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781 - Chapter 790

824 Chapters

제781화

소우연의 바둑돌이 바둑통 안으로 또각 하고 떨어졌다.‘오라버니는 요즘 한가한가?’‘사람들 점괘나 봐주고 있는 건가?’‘점괘를 보면 정력 소모는 안 되는 건가?’소우연이 못내 궁금한 듯 물었다.“그래서 진규의 혼사에 대해서는 뭐라 하셨느냐?”사실 그녀는 용강한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늘 마음 한켠에 두고 있었다.하지만 아마도 흠천감에서 있었던 그 일들, 꿈속에서 마주한 그 하룻밤 때문일 것이다.어떻게 그와 마주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어쩌면 그녀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는지도 몰랐다.하지만 이건 용강한에게 불공평한 일이었다.그녀는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고, 마음도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다.그러나 결국 용강한에게 공평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응답해 줄 수 없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둘 사이는 마치 암묵적인 약속처럼 서로를 찾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분명 두 사람 모두 궁 밖에 있으면서도 말이다.정연이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좋은 자리를 찾아 돌을 놓으며 계속 말했다.“용 대인께서 말씀하시길, 위 장군님의 혼사는 비록 완벽하진 않으나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하셨답니다.”“오, 그럼 진규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느냐고 물었느냐?”“진우가 말하기를 물어보았다고 하는데요, 용 대인 말씀으로는 사막 공주께서 비록 마음이 온전히 순수하지는 않으나 성정이 솔직한 분이라 조금만 인도해주면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소우연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자, 정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말한 거나 안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옵니까.”소우연이 웃으며 대답하였다.“어찌 그리 말하느냐.”“오라버니께서 분명 말씀하셨지 않느냐. 인도만 해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소우연은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음… 다시 말해 사막 공주는 우리와 다른 혈통이라 생각과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으나, 이미 상운국에 시집왔고 또 성격이 솔직한 여인이니 조금만 보살피고 이끌어준다면 좋은 부부의 인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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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소우연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여의서에서 인재 모집령을 내렸어도, 목숨 걸고 오는 사람이 드뭅니다. 여자들이 의술을 배우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백성들 눈에는 여의도 하녀보다 조금 나은 하녀에 불과하니까요.”이육진이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럼 너는 어찌하고 싶으냐?”이미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저 두 눈 가득히 그녀를 바라보며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 목소리가 언제 들어도 꾀꼬리처럼 곱고 부드러워 평생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소우연이 말했다.“폐하께서 여인들을 위해 새 직위를 만들어 주신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 여의서도 점점 자리를 잡아 번창하게 될 테고요. 의원이 많아지면 훗날 수많은 가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이런 이야기는 예전에도 몇 번 가볍게 나눈 적이 있었다.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겠구나.”그는 무심히 턱을 어루만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허나 새로운 직위라 하면…”“새롭다 할 것도 없지요.”소우연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여의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의술을 갖추면 여의관으로 봉해주면 되는 것입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치 잔잔한 호수면에 바람 한 점조차 멈춘 듯한 고요가 감돌았다.미풍이라도 스치면 금세 잔물결이 일렁일 것만 같았다.소우연은 이육진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는 작게 주먹을 쥐어 그의 가슴을 툭 쳤다.“어떠십니까?”그녀는 권세를 탐할 생각이 없었다.이번에도 다만 의술을 널리 퍼뜨려 더 많은 여인들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이육진이 입을 열었다.그의 손이 뻗어 소우연의 뺨과 붉은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두 사람의 시선이 엇갈렸다.“그래, 알겠다.”그의 짧은 대답은 그녀의 고요한 마음에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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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3화

상운국에 온 이후 후희진은 아직 이 나라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다.후희진이 부드럽게 말했다.“경그리 예를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녀는 손을 들어 경안향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경안향도 조금의 어색함 없이 일어나며 웃으며 말했다.“임 장군과 위 장군은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한 지기지우입니다. 저 또한 훗날 공주마마와 좋은 교우가 되기를 바랍니다.”그녀는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교우란 좋은 친구를 뜻합니다.”후희진은 미소를 지었다.경안향이 매우 다정하게 대해주고 있었지만, 후희진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남아 있었다.그때 이복이 앞으로 나섰다.그는 감히 경안향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조용히 그녀들 뒤편, 가까운 거리에서 머물렀다.고개를 숙인 채 경안향의 살짝 쉰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저릿했다.경안향 행세를 하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까지 변조하고 있는 것이다.임세안과 혼인한 뒤에는, 그녀를 아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정리해야 비로소 편안히 지낼 수 있을 터였다.경안향이 잠시 이복을 스쳐 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임세안을 바라보았다.임세안과 위진규 두 사람이 함께 앞으로 나섰다.위진규가 후희진을 향해 물었다.“공주마마께서는 먼 곳에서 오셔서 아는 이도 없으셨을 텐데, 안향 낭자와는 제법 잘 어울리시는 듯합니다.“후희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참 온화하셔서 저 같은 다소 불같은 성정도 잘 받아주시더군요.”불같은 성격이라니…위진규가 웃으며 임세안을 바라봤다.“다방으로 가서 차 한 잔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임세안이 경안향을 바라보았다.경안향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공주마마께서 괜찮으시다면, 전 더없는 영광이지요.““그럼요. 이곳에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저 역시 새로운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후희진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손짓했다.“저기가 다방인 듯하네요. 그리로 가시지요.”“좋습니다.”그렇게 하여 일행은 호위병과 하인, 시녀들까지 합쳐 제법 성대한 행렬을 이루며 다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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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4화

