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2451 - Chapter 2460

2547 Chapters

제2451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좌중에 모인 모든 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일이 이리되었으니 이 대인께서 심려를 좀 써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수가 생기더라도 새해가 밝기 전에는 반드시 경 대인을 모셔와 주십시오.”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모아 간청하는 모습을 보니, 이들의 결속력이 참으로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만약 이대로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은 채 이들이 영남 땅에 수년간 도사리며 세력을 불리고, 상운국 조정 곳곳에 숨어 있는 반역 무리들과 손을 잡는다면, 훗날 정녕 천하를 뒤흔들 만한 거사를 일으키고도 남을 터였다.용강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답례했다.“이토록 여러분의 신임을 받으니, 온 힘을 다해 대업을 돕겠습니다.”“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회의가 끝난 후.모두가 함께 영남 왕궁의 문을 나설 때, 소 대장이 슬그머니 용강한의 곁으로 다가왔다.“대인, 저희는 진작부터 소 대인께 대인의 함자를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 이리 직접 뵈니, 과연 소문대로 대단한 기상이십니다.”말을 건네며 소 대장은 슬쩍 용강한의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로 시선을 던졌다.용강한은 지극히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허어, 대단한 기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정녕 대단한 구석이 있었다면, 어찌 이 머나먼 변방 땅까지 유배를 오게 되었겠습니까.”“에이, 이 대인께서 실언을 하십니다.”옆에 있던 또 다른 이가 거들고 나섰다.“우리 영남에 모인 자들이 저 바깥 천하의 자들보다 결코 못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운이 따르지 않았거나, 억울하게 연좌되어 쫓겨온 이들이 부지기수일 뿐이지요.”“참으로 그렇습니다.”용강한은 깊은 감회에 젖은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겸연쩍은 기색을 내비쳤다.어찌 되었든 조정에서 탐욕스럽게 뇌물을 받아 챙기다 영남으로 쫓겨 내려온 신분이었으니, 그에 걸맞은 처신이 필요했다.“앞으로는 늘 제 잘못을 되새기며, 오직 이곳의 대업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이 대인의 각오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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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2화

“때마침 일이 이리 상서롭지 못합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근래에 고뿔에 걸리시는 바람에…”“그거 참 잘되었구나. 내가 마침 의술을 조금 아는 의원이다. 내 직접 들어가 경 대인의 맥을 한번 짚어 드리마.”문지기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그, 그것이…”“염려하지 말거라. 이번 겨울은 유독 날이 매서워 경 도령도 얼마 전 고뿔에 걸려 앓아누웠으나, 모두 내가 손을 써 다스려 놓았으니.”“도련님이 앓아누우셨단 말입니까?”문지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항이 보낸 자들이 그간 숱하게 찾아왔었으나, 이번에 찾아온 이들은 어딘가 분위기부터 완연히 달랐다.“안심하거라. 이제는 아무런 탈도 없으니.”그제야 문지기는 팽팽했던 긴장을 조금 풀었다. 그는 제 상전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소씨 가문의 사람들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묘한 기운의 남녀는 그 풍모가 결코 예사롭지 않은 데다, 멀리 있는 경풍의 병세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던 문지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잠시만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안으로 들어가 고하고 오겠습니다.”용강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문지기는 서둘러 문을 닫아걸고 안채를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그 시각, 경씨 관저 내부.경장명과 아달은 마당 한구석에서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는 중이었다. 땀방울을 흘리는 경장명의 얼굴에는 고단함 속에서도 나름의 아늑하고 평온한 정취가 묻어났다.그때 문지기가 다급한 걸음으로 마당으로 뛰어들었다.“나으리, 나으리!”경장명이 내리치던 도끼를 멈추고 땀을 닦으며 물었다.“무슨 일이냐?”“소 대인이 또 사람을 보냈습니다요.”“소씨 가문에서 온 자들은 내게 따로 고할 필요도 없이 돌려보내라 일렀거늘.”경장명이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문지기가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이번에는 영 판국이 다릅니다! 찾아온 자의 말로는 경풍 도련님께서 고뿔에 걸려 앓아누우셨다고 합니다요.”“무엇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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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3화

