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931 - Chapter 940

950 Chapters

제931화

심초운이 고개를 갸웃했다.“그럼 아직 어리면 괜찮은 건가요?”우옥명이 웃으며 답했다.“아니, 이 어미하고는 내외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란다.”“그럼, 공주마마는요?”“공주마마는 안 되지. 공주마마와는 반드시 내외를 해야 해. 또한 공주마마를 괴롭히면 아니 된다. 알겠느냐?”심초운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사실 이영이 자기를 괴롭히는 쪽이 더 맞는 말 같았다.그날 이영은 무척 기뻐하며 자기 얼굴을 붙잡고 입맞춤까지 하였다. 어머니인 우옥명도 기쁠 때면 자신의 볼에 입맞춤을 했으니, 이영이 자신에게 입맞춤을 한 것은 정말로 기뻐서 한 것임에 분명했다.“왜 그러느냐?”우옥명은 아이의 반응이 이상해 물었다.심초운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어차피 자기도 공주의 입맞춤이 싫지 않았으니, 굳이 어머니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세수를 마친 뒤, 우옥명은 아들을 품에 안고 아들의 침상에 함께 누웠다.두툼한 이불에 폭신한 침상, 모든 것이 잘 손질되어 있었다.이윽고 우옥명은 이영의 또렷하면서도 사근사근한 눈매를 떠올렸다.그 모습이 문득 마음에 아로새겨지더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초운이가 공주마마의 친구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아.’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터였다.……영화궁.소우연이 이영을 데리고 돌아왔을 무렵, 이육진은 책을 펼쳐든 채 그들을 눈길로 좇고 있었다.겉으론 독서를 하는 척했지만, 시선은 오롯이 모녀에게 향해 있었다.두 사람이 세수를 마치고,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무 말도 걸지 않자, 괜히 마음이 언짢아졌고 질투가 치밀었다.잠자리에 든 후, 이영이 베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선 여기 주무시고, 저는 가운데서 자고, 아바마마께서는 맨 끝에서 주무셔요.”이육진은 책을 내려놓고 자리로 다가와 옷을 벗었다.자신의 자리는 어찌나 좁고 구석인지, 소우연의 반대쪽 공간보다 훨씬 더 좁아 보였다.그는 내심 서운해졌다. 막 항의하려던 순간, 소우연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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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그러니까 우리끼리만 하는 그 친밀한 놀이는 밖에 나가선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 알겠느냐?”이육진은 부드럽게 꾀듯이 말했다.“네가 이 약속만 잘 지킨다면, 훗날 자라서 무엇을 바라든 내가 반드시 들어주도록 하마.”“큰 약속을 하셨네요.”“영아, 어서 아바마마께 인사드려야 하지 않겠니?”“아바마마, 제가 가장 바라는 건요… 아바마마랑 어마마마랑 셋이 같이 자는 거예요.”소우연은 웃으며 손을 뻗었다.“그래, 영아. 어미가 약조하마. 매달 시간을 내어 함께 자는거지.”“정말요? 좋아요!”이영은 환히 웃으며 이육진 곁에서 벗어나 소우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그렇게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고, 반 시진쯤 지나서야 이영은 깊이 잠들었다.이육진은 조용히 가장 안쪽으로 몸을 옮긴 뒤, 소우연을 끌어안았다.“하,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침대를 미리 나눠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영이가 도대체 언제… 내가 너를 괴롭히는 걸 보았단 말이냐?”소우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잠결에 깨 있다가 얼핏 본 것 아닐까요?”누가 알겠는가. 이육진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턱으로 그녀 머리 위를 살짝 스치듯 비볐다.“심 장군에게 염만에 대해 물었느냐?”“물었습니다. 폐하께선 물으셨습니까?”“그래, 물었지. 염만이란 자는 본래 야랑국의 국사였는데, 두고에서 패한 후 그 자리마저 빼앗겼다는구나.”소우연은 목소리를 낮췄다.“그 자의 집엔 첩이 셀 수도 없이 많다지만, 하나같이 수상한 죽음을 맞았다 합니다. 아무래도, 그냥 넘길 자는 아닌 듯합니다.”이육진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웃었다.“심소균도 비슷한 말을 하더구나. 그 염만이란 자, 야랑국에선 꽤 명성이 있는 자라지만, 네가 말한 그 흠 말고는 별다른 의혹은 없다 하였다.”소우연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그게 흠이 아니라면 무엇이 흠일까요? 첩이 많고, 여인들이 죽어나간다는 것이 하찮은 일이라니요.”“이 세상은 원래 그러하다.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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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많은 계화꽃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가을 국화도 고개를 떨구기 시작한 날이었다.장안거리엔 인파가 몰려 분주했고, 그 한복판에서 상연과 상란 자매는 연지 가게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오래 고르고 골라 겨우 마음에 드는 연지를 찾았건만, 가격표를 보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처음부터 네가 위 장군에게 시집갔더라면, 지금쯤 이런 연지쯤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상연은 한숨 섞인 말로 속내를 흘렸다.