대혼례가 가까워질수록, 정연은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다.함향과 송이 두 사람이 잦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람에 마음이 더욱 답답해졌다.이번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황후 마마께서야 온화하시지만, 너희들은 반드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 놋그릇만 해도, 마마께서 세수를 마치신 후에는 깨끗이 치울 뿐 아니라 항상 맑은 끓인 찬물로 준비해두어야 한다.”말을 하면서 정연은 놋그릇 속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물고기, 오리, 원앙 장식들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수건도 마찬가지다. 이틀에 한 번씩은 반드시 새 것으로 갈아야 한다.”“네, 모두 기억해두겠습니다.”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연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말했다.“좋다, 앞으로는 마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라.”송이와 함향이 서로를 바라본 뒤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그때였다.소우연이 낮잠에서 깨어났고, 정연이 두 궁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소우연이 일부러 기척을 내자, 정연은 서둘러 두 궁녀를 물리고 스스로 들어와 인사드렸다.“마마, 깨어나셨습니까? 이건 방금 새로 갈아온 물입니다. 세수를 도와드릴까요?”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정연은 재빠르게 수건을 짜 준비했다.“정연아, 나는 일국의 황후다. 저 아이들도 해이해지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다. 손발이 있으니 어떤 일도 어렵지 않으니라.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정연은 잠시 입을 벌렸다가, 한참 후에야 조용히 말했다.“저는… 아마 마마를 떠나기 아쉬운가 봅니다…”소우연이 부드럽게 웃었다.“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너를 봐라, 시집을 앞두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니 시집가는 날 예쁘지 않을 것이다.”“저는…”“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여전히 궁에 있으니 네가 하루에 두 번 들러도 반 시진이면 족하다. 그러니 이만 표정을 풀거라.”정연이 미소를 지었다.황후의 곁을 정말 떠나기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진우와 혼인하여 황후처럼 윤택한 삶을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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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5화

소우연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춘화와 이 태의를 바라보았다.“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여의서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면 궁에 들어와 여의관이 될 수 있고, 재능이 뛰어난 자는 태의까지 오를 수 있다 하셨거늘, 어찌 이리도 인원이 적더냐?”이 태의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하며 답했다.“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청자는 본래 적지 않았사오나, 신이 먼저 선별을 거쳤습니다. 글자를 아는 자를 우선으로 삼고, 약재에 대한 소양이 있는 자를 선별했으며, 의술을 배우겠다는 의욕만 있으나 손발이 둔하거나 은침을 쥘 때 크게 떠는 자들은 모두 탈락시켰습니다. 또한…”“잠깐.”소우연이 그의 말을 끊었다.“예.”이 태의는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그의 가슴 속엔 어느새 조심스러운 불안이 일었다.의술이란 모든 이에게 알맞은 길이 아니다.만약 선별 없이 신청자 전부를 받는다면, 진정한 자질과 재능을 지닌 이들이 오히려 발길을 돌릴 수도 있었다.소우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태의의 말이 옳다. 엄격한 선별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본래 의학 기초가 있거나 타고난 천부가 있거나, 혹은 의술에 깊은 흥미를 지녀야만 여의서의 학도가 될 자격이 있다.”이 태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마께서는 과연 영명하십니다. 신의 뜻도 바로 그러합니다.”소우연은 다시 신청 명부를 펼쳐 들었다.그때 맨 첫 장의 이름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이 경안향이라 적힌 이는 여의서에 보고되었느냐? 혹 경 대인의 둘째 딸이 아니더냐?”춘화가 나서서 대답했다.“마마, 이 아씨는 아직 여의서에 정식으로 보고된 것은 아니오나, 맞습니다. 바로 임 장군의 약혼자인 경 대인의 둘째 따님이십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곁에 있던 정연은 이미 진우에게서 이 일을 들은 바 있어 곧장 설명을 이었다.“진우가 말하기를, 그날 임 장군께서 여의서 모집을 돕고자 마마의 성지를 전하러 갔을 때 경 둘째 아씨도 함께 있었답니다. 그때 결정적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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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6화

