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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굿바이 쓰레기: Chapter 701 - Chapter 710

766 Chapters

제701화

배서준은 서유라를 등진 채 창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창틀을 짚었다.지금은 잠시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리더스 그룹과의 계약서에는 남설아의 말대로 함정들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배서준은 하워드에게 제대로 홀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가끔씩 들려오는 서유라의 흐느낌 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깨곤 했다.“나가.”배서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서유라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배서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목소리를 낮게 깐 배서준이 입을 열었다.“나야.”“이게 누구셔, 배 대표님 아니야?”전화기 너머에서는 남자는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사회에서 멋진 쇼를 벌이셨던데요?”배서준은 휴대폰을 손에 꽉 쥔 채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서도현,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쯧, 우리 매형이 왜 이러실까.”서도현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매형이 일을 망친 건데, 제가 무슨 동정이라도 해줄 줄 알았어요?”“네가 하워드라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 그 자식이 준 계약서 보니까 완전 노예 계약이더구만!”“오, 드디어 눈치채셨네요.”서도현의 웃음소리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로웠다.“매형, 진짜로 내가 아무 조건도 없이 매형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즈니스는 전쟁이죠. 대가 없이 그냥 얻는 게 어디 있어요?”휴대폰을 꽉 쥔 배서준의 이마에는 분노에 찬 핏줄까지 서 있었다.“말장난 그만해. 지금 상황이 바뀌었어. 이사회 임원들은 완전히 남설아 쪽으로 돌아섰다니까.”“너무 초조해하진 마세요, 매형.”서도현의 말투는 여전히 가볍고 단순했다. 전화기 너머로는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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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이것은 단순히 반격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남설아의 명성을 완전히 짓밟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좋아.”배서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언제부터 시작하면 될까?”“다음 주부터 입찰 시작이에요. 자료는 내일 바로 넘겨드릴게요.”서도현이 여유롭게 웃었다.“자, 그럼 이제 멋진 게임 한 판 구경이나 해보시죠.”한편, 배건 그룹 건물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남설아의 사무실.문밖에서는 희미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창밖을 내다보던 남설아는 다시 몸을 돌려 자리에 앉았다.천기준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한 뭉치의 서류를 건네주었다.“대표님, ‘그린라이트 에너지 랩’ 프로젝트에 대한 1차 자료입니다.”“‘에너지 랩’ 프로젝트요?”서류를 넘겨보던 남설아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이 시점에 이런 프로젝트가 들어온다고요?”“네, 총 투자 규모만 10억 달러를 넘는 대형 사업이라고 합니다. 전망도 아주 좋을 거고, 저희 배건 그룹의 사업 구조와도 높은 시너지를 낼 거라고 합니다.”천기준이 설명을 덧붙였다.강연찬도 서류를 받아들고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확실히 흔치 않은 기회긴 하네. 수익성도 꽤 좋고, 어쩌면 회사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지.”천기준이 말을 이어나갔다.“현재, 여러 대기업들이 이 프로젝트를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주부터 정식 입찰 시작이고요.”남설아와 강연찬이 눈빛을 주고받았다.“우리도 해야겠지.”남설아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이 프로젝트만 따낼 수 있다면 단순한 수익을 넘어서, 이사회에서의 내 입지까지 더 강화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지금 그린라이트 테크랑 진행 중인 협업 방향성이랑도 정확히 일치하고 말이야.”강연찬도 고개를 끄덕였다.“입찰 제안서부터 빨리 준비해야겠네.”“지금 당장 재무팀이랑 기술팀한테 따로 공지해서 관련 프로젝트팀 따로 꾸리라고 해주세요. 내일 오전에 전체 회의로 방향성 잡을 거니까.”남설아가 지시하자 천기준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강연찬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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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강연찬이 다가와 남설아의 뒤에 섰다.“설아야, 그냥 평범한 사업 기회일지도 몰라.”“정말 그렇게 생각해.”남설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그 말에 강연찬은 가볍게 웃으며 남설아의 어깨에 팔을 둘러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아니, 절대 그렇지 않지. 비즈니스 판은 전쟁터나 다름없어. 배서준 같은 인간은 한 번 당하면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잖아. 어떻게든 만회해보려고 들 거야.”한편, 배건 그룹 본사 최상층의 또 다른 사무실.배서준은 휴대폰을 든 채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읊조리고 있었다.“계속 감시해.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전부 빠짐없이 보고하라고.”전화를 끊은 그는 휴대폰을 소파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그때, 서유라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서준아, 우선 진정 좀 하고 차부터 마셔 봐.”배서준은 찻잔을 받아들었지만 마시지 않고 그저 찻잔의 온기를 느끼고만 있었다.“서도현... 그 자식 정말 믿을만한 놈 맞아? 이번 판까지 실패하면 배건 그룹은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거야.”서유라는 그의 옆에 앉아 배서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며 말했다.“도현이 성격은 조금 까칠하지만 사업 수완만큼은 확실한 애야. 이번에 돌아온 것도 다 우리 도와주러 온 거거든.”“널 도우려는 거지, 우릴 돕는 게 아니잖아.”배서준의 목소리가 싸늘했다.“그 자식은 배건 그룹이 어떻게 되든 전혀 관심이 없잖아.”