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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쓰레기의 모든 챕터: 챕터 821 - 챕터 830

1008 챕터

제821화

아파트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조금 전 벌어진 언쟁의 열기도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소미란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서유라를 의심하고 있었다. 서유라의 흔들리는 눈빛이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남설아가 배건 그룹에서 온갖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복수심보다는 이성이 앞섰다.그녀는 뒤돌아 소파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서유라를 바라보았다.서유라는 여전히 나약하고 불쌍한 모습이었다.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불안하게 꼬집고 있었고 눈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 마치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다.소미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마음속 의심을 누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방금 한 말은 없던 걸로 해요.”목소리는 딱딱했고 결단을 내린 듯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남설아에요.”서유라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며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미란 씨... 저, 저를 아직 믿어주는 거예요?”“믿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요.”소미란이 말을 끊고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중요한 건, 우리 둘에게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거예요. 남설아가 쓰러지지 않는 한, 우리한테는 평온이 없어요.”그녀는 말을 멈추고 서유라를 바라봤다.“저는 유라 씨가 필요하고 유라 씨도 제가 필요하잖아요. 맞죠?”서유라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동아줄을 붙잡은 사람처럼 매달렸다.“맞아요, 미란 씨 말이 맞아요! 남설아가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면, 저는 뭐든 할 수 있어요!”소미란은 그녀의 간절한 충성심을 보며 속으로는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좋아요. 마침 기회가 하나 있는데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무슨 기회요?”서유라는 궁금한 눈빛을 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미 계산을 시작한 듯한 기색이 그녀의 눈빛에 담겨있었다.“모레 오후에 천 씨 사모님께서 산꼭대기의 별장에서 다과회를 연다고 해요.”소미란이 천천히 말했다.“천씨 가문 사모님 알죠? 남편이 성대 그룹 회장이에요. 부동산이랑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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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알겠어요, 미란 씨.”서유라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조심할게요. 절대 미란 씨한테 폐 끼치지 않겠어요.”“그러길 바라요.”소미란은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기억해요. 우린 지금 같은 배를 탄 사이에요. 만에 하나라도 뭔 수작 부리거나 유라 씨 동생이랑 배서준이랑 몰래 뭔 짓이라도 한다면...”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눈빛 하나로 충분한 경고의 의미를 전했다.서유라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럴 리 없어요, 미란 씨! 어떻게 제가 그런 짓을... 제 동생 도현이도 다 저를 위해서예요. 제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 우린 정말, 그저 남설아만 무너뜨리고 싶은 것뿐이에요.”그녀는 서도현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에게 무척 의지하듯 말했다.“그날에 제가 뭘 입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현이가 조언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남자잖아요,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요.”소미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겉으로 건들건들한 거 같아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서도현이란 남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본인 일은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요. 동생 말만 믿고 움직이지 말아요.”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유라 씨만 잘하면 돼요.”“네, 알겠어요, 미란 씨.”서유라는 고개를 숙였다.“그리고.”소미란은 뭔가 떠오른 듯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이 일은 절대 강연찬한테 새어나가서는 안 돼요. 단 한마디도 말이에요.”서유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왜요? 강연찬 씨도 남설아와 적대적인 관계 아니에요? 우릴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돕는다고요?”소미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 사람은 지금 남설아 편이에요. 요즘 얼마나 둘이 붙어 다니는지 몰라요? 도대체 무슨 속셈인진 몰라도 난 불필요한 변수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우리 일은 우리끼리만 진행하고 그 사람은 끼워 넣지 말아요.”소미란은 강연찬이 자신이 아직도 서유라 같은 애랑 얽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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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남 대표님, 상황이 이렇습니다.”이 팀장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말했다.“동아 소재, 홍업 정밀, 그리고 계명 전자 세 곳 모두 우리 기존 프로젝트의 주요 공급업체인데 오늘 오전 거의 같은 시간에 협력 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통지를 보내왔습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 팀장을 바라보았다.“조건 변경 말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죠?”“그쪽에서... 공급 단가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요구했습니다. 평균 인상률이 30% 이상입니다.”이 팀장은 힘겹게 침을 삼켰다.“게다가 태도가 매우 강경해서 우리가 새로운 가격을 수용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합니다. 