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은 서유라를 등진 채 창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창틀을 짚었다.지금은 잠시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리더스 그룹과의 계약서에는 남설아의 말대로 함정들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배서준은 하워드에게 제대로 홀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가끔씩 들려오는 서유라의 흐느낌 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깨곤 했다.“나가.”배서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서유라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배서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목소리를 낮게 깐 배서준이 입을 열었다.“나야.”“이게 누구셔, 배 대표님 아니야?”전화기 너머에서는 남자는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사회에서 멋진 쇼를 벌이셨던데요?”배서준은 휴대폰을 손에 꽉 쥔 채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서도현,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쯧, 우리 매형이 왜 이러실까.”서도현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매형이 일을 망친 건데, 제가 무슨 동정이라도 해줄 줄 알았어요?”“네가 하워드라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 그 자식이 준 계약서 보니까 완전 노예 계약이더구만!”“오, 드디어 눈치채셨네요.”서도현의 웃음소리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로웠다.“매형, 진짜로 내가 아무 조건도 없이 매형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즈니스는 전쟁이죠. 대가 없이 그냥 얻는 게 어디 있어요?”휴대폰을 꽉 쥔 배서준의 이마에는 분노에 찬 핏줄까지 서 있었다.“말장난 그만해. 지금 상황이 바뀌었어. 이사회 임원들은 완전히 남설아 쪽으로 돌아섰다니까.”“너무 초조해하진 마세요, 매형.”서도현의 말투는 여전히 가볍고 단순했다. 전화기 너머로는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무슨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