“언니, 그런 말 이제 그만 해요.”상란이 단호히 말하자, 상연은 체념한 듯 연지를 내려놓았다.“그래, 가자.”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고개를 돌리자, 피부가 유난히 희고 병색이 완연한 청년이 서 있었다.이마엔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고, 마른 체구엔 묘한 연약함이 감돌았다.“무슨 일이신가요?”상연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물었다.청년은 미소 지으며 연지 두 통을 꺼내 자매에게 건넸다.“두 분의 부군께서 천옥에 계신다 들었습니다. 제 친척 중 사형수가 한 명 있는데, 죽기 전에 따뜻한 위로라도 전해주고 싶어 이렇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상란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연지를 사내에게 되돌렸다.“이런 물건은 받을 수 없습니다.”그리고는 상연의 팔을 붙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청년은 급히 앞을 막아섰다.“정말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마지막으로 먹을 것이라도 전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진심입니다.”그의 눈빛은 간절했고, 말투에는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청년은 다시 가게 점원에게 말해 연지와 각종 화장품들을 가져오게 했다.“이건 작은 성의입니다. 두 분처럼 곱고 선하신 분들이라면, 제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상연은 반짝이는 눈으로 화장품을 바라보았다.보는 것만으로도 비싸 보였고, 지금의 자신으로선 도저히 감히 살 수 없는 것이었다.죽은 다리라 불리는 사내에게 시집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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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저… 저는…”상연은 손에 쥔 은표와 연지 꾸러미를 내려다보며 말을 흐렸다.“사실 전 동생처럼 총애받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은 절 늘 외면했어요. 제가 부탁한들 들어줄지조차 모르겠어요.”은표의 차디찬 무게와 연지의 곱디고운 빛이 그녀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그 욕망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끝은 자꾸만 그 빛을 좇았다.“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요.”금성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속삭이듯 내려앉았다.“이리도 곱고도 지혜로우신 아씨시라면,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허나 제 부군께선…”상연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황제 폐하를 모시다 내려오신 분이에요. 예법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분이라, 그런 분이 법 밖 일을 용납하실 리 없죠.”금성은 겉으론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답을 읽어냈다.이 여인은 사랑은커녕, 존중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것들을 받아주세요. 일이 어찌되든, 그건 나중에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아…”상연은 깜짝 놀라 손을 뿌리쳤고, 뒷걸음질 치다 그만 의자다리에 걸려 휘청였다.방 안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금성은 조용히 물었다.“나리께선 오늘도 천옥에 계십니까?”“댁에 보이지 않은 듯해서요.”상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요즘은 늘 바쁘셨어요. 허나 오늘은… 오늘은 돌아오셨죠. 지금은… 동생 방에 계십니다.”말을 마치기도 전,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힘없이 침상에 주저앉자,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이 모조리 침상 위에 흩어졌다.“부디 그만 돌아가주세요.”“그토록 아름다운 분이 어찌 밤마다 외로이 방을 지키십니까.”금성의 저음이 낮게 속삭이듯 들려왔다.그는 천천히 그녀 곁에 앉더니, 따뜻한 손으로 상연의 손을 감싸쥐었다.“아씨, 너무 슬퍼 마십시오.”상연은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순간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기듯 쓰러지고 말았다.“그 사람과 인연을 끊고, 저와 함께하시지요.”그 말에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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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아씨, 한 번 더 해요. 이번엔 집에 아무도 없으니 원하는 대로 소리내도 돼요. 억지로 참을 필요 없어요.”“어젯밤처럼 입을 막지 않을게요. 편하게 소릴 내세요.”“뭐라고요?!”그렇게 두 사람은 한바탕 격렬한 아침을 맞이하였다.금성은 일어나서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었다.물에 몰래 무언가를 넣어 상연이 마시게끔 했다."내일도 또 올 건가요?" 상연은 남자가 옷을 입는 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다.남녀의 정사가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킬 줄 몰랐다.