계약서상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있긴 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인상은 전례가 없습니다. 게다가 세 곳이 동시에...”“이유가 뭐예요?”남설아의 목소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한층 차가워졌다.“원자재 가격 상승입니까? 아니면 시장 수급의 불균형이에요?”“그쪽에서 내세운 이유는 굉장히 모호합니다. 그냥 원가 상승과 시장 환경 변화라고만 했습니다.”이 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가 협상도 시도해 봤지만, 전혀 타협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동아 쪽은 아예 대놓고 우리가 수용하지 않더라도 대체 고객은 얼마든지 있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거래해 왔고 그들의 생산 능력 중 상당 부분이 우리 배건 그룹의 주문에 의존하고 있었으니까요.”남설아는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동작을 멈췄다. 주요 공급업체 세 곳이 동시에 무리한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이유는 불분명하며 태도는 확고하다.이 뒤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다.배건 그룹의 기존 프로젝트는 수년간 회사의 기반을 지탱해온 핵심 사업이다. 수익이 안정적이고 자금의 흐름도 좋아서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핵심 원천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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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설아야, 바빠?” 전화기 너머로 강연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방금 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남설아는 최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볍게 하려고 애썼다.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좀 피곤해 보여.” 강연찬은 민감하게 알아챘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남설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하기로 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고 강연찬의 판단력을 믿고 있었다.“회사 쪽 문제야.” 그녀는 간략하게 공급업체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주요 공급업체 세 곳이 동시에 가격 인상을 요구했어. 인상 폭도 크고 거절하면 계약 종료하겠대. 시기랑 방식이 너무 절묘해서 단순한 시장 반응 같지는 않아.”잠시 정적이 흐른 후, 강연찬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동아 소재, 홍업 정밀이랑 계명 전자?”남설아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배건 그룹의 핵심 공급업체로 꽤 유명하거든.” 강연찬이 설명했다. “이 세 곳이 동시에 압박하는 건 확실히 이상하지. 게다가 이들이 공급하는 건 배건 그룹에서 가장 안정적인 사업 분야지? 수익과 자금 흐름의 핵심일 텐데.”“맞아.” 남설아는 그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걱정이야. 새 사업이 막 궤도에 오르려는 시점인데 자금 운용이 중요한 때야. 이건 내 계획을 무너뜨리려는 거야. 더 나아가면 내가 배건 그룹에서 쌓아온 기반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지.”“이건 단순한 경쟁 같지 않아.” 강연찬의 목소리에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의도적으로 조종하는 것 같아. 목표는 명확하고 네가 그 중심에 있겠지. 아니면 지금의 배건 그룹 상황 자체가 타깃일 수도 있고.”“나도 그렇게 느껴.” 남설아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났지만 동시에 냉철한 날카로움도 있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누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아직 감이 안 잡혀.”“가능성은 크지.” 강연찬이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설아야,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해. 상대의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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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한편, 강연찬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조금 전 통화에서 묻어 나오던 부드러운 기색을 유지하며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그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뒤, 전화를 걸었다.“나야.” 강연찬은 간결하게 말했다.“동아 소재, 홍업 정밀, 그리고 계명 전자. 이 세 회사의 최근 움직임, 특히 배건 그룹과의 계약 변동 사항을 전부 조사해줘. 오늘 갑자기 동시에 조건 변경을 요구한 게 단순한 우연인지, 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나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그가 원하는 건 시장의 추측이나 유언비어가 아닌 구체적인 정보였다.전화기 너머에서는 훈련된 듯한 정중하고 신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습니다, 강연찬 씨.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곧 피드백 드리겠습니다.”강연찬의 신뢰받는, 이런 사안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온 실력자였다. 지시를 마친 강연찬은 쉬지 않고 또 다른 번호를 눌렀다.이번에는 조금 부드럽고 연륜 있는 어른을 대하는 존중이 배어 있는 말투였다.“아저씨, 접니다. 연찬이에요.”“연찬이구나,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 조영구의 목소리는 묵직하고 다정했다.“부탁 좀 드리려고요.” 강연찬의 말투는 진지하고 정중했다.“지금 배건 그룹이 특수 합금, 고정밀 베어링, 그리고 핵심 전자 부품 쪽에서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국내든, 아니면 화승 계열 내든 상관없어요. 저희가 접근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 세 분야를 맡을 수 있는 업체가 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품질과 신뢰도 모두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하고요. 당장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경험이 풍부하시니, 우선 일차적인 필터링과 검토만 부탁드립니다.”조영구는 흔쾌히 수락했고 강연찬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조영구와의 대화를 마친 그는 서재를 나서서 망설임 없이 외투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그 시각, 남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게 식어버린 물컵을 들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표정은 날카롭고도 깊은 피로에 잠겨 있었다.