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2601 - Chapter 2610

2639 Chapters

제2601화

주익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은 자신들의 충심을 증명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그 소 대장이 그리 쉽게 귀순했단 말이냐?”주익선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그럼 익선이 네가 보기엔 어떻느냐? 그 자가 진심인 것 같으냐?”주익선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소 대장의 귀순이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닙니다. 그는 줄곧 소항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왔지만, 정작 소항이 바라는 것은 천추에 길이 남을 대업 같은 것이 아니라…”주익선은 뒷말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소우연과 이육진은 그가 하지 못한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런 자가 어찌 명군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요 며칠 저희가 부지런히 움직이기도 했고, 양 장군과 경장명의 일침도 있었으니 소 대장도 자연히 정신을 차렸을 것입니다.”이육진이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가 했던 말 중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더 이상 노비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지.”“이 세상에 스스로 노비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랜 세월 억눌리고 길들여진 탓일 뿐이지요.”소우연이 담담하게 말을 맺자, 이육진과 주익선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됐다. 진휘 일행이 이미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이 일로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주익선이 두 손을 맞잡아 읍하며 말했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이육진이 손을 내저었다. “어서 돌아가보거라. 진이가 애타게 기다리지 않도록 말이다.“주익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소우연이 물었다. “어째서 저는 조금…”“조금? 무슨 일이냐, 연아.”이육진이 물었다.“꽤 긴장이 되는 듯합니다.”“오히려 꽤 짜릿하지 않느냐?”소우연이 입술을 오므리며 답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이육진이 빙그레 웃었다. “더 짜릿한 것도 있단다.”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따뜻한 물이 벌써 다 식은 것 같습니다.”소우연이 말
Read more

제2602화

이육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나를 따라오거라. 이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말을 마친 이육진은 곧장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아갑과 아을은 행여나 놓칠세라 허둥지둥 그의 뒤를 쫓았다.소우연이 문가에 섰을 때는 이육진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저 멀리서 아갑과 아을의 그림자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주익선이 말했다.“아갑과 아을의 무공도 제법 쓸 만해 보입니다.”소우연이 대답했다.“그저 쓸 만한 정도겠지. 폐하께서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두 사람 모두 따라잡지도 못했을 것이다.”주익선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래도 이 영남은 경성만 못하니까요.”“진이는?”“아직,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소우연은 픽 웃고 말았다. 진이의 성격은 아무리 봐도 자신을 너무 쏙 빼닮았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잠이 많지는 않았다. 요 며칠 이육진이 일찍 일어나는 통에, 그녀도 덩달아 일찍 일어나게 된 것이다.“그럼 소 대장은?”“아직도 제 발로 방 안에 묶여 있습니다.”소우연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 저편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어디 한 번 가볼까?”“마마, 그 자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소우연은 대답 없이 그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익선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언제까지 방 안에 묶여 있게 둘 순 없지 않느냐. 게다가 조금 있으면 소항도 도착할 테고.”소우연이 걸으며 말했다.주익선이 대답했다. “그 자가 온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소 대장도 진심으로 귀순한 듯합니다. 만에 하나 그가 밀고를 했다 치더라도, 신과 진이가 즉시 태후 마마를 모시고 떠나면 그만입니다.”“그래, 마음 써줘서 고맙다.”“모두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우연과 주익선은 소 대장의 군막 밖에 다다랐다. 두 사람이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우연과 주익선은 시선을 교환했다.“진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소우연은 말을 건네며 곧장 군
Read more

제2603화

이진이 웃으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 사부로 모시겠다더니, 어째서 지금은 저 녀석을 사부로 모시겠다는 게냐? 설마 날 얕보는 것이냐?”그러면서 이진은 다시 주익선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 눈앞에서 내 제자를 가로채?”주익선이 웃으며 물었다. “진이 너 정말로 이 사람을 가르치려고?”“당연히 진짜지. 하지만 네가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특별히 너한테 양보할게.”이리저리 물건처럼 넘겨지게 된 소 대장은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주익선이 소 대장을 보며 웃었다. “그렇다면야, 안 될 것도 없지?”“사부님,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소 대장은 때를 놓치지 않고 넙죽 절을 올렸다.주익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 절은 받아두마. 어서 일어나거라.”소 대장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우연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절로 웃음이 났다.이진이 소우연의 팔짱을 애교 있게 끼며 물었다. “어마마마,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그 말에 소 대장과 주익선 모두 소우연을 쳐다보았다.소우연이 그제야 소 대장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뒤면 소항이 도착할 텐데, 어찌 대처할지 생각은 해두었느냐?”소 대장이 흠칫 놀라며 대답했다. “어찌 대처하다니요? 어제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했습니다. 아갑과 아을은 제가 문산으로 보내 이 대인을 잘 보필하라고 지시해 두었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괜한 걱정을 한 셈이구나.”소 대장이 두 손을 맞잡아 정중히 읍하며 말했다. “왕 대인께서는 염려 놓으십시오.”그 말에 소우연도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나갔다.이진은 남아서 주익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크흠, 그러니까 이 소 대장을 문산으로 보내겠다고 하시지 않았어?”이진도 자신이 어쩌다 또 '아바마마'라고 불러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소 대장이 주익선을 사부로 모시려 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들의 진짜 신분은 이미 더 이상 소 대장에
Read more

