요.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요.”“만약 배신한다면…”이영은 눈을 번뜩이며 이를 악물었다.“그땐… 단종하든지, 벼락을 맞아 죽든지!”“아무튼 그런 맹세라도 하셔야 해요!”이천은 잠시 말을 잃었다.“폐하께선 정말 제 친여동생이 맞습니까?”단종, 혹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니. 수행자의 입장에서 그런 맹세는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입 밖에 낸 이상,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는 두렵지 않았다.자신의 연희에 대한 마음이 진심임을, 자신의 행실과 품격이 부끄럽지 않음을 믿고 있었으니까.“이제 말해보세요.”이영이 의자에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대체 그 환영이란 게 뭐죠?”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외삼촌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어제부터 흠천감에 계셨고, 오늘 해질 무렵에야 나오셨죠.”“그 환영은… 외삼촌께서…”“잠깐. 외삼촌께서 돌아오셨다고요?!”이영은 이천의 말을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는 대답할 틈도 없이, 이영은 이미 바람처럼 달려 나가 버렸다.이천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항상 침착하던 그도 이번만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곧, 정자 쪽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과연 심초운이었다.“형님, 폐하께선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시던가요?”“심지어 경공까지 쓰셨던데요.”이천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년의 일을 떠올렸다.이영이 용강한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그 소동 말이다.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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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9화

“하지만, 꿈속에서도 그 놈이 나오더군요.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이천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건 분명 어떤 오해가 있을 것이다.”심초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혹시, 그 자가 폐하에게 무슨 인연부적이라도 쓴 건 아닐까요?”이천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같구나?”“제가… 예민한 겁니까?”심초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는 정말 너무 예민한 걸까?이영이 꿈에서 다른 사내를 본다는데,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그는 맹세할 수 있었다. 꿈속에서 여인과 뒤엉기든, 조금이라도 애틋한 감정이 드는 순간이 있든, 그의 마음속 여인은 언제나 이영뿐이었다.다른 여인에게는 단 한 번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이천을 바라보며 심초운은 생각했다.이 사람과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던 이가, 수행자의 마음으로 살던 이가, 어찌 자신의 이 속 끓는 고통을 이해하겠는가.“방금 페하께서도 그 일에 대해 말하더군. 그저 신하들을 예로 칭찬한 것일 뿐, 그들에게 사사로운 뜻이 있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하였네.”이천의 말을 들은 심초운은 피식 웃었다.이영 역시 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그는 어렵게 자신을 다독이며 괜한 의심을 버리려 애썼다.심지어 새로 제정될 혼인법을 추진하며 마음을 다잡던 중이었다.하지만 조금 전 이영이 용 대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궁 안에서조차 경공을 써 달려간 것을 보았을 때, 심초운의 가슴속 불안감은 다시 타올랐다.“폐하께서 정말로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을까요?”지금 그녀는 황제였다.그녀가 무슨 일을 하려든, 선황이나 태후조차 쉽게 막지 못할 터였다.“그럴 리 없다.”이천은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용 대인 또한 그럴 분이 아니지. 그분의 마음엔 오직…”그는 말을 멈추고는 화제를 돌렸다.“그래, 이 일은 그만두고… 자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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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0화

이천이 심초운을 바라보았다.심초운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말했다.“이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형님께선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는 장남으로서, 심연희의 일이라면 반드시 직접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연희는 이미 그 위선자 경장명의 진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형님은 그저 연희와 잘 지내기만 하면 됩니다.”이천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가 일부러 이 자리를 만든 것도 바로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함이었다.“환영에서 돌아온 뒤로, 연희가 경장명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은 듯하구나. 그래서 나더러 궁에 들어가 폐하께 전해달라 하였다. 혼례일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말이야.”“예? 혼례일을 다시 정한다고요?”심초운은 순간 말을 잃었다.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래서… 언제로 정했습니까?”“나는 정월이 지난 입춘 무렵이 어떻겠냐 하였다. 허나 연희가 거절하였지.”“그럴 리가 없는데…”심초운이 눈썹을 찌푸렸다.“혹시 형님께서 연희를 불쾌하게 하신 건 아닙니까? 믿음을 잃을 만한 무언가를 하셨거나…”이천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있겠느냐. 환영 속에서 연희는 내게 지극히 다정했다.”그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그 환영에서 심연희가 자신에게 먼저 입 맞춘 일까지는, 도무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심초운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천을 보았다.이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심초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님께서는 저보다 연세가 많지만… 세상 인연이란 걸 다루는 일은 아직 익숙지 않으신 듯합니다. 연희가 형님 같은 무뚝뚝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그야말로 연희의 팔자지요.”이천은 말이 막혔다.“….”“됐습니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그때였다.문밖에서 급히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영이 숨 가쁘게 들어왔다.“오라버니! 외삼촌께서 흠천감에 없다더군요! 정 대인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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