이휘…이휘라니.소우연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이 대인을 뵙습니다.”경장명은 서둘러 두 사람에게 포권하며 화답했다. 그의 태도는 지극히 공순하고 경건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우연은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장명이라는 사내에게서 그리 모질고 사나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제 지레짐작이 고인에게 과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모양이라 여긴 까닭이었다.“이 대인, 안으로 들으시지요.”경장명이 두 사람을 사랑채 안으로 정중히 이끌었다.용강한이 그 청에 응하여 소우연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묵묵히 뒤따르던 경장명은 사내의 나직한 음성을 곱씹을수록, 그 목소리가 기억 속 흠천감 감정 어르신의 것과 서서히 겹쳐짐을 느꼈다.용강한은 흠천감의 감정으로서 도술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한 자였다. 전생에 자신에게 도술을 전수해 주었던 진청산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이들 눈에 본래의 용모를 감추는 역용술 따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큼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일 터였다.이휘… 그는 용강한이 틀림없었다.그렇다면 그 곁에 소리 없이 자리한 저 여인은 또 누구란 말인가.진청산이 남긴 산수화 속에서, 용강한과 태후 소우연의 관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뼈에 사무치도록 깊이 연모할 때, 그 곁에 다른 여인이 머무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장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용강한이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 옆의 여인 또한 용모를 바꾼 태후 소우연이 아닐까.생각이 세찬 파도처럼 밀려들자 경장명은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아달아, 어서 따뜻한 차와 다과를 준비해 오너라.”“예, 나으리.”아달 역시 용강한과 소우연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으로 깊은 의구심이 일었으나, 이내 경장명의 명을 받들고 서둘러 자리를 물러갔다.경장명은 두 사람을 따라 사랑채 안으로 들어섰다.용강한과 소우연은 자연스럽게 좌측 상석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경장명이 그 앞에 멈춰 서서 용강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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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4화

“네가 알 바가 아니다.”경장명은 툭 던지듯 말하며 사랑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달은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경장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부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극도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집안에 관한 일이라면, 심지어 그와 조금이라도 얽힌 사소한 비밀일지라도 절대 밖으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예, 나으리.”아달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면서도, 사태가 생각보다 훨씬 엄중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그렇다면 방금 나간 그 남녀가…’조정을 더럽히고 탐학을 일삼다 영남으로 쫓겨난 그 탐관오리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어째서 상전께서는 그들을 그토록 공손하게, 아니, 두려워하듯 정중하게 대했단 말인가. 아달의 머릿속은 온통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그 시각, 소우연과 용강한은 경씨 관저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장안거리와 달리 이 외진 길목에는 행인이 지극히 드물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이들은 모두 밭에서 종일 땀 흘려 노동하다 돌아오는 투박한 백성들뿐이었다.소우연은 그들이 그토록 성실하게 뼈를 깎아 가며 일하면서도, 여전히 덧대고 기운 거친 삼베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두 사람의 처소 앞을 지나칠 무렵, 용강한이 소우연의 소맷자락을 가볍게 이끌며 교외를 향해 걸음을 더 이어갔다.“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소우연이 의아한 듯 물었다.“조금만 더 걷자구나. 어차피 아직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터이니.”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경장명이 오라버니의 정체를 완전히 알아차린 듯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연이 너는 물론 우리의 내막까지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용강한의 덤덤한 대답에 소우연이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그래도 제 짐작만큼 사납고 모진 기운을 가진 사내는 아닌 듯 보여 다행입니다.”“음, 그것은 나도 어제 이미 알고 있었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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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5화

임설은 기쁨과 동시에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왔다.“부군께서 돌아오시면 제게 사람을 보내 알려달라고 하인들에게 미리 당부해 둘 걸 그랬습니다.”“에이, 그것은 안 될 말이오.”소항의 타박 아닌 타박에 임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부군의 뜻을 따르겠습니다.”침상에 누운 후, 소항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그나저나 왕 부인이 부인의 흉터를 치료하기 시작했소?”“아직,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어찌하여?”소항은 내심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내가 그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온 까닭은 오직 그대의 흉터를 고치기 위함이 아니었소. 내 얼굴을 보시오. 비록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으나 분명 효험이 있지 않소. 그러니 부인, 절대 치료를 미루지 마시오.”임설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예.”그녀는 내심 이어서 이 의원에 관한 이야기를 소항과 더 나누고 싶었으나, 다음 순간 소항은 이미 두 눈을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참으로 고단한 하루였던 모양이었다.……이튿날 아침.소항이 눈을 떴을 때, 임설은 이미 머리맡에서 깨어 있는 상태였다.“부군, 안녕하셨습니까.”“부인, 잘 잤소?”두 사람은 가볍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임설이 소항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오늘도 그리 바쁘십니까?”“아니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어전에 잠시 다녀오면 그리 큰일은 없을 것이오.”“하오면 오늘이야말로 취화원에 가셔서 침을 맞으실 시간이 나겠습니다.”소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들이 취화원에서 기다리고 있소?”임설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일정치고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싶어 소항이 한마디를 덧붙였다.“어전에서도 시간이 제법 지체될 터이니, 내가 조금 늦게 가겠소. 앞으로는 그들에게 조금 더 늦은 시각에 오라 이르시오.”임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취화원에서 대기하도록 일러둔 사람은 오직 이진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소항이 다시금 다정하게 물었다.“내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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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6화