제2604화

소 대장은 이진과 주익선 두 사람을 배웅한 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군막 밖, 물로 씻어낸 듯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자유를 되찾을 희망이 생기는 날, 마음이 이토록 평온해질 줄이야. 나는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노비로 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고개를 돌리자 순찰을 도는 수많은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어젯밤, 그가 선약방으로 가려 했을 때 길을 잘못 들었다며 일깨워 주던 병사들이 떠올랐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 군영 전체의 그 수많은 장병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소성진 무리에게로 돌아선 것이 틀림없었다.소 대장은 군막을 나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사실 군영의 모든 것을 몰래 감시하는 자들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주익선의 말을 굳게 믿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밀고할 마음을 먹었다면, 애초에 이 운하 군영을 빠져나가지조차 못했을 것이다.연병장으로 걸음을 옮긴 소 대장은 양세봉과 부장군이 함께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양 장군.”소 대장은 깊이 읍을 하며 매우 진심 어린 태도를 보였다.양세봉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그는 소 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 대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찌 이리 큰절을 하시는 겁니까?”“양 장군님이야말로 제 귀인이십니다. 이 절은 그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는 뜻입니다.”“은혜라니요?”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해진 양세봉은 곁에 있던 부장군 일행을 쳐다보았다.부장군 일행 역시 고개를 저을 뿐, 소 대장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소 대장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 굳이 상황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일찍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지금쯤 대왕에게 충성을 바치겠다고 나서다 소성진 일행의 칼날 아래 억울한 원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듯 모든 것이 끝나는 법이다.그가 죽는다면 가족을 위해 분투하고 맞서 싸우는
Read more

제2605화

이 군막은 소항이 평소 군영에 들러 공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소항이 물었다.“혹 군영에서 무슨 심상치 않은 점이라도 발견한 것이냐?”“대왕 전하, 그렇지 않습니다.”소 대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소항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비록 그는 자유를 갈망했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었지만, 어릴 적부터 모셔온 주군을 마주하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묘한 동요가 일었다.“없습니다만…”잠시 말을 멈췄던 소 대장이 이어서 보고했다. “문산 쪽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어, 제가 먼저 아갑과 아을을 보내 감시하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이상한 움직임이라? 이 대인을 말하는 것이냐?”소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가 아닙니다. 문산 쪽 땅에서 거대한 이무기가 나왔다 하기에, 제가 직접 한번 가보려 합니다. 대왕의 어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소항이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직접 가겠다고? 아갑과 아을이 이미 가지 않았느냐?”“예, 하오나 제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는 대왕의 대업이 걸린 중대한 일인데, 그들의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는 영 불안합니다.”소 대장이 덧붙여 말했다.“네가 가는 것도 좋지. 그럼 이곳은…”“이곳은 제가 다른 수하에게 맡겨두었습니다.”소항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리하거라. 그럼 이제 왕 부인의 일에 대해 말해보거라.”“왕 부인 말씀이십니까? 왕 부인은 모든 것이 평안하며,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소 대장이 틀에 박힌 듯 또박또박 대답했다.“과인이 묻는 것은, 왕 부인이 널 찾아와 과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예?'소 대장은 흠칫 놀라 눈을 들어 소항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왕 부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분이 누구란 말인가. 상운국의 존귀하신 황태후 마마가 아니신가.정말이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소 대장은 입을 뻐끔거렸지만,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소
Read more