두 사람은 본채 앞마당의 정자로 천천히 걸어갔다.정연은 문득 진우가 들려준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나 소우연에게 말을 건넸다.“마마께서는 아직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용 대인께서 임 장군 저택에 가셔서 하신 말씀 때문에 임 장군께서 몹시 노하셨답니다.”소우연이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오, 어찌하여 화가 났단 말이냐? 오라버니께서 무어라 하셨기에?”정연은 목을 가다듬으며 어쩐지 머뭇거렸다.“그게요…”“어서 말해 보아라.”“용 대인께서 임 장군께 무료로 점을 봐주시겠노라 하셨답니다. 그러자 임 장군께서 아무 주제나 괜찮다 하시니 '인연의 인' 자를 택하셨답니다. 그러고는 용 대인께서 인과니 어쩌니 하시면서, 임 장군의 혼사가 임 장군 마음에 꼭 드는 분은 아닐 듯하다고 하셨다 합니다. 요 며칠 임 장군과 진 대인, 진 태감께서 그 이야기를 두고 끝없이 수근댄다더군요.”정연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임 장군은 인품도 곧으시고 여인들에게도 신중히 대하시는 분이시고, 경안향이란 분 또한 글도 알고 예의도 바르다 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사막국 공주마마와도 무척 가까워지셨다고 합니다.”“이렇게 영리하고 완벽한 분이 어찌하여 좋은 인연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소우연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마음에 드는 분이 아닐 듯하다'…계속해서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어찌하여 좋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인가?소우연은 용강한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가 그렇게 말했을진대, 그 속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였다.“임 장군과 안향 낭자의 인연은 분명 하늘이 맺어준 것 같지 않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필 임 장군이 낭자를 구하게 되고, 또 혼사로 이어지지 않았더냐.”“마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정연이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원래는 몰랐는데 진 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었습니다. 임 장군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요 며칠 용 대감께 점을 받으신 뒤로 계속 마음이 무겁다 하셨다더군요.”그들이라… 진규도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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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혼란스럽습니다.”소우연이 잔잔히 미소 지었다.마치 자신과 용강한처럼. 부부의 연분은 없어도, 아예 인연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세상사에는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법이다.물론 그녀 역시 용강한이 그 말을 한 참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소우연이 정연을 바라보며 이르렀다.“사람을 보내어 임 장군에게 전하게 하여라. 혼사는 중대한 일이니, 그가 신중히 생각해보았는지 물어보라고 전하거라.”“예, 마마. 잠시 후 진 대인을 찾아가 임 장군에게 전하게 하겠습니다.”“아니다. 지금 당장 가거라. 늦어지면 두 사람의 명예에 불필요한 소문이 돌까 걱정되는구나.”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숙였다.“예, 지금 곧 다녀오겠습니다.”바람 한 줄기가 스쳐가자, 소우연은 은은히 퍼지는 계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문득 정신이 한결 맑아지는 듯했다.그녀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구석에 계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계화가 한창 만개하여 이미 수많은 꽃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가지 위에도 꽃송이들이 가득 피어 은은한 향을 퍼뜨리고 있었다.그제야 이 며칠 간 내내 맡아왔던 꽃향기의 근원이 계화였음을 깨달았다.마음이 온통 딴 데 가 있었던 탓에 이토록 곁의 풍경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폐하께 문안드립니다.”궁인들의 인사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이육진이 검은 포의를 입고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조회를 마치고 소우연을 보기 위해 급히 온 것이었다.“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계화가 모두 져버리는구나.”이육진이 가까이 다가오며 웃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 벌써 가을이 왔습니다. 세월이 참 빠른 듯 합니다.”그러고는 감탄하며 덧붙였다.“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듯한 기분인데, 어느새 또 한 해가 가려 하니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이육진은 어깨를 으쓱했다.정작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자신이었다.그가 종이 한 장을 꺼내 소우연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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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8화

