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2511 - Chapter 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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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1화

“그 아이가 먼저 돌아간 것이 확실하느냐?”“예.”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줘서 고맙다.”하녀는 다시 예를 올린 뒤 제 할 일을 하러 물러갔다.소우연은 관저를 나서다가 멀리 익숙한 마차와 화랑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런데 마차 곁에는 화랑 말고도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그녀가 다가가자 사내도 곧장 성큼성큼 걸어왔다.이육진은 말없이 그녀를 품에 깊이 끌어안더니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어찌 이리 늦게 나온 것이냐? 진이는 벌써 한참 전에 나왔더구나.”소우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답했다.“전 괜찮습니다.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그때 이진이 마차 휘장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어마마마, 어서 마차에 오르십시오.”밖에서는 소우연이 이육진에게 유난히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원수를 만난 듯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육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 발판 위에 올려 세우고, 직접 마차에 오를 수 있도록 부축했다.화랑이 발판을 치운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마님, 어디로 모실까요?”그러자 이육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객잔으로 가거라.”화랑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얼떨결에 대답했다.“예.”하지만 곧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이 대인과 왕 부인이었다.그렇다고 소 장군의 명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화랑이 다시 소우연에게 물었다.“마님, 그럼 객잔으로 모실까요?”소우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부군의 뜻대로 하거라.”“예.”그때 이진이 입을 열었다.“어마마마, 저부터 먼저 데려다주십시오.”소우연은 아무 말 없이 딸을 바라보았고, 이육진 역시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화랑은 더욱 난처해졌다.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잠시 후 소우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이부터 먼저 데려다주거라.”이번에는 이육진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애초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혼자 말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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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2화

관저에서 집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마차는 오래지 않아 멈춰 섰다.이진은 이육진과 소우연을 차례로 가볍게 안아 준 뒤 말했다.“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소우연이 이진의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다.“진아, 들어가서 챙길 짐이 있으면 미리 챙겨 두거라. 내일 데리러 오마.”이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내일 밖에 가나요?”“응.”이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지금 상황만 보면 어마마마는 소 장군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억지로 소룡진으로 가는 모양새였다. 더구나 자신과 소 장군은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괜히 함께 따라갔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의 의심만 살 것이 분명했다.“진아?”소우연이 딸을 부르자 이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어머니,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소우연은 아무 말 없이 딸을 바라보았다.이진은 다시 말을 이었다.“짐은 잘 챙겨 두었다가 때가 되면 화랑이를 시켜 보내드리겠습니다.”소우연이 다시 한번 물었다.“정말 함께 가지 않을 테냐?”“예. 가지 않겠습니다. 괜히 소 장군님의 눈에 거슬려서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이진은 일부러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이육진을 힐끗 바라봤다.이육진은 피식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흠,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만.”그의 얼굴에는 딸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딸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으니까.소우연은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정말 가지 않을 것이냐?”“안 가렵니다.”이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영남에 와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도와 함께 큰일을 도모하는 지금이, 황도에서 오라버니와 언니들과 지내던 때보다도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소우연은 가만히 숨을 고른 뒤 이육진을 바라봤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에게 말했다.“그리하거라. 대신 화랑과 령이도 미리 채비하게 하여 때가 되면 함께 출발하도록 하여라.”“예. 명심하겠습니다.”외삼촌이 미리 알려 준 계획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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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3화

소우연의 심장이 쿵쿵 요동쳤다.“그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나직하고 부드러웠다.이미 방 안은 샅샅이 살펴 암위가 엿듣고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용강한이 곁에 없어 결계를 펼칠 수 없는 만큼, 혹시라도 담장 너머에서 귀를 기울이는 자가 있을지 몰라 경계하고 있었다.이육진의 숨결이 한층 깊어졌다. 그는 소우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낮게 속삭였다.“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구나.”“좋은 것은 부군께서 무사하셔서이고, 좋지 않은 것은 저를 그리워하셔서 그런 것입니까?”이육진이 피식 웃었다.“우리 연이는 참으로 영특하구나. 모르는 것이 없어.”소우연은 옅게 웃으며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다음 순간, 이육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오랫동안 쌓여 있던 그리움이 그 입맞춤 하나에 모두 녹아내렸다.똑똑똑.“누가 온 모양입니다.”소우연이 그를 살며시 밀어냈다.이육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옷매무새를 바로한 뒤 문을 열었다.객잔 점원이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소우연 역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했다. 점원이 물러난 뒤에야 그녀는 탁자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이 객잔도 소항의 소유 아닙니까?”소우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육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그게 무슨 상관이냐. 놈이 사람을 심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터인데.”“맞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겠지요.”이육진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올려 주며 말했다.“괜찮다. 보고 싶으면 실컷 보라 하지.”소우연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어차피 영남에 들어온 뒤부터는 늘 이런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면서도 익숙할 정도였다.문득 생각난 듯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오라버니께서 화랑의 가족 일은 직접 처리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분들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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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4화

