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771 - 챕터 780

824 챕터

제771화

그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생에서 용강한이 아니었다면 소우연과 이렇게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남자의 준수한 얼굴에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자, 소우연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맹세하겠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저버리지 않는 한, 저는 이생에서…”“이생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나와 함께 해야 한다.”이육진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소우연은 잠시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의 진심이 전해지는 듯 가슴이 뭉클했다.“네. 한 평생,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폐하를 사랑하겠습니다.”그녀의 대답이 꽤나 마음에 들은 듯 이육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뒤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며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이렇게 약속해 주니 마음이 한결 놓이구나.”소우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용강한에 대한 이야기는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녀는 여전히 흠천감에서 보낸 그 하룻밤과 꿈속의 모든 장면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용강한의 마음을, 그녀는 이생에서 받아줄 수 없었다.그때 그녀가 해준 것은 고작 장수목걸이 하나를 선물한 것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받은 은혜는 감히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평생을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은정이었다.용부.용강한이 저택으로 돌아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궁하기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보이지 않았다.경문이 조심스레 뒤따르며 말했다.“대인, 이곳은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시면 소인이 사람을 시켜 준비하겠습니다.”용강한은 가볍게 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다 괜찮다.”그의 목소리는 마치 고산 위에 쌓인 눈처럼 성스럽고 연약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금세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는 허리에 찬 영락태극구를 가볍게 쥐고는, 언제나처럼 구슬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내 본채로 들어가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경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인, 태의를 모셔올까요?”용강한은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이 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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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용강한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조용히 경문을 바라보았다.“어디인가?”“위진규 장군부 옆, 전 금주 태수의 저택입니다. 그곳은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제법 넓습니다.”금주 태수의 저택이라니.그 말은 그가 외출할 때마다 소우연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그 생각에 그의 가슴은 설렘과 자조가 뒤섞여 일렁였다.설령 그렇다 해도,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알겠다.”용강한은 가볍게 손짓해 경문을 물러가게 했다.경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용강한은 품속에 소중히 감춰둔 손수건을 꺼냈다.그것은 한때 그녀가 그의 피를 닦아주다 얼룩져버린 손수건이었다.그는 그것을 몰래 간직해왔던 것이다.손수건 속에는 그녀가 선물한 장수목걸이까지 함께 고이 싸여 있었다.……희장안, 객줏집.이복은 후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주마마의 자비를 구합니다. 부디 공주마마를 계속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후희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막 사람들은 은혜를 갚는 것을 무엇보다 중히 여긴다.그 마음을 잘 아는 그녀는 부드럽게 이복을 일으켜 세웠다.“아령이 없는 지금, 네가 사막으로 돌아가 봐야 외로울 뿐이다. 상운국에 머물고 싶다면 그대로 남아라.”“공주마마의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이복은 다시금 사막의 예법으로 큰 절을 올렸다.“이 일은 조 장군께도 네가 직접 전하거라.”“예.”이복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몇 걸음 뒷걸음질쳐 물러서다가 몸을 돌려 객실을 나섰다.객줏집을 나온 그는 곧장 행관으로 향했다.조윤은 주좌에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그는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이복을 바라보며 물었다.“공주마마께서 너를 보낸 것이냐?”이복이 고개를 끄덕였다.“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공주마마께서 사막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장군께 알려드리러 왔습니다.”“그래.”조윤은 이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의 구부정한 자세는 궁중의 태감들과 몹시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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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이복은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조윤은 미간을 찌푸렸다.“너희들, 정말 미쳤구나!”이복이 씁쓸하게 웃었다.미친 건 아령이었다.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아령과 함께 사막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한평생을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아령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원래 아령은 이복에게 사막으로 돌아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잘 돌봐달라 당부했었다.하지만 지금 아령은 경성에 있었다.