서유라는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더니 손을 멈칫했다.“도현이는 그냥...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살길 바랄 뿐이야. 이제 나한테 남은 가족은 도현이밖에 없거든.”배서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서유라에게서 등을 돌린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서유라는 그런 배서준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꾸만 그가 남설아에게 보였던 다정한 시선과 말투가 떠올랐다.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주먹이 쥐어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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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전화를 끊은 후, 남설아는 몸을 돌려 강연찬을 바라보며 그의 손목 위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연찬 오빠, 화승 그룹 이름이랑 자금으로 판을 하나 짜고 싶은데.”강연찬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쥐었다.“알겠어. 최선을 다해볼게.”그의 따뜻한 손바닥에서는 말 없는 응원이 느껴졌다. 그 온기에 남설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더 이상 둘 사이에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삼일 뒤, 배서준의 개인 사무실.그는 전화 한 통을 받자마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남설아 쪽에서 우리가 넘긴 기획안으로 입찰 준비를 시작했어.”전화기 너머로 느긋한 서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물고기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네요.”“좋아.”배서준은 창밖으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환경부 쪽에 연락 넣어. 계약만 끝나면 바로 압박 들어갈 거니까.”“굳이 얘기 안 해주셔도 할 거거든요.”서도현은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매형이야말로 더는 실수하지 마세요.”전화를 끊은 배서준은 다시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리듬 있게 두드리며 다음 수를 고민했다.비밀리에 환경부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고, 그의 내부적인 인맥은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들어와.”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배서준이 대답했다.서유라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연한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손에는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다.“서준아, 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그녀는 조심스레 커피를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물었다.“혹시 좋은 소식 있어?”“아직은 몰라.”배서준은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들이키더니 점점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적어도 진전이 보여.”“넌 분명 성공할 거야. 내가 보장해.”서유라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의 손이 은근슬쩍 배서준의 손등을 스쳤다.“우리 도현이, 성격은 별로일지 몰라도 사업 수완만큼은 확실한 애거든.”서도현의 이름이 나오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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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당연하지.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프로젝트잖아.”배서준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화승 그룹의 임원들을 스치듯 훑어보고 있었다.“경쟁이 꽤 치열하다고 들었는데, 자신 있어?”“저희는 자신 있죠.”남설아가 가볍게 대답하며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어쨌든 배건 그룹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과 경험을 갖고 있으니까요.”“그럼 행운을 빌지.”의미심장한 말만 남긴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떴다.“날 대신해서 배건 그룹을 빛내주길 바랄게.”회사로 돌아온 남설아는 곧장 팀 전원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고 무거웠다.“다들 작업 속도 좀 높여주세요.”말을 꺼낸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고도 침착했다.“이틀 안에 완성된 입찰 제안서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네요.”며칠 뒤 열린 전시회에서 배건 그룹은 뛰어난 설계도와 미래지향적인 친환경 콘셉트로 1차 심사를 통과하며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그렇게 배건 그룹은 단번에 ‘신재생 에너지 랩’ 프로젝트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게 되었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회사는 환호로 가득 찼고, 모두가 남설아의 혜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남 대표님, 진짜 대단하세요!”“이번 프로젝트만 따내면 최소 3년 동안은 안정권일 거예요!”복도 곳곳에서는 직원들의 흥분 어린 목소리가 오갔고, 회사 분위기 역시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계약식은 금요일 오전 10시로 정해졌어.”남설아는 강연찬에게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모든 게 다 계획대로 되고 있어.”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 하나를 건네주었다.“환경부가 방금 확인했는데, 배서준이랑 서도현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계약 끝나는 대로 바로 공격할 예정인가 봐.”“그럼 그대로 기다리게 두지.”남설아는 서류를 덮으며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계약식을 사흘 앞둔 그날, 갑작스레 날아든 공문 하나가 배건 그룹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환경부 공지: 배건 그룹에서 제출한 ‘신재생 에너지 랩’ 프로젝트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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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배서준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따로 소규모의 회의를 열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겁게 말을 꺼냈다.