“무슨 폐단이 있다는 것이냐?”경장명은 고개를 숙인 채, 남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할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말을 이었다.“군영의 기강이나 다른 부분은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훗날 영남을 벗어나 전장에 나서게 되면, 군의관들이 제각기 흩어져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군에게 있어 결코 가볍지 않은 위협이자 큰 약점이 될 것입니다.”소항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과연 경장명은 인재였다.정작 자신은 그토록 중요한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소항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왕 부인이라…”경장명이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왕 부인의 선조가 한때 어의였다 했다. 부인의 의술이라면 지금 영남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경장명은 본래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왕 부인을 군영으로 들여 군의관들을 총괄하게 하자는 말을 꺼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소항의 말에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허나... 여인이라는 것이 아쉽군.”경장명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여자면 어떻단 말인가.황태후께서 아니었다면 소항의 손은 진작에 폐인이 되었을 터였다.물론 용강한이나 이육진은 자신에게 모든 계획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통해 소항에게 황태후를 군의관들의 우두머리로 추천하게 한 이상, 이것이 용강한 일행이 소항을 향해 놓은 덫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잠시 후 소항이 다시 입을 열었다.“경 대인, 왕 부인에게 관저의 의원들을 가르치게 한다면 어떻겠느냐? 의술을 모두 전수하라고 하면 응하겠느냐?”경장명은 잠시 입을 열었다 다물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도무지 소항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남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비법을 어찌 아무 대가도 없이 남에게 내놓으라 한단 말인가.더군다나 지금 태상황과 용강한, 그리고 황태후가 영남까지 온 이유는 바로 소항이라는 화근을 뿌리 뽑기 위해서가 아니던가.잠시 생각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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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5화

소 대장마저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항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는 몇 번이나 왕 부인에 대한 마음을 이제는 거두시라 간언하고 싶었다.소항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왕 부인이 자신의 손을 고쳐준 그날 이후, 그의 머릿속에는 상처 치료에만 온 정신을 쏟던 그녀의 모습만이 떠나지 않았다. 꿈속에서조차 잊히지 않는 얼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여인.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경장명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명분을 잃는다면, 결국 전하께서 잃게 되실 것은 민심입니다.”소항은 경장명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옳은 말이다. 허나 달리 무슨 방도가 있단 말이냐?”경장명은 잠시 깊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남녀의 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왕 부인의 의술이 너무나 아깝지 않습니까? 차라리 군영으로 모셔 의관장에 임명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의관장이라?”“그렇습니다.”경장명은 담담히 설명을 이어갔다.“왕 부인의 의술은 이미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분이 군영에 계신다면 훗날 우리 군은 의술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소항은 다시 미간을 좁혔다.“허나 왕 부인은 일개 여인이 아니더냐.”“여인이라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경장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신이 영남으로 오기 전, 상운국에서는 이미 수많은 여인이 규방을 벗어나 사내들과 다를 바 없이 큰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왕 부인의 의술이라면 의관장 직책을 맡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경장명은 길게 설명했지만, 소항이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다만 오늘 이 제안을 해두면, 훗날 황태후께서 의관장 자리에 오르시는 과정은 훨씬 자연스러워질 터였다.잠시 침묵하던 소항이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좋은 생각이다!”그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왕 부인이 의관장이 된다면 군무를 핑계 삼아 언제든 당당히 부인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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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6화