그때 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에 남설아는 곧장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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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서유라는 화려하게 차려입고 우아한 사모님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몸에 꼭 맞는 크림색 원피스를 입고 정갈한 메이크업에 하나하나 다듬어진 몸짓과 말투는 마치 오랜 시간 연습해온 듯한 부드럽고 단정한 태도였다.그녀는 말할 때 목소리를 낮게 유지했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늘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타이밍 좋게 적절한 칭찬을 건넸고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중앙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금융계 거물의 아내,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수많은 사람을 봐 온 인물이기도 했다.이 씨 사모님은 찻잔을 들고 조용히 서유라를 관찰했다. 서유라가 최근 다녀온 미술품 전시 이야기를 꺼내자 비록 전문적인 식견은 아니었지만 신선한 시각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상대의 말에 능숙하게 호응하는 센스가 인상적이었다.“서유라 씨, 정말 안목이 좋네요.” 이 씨 사모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떠보듯 말했다.“우리 남편 회사에서 요즘 미술품 투자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감각 있는 자문이 필요하거든요.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소개해드릴게요.”“미란 씨, 무슨 걱정 있으세요?”서유라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소미란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별일 없어요.”그녀는 감정을 드러내는 걸 꺼렸다. 특히 서유라 앞에서. 이 여자는 어딘가 모르게 속을 알 수 없고 계산된 냄새가 났다.“아직도 연찬 씨 생각 중이신 거예요?”서유라는 소미란의 경계하는 모습을 못 본 척 조금 더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추고 말했다.“연찬 씨는 워낙 사람이 좋잖아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가끔은 그런 점 때문에 괜히 속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어요.”소미란은 찻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자기 너머로 따뜻한 열이 손끝에 스며들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서유라는 여전히 태연했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무언가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말투로 속삭였다.“미란 씨, 여기 앉아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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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서유라의 말은 마치 바늘처럼 소미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찔렀다.‘신분’, ‘가문’, ‘어울리느냐 마느냐’ 하는 말들은 그녀가 속으로는 감추고 있었던 자존심을 정통으로 건드렸다.소미란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했지만, 그 눈빛 안에 감춰진 어떤 것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하지만 그 불쾌감은 곧 다른 생각에 덮였다.‘남설아. 이 여자는 강연찬 앞에서,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그때 두 사람이 뭐라고 속삭이고 있는 걸 본 이씨 사모님이 웃으며 다가왔다.“서유라 씨, 소미란 씨, 두 분의 감각은 정말 우리 마음에 쏙 들어요.”서유라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받아쳤다.“과찬이세요, 사모님. 저는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는 정도지, 안목이랄 게 어디 있겠어요. 그보다는... 들었어요, 사모님께서 아이들 미술교육에 굉장히 신경 쓰신다면서요? 그런 따뜻한 마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그 말은 마치 자신은 그저 보잘것없다는 듯 몸을 낮추면서도 상대를 자연스럽게 띄워 주었고 그사이에 자신의 선한 마음도 어필했다.이씨 사모님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참 마음씨도 곱네요.”소미란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좀 놓였다. 곧 다른 사모님들에게도 서유라를 소개했고 서유라는 상황을 참 능숙하게 이끌었다.말을 가로채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했으며 필요한 순간에 조심스럽게 말 한두 마디 얹는 식이었다.각 사모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두었던 듯 대화 주제도 어색함 없이 잘 맞췄고 그녀 특유의 ‘조금 상처받은 듯하지만 꿋꿋한’ 이미지와 살짝 붉어진 눈망울은 여러 사모님의 동정심을 샀다.“그 남설아라는 여자도 참... 약혼녀가 여기 앉아 있는데 혼자 배건 그룹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잖아요.”안 씨 사모님이 작은 목소리로 비웃듯 말했다.“그러게요, 어찌나 성깔이 있는지... 배서준 씨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다른 사모님이 맞장구쳤다.서유라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찻잔을 천천히 저으며 입가에는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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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배서준은 서유라가 건넨 자료를 건성으로 훑어본 뒤,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 쪽 머리카락을 살짝 넘겼다.마치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는 조용하고 부드러웠다.“수고 많았어, 유라야. 이런 자리... 많이 피곤했지?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유라의 심장이 순간 쿵 내려앉았다. 배서준의 드문 다정함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까지 붉어졌다.“안 피곤해, 서준아.”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녀는 살짝 그에게 몸을 기댔다.“너한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뭘 하든 괜찮아. 사람들이 남설아 욕하는 거 듣는데... 괜히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었어. 