“여러분.”자리에 앉은 임원들을 쭉 둘러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저와 설아 사이에는 분명 개인적인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배건 그룹의 이득입니다. 이번에 설아야 저지른 실수는 우리 회사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회사의 명성에 타격을 줄 수도 있죠.”배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책상을 짚더니 마치 엄청난 부담이라도 짊어지고 있는 듯한 목소리와 자세로 말을 꺼냈다.“회사의 전체적인 이득 구조를 위해서라도 제가 직접 나서서 중재해보겠습니다. 설아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그룹 차원에서 인수할 예정이고요, 그에 따른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환경부에서 지적한 문제도 제가 한 번 해결해 보죠.”그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호소하며 자신이 회사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감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배서준의 말을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던 임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서유라는 수수한 베이지색의 투피스를 입은 채 조용히 회의실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티타임을 틈타 그녀는 윤상우 임원의 부인인 이선영에게 다가가 슬쩍 팔짱을 끼며 말을 건넸다.“설아 씨 말이에요, 평소에는 그렇게 똑 부러져 보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핵심 프로젝트에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까요?”서유라의 목소리에는 꾸며진 걱정스러움이 담겨 있었다.“서준이, 정말 회사 한 번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중이에요. 어젯밤도 새벽 세 시까지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니까요.”이선영은 서유라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유라 씨 같은 약혼자가 있어서, 배 대표님도 참 든든하시겠네요.”그 말에 서유라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저는 그냥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것뿐인데요, 뭘. 그냥 서준이가 무리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목소리 톤을 살짝 바꾼 서유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번 일 말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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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강연찬의 다정한 손이 남설아의 어깨에 닿자 창가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강연찬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치 깊은 겨울밤에 쬐는 모닥불처럼 불안함이 몰고 온 한기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설아야, 걱정하지 마. 내가 화승 그룹 쪽 사람들한테 미리 연락해뒀으니까. 환경 조항을 어느 부분에서 위반했는지부터 확인 중이거든. 아무리 서도현이 날고 긴다고 해도 흔적은 남기기 마련이니까.”남설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손끝으로 천천히 두드렸다.“걱정 안 해. 그냥, 환경부에서 그렇게까지 깊게 손을 뻗어올 줄은 몰랐던 거지.”“비즈니스는 전쟁이잖아. 오는 파도는 막으면 그만이야. 임기응변 능력이 중요한 거니까.”강연찬이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남설아의 허리를 감았다.“나도 이젠 궁금해지네. 이다음엔 둘이 어떻게 나올지.”회의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린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남설아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불안한 눈빛, 의심 어린 눈빛, 심지어는 원망 섞인 눈빛까지 있었다.“여러분,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남설아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단호한 힘이 실려 있었다.“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니까요. 이제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거지, 섣불리 흔들려주는 게 아닙니다.”“대표님.”재무부의 팀장 유선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이번 위약금만 해도 수십억은 넘을 겁니다. 이건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어요!”남설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분한 표정으로 유선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유 팀장님, 저희가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진행했었나요?”“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그럼 애초에 위약금이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되겠죠.”남설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지금 필요한 건 침착함입니다. 기술팀은 기획안 보완에 힘써주세요. 법무팀은 관련 조항 정리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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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배서준은 짧은 침묵 끝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그의 개인 계좌에는 그 정도의 자금이 없었고, 회사 자금에도 한 번에 손을 대기엔 힘들었다.“세 시간만 줘.”배서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좋아요. 세 시간 뒤에 다시 전화할게요.”서도현이 전화를 끊었다.배서준은 술잔을 내려놓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서유라는 분위기가 어딘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야, 서준아? 도현이가 뭘 요구하기라도 한 거야?”“오늘 안으로 40억을 입금하래.”배서준은 곧장 몸을 일으켜 컴퓨터 쪽으로 걸어갔다.“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둬야 해.”“그렇게 큰돈을 달라고 했다고?”서유라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네 계좌에 그 정도 돈이 있단 말이야?”“없어.”