경장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용강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었다.“그렇다면 명일 자시에 그들을 지구촌 우물가로 모이게 하거라.”이 말을 끝으로 용강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예.”용강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어 걸음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 경장명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향후 경성으로 돌아갈 생각이냐?”경성으로 돌아간다고? 경장명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용강한을 바라보았다. 용 대인께선 정녕 자신이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그는 진심으로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그곳을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눈에 담고 싶었다. 용 대인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것은 이미 자신을 신뢰하고 있으며, 과거의 일로 아무런 앙금도 두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는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심연희가 있는 그 경성으로는 결코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아닙니다. 저희 부자는 이곳 영남에서 지내는 것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혹여 나중에 아이가 원한다면 모를까…”자신은 평생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들 경풍에 대해서는, 만약 훗날 아이가 영남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면 그저 아이의 뜻에 맡길 뿐이었다.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장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경장명은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는 막 용강한을 배웅하려 했지만, 그 순간 눈앞이 아른거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용강한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문밖에서 한가로이 손톱을 다듬고 있던 아달은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상전인 경장명이 묘한 표정으로 문가에 서 있었다. 아달은 의아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전까지 이 방에 누군가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대인.”아달은 혹시 분부라도 내리실까 싶어 조심스레 경장명을 불렀다.경장명은 입술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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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7화

“대인께서 가지 말라 하셨소.”령이는 고개를 숙였다.대인께서는 어째서 가지 못하게 하신 걸까.혹 영남왕 전하께서 의심하실까 염려하시는 것일까.지금에 이르러 령이는 상전들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분명 어딘가 심상치 않은 사정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화랑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부부는 서로 눈치채고 있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령이의 가슴이 저릿하게 조여 왔다.“저는… 그저 두렵습니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그럴 리 없소.”화랑이 단호히 말을 잘랐다.“절대로 그럴 리 없을 것이오. 마님의 의술을 우리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소? 마님께서 손수 지어 주신 약이니 틀림없이 살려 내실 것이오.”령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화랑이 전을 한 점 집어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령이가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애써 참아 왔던 눈물이 끝내 눈가를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노비로 태어난 이상, 제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가장 소중한 혈육의 생사조차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처지였다.화랑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자 말없이 다가가 품에 꼭 안아 주었다.“마님을 뵙고 나면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하지 않소.”잠시 말을 고른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내가… 마님께 한번 청해 보겠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지구촌에 들러 가족들을 만나게 해 주실지.”령이는 눈시울을 붉힌 채 화랑을 올려다보았다.“마님께서… 허락해 주실까요?”“그럴 수도 있소.”화랑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허락해 주신다면 더없이 큰 은혜일 것이고, 설령 허락하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는 우리 본분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본분, 그들은 몸값을 받고 몸을 판 노비였다.소항에게는 그저 눈과 귀 노릇을 하는 첩자에 지나지 않았고, 새로 모시는 상전가에서도 충성을 바쳐야 하는 하인일 뿐이었다.애초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대인의 가문은 소항 같은 잔혹한 상전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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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8화

“앉으렴.”소우연이 눈짓으로 령이에게 자리를 권했다.령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지만, 가슴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마님과 소 장군은 보기만 해도 금슬이 각별해 보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고, 소 장군의 손은 자연스럽게 마님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령이는 자신이 그들 사이에 낀 커다란 말뚝이라도 된 것처럼 몸 둘 바를 몰랐다.더욱이 소 장군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영남왕이나 이 대인보다도 훨씬 위압적이었다. 그녀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시선만 내리깔았다.“령이야, 그리 긴장할 것 없다. 장군님은 좋은 분이란다. 그저 겉모습이 조금 무서울 뿐이지.”소우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령이를 안심시켰다.험한 길에서 마차 밖에 앉아 고생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막상 안으로 들인 뒤에는 잔뜩 긴장한 채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굳어 있는 모습이 더욱 안쓰러웠다.소우연의 말을 들은 이육진은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단 말인가.’령이는 더욱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예, 마님.”마님의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풀어 주었다.령이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을 되뇌었다.‘지구촌에 잠시 들러, 멀리서라도 가족들을 한 번만 보게 해 달라고 말씀드려야지.’하지만 몇 번이나 용기를 내 보려 해도 입술만 달싹일 뿐, 끝내 첫마디가 떨어지지 않았다.마차는 덜컹거리며 길을 달렸다.그 사이 이육진은 소우연에게 다과를 먹여 주고, 차를 따라 건네며 시종일관 세심하게 보살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령이는 문득 깨달았다.마님과 소 장군의 사이는 세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서먹하거나 소원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오히려 마님의 진짜 부군인 이 대인과 함께 있을 때보다, 소 장군과 함께 있는 지금이 훨씬 다정하고 애틋해 보였다.이 대인이 마님을 아끼는 방식이 깊은 절제 속에 감정을 눌러 담는 것이라면, 소 장군은 마님을 향한 애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마치 두 사람이 처음부터 한몸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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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9화