제2606화

소 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항이 태후마마를 탐내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손이 그런 끔찍한 변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러니 너는 내가 왜 그 여인에게 이토록 각별한 마음을 품는지 알겠느냐?”소항이 소 대장에게 물었다.소 대장이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대답했다.“왕 부인께서 대왕의 손을 고쳐주셨으니, 대왕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겠지요.”“그렇다.”“하오나 은혜를 갚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나는 은혜를 갚으려는 게 아니다. 그저 연모하는 것이다. 그윽한 난초 같은 그녀의 자태가 좋고, 가벼운 미소 한 번만으로도 내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찬다.”‘큰일이다…’소 대장은 속으로 탄식했다.소항은 진작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 틀림없었다.“대왕! 제, 제가 오늘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올리겠습니다.”소 대장은 그 자리에서 소항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아랫사람으로서 소항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도리라고 여겼다.“지금 무얼 하는 것이냐? 어서 일어나라.”소항이 소 대장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소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대왕, 대왕께서는 지금 모든 것을 갖추셨습니다. 어찌하여 고작 왕 부인 한 명에게 이토록 집착하시어 스스로를 망치려 하십니까?”“더는 말하지 마라.”소항이 단호하게 소 대장의 말을 끊었다.소 대장은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마침 하인이 차를 내어왔다. 소항은 찻물을 두어 모금 축이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군막 밖으로 향했다.“네 일은 잘 인계해 두고, 이만 문산으로 가거라.”“예, 대왕.”소 대장이 고개를 들었을 때, 소항의 뒷모습은 이미 군막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대왕,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 번 죽어 마땅한 제가… 대왕을 배신했습니다.'소 대장은 소항이 떠난 방향을 향해 쿵 소리가 나도록 세 번 연속으로 이마를 조아렸다. 마음 한구석이 복잡하게 엉켰지만, 자신의 자손들이 훗날 노비의
Read more

제2607화

“어마마마, 어찌 웃으십니까?”“저 자가 오고 있구나.”소우연은 덤덤하게 말하며 손에 든 약초를 만지작거렸다.이진은 소항을 힐쩍 쳐다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소우연과 함께 일에 집중했다.령이가 선약방에서 찻물을 내어 오다가, 소항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대왕께서 어째서 또 온 거지? 마님께선 또 어찌 대처하시려나?'령이가 찻물을 한쪽 탁자에 내려놓자, 소항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소우연이 먼저 령이를 물러가게 했다.소우연은 손을 탁탁 털고 탁자 쪽으로 걸어가, 직접 차를 한 잔 따르고 자리에 앉았다.이진이 다가가 말했다. “어머니, 저도 마시겠습니다.”소우연은 이진에게도 찻물을 한 잔 따라 주었다.소항은 두 모녀가 자신을 본체만체하는데도 전혀 무안해하지 않고 다가와 물었다. “왕 대인, 내가 이 자리에 앉아도 되겠소?”“대왕, 편히 앉으십시오.”소항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싶구려.”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매일같이 먼 길을 마다하고 군영까지 오시는데, 그저 제 어머니께서 따라주시는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기 위함입니까?”소항은 이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내가 군영에 오면, 비록 잠깐 보는 것일지라도 내 마음속의 답답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라오.”“그 말씀을 들으니 대왕의 마음이 퍽 고독하신가 봅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것처럼 그리 위풍당당하고 패기 넘치기만 한 건 아닌가 보군요?”이진은 차를 마시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소항은 이진의 태연자약한 기세에 놀라기보다는,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 여겼다.이 왕수미라는 여인과 그 딸은 영남의 여인들과는 확실히 달랐다.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것은, 이진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의 마음속 깊은 그늘을 정확히 찔렀다는 점이었다.소항은 드물게 우울한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긴
Read more