배서준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려 회사 재무 시스템에 접속했다.“지금으로서는 회사 자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지.”“하지만 그러다가는...”“그럼 네가 얘기해 봐.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배서준의 언성이 높아지더니 이내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안. 너한테 화낸 건 아니야.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어. 서도현을 놓쳐버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돼.”서유라가 고개를 숙이며 옅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알아, 서준아. 도현이가 성격은 좀 그래도 이번에 큰 도움이 됐잖아.”배서준은 빠르게 컴퓨터를 조작해 장기 거래처에 지급할 예정이던 회사 자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분명히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였지만 지금의 배서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유라야,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특히 이사회 임원들한테는 더더욱.”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난 평생 네 편이야, 서준아.”배서준은 그녀가 건네준 과일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무겁기만 했다.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와 점점 그를 잠식해갔다.서유라가 조용히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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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외부적인 걸 조작한 거라면 프로젝트 내부 데이터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남설아가 컴퓨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프로젝트 기술 문서 백업해둔 거, 혹시 있어?”그 말에 강연찬은 곧장 태블릿을 꺼내 들더니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모든 파일은 다 백업해뒀지.”그는 곧장 프로젝트 기술 보고서를 클릭해 남설아와 함께 데이터를 살펴보았다.방 안에는 전자기기가 돌아가는 미세한 소음과 두 사람의 진지한 숨소리만 들렸다.“잠시만.”강연찬이 화면을 멈추며 말을 꺼냈다.“이 부분이 조금 이상한데.”그는 한 데이터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저온 환경에서 배터리 성능이 저하된다는 걸 나타내는 곡선인데, 우리 회사 기존 방식이랑은 아예 달라.”남설아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확실해?”“확실해.”강연찬이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화승 그룹 이 대표한테도 확인해봤는데, 그쪽에서도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거든. 이 정도로 곡선이 내려가는 건 물리 법칙으로도 안 맞아. 보고서에 나온 성능은 실현 불가능한 이론이야.”“누가 보고서에 손을 댔다는 거네.”남설아가 낮게 읊조렸다.“그것도 내부에서 말이야.”강연찬이 말을 덧붙였다.“이런 기술적인 디테일이라면 외부인이 알기 힘들 거야. 안다고 해도 이렇게 정교하게 조작하긴 어려워.”남설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프로젝트팀 전용 컴퓨터랑 서버 모두 잠그고, 시스템 점검이라고 달아두세요. 그리고 최근 2주 동안 기술부에 출입했던 인원들 전부 확인해주세요.”전화를 끊은 남설아는 강연찬에게 몸을 돌렸다.“이제 점점 실체가 드러나고 있어.”그때, 강연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배서준이랑 하워드가 이어져 있었던 거야. 아마도 하워드한테 길을 터준 쪽이 배서준이고, 서도현도 한몫한 것 같아.”“하워드?”남설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지식재산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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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화면 위로 빽빽한 데이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연찬은 전문가용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지금 그의 목적은 배건 그룹의 백업 서버에서 지난 3개월 동안 배터리 테스트에 대한 원본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이었다.“누가 조작한 건지, 언제, 어떻게 손을 댔는지 전부 밝혀내야 해.”강연찬의 차분한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그 증거만 확보하면 환경부 쪽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야.”같은 시각, 배서준의 사무실.그는 방금 막 서도현에게 계좌 이체를 마친 상태였다. 40억이라는 거금이 회사 법인 계좌에서 그의 개인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오랫동안 협업 중이던 거래처에 지급될 예정이었던 자금이 이제는 배서준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어 버렸다.그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던지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급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댔다.“서준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서유라가 문 앞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차 좀 마시면서 쉬어.”배서준은 찻잔을 받아들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그저 손으로 찻잔을 감싼 채 그 온기만 느끼고 있었다.“서도현이 너무 큰 금액을 요구했어. 그것도 급하게.”서유라는 그의 곁에 앉아 다정하게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걔가 성질이 조금 급한 면이 있어서 그래. 그래도 일은 잘하잖아. 환경부 쪽 로비도 하면서 인맥도 다지고, 하워드도 안심시켜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얘기했잖아.”“그래도 40억은...”배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하워드는 그냥 검토만 해보겠다고 한 거고, 아직 확답도 안 줬어.”서유라는 조심스레 더 힘을 주며 그의 어깨를 눌렀다.“서준아, 도현이 좀 믿어 봐. 외국에 있으면서 친구 많이 만들었다잖아. 하워드도 그중에 한 명이고.”“친구?”배서준이 피식 웃었다.“비즈니스에 친구가 어디 있어?”“적어도 남설아보다는 믿을 만 하지 않아?”서유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도현이가 환경보호 문제로 밀고 나간 것도 사실이잖아. 그 정도면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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