“깼느냐?”“제가 귀머거리도 아니고, 마차가 멈추니 바로 알겠던걸요.”바로 그때, 용강한이 마차 문을 열고 휘장을 걷어 안으로 들어왔다.비좁은 마차 안에 몇 사람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공간이 워낙 협소한 탓에 령이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겨우 예를 올렸다.“대인.”“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 대인.”'대인이라…'이육진의 입가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화랑과 령이가 자신과 용강한을 부르는 호칭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용강한을 향한 '대인'이라는 호칭에는 상전을 대하는 공경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지만, 자신을 부를 때는 굳이 '소 장군'이라 성까지 붙였다. 은연중 거리를 두려는 듯한 느낌이었다.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이들 역시 자신과 소우연의 부부 관계를 알게 될 터였다. 이육진이 용강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는 모두 끝났습니까?”“예, 모두 마쳤습니다.”“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당연히 수미를 데리러 왔습니다.”용강한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다정한 눈빛으로 소우연을 바라보았다.소우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용강한이 늘 이런 식으로 자신을 놀리곤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슬쩍 이육진의 눈치를 살폈다.그러자 이육진이 덥석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단호하게 말했다.“부인은 제가 알아서 데리고 가겠습니다.”“알겠습니다.”용강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미끼에 걸린 추적자들은 이미 묶어 두었습니다.”“화랑아, 지금부터 마차를 돌려 다른 길로 지구촌으로 향하거라.”말을 마친 그는 자연스럽게 소우연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예, 대인!”마차 밖에서 들려온 화랑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흥분이 어려 있었다.반면 령이는 여전히 마차 한쪽에 멍하니 앉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소 장군이 마님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이'라고 부른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갑자기 목적지까지 지구촌으로 바뀌다니. 도무지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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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0화

“네가 당장은 믿기 힘들다는 걸 안다. 하지만 희망은 계속 품어야 한다. 희망이 있어야 언젠가 이루어지는 법이니 말이야. 자, 이제 너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데려다주마.”소우연의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 그 온기는 령이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녹여 내렸다. 령이는 마치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소우연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참 만에야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마님… 저희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도대체 무슨 뜻일까.설마 마님께서 자신과 화랑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주시겠다는 것일까.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소항의 손아귀를 벗어나 무사히 살아갈 수는 있는 걸까.수많은 생각이 령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러고 보니 아씨께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넉넉히 챙기라고 하셨다.혹시…. 마님께서 정말 자신들과 가족을 모두 놓아주시려는 것일까.가족들과 함께 도망칠 수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그 생각이 미치자 령이는 곧장 무릎을 꿇으려 했다.하지만 소우연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그래. 오늘부터 너희 가족은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들에 휘말리지 않을 거란다.”소우연은 령이를 부드럽게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내가 말했잖니. 습관처럼 무릎부터 꿇지 말라고. 무릎은 천지신명님과 부모님께 꿇는 것이지, 남에게 함부로 꿇는 게 아니란다.”령이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마님, 노비가… 정말 감사드립니다.”소우연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영남 역시 언젠가 상운국처럼 변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노비라 낮춰 부르지 않게 되리라.몸에 밴 관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런 낡은 기억들도 조금씩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하지만 마님… 제 가족들은 정말 무사히 농장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걱정하지 말거라.”“예.”반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일행은 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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