그녀는 그의 젊은 육체에 빠져들었고,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마치 힘이 다하지 않는 황소 같았다.그녀가 의식을 잃고 혼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려도, 그는 그녀를 더욱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어갔다.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올게요. 하지만 어젯밤에 약속한 일은 잊지 말아요.""말해봐요. 공자님 친척 이름이 뭐라고요?" 상연이 옷을 입으면서 물었다."얼마 전에 감옥에 잡혀 들어간 사람이에요. 임세안 장군의 부인, 경안향이라고도 하고... 이아령이라고도 하죠.""뭐라고요?"상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 자를 찾아서 뭐 하려고요?" 그녀의 부군이 요즘 바쁜 이유가 바로 감옥에 그런 여자가 잡혀 들어가서였다.게다가 이아령은 그녀와 여동생도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예전에 여동생과 이야기할 때, 그 이아령이야말로 그들의 본보기라고 했었다. 신분이 미천하면 어떤가, 상운국을 뒤집어엎을 뻔하지 않았나.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가 자신보고 이아령을 만나러 가라고 하니, 온몸이 거부감을 느꼈다.그녀는 심하게 무서워하며 몸을 떨었고, 입술도 떨렸으며, 다리는 뼈도 없는 것처럼 힘이 빠졌다.금성이 무표정하게 돌아서서 상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 "아씨께서는 제 말만 들으면 돼요. 만약 어젯밤 일이 들통나면, 아씨께서는 아마 감당할 수 없겠죠.""지금 저를 협박하는 건가요?"상연이 크게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에서 자신을 가장 아껴줬던 자가 지금은 자신의 턱을 아프게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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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상록은 아이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몸이 아프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단다. 자, 우리 밥하러 가자꾸나.”“어머니…”상록은 문 뒤에 숨어, 여동생과 그 아이가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가슴 어딘가에서 시린 감정이 꿈틀댔다.부러움과 질투섞인 감정이었다.‘왜 부군께서는 늘 동생만을 감싸고 아껴줄까?’‘왜 나한테만 이토록 매정한 걸까?’어젯밤 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잘못은 모두 부군에게 있었다.아니, 상란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하였다.그 금성이라는 자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며칠째, 황후와 이 의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천옥으로 향했다.두 사람의 노력 끝에 이아령의 상처는 어느덧 회복되었고, 그 과정에서 혈충이 불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즉, 폭실에 놓인 촛대조차 혈충의 폭주를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이아령의 의식은 또렷했으나, 황후 소우연을 볼 때마다 동그란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다.마치 그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르르 떨렸다.소우연은 침착하게 은침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이아령,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네가 죽게 되거든, 그 손에 죽은 이들이 반드시 널 찾아올 것이다.”이아령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굵은 쇠사슬이 몸을 꽁꽁 묶고 있었고, 달그락거리는 쇳소리 속에서 살이 찢겨나갔지만 물러서지 않았다.입에선 짐승처럼 끊어진 신음이 터져 나왔다.그때, 소우연은 무심한 듯 칼을 들어올렸다.옆에 있던 용강한이 놀라 황급히 물었다.“황후 마마, 어찌 그러십니까?”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늘따라 이아령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한 것 같구나.”그 말에 시선이 일제히 이아령에게로 향했다.쇠사슬에 묶인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있었고, 손발의 뼈마저 드러날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목덜미는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고, 호흡조차 가팔랐다.소우연은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팔에서 살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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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아아아아!!”찌르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간 순간, 이아령의 귀는 소리를 잃고 말았다.그녀의 눈은 피로 물들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소우연과 일행이 소란을 듣고 천옥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이아령의 충혈된 두 눈에서 또다시 핏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마주해야 했다.