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궁이라는 곳에서 벙어리는 소통이 어렵다. 주인의 뜻을 어떻게 제때 알아채고, 어떻게 요구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는 누구보다 먼저 주인의 신뢰와 총애를 얻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만만하게 대체 불가능하다고 믿는 그 벙어리를 대신할 수 있으니까. 아령은 눈앞에 무릎 꿇고 있는, 불완전한 사내를 바라보며 문득 사람 위에 선 듯한 쾌감을 느꼈다. 수년간 그녀는 백화류에서 시작해, 이지윤의 사람이 되기까지, 언제나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윗사람 앞에선 다정한 척, 아랫사람 앞에선 넓은 아량을 베푸는 척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세월이었다. 방금 전 혜주를 구해줬을 때만 해도, 혜주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이토록 많은 비밀을 쥐고 있음에도, 그녀는 눈앞에서조차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비로 봉해진 뒤, 그저 고개만 살짝 숙였을 뿐, 축하의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이복, 이름 참 좋다. 바꾸지 마라.” 그녀가 이씨인 이유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몸을 허락했던 은인의 성이 ‘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부 역시 성이 이씨였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이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예, 소인이 명 받들겠습니다. 그럼… 저녁 식사는 어떠하실지요?”아령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본궁은 입맛이 없다.” 덕빈이 하필 이런 때 죽었으니, 황제가 그녀를 홀연히 잊어버릴지도 모른다.자신의 매력과 수완이라면 황제를 사로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황제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이 능해도 소용이 없지 않은가?이복은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마, 너무 염려 마십시오. 덕빈 마마께서 수년간 총애를 받으셨던 만큼, 황제께서도 당분간은 계속 마음에 두실 것입니다.”아령은 다시 이복을 바라보았다.이복은 또다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소인이 주제넘게 말했습니다. 마마, 용서해 주십시오.”“일어나도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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