그렇기에 그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었다.만약 누군가 아령을 괴롭힌다면, 비록 연약한 자신일지라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막아주고 싶었다.설령 목숨을 잃는다 해도.정말 미친 짓이었다. 참으로 미쳐 있었다.이복이 무릎을 꿇고 조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조 장군께 간청드립니다. 마마의 도련님을 꼭 잘 부탁드립니다. 이 부탁이 어찌 보면 어리석을지라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마께서 도련님을 얼마나 아끼는지요.”그는 말을 이었다.“처음 마마께서는 도련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직접 도련님의 목을 조르기도 했습니다.”“갓 태어난 아기가 질식하는 고통을 겪고, 약물을 복용하게 만든 것도 전부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이건 평범한 어머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장군께 드리는 이 간청이 어리석고 쓸모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조윤은 입을 열려다 말고 이복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래.그 어정쩡한 할아버지인 자신은 아령과 이복의 눈에 명이의 생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정작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이 작은 손자를 품에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이미 충분히 원만했다.“일어나라.”조윤은 직접 손을 내밀어 이복을 부축해 일으켰다.“나는 너희와 함께 사막까지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아이만큼은 반드시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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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진우와 위진규 등은 모두 이복의 어머니를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다.그런데 이복은 겁도 없이 좌판을 벌여놓은 앞까지 똑바로 걸어갔다.경안향이 손수건을 들고 살펴보며 감탄했다.“수놓은 솜씨가 정말 좋네요. 이 나비가 마치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 같아요.”“그럼요, 제가 만든 수놓은 물건들은 백화루의... 콜록콜록...”이복의 어머니는 원래 자신이 만든 자수가 백화루의 기녀들부터 시작해 많은 아씨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괜히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말을 바꿨다.“아씨들이 보면 다들 참 좋아하더라고요.”경안향은 미소 지으며 지갑을 꺼냈다.“그럼 이걸로 살게요.”이어서 참외며 배며 몇 가지 과일도 더 골랐다.그때 옆에서 귀뚜라미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이명이 갑자기 사과를 집어 들더니 아령에게 내밀었다.“이게 더 맛있어요. 이거 진짜 맛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이복의 어머니도 잽싸게 거들었다.“맞아요. 이 사과도 정말 맛있답니다.”경안향은 애써 이명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엔 이명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그 순간, 모자 사이의 특별한 끌림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다.그녀는 최대한 태연한 척 몸을 낮춰 아이에게 물었다.“정말 그렇게 다니?”“정말 달아요! 엄청 달아요!”이명은 한껏 열심히 추천했다.그는 이걸 팔아야 할머니께 검을 사달라고 졸라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는 협객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귀엽게 생겼네요. 이렇게 착한 아이를 보면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요.”경안향이 웃으며 이복의 어머니에게 몇 개 더 골라달라고 했다.이번엔 임세안이 대신 돈을 지불했다.“다음에 또 오세요. 그때는 할머니한테 말해서 더 싸게 해드릴게요.”이명은 경안향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자꾸만 정겹게 느껴졌다.그녀의 미소와 말투는 아이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그래.”경안향도 미소로 답했다.이복의 어머니 역시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조금 걸어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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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나이 든 여인들이야 배우러 온다 해도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여의서가 제대로 굴러가긴 하겠어?““그래도 이건 궁에서 주관하는 거잖아. 전망 좋은 일 아닌가?”“에이, 궁에서 한다고 뭐가 다른가. 결국 중구류에 불과해. 설령 정말 태의원까지 들어간다 해도 여의사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대접받을 일은 없을 거야.”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쏟아냈다.혹여 지원을 고민하던 처녀가 있어도 가족들이 곧바로 끌어갔다.“의술은 역시 남자가 더 적합해!”경안향이 고개를 돌려 임세안을 바라보았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높은 곳으로 올라서더니 또렷하게 목소리를 높였다.“이번 여의서 모집은 글만 알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습니다!”“배우다 실패하면 시간 낭비잖아? 큰 손해 아닌가?”임세안이 단호히 말했다.“그런 분들을 걸러내기 위해 기초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배우려 한다면 배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완전히 정통하진 못하더라도 기초는 반드시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그는 진심으로 황후를 위해 제자들을 모으고 있었다.하지만 처녀들이 관심을 가지려 할 때마다 가족들이 나서서 집안에 일손이 부족하다거나 곧 혼인할 사람이라며 붙잡아갔다.“여의사라고 해봐야 출세길은 없지. 좋게 말해 여의사지, 결국 산파나 접생부처럼 여겨질 거잖아.”“맞아, 듣자니 어떤 소국에서는 여의사를 의기라 부른다더군.”“망언이다!”임세안은 '의기'라는 말에 크게 분노했다.“황후 마마께서는 의술이 뛰어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황후 마마의 만안당에서 치료받아 은혜 입은 이들이 분명 있을 텐데, 감히 여의사를 모욕하다니!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임세안이 황후를 언급하자 군중은 움찔하며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그때 경안향이 앞으로 나섰다.“세상은 남녀로 나뉘지만, 결국 모두 밥을 먹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지요. 