그녀는 뼈가 드러날 만큼 격렬히 몸부림치고 있었고, 손발의 피부는 벗겨져 살점과 뼈가 분리될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용강한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려 천옥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내력을 모아 이아령의 몸 위에 강하게 눌러 억제했고, 미리 준비한 부적을 쇠사슬 위에 붙이자 부적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점차 고요해졌고, 그 붉던 눈동자엔 서서히 회백색이 드리우며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다.용강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옥졸을 향해 명했다.“양을 한마리 데려오거라.”“예, 대인!”반 시진 쯤 지났을까. 옥졸은 검은 산양 한 마리를 이끌고 돌아왔다.용강한은 말없이 산양과 이아령을 함께 천옥 안에 가두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우연이 조용히 물었다.“무슨 의도죠?”“혈충이 이아령의 몸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지금… 피를 탐하는지 시험해보시는 겁니까?”용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괴물은 본능적으로 피를 좇지요. 이 안에서 피를 제공할 수 있는 건 저 산양뿐입니다.”그때, 진우가 급히 천옥에 도착했다.그는 소우연이 잘라낸 이아령의 살점을 보고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닮았습니다. 다만, 저희가 과거에 가져온 팔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듯한 상태였고… 지금 이건 아직 핏줄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용강한은 낮게 중얼거렸다.“이아령은 아직 의식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완전히 죽게 되면, 그때는 과거의 그 팔처럼 완전한 시체로 변하겠지.”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가슴 깊숙한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피어올랐다.“게다가 이아령 저 자의 전투력은, 저희가 과거에 상대했던 그 자들보다 훨씬 미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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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소우연은 눈썹을 가만히 찌푸리며, 말없이 용강한을 바라보았다.“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용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붉게 물든 단풍 너머로 깊어진 가을 정원을 바라보며, 조용히 정자 앞에 멈춰섰다.“만일 저만 없었더라면…”그의 목소리는 낮고 씁쓸했다.“지금처럼 세상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요.”“오라버니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소우연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이 일이 어찌 오라버니의 탓입니까?”용강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아니었다면, 심소균이 염만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염만이 없었다면 혈충이며 주술 같은 것들이 감히 경성에 발붙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소우연은 잠시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따스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엔 변함없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그 눈빛에 소우연은 잔잔히 웃었다.“그렇게 따지자면, 이 생이 제게 다시 주어진 것 자체가 잘못된 일 아니겠습니까?”용강한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럴 리 없습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황후 마마께서 다시 살아난 것은 하늘이 내린 은혜입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오라버니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번 혈충 사태 역시 오라버니 책임이 아닙니다.”“진짜 책임을 묻자면, 저와 폐하시죠.”“그때 오라버니께서 아픔 속에 계실 때, 저희는 그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오라버니께 평탄한 삶을 드리고자 했지요.”소우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그건 틀린 말이 아니잖습니까?”용강한은 미소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우연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오라버니, 이젠 그만 말하세요. 누가 살아야 했고, 누가 죽었어야 했는지… 그런 이야기는 이제 소용없습니다.”“오라버니께서 제게 두 번째 삶을 주셨고, 그 덕분에 저는 제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옳고 그름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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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소우연이 평온한 미소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용강한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황후 마마께서 저리도 편히 웃으시다니, 이만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떠나실 때엔 꼭 한 말씀 주십시오.”