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언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소아연이 자기 배를 손으로 잡고 힘없이 중얼거렸다.“사언 오빠... 나, 배가 너무 아파...”그 한마디에, 심사언은 마치 모든 걸 잊은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곧장 소아연을 두 팔로 안아 들고, 급히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보며 날 노려보았다.“당신, 이혼서류 깔끔하게 받고 싶으면, 다른 남자랑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으로 가서 나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얘기하자.”이 말과 동시에, 그는 소아연을 안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눈을 굴렸다.‘뭐라고? 진짜, 저게 사람이야?’ ‘기다리라고? 웃기고 있네. 내가 그땐 완전 제정신이 아니었지.’심사언은 늘 그랬다. 내게는 모든 걸 요구하면서, 본인은 한없이 자유로웠다.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날 구속하면서 다른 여자에겐 자기 손끝까지 아낌없이 내주는 사람.‘참 잘도 참았다, 그 세월을.’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은호가 조용히 말했다.“이설 씨, 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마요. 여긴 법으로 움직이는 사회잖아요.”“네.”이상하게도, 심사언이 나타나 그렇게 난리를 치고 간 뒤로, 조금 전의 그 긴장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이렇게 된 거,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어요.” 구은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걷히면,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지.’하지만 정지호 교수님 댁 문 앞에 다다르자, 내 발은 저절로 멈췄고,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구은호가 뭔가 말을 하려던 찰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설 씨?”한 중년의 여성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겨우 기억났다.‘서희정의 엄마, 주미선 여사구나.’아무 말도 하기 전, 주 여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잘됐다. 나 때마침 이설 씨를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이따가 이설 씨는 우리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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