임설은 행랑채 복도에 서서 한참 동안 취화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송 나인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마님, 이리도 마음이 쓰이신다면 차라리 없던 일로 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없던 일로 한다라.임설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방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부군은 장차 큰일을 도모하셔야 할 분이 아니냐. 가문의 후사를 잇는 일이 이토록 중요하니, 문중의 원로들께서도 만날 때마다 내게 철이 들어야 한다며 소 씨 가문을 먼저 생각하라 당부하셨다. 내 어찌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느냐?”송 나인은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대인께서 이미 맹유를 총애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 이 낭자라는 자까지 대인의 침소에 들여보내려 하십니까? 게다가 이 낭자는 어느 호송관과 정을 통하던 사이라 들었습니다.”“소 대장이 말하지 않았더냐. 이 낭자와 그 호송관은 아직 혼례를 올린 사이가 아니라고.”“그렇다 한들 결국 사내 둘을 거친 여인이 아닙니까. 그런 부류의 여인은 참으로 무서운 법이지요.”임설이 고개를 돌려 송 나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뜻이냐?”“마님, 사내 둘을 섬긴 여인이 어찌 부끄러움을 알겠습니까? 그저 여우처럼 사내를 홀리는 재주만 부릴 뿐이지요. 마님께서 사람을 대인의 곁에 보내기는 쉬우나, 나중에 그 자를 내쫓으려 하실 때는 뜻대로 되지 않아 고생하실까 염려되어 그렇습니다.”“그만해라.”임설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부부로 지내온 세월이 자그마치 이십 년이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임설만큼 소항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소항이 여색을 탐하는 예사 사내들과는 다르다 하나, 그 역시 결국은 사내였다. 만약 그이가 여인의 용모를 전혀 개의치 않는 올곧은 사람이었다면, 두 사람이 혼례를 올린 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첫날밤을 치렀을 리가 없었다. 만약 혼인하자마자 합방했다면, 지금쯤 벌써 손주를 보고도 남았을 나이였다.아랫입술을 가볍게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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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7화

이진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한참 동안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씩씩거렸다. 감히 소리 내어 욕을 뱉을 수도 없으니 속으로만 분을 삭여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송 나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더니, 이진에게 입힐 옷 몇 벌을 건넸다. 하나같이 화려한 색감의 옷들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황혼 무렵에는 하인들을 시켜 따뜻한 목욕물까지 들여보내 주었다. 이진은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목욕을 즐겼다.‘좋아, 아주 좋아. 이쯤 되니 오히려 기대가 되는군. 소항이 나를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소항과 소 대장이 마당을 가로질러 처소로 들어섰다.방 안으로 발을 들이던 소항은 눈앞에 이진이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휙 돌려 소 대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질책이 담긴 눈빛이었다.소 대장 역시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이내 임설이 자신을 붙잡고 맹유의 일을 꼬치꼬치 캐묻던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임설은 맹유에 대해 집요할 만큼 캐물었었다. 본래는 입을 다물 생각이었으나, 임설이 뿜어내는 기세와 압박을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어, 결국 그는 소항이 얼굴의 흉터를 치료해 주는 여인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고 털어놓고 말았다.“그것이… 저, 저는…”소 대장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더듬었을 뿐, 차마 제대로 된 변명을 내놓지 못했다.소항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추스른 뒤 이진을 바라보았다.“오늘 왕 부인께서는 함께 오지 않으셨습니까?”이진은 소항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 어머니가 오지 않은 것에 그토록 실망한 기색이라니.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에 걸맞게 소항을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부인께서 연고를 며칠 더 바르신 후에, 어머니께서 직접 오셔서 침을 놓아드릴 예정입니다.”임설이 이제 막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으니 당장 침을 놓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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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8화