그는 한 손을 품 안에 넣고 가볍게 기침한 뒤, 공손히 주먹을 쥐어 소우연에게 예를 갖췄다.“그럼 전 이만 흠천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소우연은 그제야 갈림길에 다다른 것을 깨달았다.“부디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라버니.”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용강한과 경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곁에 있는 함향 또한 말없이 함께 서 있었다.……영화궁으로 돌아오자, 소우연은 먼저 이영과 심초운의 행방을 물었다.궁녀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아뢰었다.“공주 마마와 도련님께서는 지금 금융궁에 계십니다. 심이에게 먹이를 주고 계신 듯합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누가 오든 들이지 말고, 영이가 오면 잘 달래서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 하거라.”“예, 황후 마마.”주전으로 들어서자마자, 소우연은 조용히 함향에게 일렀다.“목욕물을 준비해라.”“예, 마마.”함향은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대낮에 목욕이라니? 그건 곧…’ 함향은 붉어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이후의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연아… 음…”이육진은 원래 책상 앞에서 조용히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그러나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겨우 입을 뗀 그의 말은 곧 그녀의 입술에 가로막혔다.입맞춤은 격렬했고, 숨이 막히도록 뜨거웠다.이육진은 망설임 하나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몇 번의 숨결이 오간 뒤, 그는 그녀를 가볍게 눕히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늘은 어찌 이리 급하더냐?”소우연은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다.“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그리고는 심술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보아하니, 폐하께서는 아주 여유로우신 듯하네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시잖습니까?”그 말에 이육진은 웃음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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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소우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슬쩍 물었다.“부군께서는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금화를 마련하시는 거죠?”이육진은 그녀의 입술을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그건 비밀이다.”황제의 사재는 거의 다 그녀의 손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육진의 개인 금고에는 언제나 금화가 들어차 있었다.소우연은 문득 의심이 들었다. 설마 어디 따로 감춰 둔 곳이라도 있는 걸까?“연아 넌 늘 돈을 흘러가듯 쓰지 않느냐. 겨울이면 백성을 구휼하고, 봄이면 씨앗을 뿌려주고.”“그리하니 내가 힘써 벌지 않으면 어찌 견디겠느냐. 열쇠도 본디 네 손에 있지 않았느냐.”소우연은 가볍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있긴 했지만, 모두 부군께 허락받고 사용하였습니다.”“그래, 그래.”이육진은 말을 얼버무리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자, 연아. 먹 좀 갈아주거라.”소우연은 피식 웃으며 말없이 따라나섰다.이튿날 아침.소우연은 먼저 흠천감에 들렀다. 용강한이 이미 천옥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고는 사람을 보내 일렀다.“용 대인께 전해라. 곧 용부로 향할 것이니, 그리로 와 기다리라 하여라.”그리고는 영화궁 후원의 사재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그곳에서 이육진과 공동으로 관리하던 금화를 하나하나 정리한 뒤, 함향에게 일렀다.“금고를 열어보자. 태감들을 좀 데려오너라.”“예, 마마.”잠시 후, 함향은 태감 몇을 이끌고 다시 황제의 개인 금고를 열었다.소우연은 별 기대 없이 뚜껑을 열었다.“아니, 이게 다 뭐지?”금화가 차곡차곡 담긴 상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와 이육진이 함께 모은 금화보다도 많았다.소우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혼잣말처럼 중얼였다.“폐하께선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하시는 걸까.”함향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아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마마.”“좋다. 간석을 불러오너라.”소우연은 태감들에게 금화를 옮기도록 지시한 뒤, 함향에게 조용히 일렀다.“혹 진우가 용부에 없다면, 양 부도독이나 이 두독을 불러라. 궁문을 열게 하고, 나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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