남자들은 진료받기 쉽지만 여자들은 수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여의사가 널리 퍼진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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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임세안이 고개를 들어보니 마차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마차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눕시다.”“좋습니다.”경안향이 앞서 걸어갔다.임세안은 오늘 산 물건들을 손에 들고 그 뒤를 따르다 함께 마차에 올랐다.그 순간 혜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아씨, 방금 초현대에서 도대체 뭘 하신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줄 알았어요!”유순복과 조철은 말을 타고 뒤따르고 있었고, 마차는 임세안이 소속된 표기대장군부의 마차였다. 마부는 그의 호위병 이고였다.이고가 재빠르게 발판을 내리며 말했다.“경 이아씨, 올라가십시오.”경안향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혜아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이어 임세안도 마차에 올라탔다.“먼저 경 이아씨를 댁으로 모셔 드려라.”임세안의 지시에 이고가 바로 응답했다.“예.“그는 발판을 거두고 마차를 몰아 경부로 향했다.마차 안.임세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경안향이 살짝 그를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장군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고, 또 저와 혼약까지 정하셔서 머지않아 혼례를 치르게 되지 않습니까…”이야기를 이어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속삭였다.“제가 방금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장군님을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랬는데… 만약 제가 의술을 배우러 간다면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텐데요. 혹여 장군님께서 불편해하실까 걱정됩니다.”임세안이 대답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경안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아니면 이 일은 없었던 걸로 할까요? 어쩌면 그분들도 저를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임세안은 빙그레 웃었다. ‘무슨 걱정이 이리도 많은지.’“낭자, 괜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제 부친과 모친께서는 황후 마마께 깊은 은혜를 입으셨습니다. 낭자께서 황후 마마의 여제자가 되어 의술을 배우신다고 하면 두 분 모두 기뻐하실 겁니다.”그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저희 집안은 본래 의술 가문입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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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화

경안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용강한이 그녀 옆을 스쳐 지나가며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준수한 눈썹이 잠시 찌푸려졌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지나쳐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문이 용부의 마차를 끌고 왔다. 용강한은 마차 발판을 밟고 올라탔고, 이내 곧 경문이 고삐를 잡아 마차를 출발시켰다.경안향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혜아가 재빠르게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아씨, 어디 편찮으신가요?”“혜아야,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구나.”“어의를 불러올까요?”경안향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괜찮아.”백발에 저토록 준수한 용모라니. 흠천감의 감정 용강한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그녀가 용강한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흠천감의 감정들은 신통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가 방금 자신을 한 번 스쳐 바라본 것만으로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방금 그분이 용 대인이신가요? 흠천감의 감정 용 대인이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셨다고 하던데,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어요.”혜아가 조심스레 속삭였다.경안향이 말했다.“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자.”용강한이 경부에 무슨 일로 온 걸까?그는 대단한 신기를 가졌다고 하는데, 혹시 경성세나 경부인에게 무슨 말을 남긴 것은 아닐까?그때 누군가 혜아의 손목을 덥석 움켜잡았다.그러나 감히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이제 막 일등 시녀로 승진한 처지라 아씨의 성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그렇게 주종은 서로 부축하며 저택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정당에서는 경성세가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용강한이 왜 경부에 찾아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더구나 그가 한 말은 더욱 기이했다.그저 지나가다 차 한 잔 마시러 들렀다고 했으나, 차를 마신다고 해놓고는 경부의 뜰을 몇 바퀴나 돌았다. 뒷마당이든 앞마당이든 구석구석 모두 살펴보고 떠났다.“아버지.”경안향이 다가와 단정히 예를 올렸다.경성세가 정신을 가다듬고 딸을 바라보았다.“임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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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8화