임설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정말 송 나인의 말처럼 괜한 걱정에 불과한 것일까. “마님, 아이고, 우리 마님. 후사 문제라면 그리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도련님께서도 이제 2년만 지나면 혼인을 치르실 터이니, 그때 대를 이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대인께서는 마음속에 오직 마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전에 가문 어르신들께서 대인께 첩을 들이라고 그토록 재촉하셨을 때도 마님께서는 예법에 따라 할 도리를 모두 다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대인을 억지로 떠밀어 후사를 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임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속으로는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술과 안주를 조금 준비해 주거라.”“마님, 갑자기 어찌 술상을 차리려 하십니까?”“부군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지도 오래된 것 같구나. 오늘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송 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마님께서 대인과 술을 마시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곁에서 모시는 이들도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 “소인이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송 나인은 슬쩍 임설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 술상에는 몸에 좋은 약재라도 조금 넣어 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한편 서재 안.소항은 몇 번이나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소 대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대체 어찌 된 일이냐?”소 대장은 감히 사실을 숨길 엄두도 내지 못하고 결국 모든 일을 낱낱이 털어놓았다.자초지종을 들은 소항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이 답답한 놈 같으니라고…!”그러나 차마 그 뒤의 말은 잇지 못했다.소 대장은 곧바로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대인,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당시 마님께서 대인께서 어찌하여 맹유를 거두어들이셨는지, 또 어째서 그리 서둘러 사람을 먼저 돌려보내셨는지 계속 캐물으셨습니다. 게다가 혹시 대인께 다른 사정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물어보셨기에…”“다른 사정이라니? 무슨 뜻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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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9화

소항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만약 임설의 얼굴이 흉터로 망가지지만 않았더라면, 그녀 역시 세상에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것이다.“약은 꾸준히 바르고 있소?”“예.”“앞으로는 왕 부인을 불러 계속 침을 놓게 하겠소.”그 말을 하고 나서야 소항은 스스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설마 자신의 마음이 이토록 왕수미에게 끌리고 있다는 말인가.하지만 임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소항이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이 낭자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이 낭자는 이제 겨우 스물한 살 남짓한 나이였고, 한창 꽃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소항이 이 낭자와 단둘이 머무는 상황에서도 조금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자신이 걱정했던 것처럼 그가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임설은 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부군 뜻대로 하세요.”술기운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다정함만큼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술잔을 입에 댄 순간부터 소항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술잔을 몇 차례 비우고 나자, 몸 안에서 서서히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소항은 곧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오늘 술상에는 약재가 들어간 모양이었다.임설 역시 후사 문제 앞에서는 여느 여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녀가 자신을 위해 첩실까지 들이려 했으니, 그 진심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소항은 그녀를 원망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억누르지 않은 채 임설을 안아 들고 침상으로 향했다.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르자 임설은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곧 소항의 품에 안기자 그녀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느꼈다.소항은 그녀를 침상에 조심스레 눕힌 뒤 방 안의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갔다.임설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언젠가 얼굴과 몸에 남은 흉터가 정말 모두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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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0화

점심때가 가까워질 무렵, 소항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그는 소 대장을 불러 식사를 서재로 들여오라고만 지시했다.소 대장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의아했다. 대인께서 엄연히 저택에 계시면서도 어째서 마님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서재와 안채는 몇 걸음만 옮기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 아니던가.소항이 식사를 마치고 나자, 마침 식사를 끝낸 소 대장도 서재로 돌아왔다.그는 말없이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그 사이 소항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산수화를 몇 폭이나 연달아 그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모두 망쳐 버렸고, 초조한 기색마저 감추지 못했다.소 대장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못 본 척 제 자리를 지켰다.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 소항은 마침내 한 폭의 미인도를 완성했다.그제야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여봐라.”“예, 대인.”“네가 보기에 이 그림은 어떠하느냐?”소 대장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 뒤 감탄을 터뜨렸다.“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습니다. 다만… 어찌하여 이목구비는 그려 넣지 않으셨습니까?”어째서 그리지 않았겠는가.그것은 왕 부인의 눈빛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 눈동자는 자꾸만 떠올라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소항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눈치 빠른 소 대장 역시 더는 묻지 않았다.“그렇다면 대인, 그림은 이만 거둘까요?”그가 그림을 치우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그러나 소항은 손으로 화지를 눌러 그를 막았다.“그만 물러가 보거라.”“예.”소 대장이 물러서려 하자 소항이 다시 입을 열었다.“부인이 찾아오거든 내가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소 대장은 순간 흠칫했다.그 말은 곧 앞으로는 서재에 함부로 들이지 말라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대인을 모신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소 대장조차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소항 역시 제 처사가 다소 과하다고 여겼는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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