네가 겪은 일들, 괜히 내가 대신 보상받는 것 같아서.”배서준은 그녀를 안고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하지만 그 눈에는 전혀 따뜻함이 없었다.“알아.” 그는 낮게 말했다.“네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다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네 거, 누구도 못 뺏어.”서유라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실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자 배서준의 얼굴에서 웃음기와 다정함은 단숨에 사라졌다.그는 전화를 들고 서도현에게 걸었다.“여보세요, 매형?”서도현은 반가운 듯, 살짝 들뜬 목소리였다.“이씨 가문이랑 안씨 가문 쪽 프로젝트, 네 누나가 가져왔어.”배서준은 와인잔에 술을 따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진짜요? 매형, 그럼 이제 우리 계획대로...”“말했던 대로 진행해.”배서준은 술을 한 모금 들이켰고 눈에는 살기가 떠올랐다.“사람 준비시켜. 회의 들어갈 때는 자세를 낮춰서 계약부터 따내. 그다음에는...”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진행할 때 문제 터지게 해. 공정이든, 자재든, 돈 주는 방식이든... 암튼 골치 아프게 만들어. 배건 그룹이 스스로 문제를 안고 엉망이 되게.”“알겠습니다.”서도현은 독기가 서린 말투로 대답했다.“남설아, 꼭 쓴맛을 보게 해줄 겁니다. 우리 누나가 당한 거, 몇 배로 돌려줄 거예요.”“중요한 건 물 흐리기야. 배건 그룹의 돈이 들어가는 새 프로젝트들 거기부터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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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배서준 씨, 오랜만이네요.”소미란의 목소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사모님, 미란 씨.”배서준은 인사하며 가져온 선물을 옆에 있는 가사도우미에게 건넸다.“조금 준비해봤습니다. 별건 아니에요.”서유라는 얌전하게 배서준 옆에 앉으며 분위기를 띄웠다.“미란 씨, 오늘 입으신 원피스 정말 예뻐요. 피부가 더 하얗게 보이네요.”소미란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대답하지 않고 배서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요즘 아주 바쁘시다면서요? 배건 그룹 쪽은... 잘 돌아가요?”배서준은 찻잔을 들며 느긋하게 대답했다.“그럭저럭요. 늘 그렇죠. 아래 사람들이 가끔 사고를 치는 게 문제예요.”“그래요?”소미란은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무슨 사고요? 요즘 배건 그룹이 새 프로젝트에 많이 투자한다던데... 설마 자금 쪽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죠?”질문이 다소 직설적이었다.서유라는 조심스럽게 배서준의 팔을 살짝 건드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서준아, 혹시 또 납품업체 쪽에서...”서유라는 말끝을 흐리며 신경이 쓰지만, 괜히 짐 되긴 싫은 척을 했다.배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소미란을 바라봤다.“별일은 아니에요. 몇몇 기존 납품업체들이 단가를 올리려 해서요. 새로 담당하게 된 직원이 아직 경력이 부족해서 통제가 잘 안됐나 봐요.”“새 담당자요?”소미란은 그 말을 따라 읊조리듯 반복하며 찻잔을 들고 눈빛을 숨겼다.“그게... 남설아 씨 말인가요?”배서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한 마디 말이었지만 소미란이 듣기에는 정보가 너무나 많았다.‘통제가 안 된다? 경력이 부족하다? 그건 곧 남설아가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뜻 아닌가?’그리고 납품업체들이 감히 단가를 올릴 생각을 한다는 건 배건 그룹의 자금 흐름에 뭔가 문제가 생겨 그들이 틈을 노릴 만큼의 허점이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소미란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강연찬이 남설아를 그토록 감싸고 신뢰하는데 만약 그 여자가 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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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다음 날 아침, 이름 있는 몇몇 경제 신문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배건 그룹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이 소식이 퍼지자 배건 그룹 내부는 마치 돌을 던진 연못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장 대리님, 휴대폰 봤어요? 기사 말인데요...”탕비실에서 한 젊은 직원이 목소리를 낮추며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옆에 있던 나이 든 직원이 이쪽을 보며 말했다.“어디 보자... 아이고, 기자들이란. 별일도 아닌 걸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써 놨네.”“근데 한 군데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것도 보세요, 또 이거도... 다들 비슷한 얘기에요. 진짜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연말 보너스는 어떡하냐고요...”젊은 직원은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며 더 걱정했다.“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은 왜 해?”물을 막 따라온 여직원이 끼어들며 말했다.“남 대표님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회사를 망치겠어? 딱 봐도 누가 배 아파서 헛소문 퍼뜨리는 거지.”장 대리는 말없이 컵을 들고 나가며 한마디 덧붙였다.“어휴, 진짜든 아니든 간에 분위기 뒤숭숭한 건 사실이지. 오늘만 해도 여러 부서에서 일하는 효율이 확 줄었더라.”남설아의 사무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안 이사였다. 이사회에서도 손꼽히는 고참인 사람인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남 대표님,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안 이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남설아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았다.“안 이사님, 앉으세요. 무슨 일이신지요?”하지만 안 이사는 앉지 않고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밖에 난 기사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오늘 아침에만 나한테 전화 온 게 일곱 통이 넘어요. 다들 배건 그룹 진짜 자금난 난 거 아니냐고 묻더군요!”남설아는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안 이사님도 사업 오래 하셨잖아요. 언론에서 하는 말은 전부 믿을 건 아니죠. 전형적인 풍문일 뿐입니다.”“풍문?”안 이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그 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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