제2608화

“거의 다 나은 것 같소.”소항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차를 마셨을 뿐, 더 이상 나눌 말은 없었다.차를 한 잔 비운 뒤, 소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인을 보면 참으로 친근하게 느껴지오. 마치 날 때부터 한 식구였던 것처럼 말이오.”소우연은 하마터면 입을 열 뻔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수십 년 전 소씨 가문의 역모가 실패로 돌아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토록 많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본래 한 집안 식구였다.소항은 가볍게 턱을 당겨 목례를 했다. “왕 부인, 이 의관.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소.”그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바람을 몰고 올 것처럼 잿빛으로 잔뜩 흐려 있었다.“어마마마, 소항이 말한 '그들'이란 상운국에서 암암리에 저 자를 돕고 있는 진청산의 옛 수하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이진이 멀어지는 소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들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모녀는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그렇게 생각하면 저 소항이라는 자도 참 딱하네요. 저자가 반기를 들지 않더라도 상운국의 그자들이 어떻게든 반역을 일으키도록 몰아붙이거나, 아니면 언니가 영남으로 출병할 수밖에 없게 만들 테니까요.”소우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신의 분수는 아는 것 같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에요.”소우연이 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진이도 알아보았구나.”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바보는 아닌걸요. 저자의 말에 담긴 무력감을 어찌 눈치채지 못했겠어요? 만약 옛날 소씨 가문 사람들이 어마마마께 그토록 매정하게 굴지만 않았더라면, 저 소항이라는 자도 따지고 보면 어마마마의 먼 사촌동생쯤 되는 것 아닌가요?”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과거 그녀가 소씨 가문 저택에 머물던 시절, 그녀를 핍박한 것은 본가 사람들이었지 소씨 가문의 방계 친척들과는 큰 상관이 없
Read more

제2609화

소우연이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천 년을 더 수련한다 해도 네 외삼촌을 따라가지는 못할 게다.”하물며 사람의 한평생이 고작 백 년을 넘기기 어려운데, 천 년이라는 세월이 어디 있겠는가?“수련으로 따지자면 네 오라버니가 오히려 타고난 재능이 있지. 지난 몇 년간 조정을 다스리느라 매여 있지만 않았어도, 필시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을 게다.”소우연이 말했다.“그깟 도를 닦는 게 뭐가 좋다고요? 새언니와 금슬 좋게 지내며 서로 아끼고 믿는 게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이진은 그렇게 말하며 주익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정하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그렇지, 익선아?”주익선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이진을 바라보았다. “응. 진이 네가 곁에 있으니, 이번 생에 난 더 바랄 게 없어.”다정하게 구는 두 아이를 보며 소우연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그리 행복해하니 나도 기쁘구나. 하지만 네 외삼촌 말로는 이 세계와 창궁 은하에는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더구나. 오직 도를 깨우치고 수련해야만 시공을 초월해 우주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소우연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너희, 혹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어떤 이야기 말입니까?”“이 세상, 상운국이든 영남이든… 그저 누군가의 붓끝에서 탄생한 하나의 세상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그녀는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이 겪었던 전생과 용강한이 도법을 가르쳐주며 수없이 들려주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깊은 감회에 젖은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이진은 어마마마가 이토록 감상에 젖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지금 이 순간, 어마마마에게서 어쩐지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함마저 느껴졌다.이진이 고개를 돌려 주익선을 바라보자, 주익선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한참 뒤, 이진이 입을 열
Read more

제2610화

“무슨 일이야? 그동안 뭐가 그리 의문이었는데?”이진이 주익선을 바라보며 물었다.주익선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막상 말하려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예전에 학문을 가르쳐 주시던 스승님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어.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사명을 띠고 태어나, 그 사명을 다 이루고 나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셨지. 역대 왕조의 성현들이나, 기울어가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대장군들이 남긴 업적들… 그게 바로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다는 거야.”이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어.”주익선이 이진을 마주 보았다.“예로부터 황족들은 하나같이 황위를 차지하려고 형제끼리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싸웠잖아.”“야사나 책을 보아도, 높은 자리에 올라 황제가 되기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지.”이진이 담담하게 덧붙였다.주익선이 고개를 끄덕였다.“선황 폐하께서는 황위를 쟁취하셨지만, 여러 후궁을 두지도 않으셨고 나라를 형님에게 물려주시지도 않았어. 그 대신 어릴 적부터 곁에 두고 황태녀로 키우신 폐하를 선택하셨지. 그건 선황 폐하께서 폐하나 형님, 그리고 너까지 모두 똑같이 소중한 자식으로 여기셨다는 뜻이야.”이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남녀평등을 강력하게 내세우던 그 시절에도, 크게는 명문 세가부터 작게는 평범한 백성들까지 누구나 아들을 낳고 싶어 했잖아. 심지어 냄비나 그릇 같은 살림살이 하나라도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지. 그런데 아바마마께선 이 거대한 강산을 언니에게 물려주셨어. 아바마마께선 대체 어떻게 그런 사상의 굴레를 깨뜨리신 걸까? 그리고 어째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남성 우위의 통치 체제를 돌연 깨버리신 걸까?”주익선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소우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선약방의 문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어쩌면, 방금 태후 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그 해답일지도 몰라.”주익선이 말했다.“선황 폐하와 태후 마마께서는 이 세상이 그저 덧없으며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