이육진은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달콤한 미소라면 평생 봐도 절대 질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우연은 찻잔을 들어 차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내려놓고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그의 찻잔에도 차를 조심스레 따라주었다.이육진은 꽃을 꽂고 가지를 다듬다가 입술을 살짝 열며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이리도 수고해 주니 참으로 든든하다.”소우연은 야속하다는 듯 그를 한 번 바라보더니, 찻잔을 들어 조용히 그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이육진은 찻잔을 받아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번 입술을 댔다.“음, 차향이 좋구나.”“더 드릴까요?”이육진이 고개를 저으니, 그제야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았다.소우연은 얼른 정연이 말끔히 닦아둔 꽃병을 가져와 탁자 위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오늘 정연이가 임 장군 일을 말해주었습니다.”“임 장군? 혼사 말고 또 무슨 일이 있단 말이냐?”“정연이 말로는, 오라버니께서 임 장군의 인연을 점쳐보셨는데 그리 좋지 않다고 하셨대요.”이육진은 이마를 짚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어찌 인연이 좋지 않다 했을까?”어사대부 경성세 집안의 서녀라면 분명히 교육을 잘 받은 규수일 터였다.그런 규수가 임세안의 부인이 되어 장군부를 함께 꾸려나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그런데 아무도 저한테는 말해주지 않더군요.”이육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소우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조용히 말했다.“오라버니께서야 함부로 말하실 분은 아니잖습니까.”“아니면 네가 직접 가서 한 번 물어보는 게 어떻겠느냐?”이육진은 손에 든 계수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더 곱게 장식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제가 가서요? 오라버니께요?”“음. 가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된다.”그는 아찔했다. 하마터면 자신의 부인을 연적에게 보내려 할 뻔한 것이다.그 생각이 스치자, 이육진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우연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이육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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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9화

“그런데 말입니다, 폐하.”소우연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혼처를 선택하기 전날, 임 장군이 와서 안향 낭자를 구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임 장군이 낭자를 구했으니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죠. 그저 책임지기 위해서였지… 진심으로 경 낭자를 좋아해서는 아니었던 건 아닐까요?”그녀는 조심스레 이육진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부군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오라버니께서도, 경 낭자는 임 도련님이 진심으로 원하는 아내가 아니라고 하신 게 아닐까요?”이육진은 입을 열다 말고, 다시 다물었다가 곰곰이 말하였다.“네 말을 들으니… 확실히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바로 그때, 정연이 돌아왔다.소우연은 방금 이육진과 나눈 이야기를 정연에게도 들려주었다.하지만 정연은 다소 망설이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어? 뭐라고?”“임 장군님께선 위 장군님이나 진우 나으리와도 사이가 좋으시잖아요. 제가 옆에서 보기엔, 임 장군님이 안향 아씨를 대하실 때… 정말 마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정연은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덧붙였다.“물론 임 장군님이나 위 장군님 모두 미혼이신 여인들에겐 다정하신 편이긴 해요. 다 좋아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소우연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 한쪽에서는 용강한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하지만 이내 또 다른 생각이 그 마음을 가로막았다.자칫 용강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그럼 임 장군에게 물어봤을 때, 여전히 혼례를 올리겠다고 했느냐?”소우연이 물었다.정연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황후 마마께 아뢰옵건대,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임 장군님이 혼례 준비를 정말 기쁘게 하시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 환한 표정이… 진우 나으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진우와 비교하자니, 소우연은 그제야 임세안이 경안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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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0화

배나무 별채.배나무 별채 서쪽 사랑채에서 정연은 새 신부로서의 단장을 마쳤다.소우연이 직접 그녀의 머리에 봉관을 씌워주었다. 비록 책봉식 때처럼 화려하고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웠다.“아직도 꿈만 같아요. 봉관을 쓰고 혼례를 올리게 될 줄이야...”정연이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우연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여인의 혼례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잖니. 봉관 정도는 써야하지 않겠느냐.”“그래도... 마음이 떨려요.”정연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솔직하게 고백했다.“긴장할 게 뭐 있느냐. 진우는 널 절대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시부모님도 모시지 않아도 되잖니. 진우는 제대로 된 자리를 가진 사람이라서, 경성의 아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남자란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집가거라.”곁에 있던 송이도 거들었다.“마마 말씀이 맞아요. 황후 마마께서 직접 혼례를 주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대인께서 원래도 언니를 아끼셨지만,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언니한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이죠.”함향도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혼수가 어찌나 많은지, 저희 눈이 다 휘둥그레졌어요.”정연은 두 시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오래전 자신과 명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든 날들이 이제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간석의 말에 따르면, 명심은 지금 한적한 농장에 정착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정연은 명심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때 방 안으로 급히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당안이었다.“대인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가리개를 덮어야 합니다. 신랑이 새신부를 맞으러 왔어요.”그 말을 듣자 소우연은 다정하게 정연의 손을 잡았다.“정연아, 기쁜 얼굴로 보내줘야겠구나.”“마마... 저, 정말 기뻐요.”“이제 넌 진우의 정실 부인이야. 앞으로 누가 널 보면 '주 부인'이라 불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넌 내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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