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으로 돌아온 배서준은 시가 끝자락이 손가락을 뜨겁게 스치는 순간에야 그것이 다 타들어 간 걸 깨달았다. 연기는 흩어졌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빈틈없다고 여겼던 계획이 남설아의 알 수 없는 문자 한 통과 낮에 마틴이 늘어놓은 말 때문에 흔들린 탓이었다.배서준이 남의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남설아의 말속에 무시할 수 없는 뉘앙스가 있었다.배건 그룹의 이익은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마틴이란 폭탄이 터지려면 적어도 배건 그룹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이어야 했다.문제는 마틴이 운청에서 뿌리를 깊게 내린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얽힌 관계망도 복잡해 직접 손을 대면 속도만 늦추고 오히려 경계심만 높일 수 있었다.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힘이 있고 마틴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말이다.‘강연찬?’배서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연적인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게 썩 유쾌할 리 없었다.하지만 배건 그룹을 위해서라면 체면은 중요하지 않았다.운청 최고급 클럽의 룸 안, 배서준 앞에 놓인 차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식어가고 있었다.문이 열리자 선선한 공기와 함께 강연찬이 들어섰다.짙은 양복 차림, 키가 크고 곧은 체구. 그는 배서준을 향해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종업원이 차를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났다.“배 대표님.” 강연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힘이 있었다.“무슨 일로 절 찾으셨습니까?”배서준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강 대표님,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틴 때문입니다.”강연찬은 찻잔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훑었다.“마틴? 잘 몰라요.”“강 대표님은 몰라도 나는 잘 아는 사람입니다.”배서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머지않아 마틴도 당신을 알게 될 겁니다. 남설아, 이설 그룹, 그리고 배건 그룹까지, 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 셋을 한 번에 삼키려 하고 있죠.”그는 마틴과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문제점들, 불투명한 자금 흐름, 지지부진한 진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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