마차 안에서 용강한은 살며시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방금 전 경부 대문 앞에서 마주친 여인의 모습이 맴돌고 있었다.그 여인의 기질은 분명히 이상했다.열일곱 살답게 천진하고 수줍어야 할 나이였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자신을 보았을 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엿보였고, 그 눈빛은 열일곱 살 소녀가 가질 법한 순수한 눈빛이 아니었다.그때 마부가 조심스레 물었다.“대인, 그럼 저희 임 장군 댁으로 가시겠습니까?”오늘 용강한은 그저 마을에 인사만 하러 간다고 했었다.그래서 이 거리의 여러 대가들을 모두 방문했었다.용강한이 짧게 '음' 하고 대답했다.“가자.”“예, 출발하겠습니다.”경문이 마차를 몰아 표기대장군부로 향했다.임세안은 집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관가에서 사람이 찾아와 용강한이 방문했다고 알렸다.용강한이 직접 자신의 저택을 찾다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자, 용강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임 장군님, 점괘를 봐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저는 아무에게나 점을 쳐드리진 않습니다.”물론 이육진과 소우연은 예외였지만.“그야 당연히 좋죠.”임세안은 순간 당황했다. 용강한이 자신에게 점을 쳐주려고 온 것인가?그러나 그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진우와 진규에게서 황제, 황후, 그리고 용강한 사이의 복잡한 사정을 여러 번 들은 터였다.용강한이 지금 점괘를 치다간 쉽게 반사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일 터였다.그러자 용강한이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듯 직설적으로 말했다.“장군 정도의 운명으로는 저에게 반사를 가할 수준이 아닙니다.”임세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하인에게 차를 올리라 명했다.“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혹, 제 인연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인연이라…”용강한이 잠시 중얼거리더니, 하인이 올린 차는 마시지 않고 찻잔 뚜껑을 열어 차탁 위에 ‘인’ 자를 손가락으로 그렸다.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쉼 없이 계산을 시작했다.한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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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9화

이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역시 며칠 동안 주인과 경안향이 함께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임세안은 손을 휘저으며 그를 물렸다.“물러가거라.”“예.”이고가 공손히 물러났다.용강한의 말은 너무 심오했다. 마치 들은 듯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기분이었다.그에게 혼례를 취소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도, 용강한은 뚜렷한 대답을 피하고 다만 ‘이번 혼사는 폐하와 황후께서 주선하신 것’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며칠 동안, 임세안은 내내 고민에 빠져 있었다.비록 경안향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파혼을 한다면 그녀의 그 맑고 아름다운 눈이 분명히 붉게 부어오르도록 울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원래 임세안은 혼례 전까지 경안향과 여러 번 만나 서로의 감정을 키워 성혼 때의 어색함을 덜고자 했다.그러나 용강한의 말을 들은 후, 그의 열정은 어느새 식어버리고 말았다.……여의서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되었다.소우연은 춘화, 추실, 하온, 동심, 정연, 당안과 진우 등을 데리고 여의서에 도착해 등록 현황을 살펴보았다.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여제자들만 등록해 놓은 광경에 소우연은 기가 막혔다.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째서 아무도 소중히 여기려 하지 않는 것일까?당안이 불진을 안고 다가와 말했다.“마마, 바람이 심하오니 안으로 들어가 쉬시지요.”여의서의 본채는 상당히 컸지만, 제자들에게는 나누어주지 않고 울타리를 쳐 황후와 황제가 올 때 머물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다.소우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조금 더 둘러보자.”그녀는 이 전 금주 태수의 저택이 과연 얼마나 넓은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반 시진이 넘게 흘렀다.가산과 정자, 크고 작은 마당과 방들이 대략 사오십 간은 되어 보였다.이 정도 규모라면 한두백 명의 제자를 수용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하지만 지금 등록한 여제자들은 고작 열 명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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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차와 다과를 들며 소우연이 물었다.“공주는 어디 있느냐?”“마마께 아뢰옵니다. 공주마마께서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공주는 때로는 낮잠을 자고, 때로는 자지 않기도 했다.다만 요즘 정태부 스승님과 함께 학문을 배우게 되면서 낮잠 시간도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정자에 오래 앉아 있으니 소우연도 조금 나른해졌다.“함향아, 바둑알을 가져와라. 정연이와 바둑이나 둬야겠구나.”소우연이 애써 눈을 비비며 말했다.정연이 당황한 듯 말했다.“마마, 소녀의 바둑 실력으로는 마마를 감히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어찌 상대가 안 되겠느냐? 내가 알기로는 너도 예전에 금슬서화를 모두 배웠지 않느냐.”“소녀가 배운 것은 모두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마마처럼 늘 폐하와 바둑을 두시며 실력이 날로 정진하신 분과 어찌 감히 견줄 수 있겠습니까.”날로 정진했다니...소우연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녀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이육진을 상대로 단 한 번 이기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열 번 두면 아홉 번 반은 그녀가 졌고, 남은 반 번은 이육진이 일부러 져준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그렇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에게 혹시 져준 거냐고 묻지 않았다.함향이 머리를 조아렸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그렇게 말하고는 바둑알을 가지러 갔다.정자의 석탁 위에는 이미 바둑판이 그려져 있었다.정연은 바둑판을 깨끗이 정돈한 후 송이에게 건네어 한쪽으로 치우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함향이 흑백 바둑통을 들고 돌아왔다.“마마께서 소녀를 괴롭히시려는 것이니, 소녀가 먼저 두겠습니다.”정연이 웃으며 말했다.“좋다. 네가 먼저 두어라.”정연이 흑돌을 집어 첫 수를 놓았다.소우연도 백돌을 집어 바짝 따라갔다.두 사람은 바둑을 두면서 한편으로는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었다.“요 며칠 진우가 보이지 않는데, 혼례 준비로 바쁜 모양이지?”소우연이 물었다.정연이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위 장군님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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